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144화 (145/158)

(EP.144)추적 불가

모든 준비가 끝났다.

협정을 끊어냈다.

9서클에 올랐다.

마왕들을 상대하기만 하면 된다.

전력이 약한 것도 아니지 않나.

비록 황궁의 대결계를 유지해야 해서 움직이지 못하는 프리드리히를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루시펠이 있다.

테이칸이 있고, 리이칸테르 후작이 있다.

최소한 그들로서 마왕 둘은 묶어둘 수 있을 터.

그럼, 남는 건 자연스레 셋뿐.

바이올렛은 위협이 되지 못한다.

정신계 특화라고는 하지만, 9서클의 경지에 오른 대마도사에게까지 통할 수준은 아니었다.

적의 마왕 샤사르와, 또 다른 한 명의 마왕 역시 상대할 수 있다.

화이트는 자신이 있었다.

지금의 상태라면, 9서클에 결국은 도달해 과거의 힘을 모두 회복한 지금이라면.

샤사르와 정면으로 맞붙는다고 한들, 저번처럼 가볍게 나가떨어지는 일은 없으리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쪽에는 아셰라가 있었다.

흑의 마왕, 한때는 최강이라 불렸던 마법사.

그녀를 마지막으로 묶어두고 있던 속박, 협정 역시 완벽하게 끊어냈다.

상대할 수 있다.

못할 리가 없다.

이 전력을 가지고 이기지 못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상황일 것이었다.

다른 적은 상정할 이유가 없을 거다.

이미 전력의 저울은 기울었다.

제국의 적성국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상황 속에서 마왕의 편을 들지는 않을 터.

만약 그런 국가가 하나라도 있다면, 그날로 지도에서 그 국가의 이름이 지워지게 되겠지.

제국뿐만 아니라, 대륙의 모든 국가가 마왕의 편에 가담한 나라를 용서치 않으리라.

그러니, 이제 거리낄 것은 없었다.

이미 많이 기다렸다.

오랜 시간을 소비했으며, 슬슬 끝을 볼 때였다.

‘마왕들만 다 죽인다면.’

모든 게 해결된다.

‘특히, 샤사르.’

그만 없다면, 마왕 중 몇이 살아남더라도 그들은 버틸 수 없다.

애초에 구심점이 그라는 의미였다.

그렇기에, 할 수 있다.

화이트는 자신감이 차오르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자, 가보자.’

마왕들을 죽이러.

사납게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화이트는 그렇게 걸음을 내디뎠다.

*****

“……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

화이트의 자조 섞인 한마디에, 아셰라가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어…….”

볼을 살며시 긁적이며, 그녀가 쓴웃음을 입가에 띄웠다.

“상심하지 말아요, 제자님……!”

내뱉는 말은 어떻게든 화이트를 토닥여주고자 하는 말이었다.

애써 미소를 그리며, 아셰라가 화이트의 주변을 맴돌았다.

“마왕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걸 어쩌겠어요? 우리는 그들의 위치를 모르니, 쳐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그런 의미를 담아 아셰라가 말을 이어나갔다.

“언젠가는 그들도 모습을 드러내겠죠. 설마 언제까지고 이렇게 잠적하고 있을 생각은 아닐 테니까…….”

“…….”

그렇지만, 그럼에도 화이트의 표정은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금껏 상당한 시간을 소모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왕들을 찾지 못했기에.

마왕들은커녕, 그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어떻게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몸을 감출 수가 있을까…….

그런 생각과 동시에, 화이트는 깊은 상념을 이어나갔다.

‘이상해…….’

이상하다.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화이트의 눈매가 날카롭게 바뀌었다.

어째서 나타나지 않는가.

어째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가.

그 이유를 추측해본다.

그들이 겁에 먹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샤사르의 성격은 잘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지 않나.

그렇기에 더더욱 의아하다.

의구심이 들어버리고 만다.

‘왜?’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것은 당연한 의문이었다.

‘왜 나타나지 않는 거지?’

왜 이제 와서 도망치듯이 자취를 감추었나.

싸움을 바라지 않을 리는 없다.

그들의 자존심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새겨졌다.

그들 역시 끝장을 보고 싶어 할 터.

단순히 지금껏 마왕들을 주도적으로 죽여온 자신에게만 한정된 얘기가 아니었다.

샤사르라면, 12마왕이라면.

분명 자신들에게 이빨을 드러낸 제국 역시 용서하지 않으리라.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확신할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떠오르는 발상이 있었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마왕 측에서 시간을 끄는 이유.

그에 대한 해답으로써는, 고작해야 그런 것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혹은, 무언가를 노리고 있다…….

상념은 이어진다.

계속해서, 점차적으로 추측은 부풀려져 간다.

그리고.

……그리고.

“…….”

끝내, 화이트는 한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떠오르는 건 하나뿐이었다.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개념이 한 가지 있었다.

‘……협정.’

화이트의 표정이 한순간에 굳어졌다.

협정에 의해 행동이 제약된 건 비단 아셰라만은 아닐 것이다.

상호 간의 무력 간섭이 불가능하다는 건, 샤사르를 비롯한 다른 마왕들에게 역시 통용되는 문제일 터.

……그렇다면,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화이트의 고개가 돌아갔다.

아셰라가 있는 방향이었다.

“……?”

갑작스런 시선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의아하다는 듯 눈빛으로 물어오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며, 화이트는 그들의 목적을 다시금 되새겼다.

‘스승님을 사로잡아, 그 특별한 마나를 이용하는 것.’

다르게 말해서, 폭주.

아셰라의 폭주를 노리는 이상, 결국 그녀를 제압할 필요가 있을 터.

다만 그렇게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도 협정이라는 제약이 존재할 테니까.

……그렇기에, 시간이 필요했다.

자신과 아셰라가 그랬던 것처럼.

협정을 부숴버릴, 확실하게 끊어버릴 수 있을 방법을 찾아낼 시간이.

“……그랬던 건가.”

중얼거리며, 화이트가 이마를 짚었다.

곤란함이 그 표정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제야 조각들이 맞춰져 가는 기분이었다.

알 수 있었다.

그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어떻게든 협정을 부술 수 있도록.

이쪽에서도 협정을 끊어내기 위해 1년 이상의 시간을 쏟아부은 것처럼, 그들 역시 마찬가지일 터.

결국 그들의 목적은, 아셰라 그 자체에 있었으니까.

‘좋지 않은데.’

……상황이 좋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과 달랐다.

수많은 마법사 중에서도 정점에 서 있는 마왕들이 아닌가.

그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면, 협정을 깨부수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단지, 어느 정도의 충분한 시간이 필요할 뿐.

……그리고, 시간은 이미 상당히 흐른 이후였다.

당장 아셰라의 협정은 끊어졌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떠한가.

그들 역시 협정을 끊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못 할 게 뭐가 있을까.

그들이라면 가능할 터.

어렵더라도, 돌아가게 되더라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화이트의 표정 위로 낭패감이 떠올랐다.

……이쪽에서는 적들의 위치를 알 수 없다.

그럼 얌전히 기다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지금껏 몇 차례 추적당한 적이 있는 만큼, 그들로서도 흔적을 지우고자 최선을 다했을 터.

그런 이상, 찾아낼 방도는 없었다.

그저 기다리는 것밖에는.

그들이 모든 것을 끝내고, 이쪽을 노리고.

전면전을 걸어올 때까지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화이트는 그 자신이 떠올린 바를 곧바로 아셰라에게 전달했다.

협정의 존재, 그들에게도 작용하고 있을 제약.

그것을 끊어내기 위해 필요한 시간, 아마도 불가능하지는 않으리라는 추측까지.

모든 것을 전해 들은 아셰라 역시, 표정이 그리 좋지만은 못했다.

“……그런가요. 협정을 끊어내기 위해.”

납득한 기색이었다.

상세한 설명을 들은 이상, 납득하지 않을 도리는 없었다.

여태껏 가만히 있었던 이유가 밝혀졌다.

지금까지 그것을 떠올리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

잠시 곰곰이 고민하던 아셰라는, 그리 늦지 않게 그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녀는, 생각의 초점을 ‘전쟁’에 두고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제국과 12마왕 간의 전쟁이 주요한 무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는데.

그들의 진정한, 궁극적인 목적은 제국의 섬멸에 있지 않았는데.

……여전하게도, 그들은 그녀를 노리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그녀의 마나를 노리고 있었다.

아셰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협정은 부숴질 것이다.

아셰라는 화이트를 바라봤다.

“제자님과 제가 해낸 것이니, 그들이라고 해서 못할 이유는 없겠죠.”

“……예.”

화이트 역시 그녀의 말에 긍정을 표시한다.

여전히 표정은 좋지 못했다.

아셰라가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그랬다.

과연 자신들이 해낸 것을, 그들이라고 하지 못할까.

애초에 협정을 만들어낸 것 자체부터가 샤사르였을진대.

오히려 조금 더 쉬웠으면 쉬웠지, 어려울 이유는 하등 없을 테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건 없다.

기다려야 한다.

그들이 먼저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그저 얌전히…….

애초부터 불리한 싸움이었던 거다.

위치를 훤히 드러내고 있는 이쪽과는 다르게, 저쪽이 숨고자 한다면 대륙 전체를 한 차례 뒤집어엎지 않는 이상 그들을 찾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으음.”

살짝 어지러운 감각에, 아셰라가 관자놀이를 살며시 짓눌렀다.

“…….”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이라도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를 써서, 대륙을 샅샅이 뒤져야 하는가.

……그런다고 과연 찾을 수 있긴 할까.

고민은 길어졌다.

그리고 결론은 끝내 내려졌다.

“방법이……. 없네요.”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렇다면, 해야 할 건 간단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죠, 제자님.”

“…….”

마찬가지로 표정을 구기고 있는 화이트를 향해, 아셰라가 애써 옅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들을 찾을 수는 없고, 그들이 먼저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할 수 있는 것 또한 없으니까…….”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

“얌전히 기다리죠. 그들이 틈을 보이거나, 그들의 준비가 끝나 우리들을 찾아올 때까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건 제자님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예.”

영 못마땅한 기색으로, 그러나 부정할 수는 없어서, 화이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그런 화이트를 향해 아셰라가 재차 웃어 보인다.

“자, 그럼 갈까요.”

“……어디를 말입니까?”

고개를 갸웃하며 의문을 표하는 화이트.

그런 그를 향해 아셰라가 나긋나긋하게 말을 이었다.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그러니까, 최대한 전력을 온존하면서 휴식을 취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겠죠.”

“……그렇죠?”

“네, 그런 거죠.”

“…….”

“…….”

침묵이 이어졌다.

화이트의 눈동자가 재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이 덮쳐왔다.

무언가, 묘하게 불길해지는 느낌이었다.

화이트의 표정이 굳는 것과 동시였다.

“시간도 늦었겠다, 이만 방으로 가죠. ‘화이트’.”

“…….”

호칭이 바뀌었다.

화이트가 이마를 짚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아셰라는 그저 달뜬 숨을 내뱉을 따름이었다.

“그거 알아요? 저, 생각보다 오랜 세월을 참아왔다고요.”

“…….”

화이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아셰라는 말을 이어나간다.

그저 할 말만을 하겠다는 듯한 기색으로.

“제가 화이트를 사랑하기 시작한 건, 생각보다도 오래된 일이라고요?”

고혹적인 웃음을 한 차례 흘리며, 아셰라가 화이트의 등을 떠밀었다.

“자자, 어서 가요. 화이트. 휴식은 중요한 거랍니다.”

“…….”

화이트는 등에서 가해지는 압박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움직이고 싶지 않았으나, 발은 멋대로 내딛어지기 시작한다.

아셰라의 손길이 차가웠다.

밀고 있는 건 아셰라였고, 힘을 쓰고 있는 것 역시 아셰라였다.

반면 화이트는 힘을 빼고 있었으며, 최대한 움직임을 자제하고자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어째서일까.

표정이 편안해야 할, 등을 밀리는 쪽인 화이트의 표정이 점차적으로 어두워지고 있고.

근력을 쓰느라 그래도 힘이 들어야 할, 등을 떠미는 쪽인 아셰라의 낯빛은 상큼한 것은.

화이트는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이젠 모르겠다.’

이제는, 진짜 어쩔 수 없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턱!

“어라.”

발끝을 억지로 멈춰 세우며, 화이트가 몸을 휙 돌렸다.

“화이트?”

고개를 모로 기울이는 아셰라를 마주 보며, 화이트가 힘없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이어서 그녀를 곧바로 안아들었다.

“어머?”

그녀가 반응할 틈도 없이, 재빠르게.

움직임에 낭비는 없었다.

소위 공주님 안기라 불리는 자세를 갖추며, 화이트가 아셰라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벽안에 아셰라의 얼굴이 그대로 떠올랐다.

묘하게 요염한 미소를 지은 채, 그녀가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갑자기 적극적이네요, 화이트?”

“……예, 뭐. 아셰라가 원한다면야.”

“흐응.”

고개를 끄덕이는 화이트,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아셰라가 짜릿하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솔직하게, 나쁘지 않네요.’

아니, 오히려 좋다면 좋다고도 할 수 있으리라.

이 자세, 이 각도.

그 자신의 남자가 자신을 위에서부터 내려다보고 있는 상황.

……나쁘지 않았다.

아셰라의 금빛 눈동자가 점차 야릇한 빛을 띠어가기 시작했다.

“……크흠.”

그런 그녀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화이트는 그저 담담하게 걸음을 옮겨갈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그는 그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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