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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143화 (144/158)

(EP.143)9서클

죽음이 다가온다.

짙은 살의를 품은 마나의 창날이 정면에서부터 날아들고 있었다.

‘아.’

그리고 그러한 마나의 창을 상대로, 화이트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간단하게 마나를 끌어올리지도 않았고, 하다못해 자세를 잡은 것도 아니다.

그저 가만히 있었다.

시선만을 오롯이 빛낸 채, 창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리고.

끝내는, 직감할 수 있었다.

‘죽는다.’

아셰라 역시, 별달리 전력을 끌어낸 건 아닐 것이다.

평범하게, 일반적인 사람 한 명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의 위력만을 담았을 터.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공격에 담긴 살의일 것이다.

짙다.

짙디짙은 그 살의는,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이 들게 만든다.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등이 축축하게 젖었다.

시야가 어두워지며, 동시에 그나마 바라볼 수 있는 정면마저도 흐릿해진다.

그저 눈앞의 창만을 담아낸다.

다른 건 보이지 않았다.

볼 수 없었다.

의도적으로 그리 만들었다.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내며, ‘죽음’이라는 개념을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그리고.

화이트는, 그렇게.

죽음을 겪었다.

*****

“…….”

눈을 뜬다.

처음으로 볼 수 있었던 건, 허공을 가득 메우고 있는 빗줄기들이었다.

비가 떨어지는 날이었다.

화이트는 직감할 수 있었다.

이곳은, 굳이 말하자면 심상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과거의 기억.

과거의 세계.

……회귀 이전의 기억.

화이트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다.

보이는 건 그저 황량한 대지.

그리고 파괴된 듯 보이는 모든 것들.

이어서 화이트는 그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백색의 로브를 두르고 있었다.

그 가슴팍에는 클리포트 가문의 문장이 달려 있었다.

처음에는 가주직을 받은 이후라고 판단했으나, 이내 화이트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문장의 디테일이 다르다.

조금은 모자랐다.

클리포트 공작이 된 이후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소가주이던 시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가.’

화이트는 이윽고 알 수 있었다.

자연스레, 정신이 이쪽 세계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럼으로써 점차적으로, 상황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아셰라……. 스승님이 처음으로 폭주했던 시기인가.’

두 눈이 자연스레 질끈 감긴다.

절망감이 심장을 옥죄어 온다.

이 시점의 ‘화이트 클리포트’가 느끼던 감각일 것이다.

으득-

화이트가 이를 악물었다.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이 시점의 ‘나’에게 휩싸여서는, 물들어서는 안 된다.

이곳으로 온 목적을 떠올리자.

‘9서클.’

대마도사의 경지에 오르는 것.

강제로 올라서게 만드는 것.

그를 위해서라면, 감정 역시 이용할 뿐이다.

8서클에 올라섰을 때와 같다.

휩쓸리지는 않더라도, 이용할 필요는 있었다.

감정을, 그 절망을, 그 목적을.

되새기고, 깨달음마저 되찾는다.

그뿐이었다.

“──.”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화이트는, 과거의 그 자신과 일체화되기 시작했다.

*****

“……윽, 아.”

절망했다.

그저 절망했다.

무력했던 자신, 그리고 그렇기에 구해내지 못했던 소녀를 떠올린다.

약했기 때문이다.

그녀를, 아셰라를 구해내지 못한 건.

……조금 더 강했더라면.

조금만 더 높은 경지에 이르러 있었더라면.

그렇다면, 초기에 타락의 술식을 눈치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더라도, 폭주하기 시작하는 그녀를 진정시키는 게 가능했을 수도 있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를 구해내는 게 가능할지도 몰랐는데.

“…….”

모든 게 약했기 때문이다.

그저 무력했다.

힘이 없었다.

경지가 낮았다.

그녀를 구해내기에는 모든 것이 한없이 모자랐다.

클리포트 가문의 소가주라는 직위 따위는 하등 쓸모없었다.

8서클의 대마법사라는 경지 역시, 의미가 없었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많은 게 필요했다.

……조금 더 많은 힘이 필요했다.

“─힘을.”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는 점차적으로 광기가 어리기 시작한다.

“힘을, 원해.”

이어서 일그러진 표정과 함께, 화이트는 이를 악물었다.

입술을 비집고 핏물이 새어나왔다.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생각한다.

조금 더 많은 게 있었다면.

조금 더 강했더라면, 조금 더 많은 걸 알았더라면.

그녀를 구해낼 수 있었더라면.

“…….”

──힘에 대한 집착.

갈구하고자 하는 것.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를 위한 방식으로 마법을 선택한다.

그게 곧 깨달음이 되었다.

‘아셰라를 위해서.’

그녀를 구해내고자.

‘힘을 원한다.’

9서클에 오른다.

화아아아아악!

빛이, 광휘가 일었다.

환하며, 찬란하기 그지없는 광휘가 세계를 가득 메웠다.

그 일순간만큼은, 모든 게 새하얗게 물들었다.

“──.”

고오오오-

그 정중앙에서, 화이트는 그저 몸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쿨럭.”

한 차례 피를 토해낸다.

전신이 피투성이였다.

어째서인지는 모른다.

다만, 그저 그렇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

……그렇지만, 그러한 감각이 그다지 싫지만은 않았다.

직감할 수 있었기에.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기에.

……아셰라를 구하기 위한, 최소한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던 탓에.

화이트는 그저 미소 지었다.

옅지만, 분명하게.

‘죽인다.’

그녀를 그런 식으로 만들어, 자신들의 계획에 이용하고자 했던 모든 원흉들을.

‘구한다.’

그저 악에 이용당했을 뿐,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는 그 자신의 스승을.

‘……모든 걸 원상태로 되돌린다.’

그저 모든 것을.

대륙을, 세계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래대로.

적어도 멸망의 길로 들어서지는 않게끔, 조정하도록 하자.

“…….”

입술을 질끈 깨문다.

화이트는 다짐했다.

그녀를 잃고, 뒤늦게나마 그녀를 구해내고자 했다.

늦었지만, 비록 한참이나 늦었지만.

모든 걸 원래대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내가 그렇게 만들어 보이겠어.”

중얼거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다.

화이트의 푸른 눈동자는, 어느새 찬란한 백색과 청색이 어우러져 흐릿하게 빛나고 있는 상태였다.

*****

“……그래, 그랬지. 그런 깨달음이었지.”

잊고 있었다.

혹은, 구태여 생각하지 않고자 했다.

이미 돌아온 과거니까.

이미 없어진 시간대이니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생각해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절망은 필요 없다.

이미 아셰라는 자신의 곁에 있었으니까.

희망만을 되찾는다.

아셰라와 함께 만들어갈 세계에, 희망만이 있으면 될 문제였다.

“그저 그뿐이다.”

피식 웃음을 흘리며, 화이트는 재차 몸을 일으켜 세웠다.

“…….”

주변을 둘러본다.

이미 많은 게 사라져 있었다.

황량한 대지도, 미약하게나마 파괴의 흔적이 남아 있던 주변의 모든 것들도.

그저 사라졌다.

이제 보이는 건 하나뿐.

새하얀 세계.

……그리고, 푸른빛의 바다.

“심상 세계인가.”

이 공간의 정체에 대해 자연스레 떠올리며, 화이트는 쓴웃음을 흘렸다.

결국 이곳으로 돌아왔다.

결국 이곳의 도움을 받았다.

안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이 모든 게 한 곳으로 귀결된다.

“만류귀종(萬流歸宗)이라.”

모든 흐름은 하나의 끝자락에 도달한다.

그게 전부였다.

깨달음이자, 곧 동력원이 된다.

“9서클.”

우웅-

손끝에 마나를 일으킨다.

푸른빛의 구체가 떠오르며, 흐릿하게나마 찬란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올랐다.”

이미 9서클에 도달했다는 것을.

과거의 기억을, 그 깨달음을 발판 삼아, 더 높은 곳에 도달하는 것에 성공했다는 걸.

화이트는 그저 미소 지었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하나만 남았을 따름이었다.

모든 걸 끝낼 시간이다.

모든 걸, 원상태로 되돌릴 때가 왔다.

“……이제 여기도 올 일은 없겠지.”

근거는 없었다.

다만, 그런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신세 졌다.”

별다른 말은 없었다.

애초에 자신의 세계였으니까.

그 짤막하고, 간결한 한마디가 전부였다.

“후우.”

이어서, 한 차례의 한숨과 함께.

화이트는 두 눈을 떴다.

*****

“……님!”

“…….”

“……찮아요, 제자님?”

두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검은 머리칼의 소녀였다.

당연하게도 아셰라였다.

화이트의 입가에는 자연스레 옅은 미소가 맺힐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입니다, 스승님.”

내뱉는 말은 그러한 것이었다.

저도 모르게 꺼내 들고 만 한마디였다.

당연히, 그 말을 들은 아셰라의 표정은 묘해질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이라니, 그리 오래 지나지는 않았는데요…….”

그녀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말.

당장 그녀 자신의 공격으로 인해 화이트가 정신을 잃은 지 채 수십 분이 지나지도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화이트의 입장에서는 조금 달랐다.

생각보다도, 오랜 시간을 보내고 온 감각이 들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과거의 기억과, 과거의 깨달음에 동조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굳이 말하자면, 동기화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절망감은 아직까지 남아있었다.

비록 미약하지만, 흐릿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럼에도 분명하게.

씁쓸했다.

현재야 어찌 되었든, 이미 한 차례 그녀를 구해내지 못한 건 진실이었으니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동시에, 딛고 넘어서야 할 진실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무어라 말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왜인지 그녀를 눈에 담자.

여러모로, 하고 싶은 얘기들이 많이 생긴 느낌이었다.

……다만.

“……착각이었나 봅니다. 죽음이라는 게, 워낙 강렬한 경험이었던지라.”

화이트는 굳이 그에 대해 입에 담지 않았다.

구태여 할 필요는 없는 얘기였다.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 뿐이지 않겠나.

그녀는 물론, 자신 또한 씁쓸해질 따름이었다.

그렇기에, 굳이 말하지는 않는다.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걸친 채, 화이트는 내뱉었다.

“잡으러 가죠.”

“네……?”

시선으로 의문을 표하는 아셰라를 향해, 화이트가 사납게 입매를 비틀었다.

동시에, 눈동자에 불을 켠다.

이글거리는 복수심, 동시에 갚아주고 싶다는 마음.

“……그 빨간 미친개를 잡으러 갑시다, 스승님.”

그 모든 감정을 하나로 합쳐, 화이트는 결심했다.

그 무슨 일이 있어도.

적의 마왕, 샤사르만큼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여버리고 마리라.

“──.”

그리고, 그를 위한 힘은 이미 손아귀에 넣었다.

얻어냈다.

“9서클, 달성했습니다.”

자신감이 넘치는 태도로, 화이트는 웃었다.

한때 백색의 마법사라 불리었던, 대륙 제일의 대마도사의 귀환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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