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2)시조의 무덤
칼이 화이트와 아셰라를 이끌고 가장 먼저 간 곳은 다름 아닌 포탑의 내부였다.
왕성과 수도를 전방위로 지키는 수십 대의 포탑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제1 포탑.
그 내부에 들어선 화이트와 아셰라는 자연스레 탄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놀랍네요.”
진심으로 감탄사를 터뜨리며, 화이트와 아셰라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분명 포탑의 내부로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아무런 장애물도 없는 듯이 수도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저 훤히 뚫려있었다.
투명한 막에 가로막힌 듯 뻗어진 손은 가로막혔으나, 오히려 그렇기에 더더욱 놀라웠다.
“투명화 술식일까요. 아니, 그렇다고는 해도…….”
마나로 눈을 강화해 사방을 둘러보며, 아셰라가 흥미롭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건 화이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
솔직하게, 경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흔치 않게 눈을 크게 뜨며, 화이트가 포탑의 내부를 상세히 훑었다.
‘마도공학이 벌써 이렇게 발전해 있었던 건가.’
생각하는 건 마도왕국이 감추고 있었던 기술의 진척도에 관한 것이었다.
분명 회귀 이전에도 마도공학이라는 기술이 세간에 밝혀지긴 했으나, 이 정도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그건 굳이 말하자면, 화이트가 마도공학과 마도왕국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탓도 있었겠으나.
‘오히려 이 정도였기에, 멸망이 닥쳤음에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던 거겠지.’
마도왕국 측에서 의도적으로 감춘 부분도 없지만은 않을 것이었다.
화이트가 고개를 틀어 여전하게 자부심으로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는 칼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국가의 기밀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가 아닌가? 아무리 우호 관계라고는 하지만, 나는 제국의 인물인데.”
“음.”
화이트의 말에 칼이 묵직한 목소리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틀린 말이 아니었고, 오히려 합리적이기 그지없는 말이었으나, 그럼에도 칼은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그건 말하자면, 흘러넘치는 자신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칼이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상관없겠지. 봐서 알겠지만, 단순히 관찰한다고 기술의 핵심을 훔쳐낼 수 있을 만큼 허술하게 짜인 것이 아니니까.”
흔들림 없는 자신감이 잔뜩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그 당당한 모습이 사뭇 흥미로워서, 화이트가 한 차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지나친 오만일 수도 있지 않겠나? 혹시 알까, 내가 이 포탑의 핵심을 단번에 꿰뚫어 보고 제국으로 돌아가 재조합할지.”
뻔하다면 뻔한 도발이었기에, 칼은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미소를 진하게 만들며, 그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할 수 있다면 해보도록. 단언하지. 단순히 잠깐 훑어보는 것만으로는 우리들의 기술을 훔쳐낼 수 없을 거야.”
“……흐음.”
한 차례 묘한 비음을 흘리고는, 화이트가 칼에게서 시선을 떼어냈다.
저 정도로 자신한다면, 오기로라도 한 차례 훑어보기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을 훔쳐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잠깐 관찰하는 것 정도야 하지 않은 이유도 없을 터이니.
“…….”
화이트의 눈동자 위로 푸른 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음.”
처음의 계획보다는 상당히 오랜 시간을 관찰에 소모한 화이트가, 이내 얕게 침음성을 흘렸다.
그에 그 속내를 짐작했는지, 칼이 조소를 흘렸으며 말이다.
“내 말이 맞을 테지?”
“…….”
약간의 즐거움이 섞인 듯한 칼의 물음에 화이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자존심에 약간의 상처가 생긴 듯, 미묘하게 인상을 찌푸릴 따름.
한 차례 고개를 가로저으며, 화이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기에.
나름 마법에 관해서는 일가견이 있노라고 자부하는 그였으나, 그럼에도 포탑의 모든 것을 해석하지는 못했다.
“……쉽지 않군.”
이윽고 화이트가 헛웃음과 함께 칼의 말을 긍정했고, 그에 칼이 자랑스럽다는 기색으로 가슴을 폈다.
“마도공학은 우리 왕국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첨단기술의 결정체인데. 잠시 훑어본다고 해서 그걸 해석할 수 있을 리가 있나.”
“…….”
칼의 말에 화이트가 살짝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이쯤 되면 오기라고 할 만한 게 생길 정도긴 하였으나…….
‘그만둘까.’
이내 화이트는 그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 이상 파고드는 걸 멈추는 길을 택했다.
조금 더 깊게 알아보고자 하면 자연스레 진심을 다해 마나를 끌어올려야 할 것이고, 그건 마도왕국 측의 심기를 상하게끔 만드는 일이 될 것이었으니.
그래서는 안 되고,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화이트의 한쪽 입꼬리가 미세하게 끌어올려졌다.
‘……그래 봐야 나나 스승님한테 피해를 입힐 수준은 못 되니까.’
아직 성장 중인지, 혹은 이미 완성된 기술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8서클 급 이상의 경지에 이른 마법사에게는 통하지 않는 기술이라는 건 깨달을 수 있었다.
위협을 느끼지 못하니, 그렇기에 굳이 파고들 이유는 없었다.
“……뭐, 견학은 이쯤이면 될 것 같고.”
그러나 굳이 그에 관한 이야기를 입에 담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럴 이유가 없었기에.
구태여 칼의 감정을 상하게 만들어서 화이트가 이득을 볼 만한 요소는 하나도 없었다.
대신 시선을 돌리며, 화이트는 다른 얘기를 꺼내 들었다.
“마도 왕국에는 유명한 유적이 하나 있다고 들었는데.”
“음?”
주제가 전환되자, 자연스레 칼의 고개가 돌려졌다.
그런 칼과 시선을 마주하며, 화이트가 마도왕국을 방문했던 몇 가지 이유 중 하나를 입 밖으로 꺼내 들었다.
“아지다하카 왕실의 초대왕, 그 무덤이 마도왕국 수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어서.”
“아, 그것 말인가.”
당연하게도 알고 있었는지, 칼이 납득했다는 기색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문의 시조께서 잠드신 유적이라면,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도 하겠지. 마법사라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르겠어.”
씨익 미소를 지으며, 칼이 로브를 휘날림과 동시에 몸을 돌렸다.
“기왕 가이드를 자처한 김에, 유적까지는 안내해 주도록 하지. 따라오도록.”
그렇게 내뱉고는, 칼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그제서야 화이트의 시선이 뒤편으로 돌아갔다.
“그가 직접 안내해 준다고 하니,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겠죠. 가실까요, 스승님.”
왜인지 모르게 줄곧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아셰라를 향해 화이트가 손을 내밀었다.
그랬으나.
“……어, 음.”
어째서인지 아셰라의 반응이 기묘했다.
살짝 고개를 좌로 꺾었다가, 다시금 우로 기울인다.
명백하게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에 화이트의 표정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스승님?”
“……아.”
화이트가 다시 한번 부르고 나서야 반응하는 아셰라.
그녀가 뻣뻣하게 고개를 돌리며, 화이트를 향해 어색한 웃음을 흘려 보였다.
이내 총총걸음으로 화이트에게로 다가간 아셰라가 그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그, 있잖아요.”
“……예, 스승님.”
그녀의 분위기가 묘하게 심각했기에, 화이트의 표정 역시 덩달아 굳어졌다.
무언가 이상이 있었던 걸까.
자신은 눈치채지 못했으나, 그녀라면 뭔가를 파악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품으며, 화이트가 살며시 미간을 좁힐 즈음이었다.
“저, 이 마도공학이라는 기술 말인데요.”
아셰라가 재차 입을 열었고, 그에 화이트가 미묘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마도공학, 혹은 포탑에서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기라도 한 걸까?
그런 미세한 의문과 함께, 화이트가 아셰라의 입술이 열리기를 얌전히 기다렸고.
직후, 무척이나 떨떠름한 기색으로 아셰라가 한마디를 내뱉었으니.
“……저도 모르게 다 파악하고 만 것 같은데, 어떻게 하죠.”
“…….”
자연스레, 화이트는 표정을 멍하게 바꿀 수밖에 없었다.
잠깐의 적막.
“음? 안 따라오는 건가?”
“…….”
칼이 이상함을 눈치채고 뒤를 돌아봤음에도, 화이트와 아셰라는 그저 침묵했다.
서로 시선을 교환하는 두 사람.
그러나 언제까지고 입을 꾹 다물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기에.
“……아무것도 아니다, 금방 가지.”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화이트가 대꾸했고, 그 대답을 들은 칼은 대수롭지 않게 재차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무척이나 떨떠름한 기색으로 서로를 바라보고는, 화이트와 아셰라가 동시에 쓴웃음을 흘렸다.
“다물고 있도록 하죠. 굳이 칼에게 알릴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네, 그게 좋을 것 같네요.”
얕게 미소를 지으며, 누가 들을세라 재빠르게 칼의 뒤로 따라붙는 두 사람.
애써 웃음을 참아가며, 화이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법에 있어서는, 언제까지고 못 따라가겠네.’
약간은 씁쓸함이 느껴졌으나, 그보다는 자랑스러움이 더 컸기에.
따뜻한 시선으로 아셰라를 흘겨보고는, 이내 살며시 고개를 가로젓는 것으로 화이트는 상념을 털어냈다.
*****
“여기가 바로 시조의 무덤이지.”
칼이 두 사람을 다시금 이끌고 도착한 곳은, 왕성으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수도의 외곽에 위치한 어느 한 공터였다.
화이트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시에 놓친 게 없는지, 주변을 슬쩍 둘러본다.
그랬으나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터는 오히려 의문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을 뿐이었다.
“……여기가 그 유적이라고?”
영 석연찮은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화이트가 칼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런 반응을 당연히 예상했다는 듯, 칼은 그저 씨익 웃음을 지어 보일 따름이었다.
“이 유적은 왕실에서 직접 관리하는 탓에 말이지. 원래대로라면, 지금 시기에는 외부에 유적을 공개하지 않아.”
“……그 말은?”
화이트가 되물었고, 그에 칼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미소가 한층 더 짙어짐과 동시에, 그가 한 차례 발을 굴렀다.
쿵!
“감춰져 있다는 거지. 바로 이 자리에.”
“……!”
그리고, 그 직후였다.
쿠구구구구궁!
지면이 뒤흔들린다.
마치 지진이 일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그야말로 사정없이.
화이트와 아셰라의 표정 위로 당혹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반응을 즐기듯이, 칼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으니.
“강제로 유적을 끌어올리는 건 또 오랜만이야. 그만큼 내가 너를 환대하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군, 소년.”
천천히, 그러나 분명한 움직임으로.
무언가가, 지면의 아래에 감춰져 있던 무언가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높게 솟아오르는 네 개의 커다란 기둥, 그리고 용의 형상을 띤 수많은 조각상들이 그러한 기둥을 감싼다.
“알고 있나? 아지다하카 왕실의 시조는, 뇌룡(雷龍)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고 알려져 있지. 그리고 그 축복으로 인해 왕실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뇌(雷) 속성 마법에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고.”
“……처음 듣는 얘기인데.”
중얼거리며, 화이트가 언젠가의 기억을 떠올렸다.
……확실히, 마법 대전에서 칼이 내보였던 금빛 벼락들은 무언가 특별함을 담고 있는 것 같긴 했었다.
그 원천에 그러한 이야기가 내포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이 유적을 찾아왔다면서, 또 그에 관한 이야기는 모른다는 게 우스운 일이로군. 뭐, 아무래도 상관없나.”
시원스럽게 웃음을 터뜨리며, 칼이 양팔을 크게 펼쳐 들었다.
“번개가 잠든 유적에 온 걸 환영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