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2)유용하게
폭풍 전야의 고요.
그렇게 표현해야 옳을, 잔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네놈.”
트라마르의 입술을 비집고 살벌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야라크는 어디 있지?”
질문을 꺼내 드는 그의 표정 위로는, 일말의 불안감이 떠올라 있었다.
[뭘, 당연한 걸 묻고 있군.]
루시펠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야말로 사악하게, 조소를 입가에 걸친다.
그리고 내뱉는다.
[죽었다.]
“……!”
그 트라마르를 일순간 동요시킬 한마디를.
“……헛, 소리를.”
트라마르의 전신이 사시나무 떨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손끝은 파르르 경련하며, 동공 역시 사정없이 흔들린다.
“……거짓을, 읊는구나.”
와중에도 애써 태연을 가장하며, 트라마르가 루시펠의 주변을 살폈다.
측면에서 걸어 나오는 두 사내가 있었다.
지친 듯 보이지만, 선명한 오러를 끌어올리는 중년의 사내.
리이칸테르 후작이 눈가를 가늘게 좁히며 용기병들과 마법사들의 싸움을 바라봤다.
그리고 백금발의 소년을 로브로 두른 채 걸어 나오는 사내가 또 하나.
당연하게도, 테이칸이었다.
“……으음.”
그의 시선이 한 차례 트라마르에게 닿았다가, 이내 그 뒤편의 아셰라에게로 향했다.
“아셰라 선생.”
“가주.”
살짝 당황한 듯 보였으나, 우선은 고개를 숙이고 보는 아셰라.
그에 테이칸이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할 얘기가 조금 있겠지만, 우선은 뒤로 미루는 게 좋겠지.”
“……그렇겠네요.”
테이칸에게 들린 화이트를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살피는 아셰라, 이어서 그녀가 트라마르를 바라봤다.
입매를 비튼다.
떠오르는 것은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당신이 틀렸군요, 트라마르. 당한 쪽은 제자님이 아니라 야라크인 모양입니다.”
“…….”
트라마르는 침묵했다.
대답하지 않으며,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부들부들 떨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천천히 제국 측의 인물들이 포위하기 시작한다.
루시펠을 중심으로, 테이칸과 리이칸테르 후작이 포위망을 좁혀갔다.
당연하게도 직후, 쏟아지는 건 마법의 폭격이었다.
콰과과과과광!
“──.”
그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수많은 마법들, 그리고 검기를 바라보며.
트라마르가 군청색 안광을 흐릿하게 번쩍였다.
*****
트라마르는 강했다.
남색의 마왕이라는 이명에 어울리는, 최고위급 마법사로서의 힘을 보여주었다.
용기병들을 끊임없이 쏟아내며, 동시에 루시펠을 상대한다.
지친 리이칸테르 후작과 테이칸은 용기병들을 상대하는 것에 힘을 다해야만 했다.
자연스레, 남는 건 루시펠뿐이었다.
그랬으나.
콰가가가가각!
“……커헉!”
루시펠은, 적어도 트라마르보다는 한 단계 더 강했다.
뼛조각으로 이루어진 칼날이 쏟아진다.
칠흑의 마법진이 전개되면, 이어서 하늘이 어두운 색채로 물들었다.
노리는 건 오직 트라마르뿐.
쏟아지는 마법의 폭격에, 트라마르는 끝내 버텨내지 못했다.
쿵!
그 몸을 쓰러뜨리며, 트라마르가 입술을 깨물었다.
“……말도 안 된다.”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는 경악과 불신이 가득 담겨 있었다.
다만, 그것이 그 자신이 패배한 것에 대한 감정은 아닌 듯 보였으니.
“야라크가, 패배했다고……?”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으며, 트라마르가 루시펠의 뒤편을 바라봤다.
당연히, 보이는 건 없었다.
야라크는커녕,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일절 보이지 않았기에.
트라마르의 동공이 격하게 요동쳤다.
“그 심해를,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단 말이냐……!”
[확실히, 한없이 완벽에 가까운 공간이었지.]
대꾸하는 건 루시펠이었다.
안광을 흩뿌리며, 루시펠이 입매를 비틀었다.
[그렇지만 말이다. 그거 아는가, 마왕?]
“……무엇을 말하는 거냐.”
살벌한 어투로 되묻는 트라마르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루시펠이 싸늘한 미소를 그려 보였다.
[일 대 다수의 싸움은 명백하게 인원수가 많은 쪽이 유리하다는 것을. 전투의 기본이 아니던가.]
“……헛소리를!”
사납게 일갈을 내뱉으며, 트라마르가 손을 휘저었다.
콰아아아앙!
용기병이 얽히고설킨 듯한 모양새의 괴생명체가 아공간에서 튀어나온다.
동시에, 루시펠을 향해 괴성을 내지르고는 달려드는 모습이었다.
[이런, 믿지 않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군.]
피식 웃으며, 루시펠이 슬며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야라크가 죽을 리가 없다! 그 빌어먹을 샤사르가 아닌 이상, 그 누구도 그의 고유 마법을 깨뜨릴 수는 없어!”
퍼엉!
루시펠의 손짓에 융합된 용기병이 터져 나간다.
일격으로 가슴에 구멍이 뚫린 괴생명체는 균형을 잃고 쓰러져 내린다.
그럼에도, 트라마르는 신경 쓰지 않으며 아공간을 연신 열어댔다.
크오오오오!
끝내는 비장의 수단이라는 듯, 하늘을 가득 메우는 것만 같이 거대한 단일 개체를 소환해 내었으나.
쩌어어어어엉!
“……!”
이내 그마저도, 아셰라가 가볍게 완드를 휘두르는 것으로 인해 제압당한다.
살벌한 눈빛을 번뜩이며, 트라마르가 고개를 뒤로 꺾었다.
“아셰라……!”
이를 아득바득 갈아가면서, 목이 찢어질 듯이 소리를 내지른다.
“네년이 드디어 미쳤구나! 협정은 잊어버린 거냐……!”
“헛소리를 내뱉는군요, 트라마르.”
그러나 그런 트라마르의 일갈에도, 아셰라는 태연자약할 따름이었다.
한 차례 헛웃음을 흘리며, 그녀가 싸늘한 눈동자로 트라마르를 내려다봤다.
“당신의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요. 당신의 병사들은 협정에서 제외된다고.”
“……!”
“그 반대의 경우는 생각해 보지 않은 모양입니다?”
비웃듯이 중얼거리는 아셰라의 모습에, 끝내 트라마르는 이성을 잃었다.
“크아아아악!”
괴성을 내지르면서, 지면을 박차고 재빠르게 하늘로 날아오른다.
노리는 것은 아셰라, 단지 그녀만을 바라보며 마법진을 그려냈으나.
서걱!
“……!”
한 차례의 절삭음이 들려오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이 트라마르가 뒤편을 돌아봤다.
마찬가지로 지면을 박차며 트라마르의 뒤를 쫓은 리이칸테르 후작이 싸늘한 냉소를 흘리고 있었다.
“뒤를 조심해야지, 마왕.”
“네놈……!”
트라마르의 낯빛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바뀌어 갔다.
그랬으나.
퍼퍼퍼퍼퍼펑!
이어진 테이칸의 화염계 공격에는, 그 역시 버텨내지 못하고 지면으로 떨어져 내리고 말았다.
“……커헉!”
피를 토해내는, 검게 물든 트라마르의 몸체가 힘없이 내동댕이쳐졌다.
“큭, 크윽……!”
그리고 그런 트라마르의 앞으로.
천천히, 느긋한 걸음걸이로 누군가가 다가왔으니.
트라마르의 고개가 위로 꺾였다.
이어서, 트라마르는 볼 수 있었다.
무척이나 재밌다는 듯, 불쾌하게 턱을 삐걱거리고 있는 한 리치의 모습을.
[그대의 사체 역시, 이 내가 유용하게 사용해 주도록 하지.]
“……!”
그리고 그게, 트라마르가 들은 마지막 목소리였다.
푸욱!
한 차례, 피육이 꿰뚫리는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려 퍼지고.
트라마르의 몸이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
동공은 빛을 잃었으며, 아마 그 육체는 점차적으로 싸늘하게 식어가리라.
[그래서는 안 되지. 소중한 연구 재료일진대.]
그러나 루시펠은 그러한 결말을 바라지 않았다.
우웅!
손을 들어 올려, 트라마르의 사체를 끌어 올린다.
이어서 야라크의 때와 마찬가지로, 아공간을 향해 집어 던지는 모습.
루시펠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맺혔다.
[자, 그럼.]
그리고 그다음으로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주인을 잃었음에도 여전하게 움직이고 있는 용기병들이 있는 장소였으니.
칼의 지휘 아래에 마도왕국의 마법사들이 격렬한 전투를 펼쳐나가고 있었다.
테이칸과 리이칸테르 후작이 한 차례 눈짓을 교환했다.
그러고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재빠르게 그쪽을 향해 뛰어가는 모습.
콰과과과과광!
검기가 내리꽂히고, 화염의 소용돌이가 치솟아 올랐다.
그에 루시펠까지 이어서 합류하자, 용기병들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나가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마나가 거의 고갈된 상태로 전투를 이어가던 칼은, 검을 휘두르는 리이칸테르 후작의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원군인가.”
그리고 그리 늦지 않게, 칼은 그들의 정체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리이칸테르 후작, 그리고 클리포트 공작.”
“……제국의 도움을 받게 되었군요.”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마법사단의 단장이 탐탁지 않다는 듯 중얼거렸다.
칼이 힘없는 미소를 한 차례 지어 보였다.
“어쩌겠나. 그들이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멸망할 판이었는데.”
“그건 그렇습니다만…….”
단장 역시 여기저기에 상처를 입은 모습으로 힘없이 주저앉았다.
“……이거 힘들군요, 태자 전하.”
“나만 하겠는가, 단장.”
어깨를 으쓱이고는, 한결 여유를 되찾은 표정으로 칼이 옅게 미소 지었다.
“늙으면 은퇴해야 한다더니, 어쩌면 저도 그때가 온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딜 도망치려 하나. 내가 왕위에 오를 때까지도 그대는 일해줘야 하네.”
“전하…….”
단장이 숫제 절망으로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며 부르짖었으나, 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쿡쿡 웃음을 흘리고는, 칼이 정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바라보는 끝에는, 소년과 소녀가 있었다.
화이트와 아셰라.
정신을 잃은 화이트를 끌어안는 아셰라의 모습을 한 차례 흘겨보고는, 칼이 몸을 쭉 늘어뜨렸다.
“……오늘따라 그녀가 보고 싶군.”
속으로는 약혼녀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칼이 헛웃음을 흘렸다.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 위로, 나름의 안도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
고오오오-
대륙의 북쪽 끝자락.
적의 마왕의 거처.
콰르르르릉!
붉은빛을 띠고 있는 벼락이 살벌하게 내리쳤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저 연신 벼락이 떨구어지며, 주변의 모든 것을 지워만 갔다.
“……샤사르.”
보다 못한 바이올렛이 힘겹게 그 벼락의 주인을 불러보았으나.
“…….”
샤사르는,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 못했다.
대꾸를 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야라크가 돌발행동을 벌였다, 고.”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는, 한자리에 모인 모든 마왕이 몸을 파르르 떨 정도로 냉랭한 기운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샤사르는 상관하지 않았다.
“하, 하하. 하하하하…….”
그딴 것에는 신경 쓰지 않으며, 그저 헛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하하, 하하하하하!”
콰르르르르릉!
다시금,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이번에는 그 위력이 한층 더 강렬했다.
그리고.
“…….”
연신 웃음을 터뜨리던 샤사르가 돌연 움직임을 멈춘 것은, 그야말로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끝장이군.’
고성에 모인 마왕들은 직감할 수 있었다.
지금 상태의 샤사르는 그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자색의 마왕, 바이올렛의 말조차 통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의 말도 귀에 들리지 않으리라.
마왕들은 그저 바랬다.
샤사르가 최대한 일찍, 감정을 갈무리하고 이성을 되찾기를.
……그렇지 않는다면.
아마, 누군가 한 명은 죽어 나갈지도 모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