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9)마도공학
“그래서, 앞으로 뭘 할지 생각은 해봤어요?”
“앞으로, 말입니까.”
아셰라가 물었고, 그에 화이트가 살짝 고민에 잠긴 기색으로 턱을 괴었다.
‘뭘 해야 할까. 아니면, 어디로 가야 할까.’
고민은 두 갈래로 나누어졌다.
무언가를 해야 하긴 했다.
마왕들을 죽여나가는 것은 잠시 보류.
솔직하게 말해서, 이런저런 일들로 지쳤던 탓이었다.
“…….”
화이트가 시선만 슬쩍 흘겨 아셰라를 바라보았다.
지친 건 단순히 자신뿐만은 아니리라.
그녀 역시,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 상당한 피로도가 누적된 상태일 것이다.
그런 만큼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필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작금의 상황에서 힐링은 필요했다.
그렇기에 고민을 이어나간다.
약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굳이 말하자면 여유가 생겼다고 해도 좋았다.
물론 이 순간에도 12마왕과 제국의 신경전은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을 테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러한 일들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
중요한 건 다름 아닌 휴식.
아셰라와 함께하는, 그저 평온하기만 하면 되는 시간이다.
고민은 제법 길게 이어졌으나, 결정은 의외로 시원스럽게 내릴 수 있었다.
전부터 가고 싶었던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화이트 자신의 바람이기도 했으나, 동시에 아셰라 역시 거부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됐다.
화이트가 아셰라를 힐끔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는 마도왕국에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그래도 한 명의 마법사로서, 마법의 길을 걷노라고 자처하는 자들이 모인 국가가 과연 어떤 곳일지 궁금하긴 해서.”
“음, 마도왕국인가요.”
아셰라가 납득하는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겠죠. 관광지로는 무척이나 고평가받는 나라이기도 하고, 저도 예전부터 한 번쯤 들러 볼까 생각한 적이 있기도 하니까…….”
잠시 중얼거리던 아셰라, 이내 그녀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해졌네요. 제자님이랑 하는 데이트, 그다음 장소는 마도왕국인 걸로.”
“…….”
그리고 그렇게 아셰라가 은근한 눈빛을 흘리며 내뱉은 말에, 화이트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 수밖에 없었다.
아셰라의 말, 그중에서 한 단어가 마음에 걸린 것이다.
“……데이트, 인가요.”
“네, 무슨 문제라도?”
즉각 반문하며 짓궂은 미소를 짓는 아셰라의 모습에, 화이트가 잠시 침묵하다가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부정하며, 애써 시선을 옆으로 돌리는 화이트였으나.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아셰라는 집요하게 파고들어 왔다.
이전과는 한결 다르게, 조금 더 끈질기게 놀려먹을 생각인 모양.
화이트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당연, 그 반응에 아셰라의 미소는 진해졌을 따름이었다.
“왜요, 부끄러워요? 애도 아니고, 뭐 그리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고 그러나요.”
“…….”
“참, 제자님도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조금씩은 남아 있다니까요?”
이어지는 아셰라의 공세에 화이트가 이마를 짚었다.
양 뺨은 아주 살짝 달아오른 상태였다.
“……마도왕국은 조금 거리가 있으니, 빠르게 출발하도록 하죠.”
대놓고 화제를 전환시키고자 하며, 화이트가 걸음을 한층 더 빨리했다.
명백하게 그 속을 빤히 읽을 수 있는 행동이었다.
“아하하.”
그에 쿡쿡 웃음을 흘리면서도, 구태여 그 점을 지적하지는 않는 아셰라.
그녀의 눈웃음이 더욱 짙게 바뀌었다.
“…….”
그런 그녀를 한 차례 미묘하게 노려본 화이트가 이내 마나를 움직였다.
우웅-
푸른 마나가 일렁이며, 화이트의 전신을 보호하듯 감싼다.
동시에 천천히 그의 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단순한 비행 마법이라면, 이미 완숙한 경지에 오른 화이트였기에.
“……먼저 가겠습니다.”
묘하게 늘어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화이트가 먼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아, 같이 가요!”
연신 미소를 지은 채로, 일단은 넘어가겠다는 듯 아셰라가 그런 화이트의 뒤로 재빠르게 따라붙었다.
“마차 여행도 나름 묘미가 있을 텐데. 굳이 이렇게 무드 없이 날아가야만 했던 건가요?”
“이쪽이 더 빠르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효율을 중시하는 쪽이 좋죠.”
“그냥 삐져서 마음대로 정해버린 건 아니고요?”
“…….”
화이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속도에 한결 더 박차를 가할 뿐.
“거봐, 삐진 거 맞잖아요!”
그리고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아셰라는 싱글싱글 웃으며 화이트와 속도를 맞추는 모습이었다.
가공할 만한 속도로 허공을 가로지르면서도, 아셰라의 입가에 맺힌 미소는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아, 보이네요.”
지면에서부터 아득히 떨어진 상공.
그 어딘가에서, 아셰라가 눈가를 가늘게 좁히며 중얼거렸다.
“저기가 마도왕국의 수도일 거예요, 아마도.”
“……아마도는 뭡니까?”
뒤에 붙은 말이 어지간히도 신경 쓰였을까.
화이트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고, 그에 아셰라가 당당하게 대꾸했다.
“뭐, 저라고 대륙의 모든 지리를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아니면 아닌 대로 다시 찾아가면 될 문제가 아닐까요?”
“…….”
숫제 뻔뻔하다고까지 느껴지는 어조, 그에 화이트는 잠시 말을 잊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반응에도 아셰라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집요하게 의문스러운 시선을 던져 오는 화이트는 그대로 무시한 채, 그녀가 천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마도왕국의 국경을 몰래 통과하기 위해서 아득한 고도까지 올라선 그들이었으나, 목적지인 수도가 시야에 들어온 만큼 서서히 내려갈 때가 되었던 탓이다.
출발 때와는 달라진 구도, 아셰라가 앞장섰으며, 그에 화이트가 뒤따랐다.
“검문은 어떻게 하실 건지? 스승님.”
화이트가 물었고, 여전히 지면으로 추락하며 아셰라가 고개만 슬쩍 틀었다.
“제자님은 어떻게 하고 싶어요? 뭐, 평범하게 검문에 응해도 되고. 그게 아니라면 몰래 성벽을 뛰어넘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아무리 그래도 너무 당당하게 밀입국을 선언하는 거 아닙니까?”
화이트의 떨떠름한 되물음에 아셰라가 태연히 대꾸했다.
“제자님. 죄송하지만 이미 우리는 마도왕국의 국경을 몰래 넘은 상태거든요? 수도라고 뭐 다를 게 있나요, 어차피 저희를 감지하지도 못할 텐데.”
“…….”
정면으로 날아오는 팩트에 화이트는 무어라 말을 꺼내 들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그렇긴 했다.
당장 국경마저 슬쩍 넘어선 마당에, 수도라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
그녀의 말마따나, 어지간해서는 자신들의 기척을 느낄 수도 없을 텐데.
“그리고 검문 같은 걸 신경 쓸 거였다면, 처음부터 마차로 움직였어야죠. 먼저 날아서 가자고 한 건 제자님이라고요?”
“그건…….”
채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은 탓에, 화이트는 그저 말을 늘어뜨릴 따름이었다.
아셰라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화이트의 손을 붙잡았다.
이내 이끌 듯이 그를 잡아당기며, 천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수도의 중심을 향해서.
“자, 가보자고요. 두근거리는 마도왕국 데이트가 눈앞으로 다가왔잖아요?”
“…….”
“인상 쓰지 말고 웃어요, 제자님.”
살짝 눈꼬리를 접으며, 아셰라가 강경한 어조로 내뱉었다.
당연하게도 그런 그녀의 말에 저항할 수는 없었기에, 화이트는 그저 미묘하게 미소를 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게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걸까.
아셰라가 짐짓 화난 태도로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진심이 안 느껴져요, 다시!”
“예?”
화이트의 반문, 그러나 아셰라는 단호했다.
“못 들었어요? 다시 웃으라고.”
“네?”
한층 짧아진 말에, 화이트가 당황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지금 반말한 건가?
그 아셰라가?
……자신에게?
화이트의 표정 위로 명백한 당혹스러움이 떠올랐으나, 아셰라는 상관하지 않았다.
상관하지 않고, 다시금 입술을 떼어낸다.
“자, 얼른─”
……아니.
떼어내려고 했으나.
끝내 그녀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후욱!
“……?”
아셰라와 화이트의 표정이 순간 얼떨떨함으로 물들었다.
무언가, 무언가가 그 자신들의 육체를 훑고 지나가는 것만 같은 감각이 들었던 탓에.
두 사람의 고개가 돌아갔다.
서로를 마주 보던 구도에서, 이내 아래를 내려다보는 형태로.
“……아.”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지이잉-
이질적인 기계음을 내며, 그 자신들을 향해 포구(砲口)를 겨누고 있는 특이한 모양의 포탑을.
“……어라?”
아셰라가 당황한 목소리를 내었다.
화이트의 떨떠름한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저희를 감지하지 못할 거라고, 분명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요……?”
멍하니 두 눈을 깜빡거리며 대답하고는, 이내 아셰라가 흐릿한 안광을 빛냈다.
분석을 위해 마나로 눈을 강화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눈치챌 수 있었다.
미세하지만, 분명하게 도시 전체를 덮고 있는 촘촘한 마나의 그물망을.
아셰라의 두 눈이 큼지막하게 떠졌다.
“……아니, 잠시만요. 왜 저걸 눈치 못 챘지?”
그러며 중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감출 수 없는 당혹감이 묻어나오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쯤에서 화이트 역시 같은 걸 볼 수 있었던 걸까.
그가 떨떠름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마법이 아닌 것 같네요. 스승님이 눈치 못 챌 만도 합니다.”
그러나 화이트와 아셰라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건 곧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는 마나의 그물망의 정체를, 화이트는 늦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화이트의 머릿속으로 언젠가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게 아마, 언제쯤이었더라.’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획기적인 발명이긴 했으나, 순혈 마법사였던 화이트로서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분야이기에.
……이내, 하나의 단어가 화이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마도공학.’
마도왕국을 중심으로 개발되었던, 마법과 과학의 결합체.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등장했던 건 아닌 걸로 아는데.”
화이트의 중얼거림에 아셰라가 고개를 홱 틀었다.
“뭔가 아는 게 있는 건가요?”
“……예, 일단은.”
영 석연찮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화이트.
이미 회귀에 관한 것도 모두 꺼내 든 마당에, 굳이 미래의 기술에 대해 설명해 주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랬으나.
우우우웅-
“느긋하게 설명이나 하고 있을 시간은 없을 것 같군요.”
“……아.”
이제는 명확하게 느껴지는 마나의 기척에, 아셰라가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수많은 포탑들이 두 사람을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포탑들은, 그들 자신의 도시에 몰래 발을 들이고자 한 침입자들에게 불을 뿜는 것에 망설임을 가지지 않으리라.
“……제자님.”
“예, 스승님.”
아셰라의 부름에, 어쩐지 조금은 체념한 기색으로 화이트가 대꾸했다.
“혹시 저희, 망한 건가요?”
“…….”
잠시 침묵하는 화이트.
웅, 우우웅!
그러나 이내 점차 이질적인 방식으로 마나를 포구에 집결시키기 시작하는 포탑의 움직임에, 화이트는 끝내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뭐, 평온한 데이트는 물 건너간 것 같습니다.”
아셰라로 하여금, 한순간에 그 표정을 일그러뜨리게끔 하는 한마디를.
────!
폭음이 일었다.
화이트와 아셰라, 두 사람을 향해 일제히 고개를 돌린 포탑들이 불을 뿜어낸 결과였다.
“……후우.”
그리고 이내, 화이트의 얕은 한숨 소리를 끝으로.
콰과과과과과광!
도시의 상공에서, 숫제 화려하다고 할 만큼의 환한 빛을 발하는 폭발이 일어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