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9)드러내다
“……음.”
몸을 일으키며, 화이트가 얕게 침음성을 흘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어나자마자 전신에서 아릿한 통증이 느껴져 왔기 때문이다.
“…….”
이어서, 슬쩍 고개를 틀어 측면을 바라본다.
“……으응.”
이불을 꼭 끌어안은 채, 아셰라가 작게 웅얼거리고 있었다.
자연스레 표정이 편안해지고, 고통은 사라지는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그녀가 깨지 않게끔, 조심스레 몸을 움직이며 침대를 빠져나가려던 순간이었다.
“화이트……?”
아셰라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에서 아직은 덜 깬 듯한, 그러나 분명히 일어나긴 했기에 내뱉을 수 있는 목소리였다.
자연스레, 어쩔 수 없이 화이트는 고개를 다시금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일어나셨습니까?”
“……네에.”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묻는 말에, 아셰라가 마찬가지로 싱그럽게 웃으며 대꾸했다.
사락-
“으음…….”
옷자락을 조심스레 정리하며, 그녀가 기지개를 켰다.
아직까지는 피곤이 덜 가신 모양새였다.
“…….”
다만, 그렇기에 더더욱 곤란했다.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화이트가 이마를 짚으며 슬며시 시선을 피했다.
……고작해야 얇은 옷가지 하나를 걸치고 있는 그녀는, 솔직히 여러모로 보고 있기 힘들었다.
머리에 피가 쏠리는 느낌이었다.
“……흐응?”
그렇지만, 그렇게 시선을 피하는 화이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을까.
“왜 그럴까요, 사랑하는 제자님?”
묘하게 재밌다는 듯 쿡쿡 웃음을 흘리며, 아셰라가 고혹적인 눈웃음을 지었다.
당연, 그 광경에 화이트의 곤란함이 배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인상을 찌푸리며, 화이트가 고개를 대충 가로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텁!
“…….”
……아니.
일어나려고 했다.
아셰라가 뒤에서 붙들 듯이 껴안아 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화이트의 표정이 일순간에 딱딱하게 굳어졌다.
“화이트…….”
묘하게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부르는 아셰라의 모습에, 화이트는 무어라 대꾸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그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몸을 뻣뻣하게 굳힐 따름.
아셰라의 미소가 더욱 짙어지는 순간이었다.
“부끄러워요? 새삼스럽게, 몸을 섞었으면서.”
“……!”
갑작스런 정면 공격에, 화이트의 낯빛이 한순간에 새빨갛게 바뀌었다.
“……후후.”
그런 화이트의 반응을 즐기듯, 아셰라가 한 차례 눈웃음을 쳤다.
“있잖아요, 화이트…….”
이어서 조금 더 화이트에게 몸을 밀착시킨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부드러운 감촉에, 화이트의 표정은 그 이상이 없을 정도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표정을 굳히고 있는 화이트의 어깨에 턱을 걸치며, 아셰라가 읊조리듯 중얼거린다.
“……아침이긴 하지만, 조금 더.”
무척이나 요염한 목소리, 동시에 의도적으로 몸을 더욱 화이트의 쪽으로 기울이며.
“──.”
그녀가 무어라 더 말을 내뱉으려는, 그 순간.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에드발트 경과의 회의가 있었습니다.”
“앗.”
돌연 다른 얘기를 중얼거리며, 화이트가 확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에 따라 의지할 곳이 없어진 아셰라의 몸이 침대에 풀썩 쓰러지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아셰라의 눈매가 날카롭게 바뀌었다.
“화이트……!”
“……크흠.”
이어서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무어라 소리를 치고자 했으나.
“……으으.”
역시나, 그렇다고는 해서 더 무슨 말을 덧붙이기는 힘들었는지 입술을 꾹 다무는 모습.
볼을 약간 부풀리며, 토라진 듯한 표정을 얼굴 위로 띄운다.
그런 아셰라를 바라보는 화이트는 아주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으나, 그는 알고 있었다.
‘속지 말자, 속지 말자.’
저리 아련하다는 듯 표정을 꾸미고는 있다지만, 그 모든 것이 자신을 낚아채기 위한 교묘한 함정이라는 것을.
자칫 잘못했다가는, 곧바로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것 또한.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스승님’.”
의도적으로 호칭을 정정하며, 화이트가 식은땀을 흘리고는 재빠르게 옷을 갈아입었다.
단정한 복장과 로브를 대충 걸치고는, 화이트가 재빠르게 방을 빠져나가려고 하는 그때.
“저도 같이 가요.”
“……예?”
돌연 뒤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당연하게도 아셰라의 것이었다.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살벌한 시선을 화이트의 뒤통수를 향해 던지고 있었다.
화이트의 식은땀이 한층 더 굵어졌다.
“…….”
다만, 그렇다고는 해서 거부할 도리는 없었다.
거부해서도 안 되고, 딱히 진심으로 거부하고 싶은 마음 또한 없었기에.
“……그렇게 하시죠.”
고개를 끄덕이며, 화이트는 그런 말을 내뱉을 따름이었다.
승낙의 한마디에 아셰라의 표정이 환해지는 것 또한 한순간이었다.
*****
“…….”
“…….”
황실 마법사단의 본성.
그 꼭대기 층, 프리드리히의 집무실.
언제부터인가 화이트를 포함한 여러 인물이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모이게 된 집합처였다.
다만, 언제나 있어 왔던 회의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그건, 지금껏 없었던 한 소녀가 회의에 반쯤 끼어들 듯이 참가했다는 부분이 되리라.
소녀, 아셰라는 그저 싱글싱글 웃으며 화이트의 옆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도 심한 이질감을 자아내고 있었기 때문에.
리이칸테르 후작과 테이칸의 표정이 오묘해지며, 자연스레 화이트를 향해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셰라 본인에게 직접 무어라 묻기에는 뭣했기에, 어쩔 수 없이 만만한 화이트에게 시선으로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 라고.
“…….”
그렇다고는 하나, 화이트로서도 딱히 대답으로 꺼내 들 만한 말이 궁한 것 역시 사실이었다.
스승인 아셰라가 갑작스레 회의에 참가하고 싶다고 하는데, 그로서는 반항할 방도가 없었다.
그녀에게 무어라 말하며 거부해야 한단 말인가.
이건 중대사를 두고 회의하는 제국의 주요 인물들의 모임이니, 당신께서는 참가해선 안 된다고?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깊게 관여되어 있는 게 바로 스승님 본인일진대.’
이마를 슬며시 짚으며, 동시에 화이트가 눈가를 짓눌렀다.
피곤했다.
동시에 난감했다.
아무 대책 없이 일단 데리고 오긴 했으나, 설명할 말이 딱히 없었다.
무어라 말해야 하는가.
무슨 말을 꺼내 이 침묵을 깨뜨려야만 하는가.
그러한 고민을 이어나가며, 화이트가 끙끙 앓아댈 즈음이었다.
“원래 이렇게 회의를 조용히 진행하나요? 프리드리히.”
“……!”
그야말로 갑작스레, 측면에서 들려온 낭랑한 목소리에 화이트의 표정이 굳었다.
물론, 다른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크흐흐…….]
그저 루시펠만이 재밌다는 듯, 흥미롭다는 듯 불쾌한 웃음소리를 흘려댈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아셰라는 싱그러운 미소를 입가에 걸칠 뿐이었다.
“설마 저 때문은 아니죠? 그냥 없는 사람 취급하고 진행해도 되는데.”
“…….”
이어진 아셰라의 말에, 상석에 앉은 프리드리히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없는 사람 취급하고 진행하라고?’
속으로는 아셰라가 내뱉은 말을 다시금 중얼거리며, 프리드리히가 미간을 슬며시 좁혔다.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얘기인가.
아셰라를 한동안 지그시 직시하던 프리드리히가, 이내 그 옆의 화이트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던 화이트의 몸이 자연스레 움찔거렸다.
“…….”
“…….”
눈짓을 교환하며, 두 사람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저 침묵했으나, 그 뜻을 읽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던 탓에.
먼저 시선을 피한 것은 화이트의 쪽이었다.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화이트가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으음.”
이어서 프리드리히가 얕게 침음성을 흘렸다.
다시 한 차례 아셰라를 바라본다.
그녀는 여전히, 그저 여전히 싱글싱글 웃음을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무엇이 그리도 즐거울까.
숫제 그것이 궁금해질 정도였으니, 더 할 말은 없으리라.
프리드리히의 미간에 파인 골이 점차 깊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녀였지만, 그럼에도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바로 아셰라라는 것을.
한때 그녀와 대치했던 순간을 떠올려 본다.
“…….”
9서클 급의 마나를, 그 위엄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며, 그 자신과 마법을 섞던 소녀.
……그녀가 적이 아니라는 건 안다.
아셰라가 화이트에게 가지고 있는 깊은 감정은 1년 전부터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부분이었으니.
다만, 그럼에도 이래저래 불편한 건 사실이었다.
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쉽게 쉽게 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것도 진실이었던 탓에.
프리드리히가 조심스럽게 눈가를 가늘게 좁히며, 화이트를 향해 재차 시선을 던졌다.
‘심계가 모자란 아이는 아니지.’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해야 하리라.
자신이 여태껏 만나본 그 어떤 소년보다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던 게 바로 화이트가 아니던가.
그게 마법적인 부분이든, 혹은 그 이외의 부분이든 간에 말이다.
……그런 화이트가 아셰라를 회의에 동참시켰다.
그렇다면, 그건 곧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게끔 한다.
프리드리히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었다.
다만 그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다면.
‘아, 망했다.’
……화이트가 무언가 생각을 가지고 아셰라를 회의에 대동한 게 아닌,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그저 본능적으로 그녀에게 따랐을 뿐이라는 것.
그저 그것뿐이었다.
화이트의 뺨을 타고 한 줄기의 식은땀이 흘러내려, 그의 턱선으로 옮겨질 즈음이었다.
“……흐음.”
묘한 비음을 한 차례 흘리며, 아셰라가 좌중의 인물들을 시선으로 쭉 훑었다.
그녀의 금빛 눈동자에 이채가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그거 아나요, 프리드리히?”
“……무엇을 말인가?”
우선은 대꾸하고 보는 프리드리히.
그 표정 위로는 미약한 의아함이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런 프리드리히와, 좌중의 모두를 바라보며.
아셰라는 딱 한마디를 던질 뿐이었다.
“사실 제가 흑의 마왕이랍니다.”
“?”
……그래, 그야말로.
실로 단순하기 짝이 없는, 그런 한마디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