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0)겁쟁이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야말로 태초의 그 고요함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잔잔하기 그지없는 침묵이었다.
얼마나 이어졌을까, 얼마나 그 침묵의 중압감이 내부를 짓눌렀을까.
“…….”
슥-
연신 입을 꾹 다물고 있던 프리드리히가, 한 차례 눈가를 짓눌렀다.
무척이나 얼떨떨하다는 기색으로.
이어서 바라보는 건 당연하게도 아셰라였다.
동시에 그 측면에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화이트였다.
프리드리히의 눈가가 가늘게 좁혀지는 것과 동시였다.
“……스승님?”
갑작스런 아셰라의 돌발 행동에 당황을 금치 못하고 있던 화이트가, 그제야 입술을 떼어냈다.
나오는 목소리는 무척이나 당혹감이 서린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장 그녀가 가장 오랫동안 감춰왔던 비밀이 그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걸 상의조차 없이, 그냥 갑작스레 툭 하니 던져버렸으니.
어찌 당황하지 않고 버틸 수가 있을까.
경악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리라.
“갑자기, 왜…….”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화이트가 아셰라를 바라봤다.
그 푸른 눈동자 역시 사정없이 요동치는 도중이었다.
그리고 그쯤에서, 아셰라가 그런 화이트를 향해 고개를 틀었다.
눈동자는 나름의 진지한 기색을 담고 있는 채였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화이트 역시 표정을 진중하게 바꾸었다.
“제자님.”
그런 화이트를 향해 아셰라가 말했다.
“이제부터 함께 싸울 자들이잖아요, 저들은. 최소한의 정보 공유는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그리고 그런 아셰라의 진지하기 짝이 없는 말에, 그 목소리에 담긴 완고한 기색에.
“…….”
화이트는 무어라 말을 하지 못했다.
할 수 없었다.
그저 두 눈을 깜빡거리며, 아셰라와 그 이외의 인물들의 기색을 조심스레 살필 따름이었다.
화이트의 시선이 프리드리히에게 닿을 즈음이었다.
“……지금, 뭐라고…….”
여전하게 얼떨떨한 표정으로, 흔치 않게 당황한 기색을 잔뜩 드러내며 화이트와 아셰라의 대화를 듣고 있던 프리드리히가 입술을 떼어냈다.
동공은 미약하지만, 분명하게 떨리고 있는 도중이었다.
“지금 흑의 마왕, 이라고 했나……?”
“네, 그렇게 말했어요.”
“…….”
즉각적으로 돌아오는 아셰라의 대꾸.
그에 화이트는 물론이고, 프리드리히 역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그러한 반응들은, 다른 인물들이라고 하여 예외는 아니었다.
[…….]
어울리지 않게, 무척이나 드물게도 루시펠이 턱을 힘없이 떨군 채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
테이칸과 리이칸테르 후작 역시 침묵을 지켰다.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꺼낼 말이 없었을뿐더러, 이 분위기 속을 뚫고 말을 꺼낼 용기가 그들에게는 없었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흑의 마왕, 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로나마, 기록으로나마 전해들은 적이 있는 것이다.
적의 마왕에 앞서, 수천 년 전부터 최강의 마왕이라고 불렸던 존재.
그렇지만, 지금은 그 종적을 감춘 존재.
성별조차 드러나지 않았으며,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마왕.
……모두가 인정하는, 최강의 마법사.
‘……아셰라 선생이, 흑의 마왕이라고?’
테이칸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불신으로 가득 찬 눈빛이었다.
이어서 그가 바라본 건 화이트였다.
아셰라의 측면에 앉은 채, 당황으로 표정을 물들이고 있는 그 자신의 아들이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화이트가 당황하고 있는 이유는, 아셰라의 숨겨져 있던 정체를 깨달았기 때문은 아닌 듯 보였다.
그보다는, 뭐라고 해야 할까.
그저 아셰라가 그 자신의 정체를 밝힌 것 그 자체에 대해 경악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
달리 말하자면, 그건 화이트가 원래부터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되기도 했다.
자연스레 테이칸은 감정이 한층 진정되는 감각을 느껴야만 했다.
저도 모르게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당연, 그 이유는 화이트의 때문이었다.
‘……경악스러운 건 둘째치고, 화이트가 알고 있었더라면.’
그건 곧 화이트가 그녀에게 가지고 있는 신뢰에는 흔들림이 없다는 말이 되리라.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믿을 수 있다.
테이칸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진중하기 그지없는 기색이었다.
……그녀가 12마왕의 일인이든, 그 과거의 흑의 마왕이든.
상관없었다.
정확하게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이트가 여전히 그녀를 신뢰하고, 눈앞의 소녀가 그 자신이 아는 아셰라임이 틀림없다면.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질 게 있을까.
놀란 건 사실이었다.
놀라지 않을 수는 없었다.
흑의 마왕이라는 이명은 그만큼 크나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만, 그렇다고는 해도 좋다.
상관없었다.
“……허어.”
그저 한 차례, 그리 허탈한 목소리를 내뱉는 것으로 끝이었다.
테이칸은 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감각을 느꼈다.
자연스레,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파묻는다.
“……그, 그것이.”
그리고, 그렇게 테이칸이 홀로 감정을 정리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일단, 혹시 모르니 다들 진정하시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화이트가 무어라 말을 내뱉기 시작하고 있었다.
프리드리히를 비롯한 네 명의 시선이 화이트에게로 날아가 꽂혔다.
그 시선에 압박감을 느끼면서도, 화이트는 말을 멈출 수 없었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이 분위기를 풀어내야만 했다.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이성적인 판단은 마비된 지 오래였다.
아셰라의 돌발 행동에 치솟은 당혹감은 한계를 뚫었다.
“……지금껏 다섯 명의 마왕을 죽여온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그녀는 위험한 마왕이 아닙니다.”
말해놓고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위험하지 않은 마왕이 이 대륙에 있었던가.
당장 아셰라 역시 나름대로 위험성을 그 내부에 간직하고 있는, 명백한 최강의 마왕일진대.
다만 그 방향성이 다른 12마왕과는 한결 다르다는 게 진실이었지만.
일단 지금의 화이트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트라마르는 내가 죽이지 않았던가?]
“닥쳐라, 루시펠.”
[알겠다…….]
그렇기에 루시펠의 태클에도 반사적으로 험악하게 대꾸하고 말았다.
말해놓고 순간 ‘아차’하는 심정이 들었으나, 다행히 루시펠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화이트가 열심히 변명을 시도하고 있어서 그런 걸까, 좌중의 인물들은 전부 나름의 침착을 되찾은 듯 보였다.
그 광경에 한 차례 마른침을 삼키고는, 화이트가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다.
“……스승님이 여태껏 마왕들과의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다름이 아닙니다.”
그 자신이 무슨 말을 뱉는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화이트는 필터를 거치지 않으며 연신 목소리를 꺼내 들었다.
‘협정’에 관한 이야기부터, 과거에 이미 아셰라가 샤사르와 대립했었다는 이야기까지.
그러니 그녀는 위험하지 않다고, 그것을 프리드리히를 비롯한 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화이트는 그야말로 최선을 다했다.
……그렇기에, 화이트는 눈치채지 못했다.
설명에 공을 들이느라 차마 아셰라를 바라보지 못한 탓이다.
‘……제자님, 귀여워라.’
아셰라가 그 자신을 무척이나 흐뭇한 시선으로 직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화이트는 끝까지 알 수 없었다.
*****
한결 분위기가 진정됐다.
실상 흥분한 건 화이트밖에 없었던 것 같긴 하나, 아무튼.
“……그렇단 말이지.”
나름대로 침착을 되찾고, 차분한 태도로 프리드리히가 중얼거렸다.
눈가는 가늘게 좁혀진 상태였다.
그의 흐릿한 안광이 화이트와 아셰라를 차례대로 훑고 지나간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실시간으로, 그의 머릿속에서는 계산이 오가고 있었다.
무엇이 이득인가.
행동의 방향성을 어찌 정해야만, 제국에 이득이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
그와 동시에, 대륙의 안전을 위해 고려할 수 있는 수단은 무엇이 있는가.
“…….”
프리드리히의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단순하군.’
결론을 내는 것까지는 실로 간단하기 그지없는 계산이 거쳐졌다.
아셰라를 적대하는 것.
‘그건 고려할 가치조차 없겠군.’
프리드리히가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고작해야 그녀가 마왕이라는 이유로 그녀를 적대시하는 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 적의 마왕과 적대시하고 있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화이트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그녀를 적대할 이유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아군으로 품는 것이 훨씬 효용적이겠지.
“…….”
프리드리히의 눈동자가 한층 진지하게 바뀌었다.
……동시에.
그녀, 아셰라를 적대시한다는 건 단순히 그녀 혼자만을 감당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이 1년 간, 프리드리히는 지켜봐 왔다.
화이트와 아셰라, 두 소년소녀가 나누는 사랑을 줄곧 지켜봐 왔던 것이다.
그런 만큼, 화이트가 아셰라에게 품고 있는 감정의 크기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만약, 만약에.’
만약 제국이 아셰라를 적대시하겠다는 결정을 내린다면.
그날로 아마, 클리포트 공작가에서는 ‘화이트’라는 이름이 사라지게 되리라.
화이트가 아셰라에게 품고 있는 감정은 그 정도의 깊이를 가지고 있었다.
제국이라는 국가를 적대하는 한이 있더라도, 화이트는 그녀를 지키는 선택을 내리겠지.
지금 이렇게 그녀를 지키기 위해 나름의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고는 해도, 끝끝내 제국의 결정이 아셰라에게 위협이 되는 결과를 낳는다면.
화이트는 그 마나의 창을 제국에게 겨누는 것에 망설임을 가지지 않으리라.
단순한 지레짐작이 아니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단지 프리드리히만의 판단은 아니었다.
“……흐음.”
탄식을 한 차례 흘리며, 프리드리히가 그 자신의 새하얀 수염을 쓰다듬었다.
이어서 루시펠과 테이칸, 그리고 리이칸테르 후작을 흘겨본다.
그들 역시 표정은 굳어져 있었으나, 그 속내를 읽어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루시펠은 아셰라를 적대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 그는 화이트를 향해 연신 흥미롭다는 시선만을 던지고 있을 뿐이었으니.
화이트와 아셰라, 두 사람에게 짙은 호감을 가지고 있는 이 리치는 그들을 적대하지 않으리라.
……그다음으로, 테이칸 역시 마찬가지였다.
입장이 입장이니만큼, 여러모로 고민은 하는 모양새였으나, 그는 그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저버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리이칸테르 후작은, 분명 제국에 도움이 되는 선택을 내리겠지.
그는 그러한 사내였으니 말이다.
아마 그와, 그의 가문은 제국의 결정에 충실히 따를 것이었다.
다만, 이미 프리드리히는 그것만으로도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지 않나.’
피식-
한 차례, 얕게 웃음을 흘린다.
턱을 괴며, 프리드리히가 한숨을 내뱉었다.
그다음으로 그가 바라본 것은, 여전하게 싱글싱글 웃으며 앉아 있는 아셰라였다.
그 속을 감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사실 제가 흑의 마왕이랍니다.
조금은 갑작스레, 돌연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로 보였으나.
아마 그 기저에는 수많은 계산이 오가고 있었을 터.
결론적으로, 그 자신과 화이트에게 피해가 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했기에 그녀는 그런 선택을 내린 것일 테지.
‘여전히……. 영악한 소녀로군.’
인정하지 않을 도리는 없었다.
프리드리히는 그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결론은 나왔다.
“공작, 그리고 후작. 듣게나.”
“예, 에드발트 경.”
프리드리히가 테이칸과 리이칸테르 후작을 불렀고, 그에 두 사람이 즉각 고개를 숙였다.
그런 두 사람을 지그시 바라보며, 프리드리히는 그 자신이 내린 결정을 입에 담았다.
“……오늘의 일은 이 자리에 있는 자들만이 알고 있어야만 할 문제가 될 걸세.”
“……!”
아셰라의 정체, 협정이라는 개념, 그리고 과거에 있었던 일들까지.
프리드리히는 그 모든 것을 감추고자 하고 있었다.
드러나서는 안 될 비밀이었다.
알려져서는, 필시 크나큰 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사안이었다.
그렇기에, 감추는 것으로 방향을 결정했다.
테이칸과 리이칸테르 후작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다만, 그에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프리드리히는 말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이 일의 심각성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리라 믿네. 황제 폐하께만은, 내가 따로 보고를 올리도록 하지.”
“…….”
프리드리히의 말에 이래저래 복잡한 표정을 띄우는 테이칸과 리이칸테르 후작이었으나.
그럼에도, 그들이 내릴 선택은 정해져 있었다.
“따르겠습니다.”
그저 고개를 깊게 숙이며, 두 사람은 프리드리히의 결정에 따르겠노라고 얘기했다.
“음.”
마찬가지로 프리드리히가 고개를 한 차례 무겁게 끄덕일 즈음이었다.
[내게는 비밀 엄수를 명령하지 않는 건가? 프리드리히여.]
“…….”
돌연 측면에서 들려온 음울한 음성에, 프리드리히의 고개가 돌아갔다.
루시펠이 얕은 웃음을 흘리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눈웃음의 형태가 그려지고 있는 도중이었다.
프리드리히가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명령은 무슨. 네놈이 내 말에 따른 적이 있기는 하나? 알아서 하도록 해라.”
이어서 내뱉는 말은 그러한 것이었으니.
[이런, 너무하군. 그래도 그대가 그리 말하면 어쩔 수 없지. 나 역시 비밀은 확실하게 지키도록 할 테니…….]
짐짓 속상하다는 듯 중얼거리며, 그런 목소리와는 어울리지 않게 루시펠이 미소를 걸쳤다.
그런 그를 바라보면서, 프리드리히는 그저 한숨을 내쉴 따름이었다.
그리고.
“?”
그리고, 그 일련의 과정들을 바라보는 화이트의 표정은 숫제 얼떨떨하다고 말해야 할 정도로 멍하니 바뀌어 있었다.
“……?”
머리 위로 하나의 물음표를 띄우며, 화이트가 두 눈을 연신 깜빡거렸다.
‘……뭐지? 왜 이렇게 긍정적인 반응들이지?’
속으로 떠올리는 생각은 그런 것이었다.
……처음 아셰라가 그 자신의 정체를 밝혔을 당시, 화이트는 제국이 그녀를 적대하는 결과까지 추측해야만 했다.
분명 자신이 무슨 말을 꺼내더라도, 쉽사리 통하지는 않으리라고 예상했었는데.
“…….”
……이건 무슨 결말이란 말인가.
프리드리히는 아셰라의 존재를 묵인하고자 하고 있었다.
테이칸과 리이칸테르 후작 역시, 그런 프리드리히의 결정에 동조하는 모양새였고.
루시펠은…….
……루시펠은.
‘아니, 루시펠은 저럴 수도 있지.’
잠시 루시펠의 태연한 반응에 대해 고민하던 화이트는, 이내 그렇지 않을 이유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루시펠이지 않나.
어지간히 괴상한 성격과 행동 원리를 가진 루시펠이니만큼, 그가 저리 태연자약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말도록 하자.
화이트는 우선 루시펠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을 끄기로 결정했다.
“……음.”
이어서 그의 떨떠름한 시선이 향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아셰라였다.
아셰라는, 여전하게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싱그러운 미소를 그려내고 있을 뿐이었다.
화이트가 난감하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갑작스레, 상의조차 없이 정체를 밝혀버린 건 괘씸하지만…….’
……그녀는 이런 결과마저도 예상했던 걸까.
프리드리히가 내릴 결정을, 짐작하고 있었던 걸까.
‘그럼 내가 한 변명들도 전부 과잉 반응이 되는 게 아닌가……?’
화이트는 순간적으로 밀려오는 수치심을 차마 막을 수가 없었다.
자연스레, 낯빛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뭐였단 말인가.
그저 자신만이 그리 진지하게 고민하고, 또 힘겹게 대응하고자 했던 건가?
아셰라는 그런 자신을 웃으면서 지켜보고 있었을 뿐이라는 건가?
“…….”
부끄러웠다.
창피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기에, 저도 모르게 화이트는 원망 섞인 시선을 아셰라에게 던지고 말았다.
“……흐응.”
다만 그렇다고는 해도, 당연히 아셰라가 그 시선에 위축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재밌다는 듯 묘한 비음을 흘리며, 그녀는 화이트를 향해 작게 속삭일 뿐이었으니.
“제자님은 겁쟁이네요.”
“…….”
화이트의 이마에 힘줄이 돋는 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