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123화 (124/158)

(EP.123)누구에게나

저벅, 저벅.

어느새 지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유적, 그 입구를 통해 걷고 또 걸었다.

아래로, 조금 더 아래로.

더욱 밑으로 걸어 내려가며, 화이트가 눈가를 가늘게 좁히고는 주변을 살폈다.

“……특이한 문양들이군. 용인가?”

벽면에 새겨진 그림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린 말에, 칼이 답했다.

“말했잖나. 시조께서는 뇌룡과 깊은 관계를 맺으셨다고. 굳이 말하자면, 용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무덤이라고 해도 좋겠지.”

“그래서 이렇게 용들이 그려진 거고?”

“그 이외의 이유가 있을까.”

피식 웃음을 흘리며 칼이 걸음을 옮겨갔다.

“대다수의 관광객들이 이 유적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지. 이 밑에 있는 하나의 동상을 보기 위해서야.”

“동상?”

화이트가 되물었고, 그에 칼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시조와 뇌룡의 모습을 새긴 조각상이지. 보는 것만으로도 신성함을 느끼게 만드는, 과거의 유물이라고 해야 할까.”

“유물이라.”

화이트가 턱을 한 차례 쓸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면 들어본 것 같긴 하다.

마도왕국에 존재하는 유적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당시, 자세히는 못 들었으나 그럼에도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는 얘기를.

아마 그게 곧 칼이 말한 조각상일 터.

살짝 흥미가 돋는 느낌이었기에, 화이트는 살짝 걸음을 빨리하며 칼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래서, 실제로 무언가 효능이 있는 건가? 그래도 마도왕국의 시조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유물이라면, 무슨 특이한 효과가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음, 특이한 효과라.”

화이트의 말에 살짝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는 칼.

그리고 이내 생각을 정리했는지, 그가 못 말해줄 것도 없다는 태도로 재차 입을 열었다.

“사실 일반인들에게는 아무 소용 없는 이야기이지만 말이지. 아지다하카의 피를 이은 자가 조각상에 닿을 경우, 조금 특수한 작용이 일어나긴 해.”

“……특수한 작용이라면?”

어조에서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던 탓에, 화이트의 목소리는 한층 더 진중하게 바뀐 상태였다.

그런 기색을 눈치챈 칼이 한 차례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솔직히 무어라 정확하게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건 아니라서.”

잠깐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듯, 칼이 미묘하게 미간을 좁히며 입을 꾹 다물었다.

와중에도, 세 사람은 계속해서 지하로 내려가는 도중이었다.

그리고 그즈음에서, 무언가를 눈치챈 걸까.

“아.”

칼이 고개를 다시금 정면으로 옮기며 작게 탄성을 흘렸다.

“도착한 것 같군. 별달리 설명할 것도 없겠지. 직접 보고 판단하도록.”

칼이 그리 내뱉는 것과 동시에, 화이트와 아셰라의 시선이 그와 마찬가지로 정면으로 향해졌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이건…….”

아득할 정도의 길이를 가진 나선형 계단이 만들어졌어야 했던 이유를.

굳이 말하자면, 그만큼의 공간을 확보할 필요성이 있었던 이유를.

그저 커다랗다.

고개를 위로 확 꺾어야만 그 끝부분이 보일 정도로, 지금껏 내려온 만큼의 높이를 가진 것만 같은 크나큰 조각상이었다.

한 사내가 있었다.

전신에 전류를 두르고 있는 것만 같은 형상을 띤 사내.

이어서 그의 옆에는 자그마한 소녀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했으나, 그 머리 위에 작게 돋아 있는 뿔로 인해 소녀의 정체가 곧 인간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그쯤에서, 칼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섰으니.

“그 특수한 작용이라는 것, 지금 보여주도록 하지.”

드물게도 진중한 표정을 띠며, 그가 지그시 두 눈을 감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명백하게 그 자신의 선조에게 예를 갖추는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잠깐의 묵념 끝에, 칼이 두 눈을 슬며시 떴다.

이어서, 한 발짝 더 앞으로 발을 내디딘다.

조각상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며, 칼이 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그리고, 그렇게 내뻗어진 손은 조각상의 끝자락에 조심스레 닿는다.

우웅-

“……!”

그 바로 직후였다.

한 차례, 속을 흔드는 것만 같은 진동이 울려 퍼졌다.

화이트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으며, 그건 아셰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 느낌은……?”

무언가, 잘 알지는 못하겠으나.

……무언가가 일어나려고 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쿵-

심장이 아래로 꺼지는 듯한 감각.

동시에 화이트가 고개를 위로 꺾었다.

“……무슨.”

화이트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조각상의 눈이 금빛으로 번뜩이기 시작했다.

사내와 소녀, 둘 모두가 그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만 같은 감각이 들었다.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짐작조차 불가능했다.

자연스레, 화이트의 시선이 이 상황에 대해 그나마 잘 알고 있을 칼에게 향했으나.

“이건…….”

“……칼?”

정작 그러해야 할 칼의 표정도 화이트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으니.

당황한 듯,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묘하게 경악하는 기색으로 눈동자를 크게 뜨며. 칼이 마찬가지로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시조시여.”

무척이나 나직한 목소리로, 칼이 중얼거린 직후였다.

화아아아악!

광휘가 일었다.

마치 벼락이 치며 사방을 환하게 물들이는 것만 같은, 그런 광휘가 시야를 앗아갔다.

이어서, 화이트는 전신이 뒤틀리는 듯한 감각과 함께.

‘……이게, 뭔.’

정신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

“……자님.”

“…….”

목소리가 들려왔다.

꿈을 꾸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묘하게 환상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랬으나.

“……제자님!”

“……!”

적어도 목소리만큼은 거짓이 아니었다.

순간 들려온 익숙하기 짝이 없는 부름에, 화이트가 다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일어났군요.”

“……스승님?”

일어나자마자 화이트가 가장 먼저 본 광경은, 그 자신의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아셰라의 모습이었다.

순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서, 인지가 따라가질 못해서.

당황하며 두 눈을 멍하니 깜빡거렸으나, 이내 그리 늦지 않게 화이트는 차분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다.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아셰라를 제외한다면,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이 공간을 무어라 말해야 할까.

굳이 표현하자면, 금빛의 색채로 물든 사막과도 같았다.

……그렇게, 화이트가 생각한 순간이었다.

사락-

“……아.”

갑작스레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에, 화이트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모래가 있었다.

마치, 정말로 사막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화이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원래부터 있었던 건가, 이 모래는?

‘그게 아니라면.’

바로 조금 전, 자신이 ‘사막’이라는 단어를 떠올렸기 때문에?

“…….”

알 수 없었다.

그랬으나, 애초에 그게 중요한 상황은 아니었다.

조심스레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따라서, 아셰라 역시 일어났다.

그런 그녀를 흘겨보며, 화이트가 미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태연해 보이는군요, 스승님.”

화이트의 물음에 아셰라가 마찬가지로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잠시 고민하는 듯 턱을 괴는 아셰라였으나, 이내 대강이나마 생각을 정리했는지 늦지 않게 그녀가 입을 열었다.

“……대충 알 것 같거든요, 이 공간 말이에요.”

“그렇습니까?”

설마하니 그런 말이 튀어나올 줄은 차마 예상치 못한 걸까.

살짝 놀란 듯이 두 눈을 크게 뜨며, 화이트가 사방을 둘러봤다.

여전하게, 보이는 건 그저 아득할 정도로 넓은 사막일 따름이었다.

“벌써 분석을 끝내다니, 역시…….”

이어서 살짝 감탄사를 터뜨리려던 화이트였으나, 이내 아셰라의 말에 의해 제지되었다.

“아, 그건 아니에요.”

“예?”

고개를 갸웃하는 화이트.

분석을 한 게 아니라고 말하는 걸까?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한 화이트의 눈빛에 한 차례 쿡쿡 웃음을 흘리며, 아셰라가 재차 입술을 떼어냈다.

“……사실, 말하지 않았던 거지만요.”

조금은 쑥스러운 듯이, 그녀가 볼을 살짝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마도왕국의 시조하고, 그와 관계를 맺었다는 뇌룡 말인데요.”

“예.”

듣고 있다는 의미로 화이트가 고개를 끄덕였고, 이어서 아셰라가 살짝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알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 저도 있었으니 말이죠.”

“……예?”

같은 대답이었으나, 그 어조는 한결 달랐다.

명백하게 의문스러움을 표출하는 화이트의 짤막한 대꾸에, 아셰라가 얼굴을 붉혔다.

“…….”

“…….”

잠깐의 침묵.

그리고 그 침묵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기에, 아셰라가 재차 설명을 위해 입을 열었다.

“그들이 종종 사용했던 기술이 공간 이동이었던지라, 여긴 아마 그들이 조각상에 남겨둔 권능으로 빚어진 아공간일 거예요.”

“…….”

“왜 이런 안배를 남겨 두었고, 왜 이제 와서 작동한 건지는 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렇네요…….”

“…….”

화이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아셰라의 낯빛은 점차 붉어져만 갔으니.

“……제자님, 뭐라도 말을 해봐요.”

볼을 살짝 부풀리며, 토라진 듯 내뱉는 아셰라였으나.

“……그, 스승님.”

“네……?”

이어진 화이트의 말이란, 아셰라의 표정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것이었기에.

“지금껏 예의상, 애써 안 물어봤습니다만…….”

살짝 미간을 좁히며, 화이트가 툭 하고 내뱉었다.

“정확하게,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

아셰라의 눈동자에서 빛이라고 할 만한 것이 사라지는 건, 그야말로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주 잠시,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제자님.”

“……예.”

그리고 이어진 아셰라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순간적으로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거리는 화이트였으나, 애써 태연함을 가장한다.

“……제가 굳이 말을 안 해도, 제자님이 방금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는 잘 알 거라고 믿어요.”

싱그러운 미소를 입가에 걸치며, 아셰라가 자애로운 눈빛으로 화이트를 훑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눈빛에, 화이트는 자연스레 몸을 파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후우.”

그리고, 조금 간격을 두고 아셰라가 낮게 한숨을 내뱉은 순간이었다.

“앞으로 한 번만 더 그에 관한 말을 꺼내면─”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반쯤 협박 비슷하게 내뱉고자 아셰라가 입술을 달싹이려는데.

화아아아악!

“……!”

다시금 눈 앞을 가리는 환한 광휘에 의해, 아셰라의 그러한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

그리고, 그러한 광휘가 사라질 즈음에는.

[……흑의 마왕.]

어딘가 모르게 떨리고 있는 듯한 목소리가, 공간에 나직하게 울려 퍼졌으니.

“…….”

어느샌가 싸늘한 눈빛을 띠고 있는 아셰라가, 이내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한 소녀의 형상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화이트의 입술을 비집고 약간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당장 조금 전의, 칼이 안내했던 유적의 지하에서 봤었던 소녀였다.

정확히는, 동상의 형태로 보았던 소녀였다.

머리 위로는 뿔이 돋아나 있고, 그 전신에는 파직 거리는 전류를 두르고 있다.

화이트는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눈앞의 소녀가 바로, 아지다하카 왕실의 시조와 관련이 있다는 그 뇌룡일 것이라고.

과연 무슨 말을 꺼낼까.

무슨 소리를 하고자, 자신들을 이러한 공간으로 끌고 왔는가.

약간의 긴장감이 들었기에, 화이트가 한 차례 마른침을 삼킬 즈음이었다.

[……또.]

소녀가 입술을 떼어낸다.

그리고 뒤편의 화이트는 신경조차 쓰지 않으며.

그저 아셰라를 향해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내고는, 소리친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여기까지 기어들어 온 거야! 이, 이 미친년아!]

“……?”

화이트의 머리 위로 커다란 물음표가 떠올랐다.

“……???”

그야말로 커다랗기 그지없는, 그런 물음표가 말이다.

……지금 저 소녀가 무어라 말한 거지?

미친년?

지금 미친년이라고, 그런 욕설을 내뱉은 건가?

누구에게?

……아셰라에게?

화이트의 고개가 삐걱거리며 돌아갔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무척이나 창피하다는 듯이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깊게 숙이고 있는 아셰라의 모습을.

“…….”

“…….”

정적이 흘렀다.

실로 싸늘하기 짝이 없었다.

와중에도 소녀의 외침은 계속되고 있었다.

[내, 내 후손들에게 피해를 입히기만 해봐! 내가 비록 죽었다지만, 절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

숫제 쥐구멍에라도 기어들어 갈 듯이, 아셰라가 자세를 낮추며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제자님.”

“…….”

화이트의 표정이 오묘하게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

아셰라의 말에도 불구하고, 화이트의 시선은 여전하게 그녀에게로 꽂혀 있었다.

그리고 그쯤에서, 반쯤 체념한 듯이 아셰라가 중얼거린다.

“……누구에게나, 흑역사는 있는 법이니까요.”

무척이나, 무척이나 낮게 가라앉은.

씁쓸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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