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0)네 번째 복수
[발악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야라크의 무거운 목소리가 고요하게 울려 퍼진다.
잔잔하지만, 분명한 무게가 담겨 있었다.
콰과과과과광!
마치 우레와도 같은 굉음과 함께, 시퍼런 섬광이 쏟아져 내린다.
“……크윽!”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으며, 리이칸테르 후작이 섬광을 힘겹게 쳐낸다.
그의 낯빛은 이미 새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전위에서 방어에 전념한다는 입장으로서,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럼에도 검을 놓지는 않는다.
오히려 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준다.
꽈아악-
숫제 검의 손잡이가 우그러질 정도로 거세게 힘을 주며, 리이칸테르 후작이 눈빛을 번뜩였다.
쇄애애애액!
다시금 날아드는 섬광.
“…….”
그러한 섬광을 바라보는 리이칸테르의 눈동자가 우묵하게 가라앉는다.
이어서, 검을 일자로 세운다.
“후우…….”
얕게 숨을 내뱉으며, 오러를 끌어올린다.
전력을 다해.
일말의 남김도 없이.
이윽고 섬광이 지척까지 다가왔을 즈음.
“……!”
리이칸테르 후작의 검에는 그 무엇보다도 환한 금빛의 검기가 맺혀 있는 채였다.
콰아아아아앙!
폭음이 터져 나온다.
“……으음!”
고막을 찢어발기는 것만 같은 소음에 테이칸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을 망각하지는 않는다.
리이칸테르 후작의 검이 섬광을 쳐낸 직후, 테이칸이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마나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
영창을 외며, 양손에 마법진을 떠올린다.
푸른빛을 띠던 마나는, 테이칸의 의지에 따라 점차 그 색채를 붉은빛으로 물들여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테이칸이 양손에 떠오른 마법진을 하나로 합치자.
그저 심해와도 같은 짙은 푸른색을 띠고 있던 공간에, 일말의 변화가 일어났다.
“플레어(Flare).”
붉은 화염이 넘실거린다.
화염은 이윽고 벽이 되어, 야라크와 네 사람의 간격을 가로막는 성채로 그 형태를 바꾸었다.
공격이 아닌, 방어에 중점을 두었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흐음.]
작게 탄성을 흘리고는, 루시펠이 뼈로 이루어진 한쪽 손을 들어 올렸다.
[장벽이 버티는 동안, 내가 저 마왕을 떨구면 될 문제로군.]
그리 내뱉은 직후, 루시펠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에 대꾸하듯, 야라크가 입술을 떼어냈다.
[가능할 거라 생각하나?]
[못 할 건 뭔가.]
[오만하군.]
[그건 내가 아니라 그대에게 어울리는 단어인 듯싶은데.]
공간을 울리는 두 개의 목소리가 있었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서로 대치하던 두 대마도사는, 이내 망설임 없이 마나를 일으킨다.
섬광은 다시금 그 모습을 드러낸다.
몇 번을 막아도 소용없다고 말하는 양, 여전한 위력을 과시했다.
그에 맞서 루시펠 역시 마법진을 작성한다.
칠흑의 마법진이 일렁이며, 루시펠의 뒤편에 자리 잡는다.
섬광이 쏘아진다.
루시펠 역시 망설이지 않고, 마법진을 작동시킨다.
투콰아아아아앙!
대포가 불을 뿜듯이, 거친 포격음이 울려 퍼졌다.
루시펠의 마법진이 일으킨 굉음이었다.
야라크의 시퍼런 섬광에 지지 않는, 칠흑의 광선이 허공을 가르며 쏘아진다.
금방이라도 서로 부딪혀 공멸이라는 결과를 자아낼 것만 같았다.
[……!]
그랬으나.
루시펠이 쏘아낸 칠흑의 광선은, 야라크의 섬광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오롯이 야라크를 향해서만 날아간다.
섬광이 쏟아져 내려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믿음은, 근거 없는 신뢰는 아니었다.
화르르르륵!
불꽃이 일었다.
파도가 치는 것처럼, 홍염이 넘실거리며 섬광을 막아선다.
마치 칠흑의 광선을 대신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테이칸 클리포트!]
야라크의 고함이 귓가를 때렸으나, 테이칸은 상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숫제 우습다는 듯이 입가에 조소를 머금을 따름이었다.
“나를 보고 있어도 되겠는가?”
[……!]
그 말에 야라크의 시선이 돌아간다.
섬광은 이미 쏘아졌다.
한 차례의 기회를 낭비했다는 소리와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남는 건 하나였다.
칠흑의 광선은 여전하게, 흔들림 없이 야라크를 향해 올곧게 나아갔다.
그리고, 야라크는 그를 피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피할 수 없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것.
행동의 제약이야말로 이 공간의 유일한 약점이었으니.
콰아아앙!
[……커헉!]
처음으로, 야라크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명백하게 고통으로 인해 일그러진 목소리, 그에 루시펠이 비웃음을 흘렸다.
[오만의 대가지.]
[네, 놈……!]
뒤틀린 목소리를 내뱉으면서도, 선명한 살의가 담긴 눈빛을 번뜩인다.
그야말로 집념이라 부를 만한 것이었으나, 돌아오는 건 그저 불쾌한 웃음소리에 불과했다.
[크흐흐, 자신감이 지나치면 독이 된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
중얼거리며, 루시펠이 보란 듯이 양팔을 들어 올렸다.
[이곳에 있는 자들이 나약해 보였던가? 9서클과 8서클의 마법사들, 그리고 제국 최강의 기사가 그대가 보기에 모자라 보였는가.]
루시펠의 안광이 흔들림 없는 빛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그대의 팔이 울겠어. 주인의 그릇된 판단으로 몸체에서부터 떨어져 나왔으니.]
[…….]
그리고 그렇게 뱉어진 말에, 야라크의 시선이 허공에 머물렀다.
팔이 있었다.
당장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 자신의 어깻죽지에 붙어 있었던, 팔이 허공을 날고 있었다.
피는 쏟아지지 않았다.
애초에 그러한 공간이었으니까.
[……이 정도는 금방 재생한다. 이 공간 안에서, 나는 무적이다.]
[과연 그럴까. 나 역시 진심으로 궁금하구나, 마왕이여.]
그저 여전한 조소를 머금은 채, 루시펠이 재차 손을 들어 올렸다.
[잇따른 연격에도 그대의 몸이 무사할지, 어디 한 번 시험해보도록 하지.]
*****
섬광이 빗발친다.
그를 막기 위해 검기가 난무하고, 화염이 치솟아 오르면 그 사이를 비집고 칠흑의 광선이 쏘아졌다.
완벽한 합.
그리 표현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의 호흡을, 루시펠과 제국의 두 기둥은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랬으나.
[모자라다.]
[…….]
끝내, 야라크의 목을 떨굴 수는 없었다.
심장을 꿰뚫지도 못했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드는 칠흑의 마법들은, 야라크에게 분명한 상처를 입혔다.
그렇지만, 결정타가 부족했다.
한쪽 팔을 날리는 사이, 그 이전에 터뜨렸던 나머지 팔이 재생된다.
얼굴의 반을 쪼개더라도, 섬광들이 시간을 버는 사이에 금세 원상태로 복귀한다.
그야말로 무적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이게 12마왕 중에서도 이인자라 불리는, 청의 마왕의 힘인가.’
그리 생각하며, 테이칸이 마른침을 삼킬 정도였으니.
[아직도 모르겠나? 너희들로는 나를 죽일 수 없다.]
이번에는 역으로, 야라크가 입가에 비웃음을 떠올렸다.
몰아붙이고, 한때나마 우위를 점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결국 그뿐인 것이었다.
승리를 거머쥐기에는 한없이 부족하다.
[나는 지지 않는다. 동시에, 너희들은 이기지 못한다.]
확신이 서린 목소리였다.
청의 마왕이라는 이명에 부족함이 없는, 명실상부한 압도적인 강자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런가.]
그런 야라크를 바라보며, 루시펠이 처음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동시에 몸을 파르르 떨기 시작한다.
야라크가 입꼬리를 섬뜩하게 끌어올렸다.
[서쪽의 엘더 리치여. 그저 어리석구나. 마왕에 대적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나?]
[…….]
루시펠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연신 몸을 부들거릴 따름이었다.
야라크의 눈에는, 그건 패자가 울분을 억누르는 모습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미소를 띠고, 살벌하게 섬광을 허공에 띄운다.
동시에 마지막으로, 야라크가 무어라 말을 내뱉으려는 순간이었다.
[……크흐.]
웃음소리가 울렸다.
[크흐, 크흐흐. 크하하하하…….]
[…….]
루시펠의 웃음소리였다.
듣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그 특유의 웃음소리였다.
야라크의 표정이 험악하게 바뀌었다.
[무엇이 우습지? 리치.]
야라크의 물음에, 그제서야 루시펠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 이거 미안하군. 본의 아니게 오해를 만들고 말았어.]
루시펠의 표정에서는 일말의 절망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비웃음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무엇이 웃긴가.
무엇이 그리도 우스운가.
야라크는 그저 그것이 의아했다.
동시에 격정이 치솟아 오른다.
한낱 리치 따위가 그 자신을 기만했다는 것에서 비롯된, 마땅한 분노였다.
적어도 야라크는 그리 생각했다.
[…….]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까.
야라크는 그저 손을 들어 올려 섬광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우웅!
거친 공명음이 울려 퍼졌다.
주인의 의지에, 그리고 감정에 따라 섬광이 격하게 흔들린다.
그럼에도 위력은 떨어지지 않는다.
그저 일정하게, 강렬함을 유지할 따름이었으니.
[죽어라.]
야라크는 짤막하게, 그리 중얼거릴 뿐이었다.
[리이칸테르는 지쳤으며, 클리포트는 마나를 다 소모했다. 더 이상 너희를 지켜줄 방패가 없다는 뜻이지.]
그러니까.
[이만, 사라져라.]
야라크의 말은 그걸로 끝이었다.
전례가 없을 정도로, 그야말로 끝을 보겠다는 듯 섬광은 더없이 화려하게 번쩍였다.
순간적으로 모든 이들의 시야를 시퍼렇게 물들일 정도였다.
그러나.
[그거 아는가? 마왕.]
루시펠은 태연했다.
섬광이 쏟아지고 있으며, 그에 대한 대비는 준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태연자약할 따름이었다.
무엇을 믿고 있는가.
무엇을 믿고 버티기에, 저리도 태연한가.
순간적으로 야라크가 그런 생각을 품을 정도로, 심히 평온하기 짝이 없는 태도였다.
야라크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과 동시에, 루시펠이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그래도 대마도사라는 이명을 달고 있는 자로서 부끄럽지만, 나는 네 목을 떨구지 못한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야라크가 판단하기에, 그건 당연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랬으나.
루시펠의 말은, 아직까지 끝맺어지지 않았다.
[내가 아니야.]
[……?]
[너의 심장을 꿰뚫는 건, 내가 아니라는 말이다.]
야라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무슨 말을 하고 있나.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가, 저 리치는.
명백한 의구심이 그의 표정 위로 떠올랐으나, 루시펠은 그 의문을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크흐흐.]
그저 그 특유의 웃음소리와 함께, 한마디를 툭 하니 내뱉을 따름이었다.
[잘 가게, 야라크.]
그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
무언가가, 일렁였다.
루시펠과, 테이칸과, 리이칸테르 후작의 뒤편에서 일렁인 빛무리였다.
야라크의 눈이 미세하게나마 가늘게 좁혀졌다.
‘……그러고 보니.’
차마 생각지 않고 있었는데.
한 명이 더 있지 않았나?
어째서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분명히.
……분명히, 그 어린 놈은.
처음부터 끝까지─
[…….]
푸욱!
야라크의 상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순간 들려온, 들려와서는 안 되는 소리에 야라크의 고개가 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아.’
그 자신의 심장 부근을 꿰뚫고 있는, 하나의 창을.
어째서인가, 기묘하게 인식이 일그러져 있던 것만 같은.
한 어린 소년이 쏘아 보낸, 청백색의 광휘로 일렁이는 창을.
섬광은 어느새 사라진 채였다.
야라크가 쏘아낸 섬광들은, 하나같이 그 형체를 감추었을 뿐이었다.
‘무엇에 의해?’
야라크가 품은 의문은 그러한 것이었다.
이어서, 고개를 다시금 들어 올린다.
……그때가 돼서야, 야라크는 볼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세 명의 뒤편에 자리를 잡은 채 무언가를 노리고 있던 화이트의 모습을.
‘어째서.’
……어째서인지, 그 기척을 느끼기는커녕 인지조차 하지 않고 있었던.
화이트의 모습을.
‘……아.’
그리고.
그게 야라크가 품은, 마지막 순간의 생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