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6)용기병
이렇다 할 전초전 따위는 없었다.
상대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한 신경전도,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한 대화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전신이 금속으로 이루어진 용기병들은 아무 말 없이 돌격할 따름이었다.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인 것이다.
전쟁을 위한 병기, 감정이 없으며, 인격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움직이는 이유는 오롯이 주인의 명령에 따르기 위함이었다.
그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주인이 그들에게 명령을 내리면, 그들은 그저 따를 뿐.
사지를 향해 스스로 걸음을 옮기라고 명하더라도, 그들은 거부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쿵, 쿵, 쿵!
용기병들이 지면이 박차며, 그 몸체와 똑같은 금속으로 이루어진 군청색의 무기를 들고 성벽을 향해 돌격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우우우우웅!
마나가 움직이며 발생하는 공명음이 사방을 거세게 후려쳤다.
화아아아악!
이어서, 환한 빛이 도시를 뒤덮기 시작했다.
수십, 수백 개의 마법진이 그려지며, 하나의 결계를 만들어낸다.
그 어떤 공격이라고 한들 버틸 수 있을 것만 같은 견고한 결계가 용기병들의 앞을 막아섰다.
“…….”
그랬으나,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잠시 그 안광을 흐릿하게 흔들 뿐, 그 이상의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
마치 결계가 생성된 걸 파악하지조차 못한 듯한 모양새로, 그들은 그 육중한 몸체로 결계에 다가갔다.
그리고, 무기를 내지른다.
콰아아아아아앙!
수백의 용기병들이 내지른 공격은 결코 가볍지 못했다.
사나운 폭음이 터져 나오며, 도시 전체를 뒤흔들었다.
지진을 맞닥뜨리기라도 한 모양새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공격은 한 차례로 멈춰지지 않았다.
짧은 간격을 두고, 이어서 두 번째 타격을 준비하는 용기병들.
“──.”
그때였다.
용기병들의 고개가 순간적으로 상공을 향해 꺾였다.
그리고, 그들은 확인할 수 있었다.
수많은 불덩이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며, 그 자신들을 향해 쏟아져내리고 있는 모습을.
콰과과과과과광!
폭발음이 일었다.
도시 내부에 존재하는 포탑들이 뿜어낸 불꽃들은, 성벽을 건너 그 너머의 용기병들에게 정확히 직격했다.
“두 번째! 준비하라!”
그리고 그쯤에서, 성벽 위에서부터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으니.
어느새 성벽의 위에 집결한 왕실 마법사단, 그 단장인 8서클의 마법사가 눈을 부라리며 사납게 소리쳤다.
“감히 왕국에 이빨을 드러낸 적들에게 마도(魔道)의 힘을 보여줘라!”
그가 그렇게 외친 직후, 포탑은 다시금 마나를 응집시키기 시작한다.
당연히 첫 번째 공격으로 모든 적들을 쓸어내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포탑의 공격으로 시간을 끄는 사이, 마법사단이 할 일은 따로 있었다.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태자 전하!”
다급히 고개를 숙이려는 단장의 행동을 제지하며, 어느새 텔레포트로 그 모습을 드러낸 칼이 싸늘하게 내뱉었다.
“한꺼번에 쓸어버려야만 한다. 적들에게 여유를 주어선 안 돼.”
“예!”
즉각 대답하며, 단장이 팔을 옆으로 쭉 뻗었다.
“섬멸 마법진을 전개한다!”
단장이 그리 외친 직후였다.
마법사단의 전 마법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곳으로 집결하며, 각자의 마나를 움직여 술식을 재빠르게 그려낸다.
점차 그 형태를 이루어 가는 마법진의 모습을 살피고는, 칼이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통해야만 할 텐데.”
조금은 불안한 듯 중얼거리는 칼의 모습에, 단장이 두 눈을 큼지막하게 뜨며 놀랐다.
다른 마법사가 이러한 말을 내뱉었다면 믿음이 부족하다고 윽박질렀겠으나, 그 말을 내뱉는 대상이 다름 아닌 칼 폰 아지다하카였기에.
그렇기에, 더더욱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하. 마법사단의 전력을 다한 섬멸 마법진입니다. 고작 병사들에게 통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당연한 말을 내뱉듯이, 단장의 목소리에는 분명한 확신이 서려 있었다.
“…….”
그랬으나, 칼의 표정은 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고작 병사들, 이라.’
속으로 읊조리듯 중얼거리는 건 단장이 내뱉었던 말이었다.
칼의 시선이 성벽의 아래로 내려갔다.
쿵! 쿵! 쿵! 콰앙!
……용기병들은 여전하게, 결계를 거칠게 후려치는 도중이었다.
칼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어떻게.’
속으로 품는 생각은 의문이었다.
어떻게, 여전히 멀쩡하게도 움직이는가.
마도공학의 결정체인 포탑의 포격을 맞고도, 어찌 저리도 멀쩡할 수 있단 말인가.
……고민은 길게 이어졌으나, 나오는 결론은 하나였다.
‘인간이 아니군.’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단순한 비유 따위가 아니다.
실제로, 조금 더 자세히 살피자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갑옷처럼 보였던 금속들은, 실상 갑옷이 아니라 그들의 몸 그 자체였다.
투구 사이로 흐릿하게 보이는 안광은 생기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
칼이 입술을 거칠게 짓씹었다.
……포탑의 공격을 받고도 멀쩡한 병사들이다.
하물며 그런 병사들이 수백 수천에 가깝다면.
버틸 수 없다.
죽일 수도 없었다.
결계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비록 오랫동안 마도왕국의 수도를 지켜온 결계라고는 하나, 그에도 한계는 있었다.
섬멸 마법진이라고 해도, 저 기괴한 병사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예 피해가 없지는 않겠으나, 몰살은 불가능했다.
칼의 표정 위로 심각한 기색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준비 끝났습니다!”
한 마법사의 외침에, 단장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칼 역시 상념에서 깨어났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막을 수 없다면 어떠하고, 죽일 수 없다면 또 어떠한가.
지금 중요한 건 막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었다.
‘막아내야만 한다.’
오직 그것뿐이었다.
칼의 마나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서클을 회전시키면서, 금빛의 마나를 그 전신에 깃들게끔 한다.
섬멸 마법진에 간섭한다.
비록 단장보다는 한 단계 떨어지는 7서클의 마법사였으나, 그럼에도 마나의 운용에는 누구보다도 자신 있는 그였기에.
총체적인 조정은 칼이 맡는 것이다.
“…….”
입술을 일자로 굳게 다물고는, 칼은 마법진을 완성할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다.
……이 섬멸 마법진으로 끝맺어야만 했다.
마도왕국에는 이렇다 할 군대가 없다.
마법사들이 모여 만들어진 왕국이었으며, 그렇기에 타국에 비해 마법적인 전력은 아득히 높았으나, 역설적으로 그건 전면전에 약하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결계가 깨지고, 섬멸 마법진이 실패하면.
저 인간이 아닌 병사들이 도시에 진입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리라.
그쯤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니, 더더욱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후우.”
최대한 빠르게, 그러나 확실하게.
칼은 마법진을 완성시켰다.
그 이상이 없을 정도로의 완성도였다.
“──!”
그리고 직후, 칼의 전신에서부터 금빛의 광휘가 치솟아 올랐다.
그가 손을 앞으로 뻗었다.
금빛의 광휘에 물든 채로, 섬짓한 안광을 번뜩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대마법사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모습이었다.
천천히 칼의 입술이 달싹였다.
“……섬멸하라.”
그리고 내뱉어지는 건 딱 그뿐이었다.
짤막한 한마디.
……그러나, 그게 만들어내는 파장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광!
빛의 기둥이 내리꽂혔다.
상공에서, 지상으로.
그야말로 모든 걸 쓸어버리는 깔끔한 광휘.
정확하게, 용기병들이 있는 자리를 훑고 지나갔다.
“……쿨럭.”
한 차례, 칼이 핏물을 토해냈다.
무리하게 마법의 파괴력을 끌어올린 대가였다.
단장이 기겁하며 다가오려고 했으나, 칼은 그저 손짓으로 그런 그를 제지했다.
……피나 토하고 자빠져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힘겹게, 그러나 선명한 눈빛을 빛내며, 칼이 성벽의 아래를 내려다봤다.
정확하게는, 결계 너머에 있을 정체불명의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
흙먼지는 천천히 걷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드러난 광경이란.
“……!”
칼은 물론이고, 모든 마법사들의 두 눈을 부릅뜨게 만드는 것에 성공적이었으니.
끽, 끼긱.
금속이 맞물리는, 굳이 말하자면 불쾌하기 짝이 없는 소음이 들려왔다.
쿠우우웅!
동시에, 지면을 흔드는 울림이 결계를 강타했다.
“……큭.”
표정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칼이 침통한 목소리를 내었다.
단장과, 마법사단의 마법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용기병들은 여전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멀쩡하지는 않았으나, 그럼에도 그 움직임을 멈추지는 않는다.
상처를 입고, 전신의 여기저기가 광휘에 의해 소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움직였다.
그저 결계를 향해.
한 발짝, 두 발짝.
천천히 옮기던 발걸음에는, 점차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쿵!
“……왕실의 마법사들은 재정렬하라! 얼른!”
다급히 외치며, 칼이 다시금 마나를 움직였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저들의 진격을 막아내야만 했다.
우웅, 웅!
칼의 뒤편에 수십 개의 마법진이 그려진다.
간격을 거의 두지 않고, 마법진은 빛을 발했다.
불꽃이 쏘아져 나간다.
바람의 칼날이, 얼음의 가시가 날아간다.
아무렇게나 공격 마법들을 전개하며, 칼이 이를 악물었다.
‘……뭐란 말이냐.’
쾅, 콰아아아아앙!
‘뭐냔 말이다, 대체……!’
쿠구구구궁!
대지가 뒤틀리고,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내려도, 용기병들은 어떻게든 일어섰다.
마치 결계에 무기를 박아넣는 게 그 자신들의 존재 이유라고 말하기라도 하는 양, 그들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광기를 느낄 정도의, 괴기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어떻게, 저런 병사들을 만들어낸 거냐.’
짐작조차 하지 못하겠다.
관측도, 분석도 불가능했다.
칼이 이해할 수 있는 기술의 영역을 넘어섰다.
그렇기에 소름이 돋았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큭!”
그렇지만,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이 무너져 내려서는 안 된다.
약한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되었다.
7서클의 마법사이자, 마도왕국의 왕태자로서.
해야 할 일을 한다.
으득-
한 차례 이를 거세게 간다.
그리고, 숨을 고른다.
“──.”
칼의 눈동자가 금빛으로 물들었다.
“……열려라, 번개가 깃든 성지여.”
그리고 영창을 개시하며, 공간 장악의 고유 마법을 전개하려는 순간이었다.
─────!
“……?!”
한 줄기의 섬광이 칼을 스치고 지나갔다.
순간 오싹한 감각이 들었으나, 그건 그 다음 순간 벌어진 광경에 비하면 의미조차 없는 것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고막을 찢어발기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무슨!”
다름 아닌, 용기병들이 집결해 있는 위치였다.
칼의 고개가 자연스레 뒤편으로 돌아갔다.
“……후우.”
얕게 한숨을 내쉬며, 그 검은색 머리카락을 바람에 흩날리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칼 역시 잘 알고 있는 소녀였다.
“……그대는.”
화이트 클리포트의 스승, 아마, 이름이 아셰라라고 했던가.
칼의 표정이 굳어짐과 동시에, 아셰라가 한 발짝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용기병들의 상대는 제가 하겠습니다. 전투의 보조를 부탁드리죠.”
“무슨 말을……?”
순간 반문하는 칼이었으나, 아셰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성벽의 아래를 오롯이 내려다보며, 용기병들을 상대로 손을 뻗을 뿐.
마나가 휘몰아치며, 폭풍의 형태가 되어 쏘아져 나가는 건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앙!
폭발로 인해 거센 바람이 생성되며, 아셰라의 머리카락을 사방으로 흩날리게끔 했다.
그녀의 금빛 눈동자가 서슬 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제자님.’
속으로는 마왕을 상대하러 떠난 그 자신의 제자를 떠올리며, 아셰라가 이를 악물었다.
……그 빌어먹을 협정만 아니었다면.
지금 이렇게 한심하게 용기병들 따위나 상대하고 있을 게 아니라, 화이트와 함께 마왕들을 상대하고 있었을 텐데.
아득한 과거에 맺었던 제약이,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시간만 끌어줘요. 그럼, 그렇다면, 지원군이 올 테니까.’
초조한 듯 입술을 깨물며, 아셰라가 손을 사납게 휘둘렀다.
콰가가가가각!
빙각이 솟아오르며, 용기병들의 진형을 어지럽게 흐트러뜨렸다.
“…….”
그럼에도, 아셰라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그들이 아니었다.
용기병들의 끝자락, 그 너머에 위치하고 있을 어딘가.
그곳에 존재할 두 명의 마왕.
그들을 바라보며, 아셰라가 싸늘한 안광을 번뜩였다.
……위험해지면, 그 무슨 일이 있더라도 신호를 보내라고 일러뒀다.
마왕들에 의해, 화이트가 위험에 처한다.
비록 협정이라는 금제가 걸려 있다고는 하나, 아셰라는 그따위 것에 신경 쓸 생각이 없었다.
화이트가 위험에 처하는 일이 생긴다면, 무슨 대가를 감수하더라도 구해낸다.
하늘을 아득하게 물들이는 마법의 폭격으로 용기병들의 진격을 막으면서도, 아셰라가 생각하는 건 오직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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