(EP.150)노인
“…….”
제도 상공.
화이트가 바이올렛에 의해 끌려간 직후.
아셰라와 샤사르는 대치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침묵하며, 서로를 노려보던 두 마왕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그야말로 동시에 술식을 전개했다.
우우웅!
마나가 공명하며 붉은 아지랑이가 일어난다.
마찬가지로, 푸른빛의 광휘가 아셰라의 전신을 뒤덮었다.
먼저 마법진을 완성시킨 건 샤사르의 쪽이었다.
손을 앞으로 뻗는다.
생성된 마법진이 빛을 발하며, 이어서 화염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콰아아아아아!
그야말로 폭발적인 기세로 그 크기를 불려 나간 불꽃은, 이내 아셰라를 향해 쏘아진다.
“…….”
아셰라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완드에 마나가 맺히게끔 하며, 직후 휘두른다.
느긋한 움직임으로, 가볍게.
번쩍!
한 차례, 푸른빛의 섬광이 번뜩였다.
콰아아아아앙!
불꽃과 섬광이 맞부딪힌다.
대규모의 폭발이 일며 제도 상공을 아득하게 물들였다.
“──.”
그 이후부터의 전투는 그야말로 급속도로 이어져 나갔다.
아셰라와 샤사르.
두 명의 마왕은 각자의 이명에 어울리는 수준의 마나를 일으키며 격돌을 일으켰다.
쾅! 콰앙! 콰아아앙!
한 번, 두 번, 세 번.
쿠구구궁!
콰아아아앙!
다시금 한 차례, 두 차레.
폭음은 연신 살벌하게 사방을 강타했고, 그 여파는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까지도 미칠 정도였다.
“……!”
일순간에 주변을 휩쓸어버리는, 붉은 색채를 띠는 마나의 무기들.
그 검격의 난무에, 전투를 이어나가던 테이칸과 리이칸테르 후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카가가가가강!
“크윽……!”
앞장서서 마나로 이루어진 검격을 막아낸 건 리이칸테르 후작이었다.
오러를 끌어올리며, 붉은빛의 검을 어떻게든 쳐낸다.
채앵!
한 차례의 금속음이 울리고, 이어서 날아드는 붉은 검들은 테이칸의 화염이 막아섰다.
화르르르륵!
그때였다.
“빈틈이구나.”
“……!”
어두운 색채의 마나를 끌어올리며, 노인이 테이칸의 측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콰아아아아!
“이런……!”
테이칸의 표정이 낭패감으로 물들었다.
샤사르의 마법이 만들어낸 여파를 막아내느라 지나치게 화염을 소모했다.
노인을 견제하던 화염마저 옮겨가면서.
명백한 실책이었다.
적에게 기회를 내어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각하!”
리이칸테르 후작이 이를 악물며 소리쳤고, 테이칸이 재빨리 마나를 끌어올렸다.
“늦다네.”
“……!”
그러나, 테이칸의 마나가 불꽃의 형상을 갖추는 것보다도.
어두운 마나가 맺힌 노인의 손날이 테이칸의 심장 부근으로 다가가는 것이 더욱 빨랐다.
‘뚫린다……!’
테이칸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직감할 수 있었다.
막을 수 없다.
전개가 지나치게 느리다.
샤사르의 마법에 신경이 쏠린 나머지, 눈앞의 적을 보지 못했다.
“잘 가게나.”
그리고, 그렇게 노인이 불쾌한 웃음을 흘리며 테이칸의 심장을 꿰뚫으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푸욱!
“……커헉!”
직후 울려 퍼진 것은 피부가 찢어지는 소음이었다.
“……!”
다만, 예상했던 것처럼 노인의 손날이 테이칸의 가슴을 파고든 것은 아니었다.
“무, 슨……!”
노인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의 어깨에는 푸른색의 가시가 꽂혀 있는 상태였다.
테이칸의 두 눈이 큼지막하게 떠졌다.
그의 고개가 측면으로 돌아갔다.
조금 더 상공.
콰앙! 콰아아아앙!
……여전히, 아셰라와 샤사르는 접전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대마법이라고 표현해 마땅한 것들이 제도의 하늘을 휩쓴다.
상대에게 닿기 위해, 상대방이 그 자신에게 닿지 못하게끔 하기 위해.
빈틈이 보이면, 상대를 물어뜯기 위해 전력을 이끌어낸다.
……그 와중에, 아셰라는 이쪽을 신경 쓰고 있었다.
“크윽……!”
노인의 어깨를 관통한 것은 아셰라의 마법이었다.
샤사르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그 자신을 상대하면서, 여유를 부리기라도 한다고 생각한 걸까.
더욱 거칠게 마법을 전개하며, 그가 아셰라의 틈을 노리고 몰아붙여 나가기 시작했다.
테이칸의 표정이 한층 진지하게 변했다.
‘기회다.’
그것도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종류의 것이었다.
아셰라가 만들어준,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유일한 기회.
“──.”
테이칸과 리이칸테르 후작이 동시에 움직였다.
화아아악!
불꽃을 일으키며, 오러를 검에 흘려 넣는다.
동시에, 두 사내는 한순간에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
마침 노인이 어깨에 박힌 마법을 제거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노인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죽어라!”
짓씹듯이 내뱉으며, 리이칸테르 후작이 검을 쥔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었다.
일자로 휘두른다.
노인의 목을 노리고.
전력을 이끌어낸다.
이다음은 없다고 생각하며, 리이칸테르 후작이 두 눈을 살벌하게 번뜩였다.
검에 맺힌 선명한 색채의 오러가 늘어나며, 이내 노인의 목에 닿는다.
카앙!
“……큭!”
그러나 그 직후 일어난 광경은, 베어져 허공을 가르는 노인의 목이 아니었다.
마치 금속과 금속이 맞부딪힌 듯한 소음.
노인의 목은 베이지 않았다.
강철도 베어낼 수 있는 오러 블레이드가, 고작해야 인간의 피부를 뚫지 못해 멈춰서고 있는 도중이었다.
으득!
리이칸테르 후작이 이를 거칠게 갈았다.
“크아아아아!”
실핏줄이 터져 나갈 정도로 눈을 부릅뜬다.
입술을 비집고 핏물이 새어 나와도, 무시한다.
신경 쓰지 않는다.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끼긱, 끽!
금속이 맞물리는 소음이 울려 퍼진다.
리이칸테르 후작과 노인의 눈이 동시에 크게 뜨였다.
둘 모두 직감할 수 있었다.
‘벨 수 있다.’
‘……베인다!’
곧 리이칸테르 후작의 검이, 노인의 목을 베어넘길 것이라는 걸.
“웃, 기지 마라……!”
노인이 표정을 경련시키며 험악한 괴성을 내질렀다.
콰아아아아아!
“크윽……?!”
마나가 형태를 이루며 리이칸테르 후작에게로 쇄도해 들었다.
“……!”
마치 칼날과도 같은 그 마나의 폭풍에 의해, 리이칸테르 후작의 전신에 잔상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붉은 피가 튀긴다.
팔과 다리, 어깨와 뺨, 심지어는 목 부근에서까지.
마나의 폭풍은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이 리이칸테르 후작을 집어삼키고자 달려들었다.
그렇지만.
콰직!
“……!”
리이칸테르 후작은 검을 놓지 않았다.
놓을 수 없었다.
전신이 핏물로 물들어도, 이 자리에서 끝을 봐야만 했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줄 뿐이었다.
노인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천천히, 검이 목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쩍, 쩌적!
마치 유리에 금이 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노인의 목이 비틀린다.
검에 의해, 그 검기에 의해, 오러에 의해.
점차 뒤틀리며, 일그러지고, 망가져 간다.
“……크아아아악!”
노인이 다시 한 차례 섬뜩한 괴성을 내질렀다.
“벨 수 있을 것 같더냐……!”
안광을 번뜩이며, 노인이 재차 손을 뻗었다.
이미 어깨를 파고들며 움직임을 방해했던 아셰라의 마법은 제거된 지 오래였다.
더 이상 망설일 것은 없었다.
이 이상 머뭇거렸다가는, 역으로 목이 떨구어지는 것은 그 자신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렇기에, 노인은 손길에 마나를 실었다.
콰아아아아!
그야말로 도시 하나를 지워버리는 것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방대한 양의 마나.
그것이 오로지 리이칸테르 후작의 심장을 꿰뚫기 위해 손날에 모여 들었다.
리이칸테르 후작도 그를 인식했다.
그리고 검을 물리지 않으면, 그 자신의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것을 확신했다.
“…….”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는 검을 내빼지 않았다.
콰직!
“……!”
아니, 오히려 더욱 거세게 밀어붙인다.
노인의 목은 이미 반절 이상이 베여, 덜렁거리고 있는 상태였다.
노인은 망설임을 지웠다.
‘뚫지 않으면, 베인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눈앞의 사내를 죽이지 않는다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그 자신이 될 것이라는 걸.
손을 뻗는다.
리이칸테르 후작의 심장을 파고들고자, 아득할 정도의 속도로.
그리고.
“……무슨.”
직후.
노인은 볼 수 있었다.
“…….”
리이칸테르 후작의 두 눈동자에 맺힌 감정을.
죽음에 대한 공포, 혹은 죽음을 무릅쓴 결연한 각오도 아닌.
그 눈동자 위로 떠올라 있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신뢰의 감정이었다.
노인의 표정 위로 의구심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카앙!
“……!”
뻗어진 손날은.
리이칸테르 후작의 심장을 노리고 나아간 날카로운 손길은.
어느 한 무채색의 방어막에 의해 틀어막혔다.
노인의 고개가 살벌한 기세로 측면을 향해 틀어졌다.
“……내 아들이 청의 마왕을 죽일 때 썼던 것을 베낀 기술이지. 어떠한가?”
입매를 비틀며, 조소를 머금고, 테이칸이 이죽이고 있었다.
노인의 전신에서 섬뜩한 살의가 터져 나왔다.
“클리포트……!”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그 존재 자체를 잊은 것처럼.
존재감이 흐릿해지는 감각.
눈을 깜빡이면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할 것만 같은.
그런 기괴한 장막을 몸에 두른 채, 테이칸이 화염을 일으켰다.
그 기술이, 지금은 바이올렛을 상대하고 있는 화이트의 고유 마법을 베낀 것이라는 것을 노인은 알 수 없었다.
알 수는 없었으나.
그저 한 가지.
인식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면.
‘……아.’
날아오는 화염과.
그 자신의 목을 끝끝내 베어내는, 차가운 금속의 감각.
서걱─!
시야가 반전된다.
세계가 뒤집히며, 노인은 의식이 끊기는 듯한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
캉! 카앙! 카아아아앙!
쏟아진다.
뼛조각들이.
“……크윽!”
에르샤와 실버는, 그러한 뼛조각들을 막아내는 것에 전력을 다해야만 했다.
단순한 뼛조각이 아니었다.
그 하나하나에 섬뜩한 칠흑의 마나가 맺혀 있었다.
방심하면, 한순간에 심장이나 목을 파고들 것처럼 날아든다.
그들은 이 마법을 전개한 게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시야 한쪽 끝부분에,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망자가 들어왔다.
[크흐흐흐……!]
그 특유의 불쾌한 웃음소리를 흘리는 망자.
서쪽의 엘더 리치, 루시펠.
에르샤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어째서, 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은 그러한 것들이었다.
으득!
거칠게 이를 갈며, 에르샤가 사납게 소리쳤다.
“왜 제국의 편을 드는 거지?! 한참을 서쪽 끝자락에 틀어박혀 연구만을 진행하던 망자가……!”
이해할 수 없었다.
딱히 같은 편은 아니라지만, 동시에 적으로 인식한 적도 없는 존재였다.
최소한 제국의 편에 들 일은 없으리라 판단한, 몸을 감춘 대마도사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뭔가.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도저히 납득이 불가능했다.
왜 리치가 생자의 편을 드는가.
어째서 제국의 편에 서서, 자신들을 막아서는가.
에르샤는 도저히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으나.
[왜 제국의 편을 드느냐, 라.]
다행스럽게도, 그 의문은 곧 루시펠의 목소리에 의해 해소되었다.
[간단한 문제지, 마왕.]
기괴한 눈웃음을 그려내며, 루시펠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평생에 가까운 세월을 서쪽에 틀어박혀 지내며, 얻어낸 결론은 하나였다.]
쇄애애액!
“……!”
말이 잠시 간격을 두고 멈추는 것과 동시에, 이번에는 측면에서 환한 빛을 발하는 섬광이 날아들었다.
에르샤의 고개가 확 틀어졌다.
‘프리드리히 에드발트……!’
황실의 대마도사.
9서클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는 평가를 받는, 제국 최강의 마법사.
그가 황궁의 대결계를 유지하면서도 루시펠을 보조하고 있었다.
섬광은 에르샤와 실버의 빈틈만을 파고들며 노려왔다.
위협적이었다.
따로따로 가해지는 공격이었다면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두 대마도사의 마법 난사가 합쳐지자, 그야말로 쏟아지는 폭우와도 같은 형태가 만들어졌다.
폭격과 다를 바가 없었다.
뼛조각들은 살을 스치며, 전신에 불쾌한 기운을 흘려 넣는다.
섬광은 매섭게 빈틈을 파고들어, 방심할 때마다 상처를 하나씩 새겨넣었다.
대응하기가 어려웠다.
막아낼 수 없었다.
시종일관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는 도중이었다.
에르샤와 실버가 시선을 교환했고, 직후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두 마왕은 동시에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12마왕.]
……와중, 루시펠의 음울한 음성이 이어졌다.
[너희들은 대륙의 재앙이다. 동시에, 악성 종양이지.]
“무슨 소리를……!”
[이해하지 못하겠나?]
후욱!
짤막하게 내뱉으며, 루시펠이 손을 휘저었다.
푹!
“……커헉!”
그리고 직후, 전조도 없이 배후에서 나타난 뼈로 이루어진 창날이 에르샤의 가슴을 관통했다.
고통에 찬 신음성을 흘리는 에르샤를 내려다보며, 루시펠이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제국을 좋아하지 않아. 다른 그 어떤 국가라 해도 마찬가지.]
다만.
[너희들은 존재 자체로 대륙에 해악을 끼친다. 인간들의 나라와는 그 결이 달라.]
흐릿한 안광을 일순간이나마 선명하게 번뜩이며, 루시펠이 양팔을 뻗었다.
우우우웅!
마나가 공명하고, 이어서 그의 뒤편에 수백 개의 뼈의 가시들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에르샤의 낯빛이 새파랗게 질리는 것과 동시였다.
[단순하게 생각했다. 별다른 대의를 가진 것도 아니지. 그저 대륙을 좀먹는 해충들을 몰아내야겠다고 판단했을 뿐.]
이죽거리며, 루시펠이 말을 이어나갔다.
[금의 마왕이 죽은 건 그 시발점이야. 너희들을 섬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에, 나는 너희를 적대했다.]
그저 그뿐이라고.
어려울 것도 없는, 그뿐인 문제일 따름이라고.
그렇게 덧붙이면서.
루시펠은 손을 일직선으로 내리그었다.
[의문은 해소되었나, 마왕?]
기분 나쁜 냉소를 흘리는 루시펠의 손짓에 따라, 그의 뒤편에 생성된 수많은 가시들이 에르샤와 실버를 향해 쏘아지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 죽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