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7)지원군
“…….”
걸음을 멈춘다.
몸에 둘렀던 마나를 흩어지게 하며, 화이트는 정면을 바라봤다.
두 명의 사내가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닮았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그럼에도 어딘가 차이점이 있는.
그런 푸른색을 두르고 있는, 두 명의 사내가 서 있었다.
누구인지는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다.
“청의 마왕, 야라크.”
“……화이트 클리포트.”
화이트가 내뱉은 말에, 야라크는 그리 대답했다.
그 자신의 정체를 꿰뚫어 보는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화이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미 이제와서 정체를 감춘다는 건 불가능했으며, 알려질 대로 알려진 마당.
야라크가 자신을 알고 있다 해서 문제 될 것도, 달라질 것도 없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오롯이 해낼 뿐.
화이트는 그런 생각을 품으며, 손끝에 푸른빛의 마나를 실었다.
금방이라도 마나를 폭발시켜, 전방의 두 사내를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그랬으나.
“전해 들었다. 아셰라와 함께하고 있다지.”
“…….”
직후 내뱉어진 야라크의 목소리에, 화이트는 그 움직임을 멈춰 세울 수밖에 없었다.
대신 눈가를 가늘게 좁히며, 불쾌함이 잔뜩 서린 목소리를 내뱉는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거지?”
“별 건 아니다. 그저 물어볼 뿐.”
대충 대답하며, 야라크가 마나를 끌어올렸다.
화이트의 그것과는 다른, 짙은 파란색의 마나가 떠올랐다.
“묻겠다, 화이트 클리포트.”
“…….”
침묵하는 화이트를 향해, 야라크는 선언하듯 내뱉는다.
“아셰라는 어디 있나.”
그리고, 그렇게 이어진 말에.
뚝!
화이트는 머릿속에서부터 무언가가 끊어지는 듯한 감각을 느껴야만 했다.
……몸이 파르르 떨린다.
다만, 그건 두려움의 탓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반대되는 감정이었다.
굳이 단순하게 말하자면, 담백한 분노였다.
“……이놈도 저놈도, 하나같이 남의 스승을 찾아대고 말이야.”
싸늘하게 내뱉으며, 화이트가 서슬 퍼런 눈동자를 번뜩였다.
“물어본다고 해서 내가 대답하리라 생각했나? 네놈들한테 알려줄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까.
덧붙이며, 화이트가 입매를 사납게 비틀었다.
“입 닥치고 마법진이나 그려라, 아둔한 놈.”
“……네놈.”
야라크의 표정이 굳는 건 한순간이었다.
이어서, 분노의 빛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한참이나 어린 놈에게 모욕당하고, 무시당했기에 생기는 마땅한 분노였다.
그랬으나, 그럼에도.
화이트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고, 그리 말하는 모양새로 서클을 회전시킬 따름.
“그거 알고 있나? 야라크.”
천천히 전투의 대비를 해가며, 화이트가 재차 입을 열었다.
야라크가 무어라 대꾸하려고 했으나, 그 이전에 화이트가 먼저 말을 이었다.
“나는 샤사르에게 졌다. 그것도 처참하게, 압도적으로 밀렸지.”
“……그래서?”
“이해하지 못하겠나?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비죽 웃음을 흘리며, 화이트가 검지로 야라크를 가리켰다.
“그런 내가 널 상대하고자 이렇게 나섰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지.”
한 차례의 조소와 함께, 이어서 말을 마무리 짓는다.
“샤사르에 비하면, 네놈은 맞붙을 만하다고 판단했다는 거다.”
“…….”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아!
그걸로 대화는 끝이었다.
“……되었다.”
분노의 외침은 없었다.
별다른 감정을 띄우지도 않는다.
“그냥, 죽어라.”
그저 무덤덤하게, 무표정을 가장하며.
야라크는 지면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
“……휘몰아쳐라.”
짤막한 시전어와 함께, 거센 격랑이 야라크와 그 옆의 사내를 향해 덮쳐들었다.
콰아아아아앙!
푸른빛의 파도는 그대로 야라크를 집어삼켰으나, 화이트는 긴장을 놓지 않았다.
애초에 이걸로 끝날 상대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방심은 없다.
무시하지도 않는다.
일전의 도발은 그를 얕잡아봤기에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그의 감정을 동요시키기 위함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12마왕의 이인자 자리는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 대륙에서 한 손에 꼽히는 마법사 중 하나였으며, 그 무력에는 의심의 여지조차 없으리라.
하물며, 야라크는 혼자가 아니었다.
“…….”
화이트의 시선이 한순간에 측면으로 돌아갔다.
느껴지는 기척이 있었다.
쇄애애애액!
시퍼런 마나가 담긴 광선이 쏘아져 왔다.
순간적으로 화이트의 눈이 가늘게 좁혀진다.
광선보다는, 그 너머의 무언가를 바라본다.
카앙!
우선 첫 번째로 쏘아진 광선을 쳐낸다.
단순하게 손날에 마나를 두르는 것으로 해낸 행동이었다.
“흐음.”
그랬으나, 상대 역시 녹록지는 않았다.
“나와 야라크를 동시에 상대할 심산인가?”
남색의 마왕이 입을 열었다.
“……트라마르.”
인상을 찡그리며 화이트가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고, 그에 사내, 트라마르의 눈이 살짝 크게 뜨였다.
살짝 놀란 기색이었으나, 그마저도 이내 사그라든다.
“흠. 아셰라에게서 전해 들은 것인가.”
“…….”
회귀 이전의 기억으로 알고 있었을 뿐이었으나, 당연히 그에 관해 말을 꺼내지는 않는다.
그럴 이유가 없었으니.
화이트는 그저 마나를 더욱더 거세게 운용할 따름이었다.
콰아아아아!
푸른빛의 광휘가 화이트의 전신에 맺히며, 아지랑이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네놈!”
그리고 그쯤에서, 몰아쳤던 파도가 헤쳐지며 한 사내가 다시금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사납게 울부짖으며, 야라크가 두 눈을 살벌하게 번쩍였다.
이어지는 공격은, 두 방향에서 동시에 시작되었다.
트라마르의 손짓에 따라 허공에 수많은 병장기들이 생성된다.
검, 창, 도끼부터 시작하여,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무기들이 화이트를 겨누었다.
그 하나하나에 담긴 기운은 그야말로 어지간한 7서클의 마법사가 전력으로 펼치는 비기보다도 아득히 높은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그랬으나, 화이트는 그보다는 다른 방향에 집중했다.
후욱!
“……!”
한순간에 야라크의 신형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이내 화이트의 바로 코앞에서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지는 건 내려쳐지는 검격.
어느새 생성되었는지 알 수 없는, 짙은 파란색의 장검이 화이트를 베고 지나갔다.
“……큭!”
침음성을 흘리며, 화이트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뒤늦게 마법진을 그려내며 야라크를 향해 쏘아냈으나, 의미는 없었다.
콰과과과광!
마법의 폭격은 분명 야라크에게로 쏟아졌지만, 유의미한 타격을 입히진 못했다.
“…….”
화이트의 시선이 그 자신의 어깨 부분으로 향했다.
……미약하지만 분명하게, 야라크의 검이 스치고 지나갔다.
일반적인 검상과는 달랐다.
피가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그것도 상당히 많이, 그야말로 철철 흘러내리고자 한다.
그건 곧 야라크의 무기가 단순히 평범한 철검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
이를 악물며, 화이트가 지혈을 위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트라마르가 만들어내는 병장기들은 점차 많아져만 갔다.
화이트의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과 동시였다.
야라크가 재차 지면을 박차고 검을 뒤로 쭉 뻗었으며, 이어서 트라마르의 공격이 한순간에 쏘아져 나간다.
두 방향에서 동시에 날아드는 공격.
“……후우.”
그리고, 직후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화이트가 사납게 눈을 번뜩였다.
화아아아아악!
화이트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과 함께, 그의 전신에서 푸른빛의 섬광이 폭발하듯이 터져 나왔다.
“……무슨!”
날아드는 트라마르의 무기들은 그 섬광에 의해 무력하게 소멸되었다.
그야말로 깔끔하게,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그리고 그 섬광은, 야라크에게도 공평하게 쏟아졌으니.
“……!”
야라크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동시에 혀를 차는 소리가 울렸고, 그가 지면을 디디며 뒤로 물러섰다.
쩌어어어어엉!
섬광은 직전까지 야라크가 서 있던 장소에 내리꽂혔다.
지면이 뒤틀리며, 동시에 공간이 일그러지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화이트의 인상이 자연스레 찌푸려졌다.
“감이 좋군.”
내뱉는 말은 감히 오만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어조였으나, 야라크는 그에 무어라 덧붙이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탓이었다.
바로 방금, 그 순간에 발을 뒤로 물리지 않았더라면.
공간을 찢어발긴 그 섬광은, 아마 그 자신을 반으로 쪼개버렸으리라는 것을.
“……대단하구나.”
이어서 그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목소리에는, 감출 수 없는 감탄이 서려 있었다.
“인정하마, 화이트 클리포트.”
“…….”
침묵하는 화이트를 향해, 야라크가 다시금 검을 겨누었다.
“넌 분명히 우리들에게 닿을 만큼의 강함을 가지고 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쩌면 넘어설지도 모르지.”
화이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만 그건 야라크가 내뱉은 말 때문은 아니었다.
“……쿨럭.”
……단지, 직전 사용했던 마법의 반동이 뒤늦게 찾아왔을 따름이었다.
한 차례 피를 쏟으며, 화이트가 입가를 닦아냈다.
‘지나치게 무리했나.’
……그 야라크를 일격에 죽이기 위한 섬광이었다.
대가가 가벼울 리가 없었다.
8서클의 경지로 사용할 만한 마법도 아니었다.
“……쯧.”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돌이킬 방법도, 돌이킬 생각도 없었기에.
화이트는 그저 싸늘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말이 많아, 야라크.”
“…….”
“끝났으면, 다시 덤벼라.”
화이트가 그리 말을 끝맺는 것과 동시였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야라크가 다시금 지면을 박찼고, 그 뒤에서부터는 트라마르의 마법이 쏘아졌다.
*****
싸움은 길게 이어졌다.
두 명의 마왕, 그중 한 명은 명실상부한 이인자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이트는 접전을 이어나갔다.
‘……샤사르와의 전투에서 마나를 폭주시킨 게 도움이 되었나.’
전투 도중 그런 생각을 품을 정도로, 나름의 여유가 있었다.
마나의 인위적인 폭주.
위험천만했던 경험이었으나, 그만큼 깨달음도 적잖이 찾아왔다.
마나를 운용하는 감각은 훨씬 탁월해졌으며, 경지 자체도 더욱 높아진 느낌이 들었다.
‘8서클의 끝자락.’
그것에 닿았음을 확신했다.
그렇기에, 야라크와 트라마르를 상대로 상당한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다.
한순간은 역으로 몰아붙이기도 하였으며, 한 번은 트라마르의 심장을 꿰뚫을 기회 역시 찾아왔다.
야라크의 방해로 무산되었으나, 적어도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었다.
‘강해졌다. 분명하게.’
바이올렛과의 싸움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었다.
오직 샤사르와의 짧은 교전, 그 순간의 기억만이 선명하게 떠오를 따름이었다.
콰아아아앙!
화이트가 손짓했고, 그에 따라 지면이 갈라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솟구쳤다.
“……!”
트라마르의 두 눈이 크게 떠진다.
동시에, 솟아오른 지면의 파편들이 한곳으로 그 고개를 돌렸다.
“─쏘아져라.”
나직한 목소리가 울리는 순간이었다.
트라마르를 향해, 날카롭게 벼려진 지면의 파편들이 날아들었다.
금방이라도 그의 전신을 사납게 찢어발길 듯이, 파편들은 망설임 없이 쏘아졌다.
그랬으나.
비록 미세한 격의 차이가 있다지만, 트라마르 역시 명백한 12마왕의 일원.
“얕보였구나.”
낮게 내리깔린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그가 손을 들어 올렸다.
우웅!
마나가 움직인다.
생성되는 건 하나의 방벽.
카가가가가강!
짙은 군청색의 방벽이 솟아오르며, 화이트가 쏘아낸 파편들을 깔끔하게 무산시켰다.
그리고, 그 직후였다.
“……!”
마법진을 끝맺는 그 순간, 그 약간의 빈틈을 야라크는 놓치지 않았다.
섬뜩하게 번쩍이는 검기를 늘어뜨리며, 화이트를 향해 달려든다.
‘이런……!’
화이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반응을 위해 재빨리 서클을 회전시키고, 마나를 끌어올렸으나.
서걱!
그보다도, 야라크의 검이 화이트를 베고 지나가는 것이 한 발 더 재빨랐다.
“…….”
적막이 흘렀다.
“……컥.”
그리고, 먼저 침음성을 내뱉은 건 화이트의 쪽이었다.
깔끔하게 베였다.
어깻죽지부터 대각선으로, 몸의 상체에 기다란 상흔이 새겨졌다.
변명할 여지 없는 크나큰 상처.
……그랬으나.
“……쿨럭.”
비단 상처를 입은 건 화이트뿐만은 아니었다.
뒤편에서부터 들려오는 신음성에, 화이트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검이 베고 지나가는 그 순간, 화이트는 얌전히 당해주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마나를 끌어올려, 푸른빛의 가시를 만들어냈다.
언젠가 있었던 녹색의 마왕, 에멜과의 전투에서 겪었던 그의 가시를 모방해낸 것이었다.
“……이건, 에멜의.”
그리고 그러한 공격은, 야라크의 복부를 꿰뚫는 것에 성공하였으니.
화이트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맺혔다.
“네 동료가 내게 가르쳐주고 간 것이지. 상당히 따끔할 거다.”
“……큭.”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듯이, 야라크가 이를 악물며 살벌한 안광을 흩날렸다.
복부에는 여전히 화이트가 만들어낸 푸른빛의 가시가 박혀 있었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출혈이 일어나고 있는 도중이었다.
……그랬으나.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이내 야라크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복부에 박힌 가시를 맨손으로 움켜쥐며, 이어서 거칠게 뽑아낸다.
촤악!
핏물이 분수처럼 치솟아 올랐으나, 야라크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아무것도 바뀔 것은 없다는 듯이, 그저 오연한 시선으로 화이트를 내려다본다.
“고작해야 한 번의 타격으로 내가 쓰러질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
화이트의 미간이 좁혀졌다.
우웅-
마법진을 그려내며, 야라크가 다시금 그 자신의 검을 꺼내 들었다.
“내게 피해를 입힌 건 칭찬해주마. 그렇지만, 이것으로 끝이다.”
덤덤하게 내뱉는 그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감정조차 담겨 있지 않은 듯했다.
저벅, 저벅.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야라크는 화이트를 향해 걸어갔다.
트라마르는 그런 그의 뒤편에 서서 화이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변이 생기면 언제라도 반응할 수 있게끔, 손아귀에 쥔 마나를 놓지 않으며.
“…….”
화이트의 고개가 떨구어졌다.
침묵하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모든 걸 놓아버린 패자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야라크가 검을 들어 올렸다.
금방이라도 화이트의 목을 내리칠 듯이, 날카로운 검기가 번뜩였다.
“마지막으로 묻지. 아셰라는 어디 있나.”
“…….”
야라크의 물음에도, 화이트는 그저 입을 꾹 다물었다.
여전하게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말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군.”
그런 화이트를 내려다보며, 야라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시퍼런 눈동자 위로 선명한 살기가 떠오르는 건 한순간이었다.
“그럼, 죽어라.”
그 단순한 한마디가 끝이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기에, 야라크는 그저 검을 내리그을 따름이었다.
쇄애애애액!
그리고.
……그리고.
그렇게, 화이트의 목덜미에 야라크의 검이 닿고자 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금이다.”
떨구었던 고개를 슬쩍 들어 올리며, 화이트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무슨.”
화이트의 눈동자는 빛을 잃지 않았다.
생을 포기한 자의 그것이 아니었기에, 야라크는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게 그의 실착이었다.
콰과과과과과과광!
마법의 폭격이 쏟아져 내린다.
일말의 자비조차 두지 않으며, 야라크와 트라마르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크흐흐.]
듣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불쾌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 건 그때였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화이트가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이군.”
검은 로브로 전신을 감추고 있는,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서 있었다.
그랬으나, 화이트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그의 등장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행동한다.
화이트의 입가에 사나운 미소가 맺히는 것과 동시였다.
“쓸어버려라, 루시펠.”
화이트가 그리 내뱉은 순간, 허공에 수많은 칠흑의 마법진이 생성되기 시작했으며.
[그러도록 하지.]
루시펠이 대꾸하는 것과 함께, 하늘에서부터 뼈로 이루어진 창날들이 떨어져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