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116화 (117/158)

(EP.116)한 번 더?

“한동안은 마왕들에 대한 건 잊고 지내도록 하죠.”

“…….”

“잠깐의 휴가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편안하게 지내는 것도 괜찮을 테니까…….”

내뱉으며, 화이트가 몸을 슬쩍 돌렸다.

그랬으나.

텁!

“화이트.”

“……예.”

어깨를 붙잡으며 부르는 아셰라의 목소리에 대답하지 않을 도리는 없었다.

화이트가 미묘하게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떨구었고, 그에 아셰라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왜 제 말은 무시하나요? 제대로 들었을 거 아니에요.”

“…….”

“네? 화이트. 그냥 흘려넘길 생각은 아니었겠죠?”

아셰라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화이트의 어깨를 붙잡은 손에 더욱 힘을 준다.

화이트가 조심스레 입술을 떼어냈다.

“……그, 아셰라. 일단 이 손부터 놓고.”

“싫어요.”

“…….”

거리를 벌려보고자 한 시도였으나, 아셰라의 짤막한 부정의 말에 곧바로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화이트의 낯빛이 점차 어둡게 가라앉아 갔다.

“…….”

그리고 그런 화이트를 바라보면서, 잠시 침묵하던 아셰라.

이내, 그녀가 짐짓 속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가를 물기에 젖게끔 했다.

“제 말을 무시한다는 건, 거부의 의미로 해석해도 되는 걸까요?”

“……아니, 잠시만요. 왜 그렇게 되는 겁니까?”

기겁하며 대꾸하는 화이트.

눈동자를 살며시 파르르 떨어대며, 화이트가 아셰라를 바라봤다.

아셰라가 재차 입을 열었다.

“그렇잖아요. 제가 이렇게까지 정면으로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던가요?”

“……그건.”

“근데, 그걸 이렇게 가볍게 흘려넘길 거예요? 제가 어떻게 해석해도 상관없다는 뜻이겠죠?”

“…….”

화이트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야말로 속사포로 몰아붙여지는 아셰라의 공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저 할 수 있는 건, 입술을 닫은 채 미묘하게 떨리는 눈빛으로 아셰라를 쳐다보는 것뿐.

아셰라의 눈꼬리가 슬며시 쳐지기 시작한다.

슬프다, 속상하다는 기색을 있는 대로 드러내며, 그녀가 화이트의 손을 조심스레 붙잡았다.

“……화이트는 저를 사랑하지 않나요? 서로가 같은 마음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던 건 단순한 제 착각에 불과했던 건가요.”

“……!”

이어서 내뱉어진 말에, 화이트의 두 눈이 큼지막하게 떠졌다.

……알고 있었다.

이건 함정이다.

감추지도 않고 대놓고 파놓은, 그녀의 함정이었다.

당장 소매로 가리고 있는 입가에는 분명 미소가 걸쳐져 있을 터.

그렇기에, 굳이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꺼내 들 필요까지는 없었다.

“…….”

……없었으나.

아무리 꾸며진 것이라고 해도, 당장 그녀가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 직후일진대.

그녀가 다시금 이렇게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쉽게 보기 힘든 종류의 것이었다.

그런 탓에, 꺼낼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아셰라. 그런 게 아닙니다.”

다급하게, 우선 부정의 말을 내뱉는다.

그런 이후, 한 차례 숨을 고른다.

천천히, 안정을 되찾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아셰라는 그런 화이트를 그저 얌전히 기다려주지 않았다.

“아니면, 뭔데요?”

“…….”

침묵하는 화이트를 집요하게 바라보며, 그녀가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라면, 화이트의 진심을 말해요. 제가 납득할 수 있는 대답을 꺼내 보라고요.”

화이트가 가볍게 눈가를 짓눌렀다.

피곤했다, 동시에 곤란했다.

실로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결국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정면으로 직진해 온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에 진심으로 응답하는 수밖에는.

‘……후우.’

화이트가 한 차례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진심을 말해라, 라.

“…….”

아셰라가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었다.

말하는 수밖에는.

……지금껏 수도 없이 드러내 왔으나, 어째서인지 그녀가 먼저 말해오자 더없이 부끄러워지는.

그 말을, 꺼내 들 수밖에는.

화이트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러나 이내 결론을 내린 듯, 재빠르게 재차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아셰라.”

그러면서, 여전하게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있는 그녀를 부른다.

눈빛은 잘게 떨리고 있었으나, 그래도 시선만큼은 분명하게 아셰라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에 나름 만족할 수 있었을까, 아셰라가 미세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대꾸한다.

“네, 화이트.”

“…….”

또다시 잠깐 침묵하는 화이트.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할 수 있는 말은, 말했듯이 하나밖에 없었다.

……아셰라의 눈빛을 마주한다.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조심스레 자신의 쪽을 향해 끌어당긴다.

반쯤 끌어안는 형태로 아셰라와 몸을 맞대며, 화이트가 나직하게 중얼거리듯 내뱉었다.

“……사랑합니다, 아셰라.”

그녀가 바랐던, 지금껏 몇 차례 내뱉은 적이 있는 말을.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그 의미가 한층 더 진지한 그 말을.

“……후후.”

아셰라의 표정이 한결 평온하게 바뀌었다.

바뀌었으나, 동시에 낯빛이 천천히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이윽고 목덜미 끝부분까지 새빨갛게 물든 그녀였으나, 그럼에도 애써 태연함을 가장한다.

“다시 한번 말해줘요.”

그러며 화이트를 재촉했고, 그에 화이트는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응, 다시.”

“……사랑합니다.”

“한 번 더?”

“…….”

세 번째에 와서는 화이트도 영 껄끄러웠는지 대답하지 않았으나, 아셰라는 포기하지 않았다.

“말 안 해 줄 거에요?”

미세하게 애교가 섞인 어투로 내뱉으며, 그녀가 화이트의 어깨에 턱을 걸쳤다.

그에 한 차례 몸을 움찔거리는 화이트.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으나, 아셰라는 그마저도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흘릴 따름이었다.

“네? 화이트.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말해줘요.”

“…….”

이어지는 공격, 화이트는 그야말로 침몰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얼굴색은 이미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으며, 몸을 얕게 떨리기 시작한다.

대답을 꺼내야 하지만, 꺼내야 할 말은 명확하지만.

그럼에도 쉽사리 말할 수가 없어서, 아무리 그래도 연신 같은 말을 내뱉는 건 그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어서.

……줄곧 끌어안은 상태로, 다시금 사랑을 속삭이는 건 너무나도 힘겨운 일이었던 탓에.

“……사랑, 하고 있습니다.”

무척이나 자그마한 목소리로, 화이트가 눈을 질끈 감은 채 중얼거렸고.

“……아하하.”

그에, 그야말로 더없이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아셰라는 환한 미소를 얼굴 위로 띄워 보였으니.

“……이제 만족했습니까?”

“네, 더없이 만족했어요.”

화이트의 물음에 조금은 짓궂은 어조로 대꾸하며, 아셰라가 화이트의 전신에 몸을 맡기듯 힘을 쭉 뺐다.

마치 기대듯이, 아셰라의 몸이 화이트의 품속으로 무너져 내렸다.

화이트는 그런 아셰라의 행동에 무슨 반응도 보이지 못하며, 그저 두 눈을 연신 깜빡거릴 따름이었다.

애써 딴생각을 떠올리며, 몸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을 어떻게든 무시하고자 하며.

“……윽.”

짧은 침음성과 함께, 화이트가 얼굴을 화악 붉혔다.

딴생각을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무시하고자 한다고 무시가 가능한 종류의 감촉이 아니었던 것이다.

화이트의 심장이 천천히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그 심장 박동을 감춰보고자 하는 화이트였으나, 그런다고 감춰질 것은 아니었기에.

“……화이트.”

화이트의 가슴팍에 고개를 묻으며, 아셰라가 연신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화이트, 화이트.”

“……듣고 있습니다.”

“사랑해요.”

“…….”

즉각 돌아온 대답에, 화이트가 다시금 한 차례 몸을 굳혔다.

그야말로 석상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딱딱하게.

그에 아셰라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진짜로,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요.”

“…….”

“장난도 농담도 아니에요. 스승으로서 제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한 명의 여자로서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계속해서 이어지는 연격에 화이트는 침몰 직전이었다.

표정은 이미 있는 대로 굳어졌고, 그와 동시에 얼굴색은 새빨갛게 물들여져 있었으니.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모자랐던 걸까.

잠시 의미심장한 미소를 한 차례 그려 보인 아셰라가, 이내 내뱉는다.

“……키스, 할래요?”

“……!”

반쯤 저도 모르게 내뱉는 말, 그러나 명백한 진심이 담긴 말을.

화이트가 흠칫하며 순간적으로 아셰라에게서 거리를 벌린다.

“아.”

그리고 그게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는지, 짧은 탄성을 흘리며 아셰라가 미묘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싫어요?”

“……그게 아니라.”

조심스레 묻는 아셰라의 말에 화이트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자기 자신의 표정을 살피지는 못했으나, 어떻게 생각해도 쉽게 보여줄 만한 것은 아니라는 판단에서 나온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역시나 그러한 화이트의 행동이 영 탐탁지 않았던 아셰라는 그저 내뱉을 따름이었다.

“손, 치워요.”

“…….”

거의 명령조에 가까운 어투였다.

그랬으나 화이트는 무어라 반발하지 못했다.

할 수 없었다.

“안 치워요?”

……그저 이어지는 아셰라의 차가운 목소리에, 시키는 대로 따를 뿐.

천천히 손이 내려진다.

“……!”

그러며 드러난 화이트의 표정.

그에 그제서야 마음이 풀렸는지, 아셰라가 싱그러운 미소를 얼굴 위로 띄운다.

그러며, 벌어진 거리를 좁히기 위해 한 발짝 앞으로 발을 내디딘다.

“……화이트.”

──그다음의 일은 그야말로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화이트의 이름을 입에 담으며, 그의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은 채.

“──!”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듯한 포식자의 눈빛으로, 아셰라가 화이트의 양 손목을 붙잡고 거의 반강제적으로 입을 맞췄다.

화이트의 두 눈이 큼지막하게 떠졌다.

떠졌으나, 그럼에도 회피하지는 않는다.

거세게 붙잡힌 양 손목의 탓이기도 했고, 동시에 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천천히, 맞닿았던 입술이 떼어진다.

“……하아.”

얕게 가는 숨을 내뱉는 아셰라.

그녀의 눈동자 위로 야릇한 기색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잠시 침묵하는 화이트.

그러나, 그쯤에서는 화이트 역시 결심을 내릴 수 있었기 때문에.

“……아셰라.”

잔잔한 목소리로, 눈앞에서 얄궂은 눈빛을 빛내고 있는 소녀를 부른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한다.

두 남녀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진실을 알 수는 없었으나, 어째서인지.

두 사람은, 적어도 지금 순간만큼은 서로가 생각하고 있는 바가 똑같으리라는 직감을 느낄 수 있었다.

……줄기차게 쏟아져 내리던 거센 비는, 어느새 깔끔하게 그친 채였다.

창공이 드러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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