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141화 (142/158)

(EP.141)위화감

“굳이 이제와서 그 얘기를 한다는 건, 마왕들과의 전쟁에 도움을 주겠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겠나?”

프리드리히의 물음이었다.

아셰라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제자님이 그에 관한 설명을 했죠. 협정을 깨부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그러한가.”

프리드리히가 지그시 두 눈을 감았다.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셰라의 처우에 대한 고민은 아니었다.

이미 결론을 낸 사항에 대해서, 프리드리히는 더 무언가 고민을 이어나갈 생각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앞으로 아셰라라는 한 명의 9서클 급 마법사를 어떤 식으로 배치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흐음…….”

그렇게 프리드리히가 고민을 이어나가는 와중이었다.

[협정이라, 혹시 저번의 나를 가지고 실험했던 게 그에 관한 연구였나? 화이트.]

“……그래.”

루시펠의 물음에 대꾸하며, 화이트가 떨떠름하게 볼을 긁적였다.

‘……우선은 상황이 잘 넘어간 것 같아 안심은 되는데.’

이어 떠올리는 생각은 그러한 것이었다.

아셰라가 흑의 마왕이라는 것을, 생각보다는 다들 신경 쓰지 않는 모양새였다.

‘신뢰일까, 그도 아니면…….’

여러모로 생각이 짙어지며, 화이트의 눈가가 가늘게 좁혀진다.

알 수는 없었다.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 나쁘지는 않다는 게 전부.

화이트는 우선 아셰라의 존재가 받아들여진 것에 대해 안도하기로 했다.

“그렇다고는 하나…….”

그리고 그쯤에서, 프리드리히가 입을 열었다.

“당장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겠지. 마왕들은 마도왕국의 사태 이후로 모습을 감췄으니.”

“……그렇겠죠.”

조금은 안타깝다는 듯 대꾸하며, 아셰라가 턱을 괴었다.

기실, 1년 전의 그날 이후로 마왕들이 몸을 사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원래부터 그 행적을 추적하기란 쉽지 않았으나, 그 정도가 한층 심해진 느낌이었다.

1년 동안 제국의 힘으로도, 루시펠의 망자의 군단으로도 일말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으니.

“샤사르의 명령이겠죠, 아마도.”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네.”

적의 마왕, 샤사르.

그 이름이 나오자 좌중의 모두가 침묵했다.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 역시 느끼고 있었다.

앞으로 남은 것은 오직 전면전뿐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 정적을 깨뜨린 건, 어쩌면 당연하게도 상석에 앉은 프리드리히였다.

“화이트.”

“예, 에드발트 경.”

부름에 즉각 대답하며, 화이트가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그런 화이트를 우묵한 눈동자로 바라보며, 프리드리히가 말을 이어나갔다.

“너는 어떻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 지금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적의 대응이, 과연 무엇일까.”

“…….”

진중하기 짝이 없는 기색으로 내뱉는 질문이었다.

화이트의 표정도 덩달아 굳어졌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적의 대응, 이라.’

속으로는 프리드리히가 내뱉은 말을 곱씹으며, 화이트가 한 차례 입을 일자로 꾹 닫았다.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지금의 상황에서, 마왕들과의 전면전을 앞두고,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차분하게 고민을 이어간다.

해야 할 것들을 떠올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

다만, 딱히 의미 있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았다.

할 수 있는 것.

실상, 샤사르를 비롯한 마왕들이 몸을 사리고 있는 이상 할 수 있는 행동은 없었다.

제국이라는 구심점을 두고 모인 자신들과는 다르게, 12마왕들은 모습을 감추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그리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해야 할 게 없지만은 않았다.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듯,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고개를 들어 올리며, 화이트가 프리드리히와 시선을 마주했다.

“해야 할 게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제가 해야 할 게 있습니다.”

“……무엇이지?”

그 진중한 시선에, 프리드리히 역시 나름의 태도를 갖춘다.

그뿐만이 아니라 좌중의 모두가 화이트에게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시선들을 받으며, 화이트는 담담하게 그 자신이 생각한 바를 입에 담았다.

“……9서클에 오를 필요가 있겠습니다.”

“……!”

그리고, 그 단순한 한마디에 프리드리히는 물론이고 모두의 눈이 큼지막하게 떠졌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화이트는 실로 간단하게 말했으나, 실상 9서클이라는 건 그리 쉽게 입에 담아도 될 만한 경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마법사로서 다다를 수 있는 끝자락의 경지.

달리 말하자면, 대마도사라 불릴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

기실 이 자리에만 해도 그런 대마도사 급 마법사가 셋이나 존재했으나, 그렇다고 그 경지의 위엄이 퇴색되는 것은 아니었다.

“…….”

불가능하다, 혹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할 말은 많았다.

다만, 프리드리히는 그러한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그저 한결 눈을 올곧게 빛내며, 화이트를 정면으로 직시할 따름이었다.

“……할 수 있겠나?”

이어서 내뱉는 말은, 나름의 기대가 담긴 것이었다.

프리드리히는 알고 있었다.

화이트라는 소년의 특별함을.

고작해야 8서클의 경지로 지금껏 그가 몇 명의 마왕을 물리쳐 왔는가.

그건 단순히 뛰어난 마법사라고 해서 해낼 수 있는 업적이 아니었다.

대륙의 수많은 마법사들 중에서도 정점에 손꼽히는 최흉의 마법사들.

그게 바로 12마왕이라 불리는 자들이었으니.

마왕이라는 이명은 허명이 아니다.

그들은 한 명 한 명이 압도적인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수백 년은 기본으로 살아온 괴물 같은 마법사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오롯이 마왕이라는 옥좌를 지켜낸 만큼, 그 무력에 한해서는 의심의 여지조차 없으리라.

“…….”

새삼 그 사실을 떠올리며, 프리드리히가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그런 마법사들을, 그런 강대한 적들을.

화이트는 여태껏 죽여온 것이다.

그것도 다섯이나 되는 숫자를.

……그런 화이트가 말하고 있었다.

9서클이라는 경지에 도달하겠노라고.

단순히 흘려넘길 수는 없는 말이었다.

묘한 신뢰와 기대, 그리고 희망을 가지게끔 하는 말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프리드리히를 향해, 화이트는 그저 확고한 어조로 그리 말할 뿐이었다.

“……그런가.”

프리드리히가 지그시 두 눈을 감았다.

짤막한 한마디였으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화이트가 그렇게 자신한다면, 믿지 않을 이유 또한 없으리라.

프리드리히는 화이트를 신뢰하고자 했다.

정확하게는, 지금껏 그가 쌓아온 업적에 대한 존중을 표시하고자 했다.

“제국 측에서 도와줄 건 없나?”

그렇기에 최선을 다해 그런 그를 보조하고자 했다.

우선은 물음부터.

제국의 힘으로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얼마든지 지원해줄 생각이 있었으니까.

설령 그게 제국의 비고를 열게 되는 일이 되더라도.

그런 각오를 다지며 내뱉은 말이었다.

“괜찮습니다.”

다만 돌아온 대답은, 생각보다도 단호한 거절의 의사였다.

프리드리히의 눈이 살며시 크게 떠졌다.

그러나 이내, 그마저도 재빠르게 원상태로 되돌아간다.

“……네가 그렇다면, 그러한 것이겠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서서히 뜨여지는 그의 두 눈동자에는 깊은 신뢰의 빛이 담겨져 있었다.

화이트 역시 그 기색을 읽어낼 수 있었기에, 그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당분간은 개별적으로 움직이고 싶군요. 아무래도 마왕들도 움직임을 보일 생각은 없어 보이니, 여유는 충분할 듯싶습니다.”

화이트의 말에 프리드리히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의 의미였다.

그걸로 대화는 끝이었다.

회의 역시 파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화이트가 측면의 아셰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가시죠, 스승님.”

“네에.”

아셰라 역시 그를 거부하지 않는다.

얌전히 화이트가 내민 손을 잡으며, 실내를 벗어난다.

마지막으로 방을 나서기 전, 아셰라는 그저 고개만 살짝 틀어 손을 흔들거릴 따름이었다.

마치 친구에게 인사를 하기라도 하는 듯한, 실로 가벼운 느낌으로.

“……으음.”

그리고, 그렇게 두 사람이 빠져나간 이후.

내부에는 그저 정적만이 들어찼다.

프리드리히는 화이트와 아셰라가 빠져나간 방문을 그저 바라볼 뿐이었으며, 테이칸과 리이칸테르 후작은 아직까지 충격이 조금 남아 있는지 침묵하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그런 제국의 세 명을 바라보는 한 리치의 표정은 마냥 좋지만은 못했다.

[……화이트만 사라졌다 하면, 네놈들은 재미가 없어지고 마는구나. 쯧.]

그저 그리 툭 하니 내뱉고는, 마찬가지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딜 가나?”

[나도 마왕들의 사체로 실험해 볼 게 남아 있는 탓에. 이만 가보도록 하지.]

프리드리히의 물음에 가볍게 대꾸하며, 루시펠이 설렁설렁 회의실 내부를 빠져나갔다.

자연스레, 그저 침묵만이 남게 된 회의실 내부에는 어색한 공기가 흐를 뿐이었다.

*****

대륙 북쪽 끝자락, 마왕의 고성.

샤사르의 거처에는 살아남은 12마왕의 전원이 모인 채였다.

다만, 그중에 붉은 머리칼의 사내는 없었다.

그저 바이올렛이 그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뿐이었기에.

자연스레, 마왕들 사이에서는 잔잔한 불만이 오고 갈 수밖에 없었다.

“이봐, 바이올렛. 샤사르는 언제쯤 모습을 드러낼 생각인 거지?”

“…….”

은색의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중년의 사내가 내뱉은 말이었다.

동시에, 샤사르가 자리에 있었더라면 절대 내뱉지 못했을 말이었다.

눈살을 살며시 찌푸리며, 바이올렛이 애써 평온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말했지 않나요. 그는 아직까지 나타날 수 없는 상황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언제쯤 끝나냐는 말이다.”

“…….”

즉각적으로 돌아오는 대꾸는, 굳이 말하자면 불쾌함을 담아내고 있었다.

명백하게 분노를 드러내는 그의 기색에도 바이올렛은 무어라 말을 할 수 없었다.

……이해는 한다.

안전이라는 명목하에, 살아있는 네 명의 마왕을 감금하다시피 한 게 벌써 1년이다.

그들로서는 불만을 내뱉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으리라.

다만, 그렇다고는 해도 바이올렛이 할 수 있는 말은 한정적이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죠, 실버. ‘협정’을 깨부수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건 당신도 알고 있을 텐데요.”

“……쯧.”

고저가 없는 바이올렛의 목소리에, ‘실버’라고 불린 사내는 한 차례 혀를 찼다.

그 표정 위로는 명백한 불쾌함이 서려 있었다.

‘뭐가 안전을 위해서란 말이냐.’

그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12마왕이라 불리며, 대륙에서 손에 꼽히는 마법사들인 자신들이 어째서 이리 겁쟁이마냥 숨어 있어야 하는 건지.

이해는 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납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짧은 시간도 아니다.

자그마치 1년이었다.

이 북쪽 끝자락의, 무기질적일 따름인 고성에 처박혀 지낸 것이.

“…….”

불만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동시에,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존재들에 대한 끝없는 분노가 치솟았다.

‘화이트 클리포트. 그리고, 아셰라…….’

클리포트 가문의 애송이와, 흑의 마왕 아셰라.

그 두 존재 때문이다.

모든 것이 그 두 존재 때문에 어그러졌다.

금색 마탑이 무너지고, 금의 마왕이 죽은 게 시발점이었다.

천천히, 한 명씩.

아파르가 죽고, 에멜이 죽었다.

야라크가 돌발행동을 벌이다가 역으로 당했으며, 그 저승길에는 트라마르가 함께했다.

……이제 남은 마왕은 몇 없었다.

12마왕에서 반쯤 빠져나가다시피 한 아셰라를 제외하면, 총 ‘다섯’ 명.

은발의 사내는 천천히 그 다섯 명의 이름에 대해 떠올리기 시작했다.

우선은 그 자신이었다.

그다음으로는 적의 마왕, 샤사르였으며.

자색의 마왕 바이올렛과, 그 이외에 두 명의 마왕이 더.

총 다섯 명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12마왕이라 불려 왔던 자들 중, 고작해야 다섯 명이다.

까득!

그 사실이 자못 어처구니가 없어서, 사내는 거칠게 이를 갈았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가.

대륙의 정점에 서 있던, 마왕이라 불렸던 자신들이.

어쩌다가 이런 꼴로 전락하고 말았는가.

분노가 일었다.

참을 수 없는 격정이 내부에서부터 휘몰아친다.

주먹을 거세게 쥐며, 마나를 슬금슬금 끌어올린다.

아무래도 도저히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잠깐이라도 밖으로 나가, 이 분노를 표출하고 돌아와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품으며, 사내가 좌중의 인물들을 한 차례 훑어봤다.

‘……잠깐.’

──그러던, 도중이었다.

순간 든 생각에, 사내가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

바이올렛이 있었다.

그리고, 그림자에 섞여 든 채 침묵하고 있는 두 명의 마왕이 더 있었다.

……그 부분에서, 사내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서?’

뭔가가.

무언가가, 이상했다.

이질적이다.

위화감이 느껴졌다.

지금껏 죽어 나간 마왕은 다섯 명.

마왕이라는 이름을 저버리고, 빠져나간 마왕이 한 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자리에 모인 마왕들은 총 ‘다섯’ 명이었다.

“…….”

순간 오싹한 감각이 들었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에, 사내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쿵!

“……실버?”

그에 따라 의자가 뒤로 쓰러지고, 바이올렛이 의아한 목소리를 내었으나.

사내, 실버는 신경쓰지 않았다.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어째서 눈치채지 못했나.

어째서 구태여 생각하지 않았던 거지?

──한 자리가 부족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여야 할 마왕은, 다섯 명이 아니었다.

한 명이 더 있어야만 12마왕이라는 자리가 가득 채워진다는 의미였다.

……그렇지만, 없었다.

분명 샤사르의 명령은, 모든 마왕의 집합이었다.

‘그 명령을 거스를 만한 마왕은 없을 텐데……?’

떠올리는 건 당연한 의문이었다.

그래서.

그렇기에.

사내는, 실버는.

“……바이올렛.”

그에 관해서, 아주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입에 담고자 했다.

어느새 그 표정은 심각할 정도로 굳어진 상태였다.

“네?”

의아하다고 말하는 듯한 낯빛으로 고개를 갸웃하는 바이올렛을 향해, 사내가 말을 이어나갔다.

“……한 명이, 부족하지 않나?”

“……?”

처음에는, 바이올렛은 그저 고개를 모로 기울일 따름이었다.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사내를 오롯이 쳐다볼 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한 차례 좌중의 인물들을 둘러볼 즈음이었다.

“……어?”

그녀의 입술을 비집고 의아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표정은 어느새 당황으로 물든 상태였다.

그런 바이올렛을 바라보며, 사내가 재차 입을 열었다.

어느새 식은땀이 그의 등을 축축하게 적시고 있는 도중이었다.

“……한 명이 더 있지 않았나. 왜 소집 명령에 응하지 않은 거지?”

“무슨…….”

바이올렛이 두 눈을 부릅뜨며 입술을 달싹거릴 즈음이었다.

“아, 나 기억났어.”

침묵을 지키던 또 다른 마왕이 입을 열었다.

소녀의 그것과도 같은, 낭랑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였다.

“그 왜, 한 명 더 있었잖아?”

“…….”

바이올렛과 사내의 시선이 그 목소리의 주인에게로 집중되었다.

다만 그러한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목소리를 낸 마왕은 말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그래, 그야말로.

무척이나, 무척이나 태연하기 짝이 없는 어조로.

“백의 마왕.”

그녀는, 한 존재에 관해서 입에 담았다.

“음, 이름이 뭐였더라?”

천천히,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간다.

너무나도 평온하게.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그저 태연자약하게.

“아마.”

그녀는 내뱉을 따름이었다.

“화이트였지?”

──그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끽, 끼릭-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음이 울렸다.

째깍, 째깍.

이어서, 마치 시계침이 움직이는 듯한 소리 역시 같이 들려왔다.

공간이 일순간 침묵으로 휩싸였다.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는 적막이었다.

사아아아-

……그리고.

이어서, 한 차례의 기괴한 삭풍이 내부에 불어올 즈음에는.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더라?”

소녀의 목소리를 가진 마왕은 그리 내뱉고 있었다.

그리고 바이올렛은 그런 그녀를 향해 한숨과 함께 대꾸한다.

“샤사르가 언제쯤 모습을 드러내느냐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잖아요, 에르샤.”

“아, 참. 그랬지, 그랬지.”

깜빡했다는 듯, ‘에르샤’라 불린 마왕이 이마를 치며 쿡쿡 웃음을 흘렸다.

이어서, 자리에 모인 네 명의 마왕은 시답잖은 대화를 주고받을 뿐이었다.

“샤사르도 참, 그러게 협정을 좀 간단하게 만들었더라면 좀 좋아? 그년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이냐고.”

“이렇게 아셰라의 존재가 발목을 잡게 될 줄은 그도 예상치 못했겠죠.”

그저 태연하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금 전까지의 삭막하게 굳어져 있던 분위기는, 일절 기억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으로.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