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129화 (130/158)

(EP.129)심해

“…….”

눈을 뜨자 보이는 건, 표현하자면 심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바꿔 말해서, 바다였다.

“……!”

화이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반사적으로 목을 붙잡아 보았으나.

“……?”

호흡에 문제가 없다는 걸 깨달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한층 차분해진 기색으로 주변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내, 화이트는 익숙한 면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루시펠.’

우선 가장 먼저 볼 수 있었던 것은, 여전하게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리치였다.

그 역시 당황한 듯 보였으나, 나름대로 침착함을 되찾고 주변을 살피는 모습.

‘……아버지, 그리고 리이칸테르 후작.’

이어서 테이칸과 리이칸테르 후작마저 확인한 화이트가 얕게 숨을 내뱉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따로 떨어지는 형태의 공간은 아닌 듯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화이트는 이 공간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공간 장악.’

고유 마법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이며, 동시에 효과적인 기술.

한때 마법 대전에서 칼이 펼쳤던 것과 같은 것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칼의 그것은 지금의 이 공간과 비교할 만한 게 되지 못했다.

이 공간을 펼친 것은, 다름 아닌 청의 마왕이었으니까.

화이트의 낯빛이 어두워지는 것과 함께, 루시펠을 비롯한 세 사람이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이 마법까지 펼치게 된 이상, 너희들은 여기서 모두 죽는다.]

웅혼한 목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진다.

고요하게, 그리고 잔잔하게.

그러나 분명한 살의를 담은, 그러한 목소리가.

“……!”

그리고 직후.

쇄애애액!

측면에서부터 느껴지는 살벌한 기척에, 화이트가 재빠르게 고개를 꺾었다.

콰아아아앙!

“……무슨.”

광선이 지나쳐 갔다.

고개를 돌리며, 화이트는 그 자신을 스쳐 지나간 광선이 도달한 지점을 바라봤다.

“…….”

공간이 일그러진다.

험악하게 구겨지는 것도 같았으며, 반쯤 바스러진 모양새처럼 보이기도 했다.

단순한 광선이 아니었다.

공간 그 자체를 일그러뜨리는 시점에서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으나, 그럼에도.

‘지나치다.’

훨씬 강렬하다.

직전 공간이 그 형태를 심해로 바꾸기 전에 보았던 야라크의 힘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화이트는 직감할 수 있었다.

이 공간이야말로, 청의 마왕 야라크가 12마왕의 이인자로서 있을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는 것을.

[고유마법, 깊은 바다의 폐기장.]

“…….”

들려온 목소리에, 화이트와 루시펠을 비롯한 네 사람의 고개가 위로 향했다.

야라크가 그 자리에 있었다.

허공에 오연히 뜬 채, 오만한 시선으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도중이었다.

화이트의 미간이 좁아졌다.

“……트라마르는 어디 갔지?”

내뱉는 질문은 그러한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기감을 아무리 넓혀도.

남색의 마왕, 트라마르의 기척이 잡히질 않았다.

단순히 그 모습을 감추고, 기척을 최대한으로 죽이고 있는 것뿐이라면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해낸 질문이었다.

이어서, 야라크의 입가에 조소가 맺힌다.

[너희들을 상대하는 건 나 혼자로 충분하지. 트라마르는, 마도왕국으로 향했다.]

“……!”

[너희가 여기서 시간을 끄는 동안, 트라마르는 용기병들을 이끌고 마도왕국을 파멸로 몰아세울 것이다…….]

그리 말하는 야라크의 한쪽 눈꼬리가 섬뜩한 모양새로 늘어뜨려졌다.

그건, 무척이나 불쾌한 눈웃음이었으나.

“……마도왕국으로 갔다고.”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화이트는 그에 관해 신경 쓰지 않았다.

떠올리는 것은 하나의 저울이었다.

전력을 비교하기 위해서, 한쪽에는 트라마르를 올린다.

이어서 나머지 한쪽에는, 칼과 마도왕국의 마법사들을 올린다.

“…….”

결과가 나오는 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칼이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고, 언젠가는 9서클로 올라설 인재라지만.’

……아직까지는 미숙했다.

12마왕의 일인을 상대하기에는 모자랐다.

마도왕국의 전력을 전부 파악하지는 못했으나, 그렇다고는 해도 그들이 마왕의 힘을 버텨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렇긴 했으나.

‘그렇지만, 스승님이 있다면.’

지금 마도왕국에는, 그들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스승이자, 대륙 최강의 마법사인 아셰라가 있었다.

‘버티는 건…….’

이겨내는 게 아니라, 단순히 버텨내는 게 전부라면.

……불가능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판단이 들었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재빨랐다.

고민은 짧았다.

“루시펠.”

[음.]

화이트의 부름에 루시펠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할 얘기는 별달리 없었다.

그저, 해야 할 것을 상기시킬 뿐.

화이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야라크를 쳐죽인 후, 마도왕국으로 돌아가 트라마르 역시 죽인다. 간단하지 않나?”

[……크흐흐.]

화이트의 말에 루시펠의 입과 턱이 벌려지며, ‘딱딱’거리는 불쾌한 소음이 일어났다.

화이트는 그것이 루시펠의 웃음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실로 간단하기 그지없구나.]

싸늘한 목소리를 뱉어내며, 루시펠이 안광을 번뜩였다.

[저 오만한 마왕을 연옥으로 떨구는 일이야, 어렵지 않지.]

웅, 우우웅-

루시펠이 뼈로 이루어진 한쪽 팔을 들어 올리자, 허공에 칠흑의 마법진들이 생성되었다.

“방심은 치워둬라. 그래도 12마왕의 이인자라 불리는 녀석이니.”

[그 말대로 하지.]

루시펠의 입가에 명백한 조소가 맺히는 것과 동시였다.

콰과과과과과과광!

화약고가 터뜨려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심해의 밑바닥에서부터 마법의 폭격들이 야라크를 향해 날아들었다.

*****

섬광이 허공을 가르며 쏘아진다.

단순히 한두 개가 아니었다.

쇄액!

쇄애애애액!

파공음을 터뜨리며, 섬광은 바다를 가르고 네 사람을 향해 섬뜩한 빛무리를 흩뿌렸다.

캉, 카앙!

리이칸테르 후작이 검을 휘둘렀고, 섬광은 그에 형태를 감추었다.

막아내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리이칸테르 후작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섬광을 막아낼 당시, 검을 통해 손아귀로 전해져 오는 아득한 강렬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얼마 버티지 못할 겁니다, 각하.”

“음.”

무겁게 고개를 주억이며, 테이칸이 앞으로 나섰다.

그가 손을 휘저었고, 그에 따라 화염의 소용돌이가 야라크를 향해 쏘아졌다.

그랬으나.

펑!

퍼퍼퍼퍼펑!

“…….”

그 화염의 소용돌이들은, 전부 야라크가 만들어낸 시퍼런 섬광에 의해 가로막히고 만다.

그야말로 일말의 피해조차 입히지 못하고, 허무하게.

테이칸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찬가지로 마법을 쏘아 보내면서, 화이트가 그런 테이칸을 살폈다.

‘……통하지 않는 건가.’

……그의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은, 곧 리이칸테르 후작의 검기 역시 닿지 못한다는 말과 동일하리라.

그리고 화이트는,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공간의 특이성입니다.”

내뱉는 목소리에는 미약한 불쾌함이 담겨 있었다.

테이칸과 리이칸테르 후작의 고개가 화이트를 향해 돌아갔다.

“그게 무슨 말이냐, 화이트.”

여전히 허공에 떠 있는 야라크를 향해 줄곧 마법의 폭격을 가하면서, 화이트가 입술을 떼어냈다.

“이 공간,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모든 게 야라크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공간 장악 마법의 범주를 넘어섰어요.”

투콰아아아아앙!

화이트와 루시펠이 펼친 섬멸 마법의 폭격이 야라크에게 향했으나, 마찬가지로 어디선가 날아든 섬광에 의해 흩어지고 만다.

그에 더더욱 확신을 가지고는, 화이트가 짓씹듯 내뱉었다.

“완벽한 방패와 완벽한 창, 둘 모두를 손아귀에 쥘 수 있는 최고위의 고유 마법입니다.”

그리고 그리 내뱉어진 목소리에, 테이칸은 물론이고 리이칸테르 후작의 낯빛마저 어둡게 물들었다.

화이트의 표정 역시 일그러진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애초에 루시펠을 비롯한 세 사람이 도착하기 전까지 야라크를 상대로 시간을 끌던 게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그리고, 나름 할 만하다는 생각마저 품을 정도로 야라크는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하물며 트라마르마저 옆에 붙어 있었으니, 더 이상의 말은 필요가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화이트의 날카로운 눈빛이 사방을 훑고 지나갔다.

‘이런 고유 마법이 있었기에, 야라크는 12마왕의 이인자가 될 수 있었다.’

아마 틀림없을 것이다.

확신에 가까웠다.

야라크를 상대할 당시, 화이트가 느꼈던 그의 수준은 기껏해야 녹색의 마왕 에멜과 비슷한 정도.

12마왕의 이인자라 불리기에는 한없이 미약한 힘이었다.

그러니, 이것이야말로 그의 진가이리라.

“……쯧.”

불쾌한 오산에 화이트가 혀를 찼다.

고개를 들어, 여전히 거만하게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야라크를 살핀다.

……그렇다고는 해도, 하나.

알아낸 게 없지는 않았다.

화이트의 눈가가 가늘게 좁혀졌다.

“저놈, 저기서 움직이지 못하는 모양이군요.”

[……음?]

화이트의 말에 반응한 건 루시펠이었다.

마찬가지로 안광을 번뜩이며, 야라크의 모습을 살핀다.

그러고 나서.

[오.]

얕게 탄성을 흘리는 루시펠.

그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맺혔다.

[네 말대로군, 화이트. 처음부터 끝까지, 미동도 없는 모습이야.]

“아마 제약이겠지. 이만큼 사기적인 공간을 형성할 정도라면, 그 정도 페널티는 있어도 이상하지 않아.”

[……흐음, 그렇단 말이지.]

두개골을 두어 차례 끄덕거리며, 루시펠이 야라크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들었겠지, 마왕? 어떤가? 화이트의 추측이 사실인가?]

[…….]

야라크는 침묵했다.

별다른 대답을 꺼내 들지는 않았으나, 오히려 그렇기에 그것이 곧 답변이 되었다.

루시펠의 턱이 삐걱거리며 불쾌한 소음을 냈다.

[그 어떤 강력한 힘이라 한들, 대체로 약점은 존재하는 법이지. 너의 경우엔 움직임의 제약이 곧 그것이겠군.]

[……그래서 어떻다는 것이냐.]

야라크의 입술이 떼어졌다.

서슬 퍼런 눈빛을 번뜩이며, 그가 네 사람을 훑었다.

[알아서 어쩌겠다는 거냐. 내 약점을 파악했다고 한들, 네놈들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냐.]

내뱉으며, 그가 사납게 손을 휘둘렀다.

콰과과과과광!

“……!”

폭음이 일며, 수십 개의 섬광이 네 사람을 향해 쏘아졌다.

[쯧.]

혀를 차며, 루시펠이 손을 들어 올렸다.

콰가가가각!

뼛조각들이 솟아오르며, 섬광들을 막아낸다.

당연히 뼛조각들은 허무하게 스러져 내렸으나, 그럼에도 섬광을 방어하는 목적은 달성했다.

[버러지 같은 것들.]

그리고 그쯤에서, 야라크가 재차 입을 열었으니.

양손을 펼치며, 그가 수많은 빛무리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하나하나가 모두 9서클이라는 경지에 어울리는 위력을 갖추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변은 없다.]

내뱉으며, 야라크가 손을 아래로 내리그었다.

[네놈들은 여기서 전부 죽는다. 다름 아닌, 내 손에 의해서.]

그리고, 쏘아진다.

일말의 자비조차 두지 않겠다는 듯, 수십, 수백 개의 섬광이 네 사람을 향해 쏟아져 내린다.

그야말로 폭풍우와 같은 형태로.

그것을 막아서는 것은 테이칸과 리이칸테르 후작이었다.

테이칸이 화염의 장벽을 만들어내고, 이어서 리이칸테르 후작이 검막을 펼친다.

“우리로서는 저자에게 의미 있는 타격을 입힐 수 없을 것 같군.”

조금은 분한 듯한 어조로 내뱉으며, 테이칸이 뒤를 돌아봤다.

“맡기겠다, 화이트. ……그리고, 엘더 리치.”

[크흐흐…….]

뒷말에는 묘하게 힘이 없었으나, 루시펠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특유의 불쾌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마나를 끌어올릴 따름이었다.

그런 루시펠을 한 차례 못마땅하다는 듯 흘기고는, 화이트가 테이칸을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여보였다.

“예, 아버지.”

동시에 두 자루의 청백색의 창을 만들어내며, 야라크를 겨누는 모습.

“맡겨주십시오.”

화이트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걸쳐지는 순간이었다.

─────!

야라크의 섬광은 다시금 쏟아져 내린다.

그야말로 한도가 없다는 듯, 자비 없이.

그 앞을 테이칸과 리이칸테르 후작이 막아서고, 뒤편에서는 루시펠이 견제를 위한 마법을 전개한다.

……그리고.

“…….”

그 중앙에서, 화이트는 그저 조용히 침묵했다.

침묵하며, 하나의 마법을 준비한다.

사아아아-

청아한 울림과 함께, 화이트의 전신에 찬란한 푸른빛이 맺히기 시작했다.

야라크를 노려보는 화이트의 벽안에, 선명한 살의가 떠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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