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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145화 (146/158)

(EP.145)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은은한 붉은빛을 띠는 와인을 집어 들고, 술잔에 조심스레 따른다.

쪼르륵-

물줄기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술잔은 금세 가득 채워졌다.

“…….”

잠시 그 붉은빛의 액체를 멍하니 바라보던 화이트는, 이내 술잔을 들이켰다.

“……크.”

묘하게 속이 시원해지는 감각과 함께, 한 차례 탄성을 흘린다.

화이트의 표정 위로 미묘한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왜 그래? 화이트. 표정이 좋지 않은데.”

“…….”

그리고 그런 화이트를 향해 말을 거는 인물이 한 명 있었다.

화이트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에이단.”

그 청년의 이름을 입에 담으며, 화이트가 주변을 둘러봤다.

“너희 가문의 기계장치가 뛰어난 건 알지만, 그래도 힘으로 찍어누르면 소용없을 테지. 자, 덤벼라. 조슈아! 이상한 장갑을 낀다고 해도 나를 이길 수는 없을 거다.”

“고작해야 팔씨름 가지고 흥분하지 마라…….”

서로를 향해 피식 웃음을 흘리며, 팔을 맞잡는 율리안과 조슈아가 보였다.

각각 슈나이더 가문과 하이젠 가문의 후계자였다.

“후후, 사이가 좋아서 보기 좋아요.”

“……저게?”

그런 광경을 바라보며 옅게 웃음을 흘리는 페르시아, 그리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는 세레나가 있었다.

“흠, 맛있네. 이거.”

마지막으로는 홀로 감상에 젖은 표정을 지은 채 술잔을 홀짝이는 오르카까지.

화이트의 표정이 한결 평온하게 바뀌었다.

“화이트?”

“……아, 어.”

이어지는 에이단의 두 번째 부름에는 대충 대꾸한다.

표정에서 고민의 기색을 싹 지우며, 화이트가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뭐, 술이 들어가면 이래저래 감상에 젖는 법이니까. 신경 쓰지 마라. 별일 아니니까.”

“그래? 그렇다면야.”

화이트의 말에 에이단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술을 따르고, 목으로 넘기는 모습.

“…….”

그리고, 그런 광경을 바라보며.

에이단에게 말한 것과는 한결 다르게, 화이트는 다시금 두 눈을 감고 상념에 잠겼다.

‘회귀 이전에는 어떠했나.’

시간을 되감기 이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그들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떠올린다.

……세레나 리이칸테르는 검의 여제라 불리며 마왕들과의 싸움에 임했다.

에이단 케실은 재상의 자리를 물려받고는, 마왕의 침공을 받아내기 위해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율리안 슈나이더와 조슈아 하이젠는 각자 가문에서 기른 힘을 가지고, 마찬가지로 전선에 섰다.

페르시아 레이아는 ‘성녀’라는 이름으로 상처 입은 자들을 치유했다.

오르카 밤피르는 지금의 밝은 모습과는 다른 냉랭한 표정으로, 가문을 이끌어나갔다.

“…….”

그 모든 게 아셰라의 폭주 이후의 일이었다.

지금은 많은 게 바뀌었다.

그들은 아직까지 어렸으며, 가문을 물려받아 진정한 의미로 전면에 서기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어른이 되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는 더 이상 부담이 없을 것이다.

세레나가 마왕과의 일대일 전투로 목숨을 잃을 일도 없을 것이다.

오르카 역시 더 이상 차가운 표정은 짓지 않을 테지.

‘그리고 다른 녀석들도, 고통받을 이유는 없어질 거다.’

속으로 그리 중얼거리며, 화이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내가 그리 만들 테니까.”

그래, 그랬다.

이제는 더 이상 이들에게까지 업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세대에는 찬란한 빛만이 가득 차 있어야 했다.

어둠의, 전란의 기운 따위가 감돌아서는 안 됐다.

─끝을 본다.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후우.”

끝내 화이트가 두 눈을 뜰 즈음에는, 이미 다른 이들은 전부 술에 취해 정신 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였다.

그 광경이 사뭇 우스워서, 화이트는 한 차례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른 이들이 깨지 않게, 들키지 않게끔 하며.

지금껏 술을 마시기 위해 모였던 공간을 떠나간다.

이제 한동안 올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결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어쩌면, 이렇게 다 같이 모여 술을 들이킬 날이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가능성을 떠올리면, 저도 모르게 씁쓸해지고 마는 건 어쩔 수 없겠지.

그렇지만.

‘그래도, 이제 와서 흔들릴 이유도 없어.’

다짐했지 않나.

마왕들을, 이 대륙의 악을 몰아내겠다고.

복수와, 구원이다.

자신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오직 그 두 가지뿐이었다.

이제 남은 건, 마왕들과의 전면전일 따름이었다.

“…….”

화이트의 벽안이 착 가라앉았다.

끼익-

문을 조심스레 열며, 화이트가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이었다.

“어디 가?”

“…….”

뒤편에서 돌연 들려온 낭랑한 목소리에, 화이트가 걸음을 멈추었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린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있는 소녀가 한 명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 붉은 눈동자.

피를 머금은 것만 같은 눈빛.

오르카 밤피르.

취기 따위는 일절 느끼지 않는다는 기색으로, 그녀가 화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술에 취한 거 아니었나?”

“응, 아닌데.”

“…….”

즉답에 화이트의 고개가 삐딱하게 틀어졌다.

조금 전 훑어봤을 때는, 분명 취해 정신을 잃은 듯한 모습이었는데.

……속이고 있었던 건가.

자연스레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할 말이라도 있나 본데.”

“있지.”

화이트의 물음에 즉시 대꾸하며, 오르카가 손을 뻗어 밖을 가리켰다.

이어 싱긋 웃는다.

그야말로 상큼하게.

“안 나갈 거야? 잠시 얘기 좀 할래?”

“…….”

침묵하는 화이트.

입을 꾹 다물고, 의중을 파악하려는 듯 눈가를 가늘게 좁힌다.

“……하아.”

다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무언가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금세 한숨을 내뱉고 포기한다.

대충 고개를 까딱거리며, 화이트가 몸을 돌려 재차 걸어나갔다.

그리고 그런 화이트를 오르카가 총총걸음으로 뒤따랐다.

*****

“마왕, 죽이러 가는 거지?”

달빛을 받으며, 언제 챙겨온 건지 알 수 없는 술잔을 기울이고는 오르카가 내뱉은 말이었다.

마왕을 죽이러 가느냐.

그 간단한 질문에, 마찬가지로 간단하게 화이트가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굳이 부정할 이유도 없었다.

그녀는 다른 후계자들보다는 한층 이쪽 사정을 잘 알고 있었으며, 한 차례 일에 엮인 적도 있었으니.

구태여 가르쳐주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그녀 역시 알고 있을 것이다.

이미 황제는 전쟁을 선포했다.

마도왕국에서의 침공 역시, 알 만한 인물들은 이미 다 파악한 이후였다.

그 단서들을 조합해 보면, 오르카가 상황에 대해서 예견하지 못할 이유도 없으리라.

“이제 곧이다. 모든 걸 끝낼 순간이.”

그렇기에, 화이트는 그리 대답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12마왕이라는 존재들을 이 세계에서 몰아낼 순간이 코앞까지 다가왔노라고.

그리고 그 대답에, 오르카는 조금은 씁쓸한 듯이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이는 기색이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내뱉지는 않는다.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침묵하며 술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

화이트는, 그런 오르카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같이 가고 싶다. 혹은, 같이 싸우고 싶다.’

그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지.

저 눈빛은, 미련이 남은 듯한 저 아련한 시선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어떠한 애틋한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은.

그게 단순한 동경심이든, 사랑이든 간에 말이다.

다만 받아들일 수 없었을 뿐이다.

자신에게는 아셰라가 있었기에.

그리고 그건 오르카 역시 아는 바였다.

그렇기 때문에 입에 담지 않는 것이겠지.

그 자신의 감정을, 그 속마음을.

그 배려에는 감사한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무어라 말을 덧붙이며 상황을 난감하게 만들 수 있음에도,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민폐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루이 밤피르, 그러니까 에멜과의 전투와는 많은 게 달랐다.

루이 밤피르라는 존재와 오르카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렇기에, 복수를 도와주고자 했던 것뿐이다.

일순간 ‘흡혈’을 통해 7서클 급 이상의 능력을 낸 것도 알고 있다.

그것에 도움을 받기도 했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녀를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화이트의 눈동자가 씁쓸한 빛을 띠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있을 전투에는, 그녀가 끼어들 틈이 없겠지.’

9서클에 오른 대마도사만 5명이 넘어갈 것이다.

그 이외에도 전부 8서클의 끝자락에 도달했을 실력자들이었다.

그들이 맞붙는 싸움이다.

전력을 기울이는 전면전이었다.

고작해야 7서클의 능력으로써는, 도움은커녕 방해가 되고 말 것이다.

“…….”

별다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할 말이라고 해봐야 거절과 부정밖에 더 있겠나.

오르카 역시 전부 알고 있을 거다.

그러니, 굳이 말을 꺼낼 필요까지도 없었다.

“오르카.”

“응……?”

다만, 한마디만을 내뱉을 뿐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고개를 돌린다.

그 푸른 눈동자에 붉은 머리칼의 소녀를 온전히 담아내며, 화이트는 중얼거리듯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 문제 없을 거니까. 마왕은 전부 죽이고, 나는 살아 돌아올 거야.”

내뱉는 어조는 평소와 다르게 제법 유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건 오르카 역시 눈치챌 수 있었기에.

“……화이트.”

그녀의 두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놀란 기색으로 입술을 달싹인다.

할 말이 많은 듯한 표정이었다.

무어라 말하고 싶은 건 수도 없이 많아 보였으나.

“……으.”

결국 그 전부를 꺼내지는 못한다.

그저 한숨과 함께, 오르카는 미소를 지었다.

환하게, 걱정하는 기색은 띠지 않으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봤자 좋은 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탓이리라.

“걱정 안 해. 화이트가 얼마나 강한지는 잘 알고 있고…….”

다만 목소리가 살며시 떨려나오는 건 어쩔 수 없으리라.

그럼에도 그녀는 웃었다.

상대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에.

괜히 쓸데없는 생각을 품지 않게끔 하기 위해, 미소를 띤다.

“그러니까, 죽지 마.”

장난스럽게, 평소와 같이 웃으며, 그녀가 지나가듯이 내뱉었다.

“죽으면 나 울 거니까. 하루종일, 지쳐 쓰러질 때까지 울어버릴 테니까.”

그러니까.

“살아 돌아와. 애들이랑 다 같이 기다리고 있을게.”

“…….”

그걸로 말은 끝이었다.

술잔에 남은 와인을 마저 털어 넣으며, 마지막 걱정마저 떨쳐낸 기색으로 그녀가 상큼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런 오르카를 향해, 화이트 역시 마찬가지로 웃어 보였다.

어울리지 않은 짓이었지만,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데.

가볍게 미소 짓는 것 정도야, 해주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않겠나.

입꼬리를 부드럽게 끌어올리며, 화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대답으로 대화는 끊겼다.

그저 술을 홀짝이며, 구름 사이로 흘러나오는 달빛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그리고 화이트는, 그렇게 상공을 쳐다보면서도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아련한 기색을 눈동자 위로 띄운 화이트가, 이내 눈꺼풀을 덮었다.

‘……이제 곧.’

입술을 가볍게 깨문다.

본능적인 직감이 들었다.

근거는 없었다.

다만, 알 수 있었다.

─진실되게, 얼마 남지 않았다.

앞으로 조금이었다.

마왕들과의 마지막 전투가.

……모든 것이 깔끔하게 해결되게끔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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