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134화 (135/158)

(EP.134)연구

“……협정을 끊어낼 방법, 이라.”

아셰라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작용이 없는, 안정적인 방법을 찾고자 하는 거라면 어려울 거예요. 만들어지길 그렇게 만들어진 협정이니까.”

“…….”

부정의 의미를 담은 그녀의 말에, 화이트가 입을 꾹 다물었다.

다만 납득한 기색은 아니었다.

잠깐의 침묵 끝에, 화이트가 재차 말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겠습니다.”

“……제자님.”

“설령 한없이 불가능에 가깝더라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보이겠습니다.”

단호하게 내뱉고는, 화이트가 옅은 미소를 입가에 걸쳐 보였다.

나름의 자신감이 맺혀 있는 느낌이었다.

“한때 시간을 다루는 마법마저 연구해냈던 접니다. 그런 저와, 스승님이 함께한다면 그까짓 협정 따위, 파훼할 방법을 찾지 못할 리가 없잖습니까.”

“그건…….”

마냥 부정할 수만은 없는 말이었기 때문일까.

근거가 있는 자신감이었던 탓에, 아셰라는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녀라고 협정을 깨부수고 싶지 않겠나.

언제나, 언제나 생각해왔다.

이 빌어먹을 족쇄를 깨뜨릴 수만 있다면, 모든 게 깔끔하게 해결될지도 모르는 일인데.

샤사르와의 전면전 끝에, 승리를 거머쥐기만 한다면.

모든 걱정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

아셰라의 표정이 착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녀 역시 협정을 부수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흔적도 없이 끊어버리고 싶다.

……다만, 그녀는 알고 있을 뿐이었다.

협정을 맺을 당시, 모든 마왕이 모인 자리에서 얼마만큼의 마나가 그 협정에 쏟아부어 졌는지.

그렇게 만들어진 협정이란 이름의 족쇄가, 얼마만큼의 강도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렇기에, 주저했다.

자신을 가지고, 끊어낼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보고자 말할 수가 없었다.

그저 침묵했다.

입을 꾹 다문 채, 아셰라가 고개를 떨구었다.

“스승님.”

그리고, 그런 기색을 읽어낼 수 있었을까.

화이트가 나직한 목소리로 재차 입술을 떼어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이미 다섯 명의 마왕을 처리한 마당에, 샤사르 역시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는 없을 테니.”

그러니까.

“차분하게, 천천히 찾아보면 되는 겁니다. 연구하고, 실험하고, 끝내는 개발해내면 될 문제죠.”

“……제자님.”

그 자신감으로 가득 찬 음성에, 아셰라가 한 차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내 피어나는 것은, 약간의 아련함을 담은 쓴웃음이었다.

고개를 살며시, 미약하게나마 끄덕이며, 아셰라가 입꼬리를 천천히 끌어올렸다.

“……제가 너무 겁을 먹고 있었네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아셰라가 고개를 한 차례 털어냈다.

잡념을 없애기 위한 행동이었다.

이내 고개를 들어 올린 그녀의 눈동자 위로는, 결연한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될지 안 될지, 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인데.”

“그 말대로입니다.”

“……후후.”

즉각 돌아오는 화이트의 단호한 대꾸에, 아셰라가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약간은, 아주 약간은 낯빛이 평온하게 바뀌었다.

이어서 그녀가 다시금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아요, 제자님.”

내뱉는 목소리에는 망설임이라 부를 만한 것이 깔끔히 사라진 상태였다.

“찾아보죠, 그 방법이라는 거.”

그리고 그렇게 내뱉어진 말에, 확답에.

화이트 역시 환한 미소로 화답했으니.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저와 스승님이라면.”

“자신감이 넘치는 건 보기 좋네요, 제자님.”

싱긋 웃으며, 아셰라가 화이트에게 손을 내밀었다.

화이트 역시 그를 피하지 않고, 손을 마주 잡는 모습.

시선을 교환하면서, 두 사람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

청의 마왕 야라크의 마도왕국 습격 사건.

……그런 대형 사건이 터진 이후로,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아.”

제국, 황립 도서관.

그 지하의 깊숙한 곳, 고대의 문서들이 보관되어 있는 장소에서.

“……젠장.”

화이트가 나직히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니, 나름 성숙하기 바뀐 모습이었으나.

“어허, 제자님.”

아셰라가 보기에는, 1년 전이나 지금이나 화이트는 그대로였다.

“욕은 좋지 않다고 가르쳤던 것 같은데요. 설마 벌써부터 포기하는 건 아니겠죠?”

타이르는 듯한 어조로 내뱉으며, 아셰라가 싱긋 웃음을 흘렸다.

고대의 문서들을 뒤집어쓰고 있는 상태로, 화이트가 피폐해진 눈빛을 그녀에게 던졌다.

“……먼저 말을 꺼낸 주제에 이런 모습을 보여 죄송하지만, 1년 동안 소득이 없었으면 욕지거리 정도는 내뱉을 수도 있는 게 아닐까요.”

“흐음.”

그 말에 아셰라가 얕게 침음성을 흘렸다.

마냥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었던 탓이다.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길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마냥 짧다고도 표현할 수는 없는 세월이었다.

그런 시간 동안, 화이트와 아셰라.

두 사람은, 협정을 깨부술 방법은커녕 그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으니.

어쩌면 점차 지쳐가는 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후우…….”

이마를 짚으며, 피곤한 기색으로 화이트가 한숨을 내뱉었다.

고문서를 이리저리 뒤집으며 재빠르게 훑어 나갔으나, 여전히 의미 있는 정보를 찾아낼 수는 없었다.

1년 내내 이런 상태였다.

유의미한 정보라고는 일절 본 적이 없었다.

아셰라에게서 협정의 구조를 전해 듣고, 나름 파훼해 보고자 연구를 시도해 보기도 했으나.

“……샤사르, 이 미친놈.”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협정에서는 일말의 빈틈조차 찾을 수 없었다.

자연스레 적의 마왕, 샤사르에 대한 적대감이 높아지는 순간이었다.

“후후, 진정해요. 제자님.”

그리 내뱉으며, 아셰라가 고문서를 얌전히 내려놓았다.

이어서 화이트가 있는 방향으로 조심스레 발을 내디딘다.

“그렇게 말하면, 이 황립 도서관의 지하에 입장하는 걸 허락해준 황제에게도 실례잖아요.”

“……그건.”

그런 아셰라의 말에 화이트가 몸을 움찔거렸다.

기실,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황립 도서관은 본래 고위 귀족이라 한들 쉽사리 입장할 수 없는 장소였다.

하물며 고대의 문서들이 비밀스럽게 보관된 그 지하라면, 설령 클리포트 공작이라도 합리적인 이유 없이는 입장이 불가능했으니.

그렇기에, 클리포트 공작조차 아니고 그 후계자일 뿐인 화이트가 이곳에 입장하는 데에는 여러모로 고난이 많았다.

황실의 대마도사, 프리드리히의 지원으로 황제를 설득해 어떻게든 입장하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후우…….”

와중에 의미 있는 정보라고는 찾아보기가 힘들었으니, 한숨이 안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결국 인상을 팍 찌푸리며, 화이트가 읽고 있던 고문서를 대충 내팽개쳤다.

“제자님!”

아셰라가 무어라 버럭 소리를 내질렀으나, 적어도 지금의 화이트에게는 닿지 않았다.

“……조금만 쉬죠.”

결국 내뱉는 말은 그러한 것이었다.

그리 말하고는, 반쯤 쓰러지듯 몸을 눕히는 화이트.

“정말…….”

그런 화이트를 쳐다보며, 아셰라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발짝, 두 발짝.

다시금, 화이트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어느새 바로 지근 거리까지 접근한 아셰라가 화이트의 머리맡에 조심스레 자리를 잡았다.

“제자님.”

“……왜 부르십니까?”

대충 대꾸하며, 화이트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어지간히도 피곤했던 탓이었다.

“……흐응.”

그러나, 그런 화이트의 행동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걸까.

아셰라가 한 차례 묘한 비음을 흘렸다.

동시에, 눈꼬리를 유려하게 늘어뜨렸으니.

“자꾸 그렇게 다 귀찮다는 듯이 행동하면 말이죠.”

사근사근,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내뱉는다.

아셰라의 눈동자 위로 야릇한 기색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화이트의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가져간 뒤, 그녀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크게 혼날 줄 알아요, 나중에.”

단순한 한마디.

스승이 제자에게 하는 말로써, 이상한 점을 찾을 수는 없었다.

……다만.

“……예?”

화이트에게 있어서는, 그게 조금 다른 형태로 들렸던 걸까.

표정을 심각할 정도로 굳히며, 돌연 눕혔던 몸을 재빨리 일으키는 화이트.

이어서, 그가 떨리는 눈동자로 아셰라를 바라봤다.

“……나중, 이라 하시면?”

내뱉는 말은 그러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질문에, 아셰라는 그저 환한 눈웃음을 지을 따름이었다.

“언제겠어요?”

“…….”

화이트는 대답하지 못했다.

할 수 없었다.

그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아셰라를 오롯이 바라볼 뿐.

그리고, 공간에 침묵이 깔렸다.

화이트에게 있어서는 무척이나 불편하지만, 아셰라에게 있어서는 그저 즐거울 뿐인.

그런 침묵이, 잔잔하게 내려앉았고.

“……후후.”

이내 그러한 침묵을 깨뜨리는 건, 아셰라의 고혹적인 웃음이었으니.

“해가 진 이후를 얘기하는 거랍니다, 사랑하는 제자님.”

“…….”

이어서 내뱉어진 말에, 화이트의 낯빛이 일순간 새하얗게 질렸다.

“……그.”

두 눈을 힘겹게 깜빡거리며, 무어라 말을 꺼내 들고자 했으나.

“네, 무슨 할 말이라도?”

“…….”

결국 말을 잇지는 못했다.

그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화이트가 재빨리 시선을 뒤편으로 옮겼다.

“하, 하하…….”

조금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화이트가 다급하게 고문서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쉬는 일은 있어선 안 되죠. 뭘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 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스승님.”

“……흐응.”

열심히, 조금 과할 정도로 열심히 고문서를 훑어 내려가는 화이트.

그런 화이트의 등을, 아셰라는 그저 묘하게 이상야릇한 눈빛으로 바라볼 따름이었다.

마치 사냥감을 바라보는 듯한, 의미심장한 빛을 담은 눈동자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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