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114화 (115/158)

(EP.114)하지 못했던 말

툭, 투둑.

한 방울, 두 방울.

빗줄기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하더니.

쏴아아아-

이내 금세 쏟아져 내리며 숲속을 어둡게 물들였다.

“…….”

아셰라의 입이 일자로 꾹 다물렸다.

동시에, 그녀의 턱선을 타고 물줄기가 서서히 흘러내린다.

그건 과연 빗줄기였을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였을까.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스승님.”

화이트가 쓰러진 몸을 힘겹게 일으키며 그녀를 불렀다.

불렀으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

여전하게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아셰라, 그런 그녀를 향해 화이트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그건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었으나, 예측할 수 있는 건 몇 가지가 존재했다.

‘……부작용.’

빗줄기로 인해 축축하게 젖은 화이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시간 마법의 부작용.

그게 과연 어떤 식으로 적용될지는, 아무리 그 마법을 만들어낸 당사자인 자신이라 할지라도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짐작은 가능했다.

시간 마법의 특수성과, 직전 나타났던 시계태엽의 문양, 그리고 순백의 광휘까지.

판단할 만한 요소들은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결국 결정적으로 화이트로 하여금 한 가지 결론을 내게끔 만든 것은 단 하나였다.

“…….”

다름 아닌, 광휘가 사라지고 난 이후에 아셰라가 지은 표정이었다.

……처참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표정이 망가져 있었다.

절망, 후회, 죄악감, 부정.

여러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얽히고설키며, 동시에 그녀의 눈물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툭, 투둑.

다시금, 눈물이 떨어져 내리며 지면을 적셨다.

“……저는.”

이내, 아셰라가 입을 열기 시작한다.

화이트가 번쩍 고개를 들어 올리며, 그녀에게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전, 아니, 그건 대체.”

“……스승님?”

“아, 아아…….”

화이트의 걱정스런 부름에도 불구하고, 아셰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해도 좋았다.

“이건, 이게 대체 무슨…….”

그저 혼잣말을 읊조리듯 중얼거리며, 그녀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보았다.

과거를 보았다, 혹은, 미래를 보았다.

……지금은 없어진 시간대, 그러나 분명하게 존재했던 언젠가의 사건을 볼 수 있었다.

처참하게 망가진 세계, 종말이 집어삼킨 하늘.

……그리고, 그 모든 걸 만들어낸 한 소녀.

다름 아닌, 그 자신을.

“……으, 아.”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으며, 아셰라가 침음성을 흘리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쯤에서, 화이트의 낯빛은 그야말로 그 이상이 없을 정도로 어두워졌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 제자님. 저는, 저는 대체 무슨 짓을.”

……천천히 말을 엮기 시작하는 아셰라의 표정에, 그 요동치는 목소리에.

“그 미래에서, 저는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건가요……?”

한 가지.

화이트는,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기에.

“……어떻게.”

이내 내뱉어지는 목소리에는 감출 수 없는 경악의 기색이 담겨 있었다.

앞머리를 거칠게 헤집으며, 화이트가 몸을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네, 네?”

눈물로 그 새하얀 뺨을 물들이면서도, 화이트의 목소리에 애써 대꾸하는 아셰라.

그러나, 화이트는 그런 반응에도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할 수 없었다.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의 순백의 광휘가, 대체 무슨 광경을 만들어낸 건지.

무슨 광경을 만들어내고, 또 무엇을 아셰라에게 보여주었을지.

반쯤 강제적으로, 그것을 알 수 있었던 탓이었다.

화이트의 낯빛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런 건 계산에 없었는데. 어떻게, 기억을. 무슨 일이 일어나서.”

그저 중얼거릴 따름이었다.

……반쯤 이성을 잃은 듯,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릴 따름이었다.

“……제, 자님?”

“…….”

와중에도, 아셰라의 부름이 들리긴 하였다.

들렸기에 더더욱 절망했다.

“……이건 잘못됐잖아.”

의미 모를 말을 내뱉으며, 화이트가 한 발짝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내디디며, 동시에 아셰라의 어깨를 부여잡는다.

“……잘못된 거야, 이런 건.”

“……무슨 말을.”

여전하게 눈물을 흘리면서 묻는 아셰라의 말에는 대꾸하지 않은 채, 화이트가 부드럽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이내, 몸을 천천히 낮추며 다시금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내가 왜 돌아왔는데. 왜 세상의 멸망조차 도외시한 채, 그 미친 연구를 했는데.”

……화이트의 푸른 눈동자가 사정없이 요동쳤다.

마치 지진이라도 맞닥뜨린 듯이, 혹은 거친 격랑과 마주하기라도 한 듯이.

“……아셰라.”

이내, 화이트가 나직하게 아셰라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러며 동시에, 더욱 강하게 그녀를 끌어안는다.

절대 놓을 수 없다고 말하기라도 하는 듯.

……혹은, 놓아서는 안 된다는 듯한 태도로.

“……내가 모든 진실을 말한 건 이런 결말을 바랐기 때문이 아니야.”

눈을 질끈 감으며, 화이트가 재차 입술을 떼어냈다.

목소리는 여전히 거칠게 떨리는 도중이었다.

“당신이 다시금 절망을 겪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당신에게 그 광경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제, 자님.”

“……잘못됐어.”

아셰라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들었음에도, 화이트는 그저 제 할 말만을 이어갔다.

“……이런 건, 잘못된 거야.”

……도저히 대꾸할 자신이 없었다.

무어라 대답할 자신이, 그녀의 부름에 평소처럼 환하게 응답할 자신이 들지를 않았다.

망가진다.

천천히, 무언가가 망가지기 시작하는 감각이 들었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에게 진실을 꺼내 든 이유는 이런 것을 원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가 자책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얘기한 이유는, 그럼에도 극복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장 직접 겪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 자신이 스스로 행한 일이라고는 해도, 기억에 없는 일이니까, 극복이 가능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에.

……그랬는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시간 마법의 부작용이고 뭐고, 그딴 논리적인 얘기 따위는 하등 상관없었다.

그저 절망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녀가 무엇을 봤는지는, 여전하게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단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을 따름이지, 대강이나마 짐작하는 것은 가능했으니.

애초에 이런 결과를 예상했기에, 진실을 말하면서도 최대한 그녀가 행한 일을 축소시킨 게 아닌가.

그녀가 행한 수많은 학살, 그리고 대륙을 멸망으로 이끈 모든 일들의 규모를 작게 만들어 입에 담았다.

……그런데.

그랬는데.

대체 무슨 조화가 일어나서, 대체 무슨 목적이 있어서.

……‘시간’은, 그녀에게 그 진실된 광경을 보여준 것일까.

“……제발, 아셰라.”

……아셰라를 끌어안은 양팔에 더욱 힘을 준다.

그러면서, 동시에 염원하듯 내뱉기 시작한다.

“기억하지 말아요, 떠올리지도 말아. 이제는 없는 일이 되었고, 애초에 당신이 원해서 행한 일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당신이 죄악감을 느낄 일이 아니에요. 시간이 되감아진 이상, 모든 건 없던 일입니다.”

……아셰라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랬으나, 그럼에도 화이트는 말을 이어나갔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음에,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며.

“당신이 그 일에 괴로움을 느낀다면, 그 편린이나마 엿볼 수 있었던 미래의 일에 고통받게 된다면.”

……천천히, 화이트의 목소리에 광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저는 다시금 시간을 되돌리겠습니다.”

“……!”

그리고 이내 내뱉어진 말은 그러한 것이었으니.

아셰라의 두 금안이 큼지막하게 떠졌다.

“……제자님. 지금, 무슨 말을.”

직전 보았던 끔찍한 기억조차 순간적으로 잊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화이트를 부른다.

그러나, 화이트는 그저 완고할 따름이었다.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어둠이 드리운 표정으로.

화이트가 재차 입술을 떼어냈다.

“……그러니까, 내가 그런 선택을 내리지 않게끔 도와줘요, 아셰라.”

아셰라의 일그러진 표정과 닮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만 같은 미소를 지으며.

“당신의 영혼에 죄업이 새겨져 있더라도, 되돌릴 수 없는 악행을 저질렀다고 해도.”

떨리는 목소리였으나, 동시에 요동치는 감정을 애써 다스리는 목소리였다.

천천히, 그리고 고요하게.

화이트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 모든 건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리고 나는, 그 업을 진정으로 감당해야 할 자에게 그 죄를 물을 생각이고.”

……떠올리는 건, 이 모든 일의 배후인 한 사내였다.

짙은 붉은색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지금은 없어진 미래에서 되돌릴 수 없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 한 사내였다.

화이트의 눈동자에 순간적으로 섬뜩한 살의가 깃들었으나, 이내 빠르게 흩어진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압니다. 아마 끔찍한 죄악감에 휩싸여 있겠죠.”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작게 덧붙이면서, 화이트가 이를 악물었다.

어느새 눈물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 방울, 두 방울.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저는, 저만은 당신의 편입니다. 아셰라.”

흘러내리는 눈물로 뺨을 축축하게 적시면서도, 더욱더 강렬한 어조로 말을 내뱉는다.

“세상의 그 모두가 당신의 죄를 용서하지 않는다 해도, 저만큼은 당신의 곁에 있겠습니다.”

“…….”

순간, 아셰라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그 흔들림을 분명하게 인식하면서, 화이트가 입술을 짓씹듯 깨물었다.

“당신의 죄를 용서하지 못한 신이 당신을 벌하겠다고 한다면, 제가 그 신을 떨어뜨리겠습니다. 당신에게 죄를 묻는 신 따위, 적어도 내게는 필요 없으니까.”

“……제자, 님.”

어느새, 화이트를 부르며 아셰라가 내뱉는 목소리는 한결 안정감을 되찾은 상태였다.

그에 과연 화이트는 어떤 감정을 품었을까.

안도감일까, 혹은 더한 불안감일까.

알 수는 없었다.

알 수 없었으나, 그럼에도 할 말을 이어나간다.

……그저 해야 할 말을 할 뿐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신을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그걸 위해서 돌아온 거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

천천히, 아셰라를 끌어안은 팔에서 힘을 뺀다.

동시에 몸을 뒤로 물리며, 아셰라와 눈을 마주했다.

“──.”

……그녀의 금빛 눈동자가 물기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눈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고 있었다.

아주 약간 남은 물기만이 그녀의 눈빛을 흐릿하게 만들고 있을 뿐.

“……그렇게 할 테니까.”

중얼거리며, 한쪽 손을 슬며시 들어 올린다.

그녀의 눈가를 적시고 있는 눈물 한 방울을, 아주 조심스러운 태도로 닦아낸다.

그러면서, 내뱉는다.

“……제발 울지 말아요, 아셰라.”

……시간을 돌리기 이전부터, 줄곧 내뱉고 싶었던 말을.

해야만 했던 말, 그러나 하지 못했던 그 말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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