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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112화 (113/158)

(EP.112)절연

“……음.”

머리가 지끈거리는 감각과 함께, 화이트가 눈을 떴다.

뜨자마자, 보이는 인물이 있었다.

검은색 머리카락, 그리고 금빛 눈동자.

“……!”

벌떡!

시야에 들어오는 아셰라의 걱정스런 표정에, 화이트가 재빠르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조금 더 누워 있어도 되는데.”

“……아닙니다, 스승님.”

아셰라의 말에 애써 고개를 가로저으며, 화이트가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머리가 아파왔다.

동시에, 상황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주변을 살피자,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 있었다.

울창하게, 그리고 아득하게 펼쳐져 있는 나무숲.

알고 있는 곳이었다.

클리포트 저택, 그 주변에 위치한 아셰라의 숲이었다.

“……공작령까지는 언제 온 겁니까?”

“글쎄요, 한 이틀 정도 됐나?”

“……예?”

아셰라의 태연한 대답에 화이트가 순간 눈을 멍하니 깜빡였다.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이틀?’

……자신이 기절한 지 최소 이틀이나 지났다는 얘기인가?

지끈-

“……윽.”

다시금 어지러운 감각이 전신으로 엄습해 들었다.

몸이 비틀거렸으나, 애써 균형을 다잡는다.

화이트가 아셰라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스승님.”

무언가, 무척이나 아련해 보이는 표정에, 화이트는 절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뭔지는 모른다.

어째서 그녀가 저렇게 슬픈 눈빛을 띠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왜인지 모르게 무척이나 크나큰 죄를 저지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이유는 여전하게 짐작도 가지 않았으나, 그저 그런 기분이 들었던 탓에.

“죄송합니다.”

화이트는 우선 고개를 숙여 사죄부터 하는 것을 선택했다.

분명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어쩐지 그녀가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원인에 자신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뭐가 죄송한데요?”

아셰라의 대꾸에 화이트가 입술을 일자로 꾹 다물었다.

재빠르게 생각을 이어나간다.

무엇이, 자신의 무슨 행동이 그녀의 심기를 상하게끔 했는가.

……떠오르는 건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가능성이 커 보이는 이유 하나를 입 밖으로 꺼내 든다.

“……제가, 대책 없이 샤사르에게 덤벼들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또 확신이 없는 목소리였다.

“…….”

아셰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서늘한 눈빛을 묵묵히 빛내며, 화이트를 바라볼 따름.

그리고 그 시선은, 화이트에게 있어서 그 어떤 압박보다도 크나큰 중압감으로 다가왔다.

“……아니었습니까?”

재차, 조심스럽게 묻는다.

아셰라의 눈치를 살피며 화이트가 손끝을 움찔거렸다.

그런 화이트의 모습을 그저 지그시 바라보기만 하던 아셰라.

“……후우.”

이내, 그녀가 무척이나 피곤한 기색으로 한 차례 숨을 내쉬었다.

화이트의 몸이 흠칫하고 떨렸다.

아셰라의 행동이나 말 하나하나에 반응하며 움찔거리는 모습이 퍽이나 우스웠으나,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런 자각을 하지 못하는 그였다.

잠시간의 침묵.

그러나 그러한 침묵이 어지간히도 불편했던 탓에, 결국 화이트는 재차 스스로 입술을 떼어낼 수밖에 없었다.

잠깐의 고민 끝에, 두 번째 추측을 입에 담는다.

“그럼, 바이올렛을 확실하게 죽이지 못했기 때문입니까?”

“……아니에요.”

이번에는 곧바로 부정을 말을 입에 담는 아셰라.

그에 살짝 표정이 환해졌으나, 달라지는 건 없다는 생각에 이내 화이트가 다시금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제자님.”

그런 화이트의 모습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걸까.

아까 전보다도 한층 더 싸늘해진 목소리로, 아셰라가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제가 왜 화가 났는지, 정말로 모르는 건가요?”

“……그것이.”

화이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즉각 대답을 꺼내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으나, 안타깝게도 곧바로 떠오르는 생각은 없었다.

그렇기에 우물쭈물하며,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아셰라의 눈치를 살필 뿐.

“……바보네요, 정말.”

그에 아셰라가 이마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어지간히도 격정을 내리누르고 있는 것만 같은 모습에, 화이트가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

잠시 다시금 침묵하는 아셰라.

화이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 오묘한 기색이 깃들기 시작했다.

이내, 그리 늦지 않게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샤사르에게 덤벼든 건가요?”

“예?”

고개를 슬며시 들어 올리며 되묻는 화이트.

그러나 딱히 질문을 못 알아들었기 때문은 아닌지, 이내 움찔거리며 입술을 달싹인다.

“……그게.”

짧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머리를 굴려 본다.

……우선은, 자신은 샤사르에게 당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애초에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 샤사르에게 목을 붙잡히는 광경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였다.

“…….”

그러나 동시에, 지금 현재 자신이 이 숲속으로 옮겨졌다는 얘기는.

분명. 아셰라가 샤사르를 막아섰다는 의미이리라.

……그리고 자신을 구해냈겠지.

화이트의 표정이 착잡하게 바뀌었다.

‘……꼴사납기는.’

자책하는 듯한 기색으로 한 차례 입술을 깨문다.

……말 그대로, 꼴사납기 그지없었다.

이성을 잃고 대책도 없이 달려들었으면, 승리를 거머쥐지는 못해도 최소한 의미 있는 피해 정도는 입혔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그조차 못하고, 완벽하게 제압당하는 꼴이라니.

어찌 우습지 않을 수가 있을까.

……와중에 아셰라에게 구출되었다는 것까지 생각하면, 그야말로 수치스러워서 목을 매달고 싶을 정도였다.

“……하아.”

한 차례 탄식을 내뱉는다.

정신을 다잡아야만 했다.

수치스러운 건 수치스러운 거고, 적어도 지금 생각할 문제는 아니었다.

우선은, 대답을 꺼내 들어야만 했다.

“……샤사르는, 12마왕의 수장이지 않습니까.”

화이트가 힘겹게 입술을 떼어냈고, 그에 아셰라가 우선은 들어보겠다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그거랑 제자님이 그에게 덤벼든 게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싸늘한 목소리, 그리고 무심한 듯한 어조에 화이트가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저렇게까지 화를 억누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실로 오랜만이었기 때문에.

그렇기에 더더욱, 대답을 잘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른침을 삼키고는, 화이트가 재차 입을 열었다.

급조한 변명을 내뱉는다.

“그를 죽이는 건, 제 목적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입니다. 제국 소속의 마법사로서 마땅히 적대해야 할 대상이기도 했고…….”

그랬기 때문에, 기습을 시도한 것이었다고.

그를 죽이고자 했던 건, 12마왕에게 전쟁을 선포한 제국 측의 인물로서 당연한 행동이었다고.

……그렇게, 무척이나 조잡한 변명을 내뱉는다.

화이트의 표정 위로 수심이 드리웠다.

‘……멍청한 놈.’

자책하며, 동시에 이를 악문다.

기껏 변명이랍시고 꺼내 든 게 이따위 말이라니.

자신부터가 이리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아셰라는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어쩌면 더는 화를 참지 못하고 더욱 싸늘해진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볼지도 모른다.

……그건, 자신이 바라는 게 아니었다.

‘그렇지만, 어쩔 수가 없잖아.’

고개를 힘없이 떨구며, 화이트가 상념을 이어간다.

……어쩌겠는가.

지어낸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면, 선택지는 결국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자신이 샤사르를 보자마자 이성을 잃고 달려든 이유, 그 기저에 깔린 감정부터 하나하나 설명해야 할 텐데.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기에는, 상황이 지나치게 애매했다.

아마 바이올렛 역시 아직까지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 터.

샤사르가 나타난 이상,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네 번째 복수는 완료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직은 이야기를 꺼내 들 시기가 아니라고.

그렇게, 화이트가 애써 상황을 외면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정말로 모르는 건지, 그도 아니면 모르는 척을 하는 건지.”

화이트가 예상한 것처럼, 한층 싸늘해진 어조로 아셰라가 입술을 떼어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화이트를 내려다보며, 아셰라가 비틀린 미소를 그려 보였다.

“제 질문을 곡해하고 있는 듯하군요, 제자님.”

“……예?”

고개를 들어 올리며 반문하는 화이트를 향해, 아셰라가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저는 그딴 대충 끼워 맞춘 변명 따위를 듣고 싶은 게 아닙니다. 진실을 듣기 위해 물은 거란 말이죠.”

조곤조곤 목소리를 내뱉으며, 그녀가 싸늘한 눈빛을 한 차례 흐릿하게 번뜩였다.

명백한 분노의 빛이 그녀의 눈동자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해했나요, 화이트?”

……어느새, 호칭이 달라져 있는 채였다.

그에 당연하게도, 화이트는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

단순히 이름을 부르는 걸로 그녀의 기분이 좋다고 판단하기란 무리가 있었다.

오히려 이런 경우, 이런 분위기에서라면.

필시 애써 화를 참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였기에.

“예전처럼 조심스럽게 묻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지금 명령을 내리는 거예요. 더 이상 네 번째 마왕을 죽일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 줄 생각은 없습니다.”

“……스, 스승님.”

화이트가 당황하며 아셰라를 불렀으나, 그럼에도 그녀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결심을 내린 듯 눈동자를 차갑게 빛내며, 아셰라가 말을 이어갔다.

“알아들었으면, 지금 당장 진실을 고하도록 하세요. 하나부터 열까지, 제자님이 숨기고 있는 비밀 그 전부를.”

……그렇지 않겠다면.

그리 한마디를 덧붙이며, 아셰라가 천천히 마나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금안 위로 서늘하고도, 동시에 살벌하기 짝이 없는 감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오늘부로, 당신과의 사제 관계는 끝입니다.”

“……!”

그리고, 그 한마디에.

그 단순하기 그지없는, 단 한마디에.

화이트의 표정 위로, 그 이상이 없을 정도로의 경악이 떠올랐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아셰라는 그저 담담히 싸늘한 무표정을 유지할 따름이었으니.

그 부분에서, 화이트는 직감할 수 있었다.

지금 현재 그녀가 내뱉는 말들이 단순히 허세가 아니라는 것을.

……당장 진실을 고하지 않겠다면, 진심으로 자신과의 절연(絕緣)을 각오하겠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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