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137화 (138/158)

(EP.137)2차 실험

“구해왔습니다, 스승님.”

“아, 왔어요?”

[잠깐, 나는 아직 동의하지 않았─]

“시끄럽다, 루시펠.”

루시펠의 저항을 가볍게 일축하며, 화이트가 싸늘하게 웃어 보였다.

“뭐든 도와주겠노라고 하지 않았었나?”

[…….]

루시펠이 침묵했다.

진정으로 그리 말했었는지를 되새겨보았으나, 안타깝게도 화이트의 말은 진실이었다.

[……이런, 젠장.]

그렇기에 욕지거리를 지껄이면서도, 더 이상의 저항은 하지 않는 모습.

루시펠의 낯빛이 음울하게 가라앉았다.

“흠.”

그런 루시펠을 한 차례 흘겨보고는, 화이트가 정면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옮겼다가, 이내 고개를 한쪽 방향을 향해 틀었다.

한 소녀가 무릎을 꿇은 채 양팔을 위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

화이트의 눈썹이 미묘하게 까딱거렸다.

“……그런데, 걔는 왜 그러고 있답니까?”

“아, 오르카 영애요?”

화이트의 물음에 환하게 웃어 보이며, 아셰라가 오르카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자연스레 오르카가 몸을 흠칫 떨었으나, 아셰라는 상관하지 않았다.

“잠깐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에요. 그렇죠?”

이어서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묻는 아셰라의 모습에, 오르카의 동공이 파르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대답해야 하나, 아니라고 대답해야 하나.

도저히 무어라 입술을 떼어낼 수가 없어서 침묵하고 있자니, 아셰라가 재차 말했다.

“영애, 대답.”

“아, 네에…….”

그에 오르카는 결국 마음에도 없는 대답을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울상을 짓고는, 그녀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흐음.”

그런 오르카를 한 차례 바라보던 화이트.

이어서 그가 아셰라의 눈치를 살폈다.

입가에 옅은 미소를 걸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딱히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뭐, 괜찮겠지.’

그렇기에 대충 결론을 내리며, 화이트는 오르카에게서 신경을 끄고자 했다.

……구원을 요청하는 듯한 오르카의 떨리는 시선은 애써 무시한 채 말이다.

“아무튼, 이제 다시 시작해보도록 하죠. 스승님. 여기 루시펠이 도와줄 겁니다.”

[…….]

루시펠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으나, 그 안광은 이미 흐릿하게 떨리고 있는 중이었다.

다만, 그렇다고는 해도 화이트와 아셰라는 아랑곳하지 않을 따름이었으니.

“자, 루시펠. 준비는 됐나?”

[……안 되었다고 하면 들어줄 생각은 있나?]

“아니, 없는데.”

[…….]

화이트의 즉답에 루시펠이 인상을 구겼다.

무어라 말을 하려는 듯 턱을 까딱거렸으나, 결국 목소리를 내뱉지는 못했다.

이내 체념한 듯, 루시펠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디 마음대로 해보거라.]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는 묘하게 초췌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2차 실험이 시작되었다.

*****

“뭐가 문제일까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루시펠의 전신에 이리저리 술식을 그려가며, 화이트와 아셰라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었다.

“조합은 완벽하고, 이제 마법진이 떠오르기만 하면 되는데…….”

“뭔가 맞물리지 않네요.”

“그 마크라는 마법사가 그냥 사기꾼이었던 게 아닐지. 아무리 봐도 이렇게 해서 해결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제법 이름을 날렸던 마법사였다고요? 계약 마법의 권위자라고 불렸던 사람인데.”

“흐음…….”

아셰라의 말에 침음성을 흘리며, 화이트가 재차 마나를 움직였다.

손가락의 끝부분에 마나를 맺히게끔 하고, 루시펠의 몸을 이용해 실험을 이어나간다.

[…….]

와중, 루시펠은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마치 진짜 시체가 되기라도 한 듯, 그는 단지 공허한 눈빛을 흐릿하게 빛내며 침묵할 따름이었다.

표정은 묘하게 달관한 자의 그것과 비슷했다.

다만, 그런 루시펠의 기색에도 화이트는 멈추지 않았다.

신경조차 쓰지 않으며, 진짜 실험체를 다루듯 이리저리 술식을 그려 보일 뿐이었다.

“이 부분에서 막히는 것 같습니다. 역시 루시펠의 도움을 받는 게 옳았던 것 같군요. 스승님의 몸에 직접 실험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작용이 있을 듯하니까…….”

아무렇지 않다는 듯 중얼거리는 화이트.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그 말에는 루시펠 역시 반응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

[……잠깐, 뭐? 부작용? 화이트, 지금 뭐라고 했지?]

즉각적으로 언성을 높이며, 루시펠이 몸을 일으키고자 했으나.

“아, 걱정하지 마라. 소멸에 이르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 루시펠을 도로 눕히며, 화이트는 그저 잔잔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아마도.”

이어서 덧붙이는 말은 그러한 것이었기에.

루시펠의 낯빛이 새파랗게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실험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

루시펠의 도움을 받은 이후로, 몇 시간이 흘렀을까.

상당히 오랜 시간을 연구에 투자한 후, 화이트와 아셰라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역시, 처음부터 술식이 맞물리지 않았던 듯하군요.”

“……고문서에 기록된 내용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까요.”

마크 콘테스가 남긴 고문서.

그곳에 기록된, 그 어떤 계약 마법이라고 한들 파훼할 수 있는 술식.

그것에는 아주 약간의 모자란 부분이 있었다.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자, 이내 화이트는 루시펠을 일으켜 세웠다.

더 이상의 실험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이었다.

“수고했다, 루시펠. 어디 몸이 안 좋은 부분은 없나?”

[…….]

예의상 묻는 화이트의 말에, 루시펠이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다만, 무어라 말을 덧붙이지는 않는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루시펠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술식 범벅이로군. 이걸 언제 다 지우나.]

중얼거리며, 그는 그저 터덜터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내가 다시 또 너를 돕겠다고 나서나 봐라, 화이트.]

마지막으로는 그리 내뱉고는, 이내 루시펠이 실내를 빠져나갔다.

그러나 그마저도 화이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순간만큼은, 그러한 부분에 할당할 여유가 없었던 탓에.

대충 고개를 두어 차례 까딱거리며, 화이트가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부족한 게 뭐일 것 같습니까?”

“글쎄요…….”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듯, 아셰라가 입술을 얕게 깨물었다.

“‘협정’에 알맞게 개변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해봐야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그렇죠.”

화이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 다음, 아셰라가 다짐한 듯 결연한 표정을 띄웠다.

“조금만 더 연구해봐요, 제자님.”

*****

하루가 흐르고, 이틀이 흘렀다.

시간은 점점 지나가고, 연구 역시 점차 진행되어 갔다.

그리고.

그리고, 끝내는 나름대로의 결정체를 만들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후우.”

땀을 닦아내며, 화이트가 눈앞에 떠오른 마법진을 오롯이 바라봤다.

영롱한 푸른빛으로 번쩍이는 그 마법진은 오묘한 마력을 흘리고 있었다.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완성했네요.”

옅게 미소를 그리며, 아셰라가 마법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 마법진을 완성하는 것까지 얼마만큼의 시간과 재료가 소모되었나.

실패, 그리고 또 실패를 반복해 완성해낸 결정체였다.

아직까지도 약간 모자란 부분이 있긴 하나, 그럼에도 2% 부족한 고문서만으로 만들어낸 것치고는 상당히 높은 완성도였다.

과연 이걸 몸에 적용시켜도 될지는, 아직까지 알 수 없었지만.

“…….”

화이트와 아셰라가 한 차레 시선을 교환했다.

두 사람 사이에 고요한 긴장감이 흘렀다.

“한 번, 시도해 볼까요.”

정적을 깨뜨린 건 아셰라의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결심을 내린 듯, 확고한 빛으로 눈동자를 번뜩이며, 그녀가 만들어낸 마법진을 간소화시켰다.

이어서, 그 자신의 손바닥 위로 떠올리게끔 했다.

“……괜찮겠습니까?”

화이트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으나, 아셰라는 그저 웃어 보일 따름이었다.

“괜찮아요. 우리 둘이서 만들어낸 거잖아요? 천재 마법사가 둘이나 붙어서 만든 완성품인데, 위험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도 혹시 모릅니다.”

“에이, 괜찮다니까 그러네.”

긴장을 늦추기 위해 손을 휘저으며, 아셰라가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이어서 화이트를 바라본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제자님이 어떻게든 해결해 줄 거라고 믿어요.”

그리 내뱉는 그녀의 표정 위로는 분명한 신뢰가 떠올라 있는 채였다.

“……하아.”

결국, 화이트는 더 이상 제지를 걸지 못했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지켜보는 것뿐.

부족한 완성도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화이트 역시 자신이 있었다.

마크 콘테스의 마법진을 나름대로 최신식으로 개량에 성공했고, 안정도를 상당히 높였노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어지간해서는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그 마법진을 적용하는 대상이 다른 무엇도 아닌 아셰라의 육체라는 것.

그것이 화이트를 미약하게나마 불안하게끔 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제자님.”

그리고 아셰라 역시, 그런 화이트의 심정을 전부 읽어드릴 수 있었기에.

“아무 문제 없을 거니까.”

그저 환하게 웃으며, 그리 내뱉을 따름이었다.

“──.”

가볍게 손을 뻗는다.

허공에 떠올린 마법진에 마나를 불어넣고, 천천히 작동시킨다.

우웅-

마나가 흐릿하게 일렁인다.

동시에, 마법진이 그 크기를 불리며 아셰라의 전신을 뒤덮기 시작했다.

“……!”

아셰라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마법진이 그 자신의 역할을 행하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전신에 작용하는 마나가, 심장을 옥죄고 있는 제약을 풀기 위해 시도하는 것 또한 느껴졌다.

“……읏.”

아셰라가 침음성을 흘렸다.

고통스럽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입술을 깨문다.

그에 화이트 역시 한층 초조하게 바뀔 수밖에 없었다.

다만 아직까지는 마법진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보였기에, 그저 기다릴 뿐이었으니.

주먹을 꽈악 쥐며, 이를 악문다.

그리고, 기다린다.

그저 얌전히 아셰라를 바라보며, 기다릴 따름이었다.

그 이외에 할 수 있는 행동은 없었다.

─어떻게 될 것인가.

적의 마왕이 만들어낸, 최악의 제약인 ‘협정’을 깨부술 수 있을 것인가.

확신할 수는 없었다.

다만, 바랄 뿐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되더라도, 아셰라가 무사하기를.

무언가, 안 좋은 작용이 일어나지 않기를.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까지 해가며, 화이트가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 즈음이었다.

“──아.”

흐릿하게나마, 아세라가 목소리를 내었다.

그 바로 직후였다.

화아아아악!

“……!”

아셰라의 전신에서부터 푸른빛의 광휘가 터져 나온다.

순간 깜짝 놀라며 화이트가 그녀에게로 다가가고자 했으나, 이내 아셰라가 손을 뻗어 그런 그를 제지한다.

‘……저건.’

그리고, 곧 화이트 역시 깨달을 수 있었다.

안 좋은 방향의 작용이 아니었다.

저 빛은, 저 광휘는.

마법진이, 성공적으로 발동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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