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2)위의 단계
“그래서, 계획은 있어요?”
아셰라의 물음에 화이트의 고개가 측면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손을 붙잡은 채, 아셰라가 시선만 돌려 말을 이어나갔다.
“9서클에 오르는 것 말이에요. 쉽지 않을 텐데요.”
“가능합니다.”
“오, 즉답이네요.”
즉각적으로 돌아온 대답에, 아셰라가 사뭇 놀랍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이어서 그녀가 떠올리는 것은, 화이트가 8서클에 올랐을 당시의 일이었다.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저번처럼, 심상 세계의 도움을 받을 건가요?”
심상 세계에 진입해 과거의 기억을 되새기는 것부터, 그 도움으로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는 것까지.
그런 과격한 방법이 두 번이나 통할까 싶었으나, 혹시 모르니 묻는 말이었다.
그러나 화이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두 번이나 사용 가능한 방법은 아닙니다. ……사실상 억지로 경지를 뚫은 것이기도 했으니까요.”
“역시 그런가요.”
아셰라 역시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이해했음을 표시했다.
다만 그렇게 되면, 결국 떠오르는 의문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말해줘도 되잖아요? 대체 어떤 방법을 쓰려고요?”
아셰라는 흥미가 돋았다.
이 하나뿐인 제자님이, 이번에는 또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놀라게 해줄까.
그런 생각과 함께, 과연 인위적인 방식으로 9서클에 오르는 게 가능한가에 관한 궁금증도 돋아났다.
이성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으나, 역시나 혹시 모르는 일이지 않나.
화이트라면, 어쩌면.
기상천외한 어떠한 방법을 통해, 경지를 강제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을지도.
시간마저 돌린 그일진대, 과연 9서클에 오르는 일이 그리 어려울까.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아셰라의 눈동자 위로 이채가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화이트가 걸음을 멈추었다.
이어서 진지한 표정을 띤 화이트의 입이 조심스레 열리기 시작한다.
“스승님.”
“네.”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아셰라.
그런 아셰라와 시선을 마주하며, 화이트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스승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
그리고 그 한마디에, 아셰라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도움이 필요하다, 라.
당연히 그건 9서클에 오르는 것에 대한 도움을 얘기하는 것이리라.
그렇지만, 그렇기에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얼마든지 돕겠지만요…….”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아셰라가 영 석연찮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제자님이 9서클에 오르는 것에 제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을까요?”
9서클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깨달음’이 동반되어야만 오를 수 있는 경지이니, 타인의 도움이 어느 부분에서 필요할지 의아했기 때문에 꺼내는 말이었다.
화이트 역시, 그런 아셰라의 의문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9서클이라는 경지는 그러한 것이었으니까.
정신적인 깨달음, 혹은 그 비슷한 것이 필요한 경지.
그렇지 않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도달할 수 없는 경지…….
그러한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어찌 모르겠나, 당장 한 차례 9서클에 오른 적이 있는 게 바로 화이트일진대.
다만, 화이트는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 자신의 상황이 일반적인 마법사들과는 이미 많이 달라져 있다는 걸.
정상적인 길을 한참이나 벗어났으며, 어딘가 모르게 비틀려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화이트는 우선 그 사실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고자 했다.
“회귀의 부작용일 겁니다, 아마도.”
“네……?”
화이트의 입술이 떼어졌고, 그에 아셰라의 표정은 더욱 의아함으로 물들어만 갔다.
그런 아셰라를 바라보며, 화이트가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한 차례 경지에 오른 적이 있기에, 그렇기에 이미 무언가가 결여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화이트의 두 눈이 지그시 감겼다.
떠올리는 것은, 과거의 기억.
그리고 과거의 깨달음이었다.
7서클, 혹은 8서클과는 그 결이 달랐다.
9서클에 오르는 것에 있어서, 깨달음이라는 건 필수적인 요소였다.
당연, 화이트 역시 한때는 깨달음과 함께 9서클에 발을 들였다.
회귀 이전의 일이었다.
“그렇기에 문제가 되는 거죠.”
화이트의 인상이 미묘하게 찌푸려졌다.
……이미 한 차례 깨달음을 얻었기에.
경지에 오른 경험이 있기에.
그렇기에 더더욱,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9서클에 도달할 수 없었다.
짐작이 아닌, 확신에 가까웠다.
달리 말하자면 직감이라고 해야 할까.
미처 계산하지 못했던 시간 마법의 부작용, 그게 아직까지 남아 있는 감각이 들었다.
화이트는 그에 대해 차분히 설명했고, 그를 들은 아셰라의 표정 역시 점차 진지하게 바뀌어 갔다.
“……그런가요.”
납득했다는 듯이 작게 중얼거리며, 아셰라가 표정 위로 낭패감을 띄웠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9서클에 오르지 못하는 상황이라니.
난감하고, 곤란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지 않나.
언제가 되었던 9서클에 도달해야만 할 텐데, 그게 불가능하다면.
많은 게 틀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화이트는 뛰어난 마법사다.
8서클의 경지만으로도 능히 마왕의 상대가 가능할 터.
……다만, 그에는 한계가 있었다.
앞으로 상대해야 할 마왕은 일반적인 마왕이 아니었다.
지금껏 화이트가 죽여온 마왕들과는 그 격이 다른 존재.
적의 마왕, 샤사르.
“……물론, 제자님이 안 된다면 제가 그를 상대하겠지만.”
웅얼거리듯 내뱉으며, 아셰라가 살며시 시선을 들어 올렸다.
나름의 기대를 담아, 그녀가 재차 말을 이었다.
“제자님도 방법이 있을 테니, 제게 도움을 바란 거겠죠?”
그리고 그 질문에, 화이트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당연하죠.”
한 발짝, 앞으로 걸음을 내디딘다.
이어서 아셰라를 돌아보며, 화이트가 사납게 입매를 비틀었다.
“방법이야 만들면 될 문제입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9서클에 오르지 못한다면, 다른 길을 찾으면 되니까.”
그 당당한 목소리에, 아셰라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자신감이 넘쳐서 보기 좋네요.”
이어 내뱉는 말은 그러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미소를 입가에 걸치며, 아셰라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아요, 제자님. 제가 뭘 도우면 될까요?”
*****
“……얼마든지 돕겠다고는 했지만요.”
그 자신이 얼마 전에 내뱉은 말을 떠올리며, 아셰라가 울상을 지었다.
눈앞에서 태연스럽게 서 있는 화이트를 향해 약간의 원망이 섞인 시선을 던지는 그녀.
“제자님을 죽여버리라니…….”
“아니, 죽이라고까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만…….”
화이트가 기겁하며 즉각 대꾸했다.
동시에 떨떠름한 표정을 얼굴 위로 띄운다.
누가 죽이라고 말했던가?
그런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스승에게 제자를 죽이라니.
화이트는 그녀에게 자신을 죽이게끔 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무렴, 아무리 그래도 연인을 그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이도록 사주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화이트는 아셰라가 고통받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렇기에 상큼하게 웃으며, 그저 내뱉을 따름이었다.
“그냥 죽음만 경험하게 만들어 주시면 됩니다. 죽이는 게 아니에요.”
“그게 그거잖아요……!”
당연히 즉각적으로 반발이 돌아왔다.
숫제 울음마저 흘릴 것 같은 낯빛으로, 아셰라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죽이는 게 아니라, 죽음만 경험하게 만들라니……. 그게 대체 무슨 헛소리에요?”
내뱉는 목소리는 물기에 젖어 있었다.
“……으음.”
화이트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녀를 납득시킬 수 있도록 하려면, 대체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야 하는가…….
고민을 이어가 봤으나, 딱히 좋은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당장 그 자신도 스스로의 이론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진대, 어떻게 타인을 설득할 수 있겠나.
화이트의 표정에 깃든 곤란함이 짙어지는 순간이었다.
─죽음을 경험하는 것.
정상적인 길로는 9서클에 오르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이후, 고민 끝에 화이트가 낸 결론이었다.
9서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한 차례 죽음에 이를 필요가 있었다.
‘무슨 헛소리인가 싶긴 하지만.’
솔직히 스스로도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터무니없는 이론이긴 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어떻게든 설명을 하기는 해야만 했기에.
“……주마등입니다.”
화이트는 우선, 생각했던 바를 대충 되는대로 입에 담기로 했다.
입가에는 애써 만들어낸 미소를 걸친다.
아셰라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다만 조금은 씁쓸한 기색을 띠는 미소가 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굳이 말하자면, 심상 세계에 진입하는 거랑 비슷한 느낌일까요.”
“……심상 세계요?”
아셰라의 반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화이트가 천천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실제로 죽는 것이 아닌,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만을 경험하는 것.
죽는다.
혹은 죽게 될 것 같다.
그런 감각을 느낌으로써, 스스로를 세뇌한다.
“나는 죽었다, 라고 생각하게끔 하는 겁니다.”
내뱉으며, 화이트가 눈가를 슬며시 가늘게 좁혔다.
“죽기 직전, 죽음을 직감하고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는 순간 사람은 주마등을 본다고들 하죠.”
과거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지금껏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시야에 담긴다.
사람이 죽음을 직감한 순간 찾아온다는 그 감각을 인위적으로 느끼는 것으로, 화이트는 9서클에 오르고자 하고 있었다.
정확한 원리를 설명하자면, 과거의 깨달음을 억지로 불러오는 것이다.
심상 세계에 진입하여 과거의 기억을 되새겼던 것과 비슷한 형태로.
그 깨달음을 다시금 보는 것으로, 9서클에 올라선다.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그건 아직 알 수 없었다.
시도해보지 않는 이상,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다만,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화이트는 그렇게 판단했고, 그에 관해 아셰라에게 설명했다.
“…….”
그리고 모든 설명을 들은 아셰라는, 조금 전보다는 한결 차분해진 기색이었다.
그녀 역시 마법사였기에.
마법사였던 탓에, 화이트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의 편린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마등을 겪어서, 억지로 과거의 깨달음을 열어젖히겠다고요…….”
작게 중얼거리며, 아셰라가 고민하는 기색으로 입술을 얕게 깨물었다.
‘가능한 걸까?’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의문이었다.
그런 게 과연 가능한가.
그녀가 마법사로서 살아온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저러한 발상을 떠올린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저런 생각을 떠올리려면, 기본적으로 한 차례 9서클에 올랐다가 떨어져야만 했으니까.
회귀를, 경험해야만 했으니까.
“…….”
누구도 시도해 본 적 없는 방식일 것이다.
아셰라가 아는 한, 시간의 권능에 가까이 다가간 마법사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화이트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고민은 길게 이어졌다.
당장 아셰라 그 자신이 직접 화이트를 죽음의 낭떠러지로 떠밀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고민이 길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결국 결론은 내야만 했다.
언제까지 고민만을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
지그시 바라봐오는 화이트의 시선 역시, 아셰라로 하여금 결론을 내게끔 강요하기도 하였다.
“……알겠어요, 하면 되잖아요.”
끝내 아셰라는 울상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아셰라를 바라보며, 화이트는 한 차례 쓴웃음을 흘렸다.
“해야 할 건 간단합니다.”
이어서 조금은 씁쓸하게 설명을 늘어놓는다.
“그냥 살기를 집중시켜서, 제게 공격을 가하면 됩니다. 굳이 닿을 필요까지는 없지만, 죽이겠다는 의지만큼은 분명하게 품어야만 합니다.”
간단하다면 간단한 설명.
그러나 그 설명을 듣는 아셰라의 표정은 마냥 좋지만은 못했다.
“……제게 그런 걸 시킬 생각을 하다니. 제자님도 참 잔인하네요.”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나.
살의를 품을 것.
간단한 말처럼 보이지만, 그 대상이 다른 누구도 아닌 화이트라면.
아셰라에게는 그것보다 어려운 일이 달리 없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소중한 제자이자,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있는 남자를 죽이고자 하라니.
잔혹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
다만, 아셰라는 금방 마음을 다잡았다.
……쓸데없이 상념을 이어가고 있어봤자, 머뭇거림만 커질 따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아악!
마나를 끌어올리는 아셰라의 두 눈동자가 어둡게 가라앉았다.
‘제자님이 그러고자 마음을 먹은 이상, 제가 말릴 수는 없는 노릇이겠죠.’
가혹한 일이다.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해야만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화이트가 그것을 바랐기 때문에.
……그저 그뿐이었다.
‘다 끝나면 크게 혼날 줄 알아요…….’
그 생각이 마지막이었다.
“──.”
이어서, 아셰라는 마음을 다잡았다.
잡념을 지운다.
쓸데없는 생각은 일절 품지 않으며, 그저 하나만을 생각한다.
눈앞의 소년을 죽이고자 하는 것.
그 하나만을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아셰라의 금빛 눈동자 위로, 선명하면서도 섬뜩하기 짝이 없는 살의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