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0)칼의 하루
마도왕국 왕태자, 칼 폰 아지다하카.
“흠.”
그의 일상은 단조롭다고 표현할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가볍게 마나를 운용하고, 맑아진 정신으로 티타임을 가진다.
후에는 왕태자로서 행해야 할 업무를 끝마치고, 나머지 시간에는 마법의 경지를 높이는 수련에 매진한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조금은 늦잠을 잔 게 다르다면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왜인지 모르게 몸이 뻐근하군.”
어깨를 살며시 두드리며, 칼이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창밖으로 환한 빛이 드리우며, 동시에 칼이 옅은 미소를 입가에 걸쳤다.
태양빛은 좋다.
밝은 광휘는 언제나 그 자신의 어지러운 마음을 깔끔하게 정리해주었으니까.
오늘도 마찬가지로, 다를 건 하나도 없었다.
창가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칼이 마나를 움직였다.
우웅-
금빛의 마나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어서 칼이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아지다하카 왕실에 전해져 내려오는 수련법의 일환이었다.
기상하자마자 마나를 운용해 전신으로 돌리는 것.
자연스레, 정신은 맑아지고 마나를 움직이는 게 한결 부드러워진다.
“……후우.”
그로부터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마 그리 오래 지나지는 않았을 테지만, 칼의 전신은 땀으로 축축히 젖은 상태였다.
충분히 불쾌한 감각이 들 만도 했으나, 칼의 표정은 평온했다.
오히려 어느 정도 상쾌한 기분마저 느끼고 있는 듯한 모양새.
“오늘은 날이 참 좋군.”
중얼거리며, 칼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기를 잠시.
여느 때처럼 몸을 돌려, 침실을 나서고자 했으나.
“……?”
칼은 순간적으로 돌리려던 몸을 멈춰 세울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동시에, 기묘한 기척이 감지되었다.
칼의 고개가 위로 꺾였다.
“……허?”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무척이나 자그마한 점처럼 보였으나, 분명하게 사람의 형상을 띠고 있는 두 이질적인 ‘무언가’를.
“……침입자?”
자연스레 떠오르는 단어는 그러한 것이었다.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그 어떤 마법사가 마도왕국의 수도 상공으로 대놓고 침입을 감행하겠는가 싶었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칼은 당황하여 그러한 사고를 이어나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위이잉-
“……?”
사방에서부터 들려오는 특이한 기계음에, 칼은 그 정체를 알고 있으면서도 자연스레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포탑이 눈에 들어왔다.
사납게 마나를 응집시키며, 한 곳을 향해 포구를 돌리고 있는 포탑이 보였다.
“……아.”
칼이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내었다.
포탑이 작동한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곧 마도공학 기술의 결정체가 불을 내뿜으리라는 것이었으니.
“저런.”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칼의 시선이 다시금 상공으로 옮겨졌다.
……저 두 존재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마도왕국 출신의 마법사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진실로 침입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지.
그렇지만 분명한 건, 곧 그들이 맞이할 최후가 명백하다는 것이었다.
칼의 표정 위로 순간적으로나마 안타까움이 스치고 지나갔다.
……작동한 포탑이 한두 개라면, 어쩌면 지금 당장 자신이 움직여 막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왕태자로서의 권한이든, 혹은 7서클 마법사로서의 힘이든 말이다.
그렇지만, 흘러가는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못했다.
수도 내부에 존재하는, 적을 척살하기 위한 모든 포탑이 움직였다.
그건 곧 포탑들이 저 상공의 존재들을 위협적인 적으로 인식했다는 뜻일 터.
“……심판의 시간조차 없이 그 목숨을 잃게 되겠군.”
칼이 아련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당장 포탑을 개발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깊게 관여한 마법사 중 하나가 바로 그였다.
그렇기에, 알고 있었다.
포탑의 위력을, 그것들이 내뿜는 불꽃의 강도를.
“이름 모를 침입자들이지만, 안쓰러운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구나.”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칼이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간단한 비행 마법이었으며, 동시에 칼이 행하고자 하는 일은 간단했다.
“시체 정도는 수습해 주도록 하지. 혹여 죄 없는 자들일 수도 있으니…….”
물론 그럴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는 걸, 칼은 알고 있었다.
현재 대륙의 정세와, 여러 가지 요소들을 생각하면 저 두 존재는 필시 침입자에 가까울 터.
아마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었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도시에 진입하고자 했다면, 당연히 당당하게 성벽의 검문에 응하지 않았겠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건, 곧 그들이 마도왕국의 잠재적인 적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리라.
칼이 움직이는 이유 중 하나는 그런 그들의 신분을 파악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혹시 아는가.
저 두 존재가 12마왕의 하수인쯤 되는 자들일 수도 있으니.
우웅-
가볍게 금빛의 마나를 일으키며, 칼이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였다.
“……!”
콰과과과과과광!
포탑이 불을 뿜는 것과 함께, 도시의 상공이 아득한 불길에 휩싸였다.
자연스레 칼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죽었겠군.”
그리 내뱉는 그의 목소리는 비교적 덤덤했다.
아직 포탑이 작동하지 않았을 때라면 모를까, 이미 포탑에 직격당한 이상 그들이 살아있을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 그야말로 그들이 8서클 그 이상의 마법사가 아닌 이상에는.
“그도 아니라면, 제국의 리이칸테르 후작 정도라면 목숨 정도는 붙어있을지도 모르지.”
제국 최강의 검사라 불리우는 그라면, 포탑의 일제 사격을 받게 되더라도 죽지는 않을 테니.
……물론, 크나큰 피해는 회피하지 못할 테지만 말이다.
“쓸데없는 생각인가.”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칼이 얕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 어떤 8서클 급 대마법사가 이리도 대놓고 마도왕국의 수도에 침입하고자 하겠는가.
12마왕의 일인이 아닌 이상, 그렇게 대범한 짓은 저지르지 못 하리라.
설령 침입자의 정체가 제국의 클리포트 공작일지라도, 이렇게까지 대놓고 타국의 수도에 잠입을 시도한 이상, 그냥 넘어가지는 못할 테니까.
필시 심상치 않은 크기의 외교적 문제로 심화될 것이다.
“후우.”
다시 한 차례의 탄식.
이내, 칼이 천천히 허공을 주파하기 시작했다.
죽을 땐 죽더라도, 그 신분 정도는 파악해 둬야 했던 탓에.
마도왕국의 왕태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리하여, 그렇게 칼이 대충 침입자들의 잔해가 남아 있을 법한 위치를 가늠하고 있는데.
우웅-
“……뭐?”
포탑이 재차 이질적인 기계음을 흘린 건 바로 그순간이었다.
칼의 고개가 다급하게 뒤편으로 돌아갔다.
“허…….”
여전하게, 포탑은 작동하고 있는 도중이었다.
그리고 그게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으니.
이번에는 시선을 위로 옮긴다.
도시의 상공으로.
……정확하게는, 두 명의 침입자가 존재했을 위치로.
그리고, 칼은 볼 수 있었다.
마도왕국이 만들어 낸 걸작, 마도공학 기술의 결정체.
포탑이 쏘아내는 폭격을 정면으로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형체를 멀쩡히 유지하고 있는 침입자들의 모습을.
“……?”
그러나 그쯤에서 칼의 표정은 점차적으로 의아하게 바뀌어 갔다.
의문이, 의구심이 눈빛에서부터 묻어나온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잠깐.”
왜인지 모르게, 침입자들의 낯이 무척이나 익숙했던 탓에.
아직까지 흐릿하긴 했으나, 그럼에도 분명하게 알고 있는 자들의 모습이었기에.
“……그대들이 왜 여기에?”
칼이 무척이나 당황한 기색으로 중얼거렸고.
후욱-
“……!”
그 직후였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뒤편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에, 칼의 고개가 슬쩍 돌아갔다.
여전히, 표정은 당혹감으로 물들어 있는 상태였다.
“……단장.”
“예, 저입니다!”
칼이 목소리를 낮게 내리깔았고, 그에 뒤편에서부터 나타난 중년의 사내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내의 정체는 바로 왕실 마법사단의 단장이었다.
마도왕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마법사임과 동시에, 8서클의 대마법사이기도 했다.
칼의 시선이 자연스레 단장의 뒤쪽으로 옮겨졌다.
삐질삐질.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수많은 마법사들이 각자의 스태프를 꼬나쥔 채 허공으로 날아오른 상태였다.
그들 역시 포탑이 작동하는 모습을 보았고, 그렇기에 다급하게 무장한 채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칼이 식은땀을 흘릴 이유는 없을 터.
칼이 난감해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지 않았다.
‘……소년, 그리고 그의 스승이었던 소녀까지.’
칼의 고개가 또다시 돌아갔다.
이제는 제법 가까워진 거리, 그렇기에 확인할 수 있었다.
백금발의 소년과, 흑발의 소녀의 모습을.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하는가.
그에 관한 고민으로, 칼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와중이었다.
우웅-
“아, 잠깐……!”
칼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포탑은 묵묵히 그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행하기 시작했다.
침입자의 배제.
한 차례 실패했던 탓인지, 포탑들이 모으는 마나의 양은 한층 더 늘어나 있는 상태였다.
“물러나 계십시오, 태자 전하.”
그리고 동시에, 왕실 마법사단 역시 움직였다.
우우웅!
“요격하라!”
단장이 강경한 어조로 내뱉는 것과 함께, 수많은 마법사들이 각자 그 자신들의 스태프에 마나를 응집시킨다.
그 광경을 목도하자마자, 칼이 다급히 입술을 떼어냈다.
“잠시, 내 말을 듣─”
그랬으나, 안타깝게도 칼의 목소리는 그들에게 닿지 못했다.
콰과과과과과광!
수십의 고위 마법사들이 원거리 폭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불꽃이 일며, 물보라가 휘몰아쳤고, 바람의 칼날이 허공을 가로지른다.
“……아, 이런.”
칼이 이마를 짚었다.
무척이나, 무척이나 복잡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말이다.
휘오오오-
한 차례 삭풍이 불었다.
천천히, 수많은 마법의 폭격으로 인해 생겼던 시각의 부재가 되돌아온다.
서서히 시야에 빛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며, 칼이 인상을 찡그렸다.
……예상대로였다.
침입자들은 멀쩡했다.
그야말로 일말의 피해조차 입지 않은 모양으로, 태연하게 공중에 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쯤에서 칼은 그중 한 명과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다.
“…….”
“…….”
화이트와 칼,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떨떠름한 눈빛을 던졌고.
직후, 칼은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그냥, 별생각 없이 들어온 거구나.’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 제국의 마법 대전에서 마주쳤던 저들은.
필시 아무런 생각 없이 도시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리라고.
그 의도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아직 이렇다 할 대화조차 나누지 않았으니,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게 하나 있었으니.
“곤란하게 됐군…….”
이렇든 저렇든, 그 무슨 이유가 있었든 간에.
작금의 상황은, 그리 이상적이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피해가, 전혀 없다고?”
“어떻게 그런 일이……!”
경악으로 두 눈을 부릅뜨는 마법사단의 일원들을 바라보며, 칼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 일을 수습해야 할지,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