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138화 (139/158)

(EP.138)잡혀가다

빛이 저물어간다.

눈을 멀게 만들 것만 같던 광휘는 점차 옅어지기 시작했다.

이내, 완벽하게 무로 되돌아간다.

아셰라의 두 눈이 천천히 뜨였다.

“…….”

휘청-

“……!”

다음 순간,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녀가 몸을 무너뜨렸다.

“스승님!”

순간에 맞춰 텔레포트로 그녀에게 다가간 화이트가 재빨리 부축하긴 하였으나, 그럼에도 표정에는 피로가 엿보였다.

“……아하하, 이거 두 번은 못 할 짓 같은데요.”

중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짙은 피곤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면.

“……제자님.”

결국 마법진은 정상적으로 그 역할을 끝마치고 사라졌다는 점이 될 것이다.

“성공했어요.”

“……!”

아셰라가 간결하게 내뱉은 한마디에, 화이트의 두 눈이 큼지막하게 떠졌다.

그런 그의 반응을 즐기듯 배시시 웃음을 흘리는 아셰라, 이내 그녀가 손바닥 위에 자그맣게 마나의 구를 떠올렸다.

“협정, 부숴냈습니다.”

콰직!

아셰라가 손을 움켜쥠에 따라, 마나의 구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산산이 사라졌다.

그녀의 입가에는 어느새 감출 수 없는 환희의 미소가 떠올라 있는 채였다.

“결국…….”

그리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화이트의 표정 역시, 조금 전보다는 한결 편안하게 바뀌어 있었다.

“……성공했군요.”

입꼬리를 미세하게 끌어올리며, 화이트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결국, 끊어냈다.

그 빌어먹을 협정을 깨부수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그 사실이 더없는 기쁨으로 다가왔다.

화이트의 표정 위로 미약하지만 분명한 환희의 감정이 서렸다.

“……하하.”

얕게 웃음을 흘리면서, 화이트가 고개를 푹 떨구었다.

……협정을 깨부수는 것에 있어서 과거의 마법사가 남긴 술식의 도움을 받았다는 게 조금은 우스웠으나, 뭐 어떠한가.

결국 중요한 건 결과다.

아셰라를 바라보는 화이트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무슨 과정을 거쳤든 간에, 그녀를 옭아매고 있던 족쇄를 끊어냈다는 건 분명했기에.

그거면 되었다.

더 이상 아무 문제도 없었다.

지금이라면 그 무슨 일이라도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자연스레, 그런 기색이 화이트의 표정 위로 드러났다.

아셰라의 미소가 짙어지는 순간이었다.

“좋아요, 제자님?”

“……그럼, 좋지 않겠습니까.”

조금은 아련하게, 화이트가 즉각적으로 대꾸했다.

“후후…….”

그리고 그런 화이트를 바라보며, 아셰라는 쿡쿡 웃음을 흘렸다.

“……?”

무엇이 웃긴 걸까, 화이트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니.

“제자님이 좋다면, 저도 좋아요.”

갑작스레 화이트의 가슴팍에 고개를 파묻으며, 아셰라가 애교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화이트의 표정이 굳어지는 건 그야말로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스승님.”

상당히 난감한 기색으로, 화이트가 두 눈을 멍하니 깜빡거렸다.

……1년 전쯤이었을까.

그녀, 아셰라가 돌연 적극적으로 태도를 바꾼 건 아마 그쯤이었을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애정 공세가 심해졌다.

지금처럼 갑작스럽게 안겨드는 건 예사였다.

무엇이 그녀를 바꿔놓았는지는 명백했다.

모든 걸 털어놓고,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한 순간.

그날을 기점으로, 아셰라는 한층 더 고혹적으로 바뀌었다.

‘언제였더라.’

언제는 한 차례, 평소처럼 얕게 웃음을 흘리다가 갑자기 입을 맞춰온 적도 있었다.

그야말로 기습적으로.

‘그때는 진짜 기절할 뻔했지.’

그날 밤이었던가.

그녀와의 처음을 보냈던 날이.

……사랑을 속삭였던 순간이.

“…….”

갑작스레 떠오른 낯부끄러운 기억에, 화이트의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제자님……?”

다만 그 기저에 깔린 이유를 모르는 아셰라로서는 의아할 따름이었으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화이트로서는 그저 고개를 가로저어 부정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도저히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언제 갑자기 돌변해서 덮쳐들지 모르는 노릇이었기에.

‘차라리 마왕 놈들을 상대하는 게 한결 편할 지경이야.’

솔직하게, 그녀가 이리 안겨 오면 화이트로서도 버티기가 힘들었다.

무엇을, 이냐고 말한다면…….

“…….”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화이트가 입술을 짓씹듯 깨물었다.

‘평정심, 평정심.’

애써 평온함을 가장하고자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만약 정신이 흐트러졌다는 걸 들키게 된다면.

……지금 자신에게 안겨 있는 소녀가, 빈틈을 포착하고 목을 깨물지도 몰랐으니까.

물론 비유에 불과했으나, 실상 크게 다를 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라면, 아셰라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목을 물어뜯는 것도, 목덜미에 흔적을 남기는 것도.

하고자 하면 못할 건 없겠지.

오히려 더욱 좋다고 달려들지 않을까.

‘……쓸데없는 생각을.’

한 차례 고개를 털어내며, 화이트가 잡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냈다.

……괜히 지금과 같이 중요한 시기에 달아오를 필요는 없으리라.

“……그럼, 이제는 마왕들을 상대로 힘을 쓸 수 있는 겁니까?”

그렇기에, 우선 화이트는 주제를 전환하고자 했다.

“음, 아마도요.”

다행스럽게도, 아셰라 역시 그에 순응하며 몸을 살며시 떨어뜨리는 모습.

지면에 발을 디디며, 그녀가 살짝 애매한 기색으로 턱을 괴었다.

“……당장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일단 저를 묶고 있던 속박이 사라진 건 확실해 보여요.”

아마도.

그리 한마디를 덧붙이며, 아셰라가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자연스레, 화이트의 표정은 슬며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확실하지 않은 겁니까?”

“음, 아마 거의 분명하긴 할 텐데…….”

영 시원찮은 아셰라의 대답에, 화이트의 낯빛이 점차 어둡게 바뀌어 갔다.

협정이 깨진 것, 그것만큼은 분명하게 확인을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중요한 때에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지 않겠나.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되었다.

화이트의 표정 위로 결연한 빛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스승님.”

“네에……?”

묘하게 단호한 어투에, 아셰라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늘어뜨리고 말았다.

다만, 그러한 것에는 신경 쓰지 않은 채 화이트는 할 말만을 늘어놓을 따름이었다.

“언제나 차후를 위한 확인의 과정은 필수적인 요소이지요.”

“그, 그렇죠?”

일단은 긍정하고 보는 아셰라.

당장 틀린 말은 아니었던 탓이다.

화이트가 천천히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스승님의 육체에 걸려 있는 제약, 협정이 어떤 식으로 잔재해 있을지 모르는 이상, 샤사르와 마주하는 건 아직 이르다고 할 수 있을 터.”

“네, 네?”

“그러니까, 제가 한 번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무슨 자리요?”

묘하게 떨떠름한 목소리로 되묻는 아셰라.

그런 그녀의 기색을 눈치채지 못한 건지, 화이트가 살벌한 안광을 번뜩이며 재차 입을 열었다.

“마왕을 잡아오겠습니다.”

“……에?”

“12마왕 중 한 명을 잡아 올 테니까, 그자를 상대로 실험을 해보도록 하죠. 협정이 완전히 깨졌는지, 아닌지에 대한 실험을.”

“……???”

아셰라의 표정이 일순간 멍해지는 시점이었다.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 기저에 깔린 압박감에 짓눌려서.

“그……. 제, 제자님?”

아셰라가 무어라 제대로 된 말은 꺼내 들지 못하고, 얼떨떨하게 손을 뻗고자 하는데.

“걱정하지 마시죠. 안전을 위해서 다른 이들을 동행시킬 테니까.”

“제자님?”

“마왕 놈들 중에서도 개별 행동을 하는 놈은 꼭 하나쯤은 있을 테니, 잡아 오는 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아마도.”

“제, 제자─”

“그럼,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어, 어어?”

아셰라가 당황한 목소리를 내었으나, 그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화이트가 마나를 끌어올렸다.

명백하게 눈이 돌아간 모양새, 텔레포트를 준비하는 듯한 기색에, 아셰라의 표정이 혼란스러움으로 뒤덮였다.

그러나, 해야 할 건 명확하고 또 분명했다.

“……이.”

금방이라도 텔레포트를 시전해 모습을 감추고자 하는 화이트를 바라보며, 아셰라가 이를 갈았다.

“이 바보 제자님이!”

내뱉으며, 동시에 그녀가 완드를 휘둘렀다.

퍼억!

“악!”

화이트가 드물게 신음성을 흘렸다.

다만, 아셰라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마왕이 무슨 근처 연못에 사는 물고기라도 되는 줄 알아요? 가면 바로 잡아올 수 있게?”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번뜩이며, 그녀가 살벌한 표정으로 화이트를 내려다봤다.

“정신 차려요! 아둔한 제자님아!”

“아. 잠시만, 스승─”

퍼억!

화이트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은 채, 아셰라가 재차 화이트의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컥!”

당연하게도 마나가 섞여 있는 공격이었기에, 화이트는 고통에 찬 신음을 금치 못했다.

화이트의 푸른색 눈동자가 사정없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그저 싸늘하게 내려다보며, 아셰라가 재차 입술을 떼어냈다.

“어울리지 않게 바보 같은 소리 지껄이지 말고, 이만 휴식이나 취하죠.”

“어, 예?”

그리 내뱉고는, 아셰라가 화이트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그리고 질질 끌고가기 시작한다.

“스, 스승님?”

화이트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우선 행선지를 물어보는 화이트였으나.

“어디긴요.”

아셰라는 그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툭 하니 내뱉을 따름이었다.

“침실이죠.”

“……!”

화이트의 두 눈을 한순간이나마 부릅떠지게 만드는, 그런 한마디를 말이다.

“……스승님?”

“왜요, 화이트.”

“스, 스승님?”

호칭이 바뀌었다.

그리고 화이트는 그것이 의미하는 신호가 무엇인지를 잘, 아주 잘 알고 있었던 탓에.

자연스레, 화이트의 낯빛이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잠시, 오늘은 조금만 쉬면 안 되겠습니까? 스승님?”

애써 다급하게 그리 내뱉어보았으나.

“스승님이 아니라, 아셰라.”

돌아오는 대답은 그저 그러한 것이었다.

의심에 못을 박는 한마디였다.

슬쩍 고개만 틀어 화이트를 바라보며, 아셰라가 매력적인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럴 때는 그렇게 부르기로 약속했잖아요?”

“……그, 건.”

화이트의 동공이 있는 대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상념을 이어나간다.

이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고자 했다.

“…….”

다만, 떠오르는 건 없었다.

화이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질질질-

그저 아셰라에 의해 끌려가며, 체념한 듯 두 눈을 지그시 감을 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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