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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111화 (112/158)

(EP.111)이제는 알아야겠어요

“협박인가?”

“어떻게 알아듣든 알 바는 아니야.”

사아아아-

싸늘하게 대꾸하며, 아셰라가 천천히 마나를 일으켰다.

그야말로 당장이라도 협정을 깨부술 듯, 그 자신을 억제하고 있는 사슬을 풀어헤칠 듯이.

……그다음으로는, 당장 눈앞의 사내를 죽여버릴 것만 같이.

“그 검은 마나는 다시는 꺼내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나?”

“……닥쳐.”

아셰라의 욕지거리에도 샤사르는 그저 태연스러울 따름이었다.

어깨를 한 차례 으쓱거리며, 그가 마찬가지로 마나를 끌어올렸다.

붉은빛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기어이 나랑 붙을 작정이구나.”

아셰라가 중얼거렸고, 그에 샤사르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글쎄, 어떨까. 네가 하는 걸 봐서 달라질 수도 있겠지.”

“…….”

침묵하는 아셰라.

이어서, 그녀가 눈빛을 섬뜩한 색채로 번뜩였다.

콰아아아아!

그녀의 양팔에서부터 흘러나오던 검은 마나가, 이내 폭풍의 형태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내 인내심을 시험하려 들지 마, 샤사르.”

“인내심을 시험하다니, 오해다. 아셰라.”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며, 샤사르가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을 꾸며냈다.

와중에도, 화이트의 목을 붙잡고 있는 손아귀는 풀지 않고 있었으니.

아셰라의 표정이 와락 구겨질 즈음, 그가 재차 입을 열었다.

“나는 그저 내 동료를 해하려 한 ‘적’을 죽이고자 할 뿐인데, 어느 부분에서 네가 분노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구나.”

그리 말하며, 동시에 바이올렛을 향해 시선을 던진다.

그에 아셰라가 이를 악물었다.

……가증스럽다.

너무나도 가증스럽고, 동시에 죽이고 싶을 만큼 원망스러워서, 당장이라도 저 사내를 찢어발기고 싶다.

말하고자 하면 끝이 없었다.

애초에 정신계 마법을 통해 세르피아에게 접근한 것부터가 샤사르 그 자신의 의지 역시 들어가 있는 계획이었을 터.

바이올렛의 독단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런 주제에, 끝끝내 세르피아를 죽여놓고도, 저런 뻔뻔함을 보이다니.

너무나도 역겨워서 머리가 지끈거리는 감각이 들었다.

“…….”

……그렇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지금 당장 그를 죽이고자 마법을 그려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그에게 잡혀 있는, 하나뿐인 제자를 생각해서라도.

“…….”

서늘하고도 냉랭한 분위기를 풍기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서로를 노려보며,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기세를 일으키는 아셰라와 샤사르.

……그렇게 서로를 그저 직시하며 의미없는 위협만을 반복하던 와중이었다.

히죽-

샤사르의 입꼬리가 불쾌한 기색으로 끌어올려졌다.

이내, 시선은 그 자신의 손아귀에 붙들려 있는 화이트에게로 향했다.

“이 소년이 네게 그렇게 중요한가? 네가 흑의 마왕이라 불리는 시절, 끝까지 네 곁을 지켰던 세르피아의 죽음을 외면할 정도로?”

“…….”

아셰라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순간적으로나마, 검은 머리칼의 여인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샤사르의 말이 이어졌다.

“단순한 변덕으로 들인 제자가 아니구나. 그 이상의 관계였어. 이거 놀라운데, 아셰라.”

“……그 입 다물어.”

아셰라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샤사르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기껍다는 듯 미소를 그려내며, 입술을 재차 떼어낸다.

“이 소년이 죽게 된다면, 과연 네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게 무척이나 궁금하다고 덧붙이며, 샤사르가 손아귀에 재차 힘을 주었다.

꽈악!

“……!”

아셰라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순간 마나를 응집시켜 금방이라도 쏘아낼 듯이 몸을 움찔거렸으나.

“……큭.”

……끝내, 보일 수 있는 행동은 없었다.

인질이 잡혀 있는 이상, 여전하게 선택지는 그다지 넓지 못했다.

침통한 표정으로 입술을 얕게 깨문 채, 아셰라가 다시금 손날을 들어 올렸다.

“농담이 아니야. 그 소년에게 조금이라도 위해를 가하고자 한다면, 난 당장 바이올렛의 목을 베어내겠어.”

“…….”

눈빛은 재차 선명하게 번뜩이며, 명백하고도 흔들림 없는 살의를 이끌어낸다.

“그다음으로는 네 사지를 뽑아버리고, 전신을 찢어발길 거야. 이어서 12마왕이라는 이름 그 자체를 대륙에서 지워버릴 거고.”

“흔치 않게 살벌한 어조군, 아셰라.”

이죽거리며, 샤사르가 보란 듯 팔을 크게 펼쳤다.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나? 나를 포함해, 12마왕 전원을 상대하는 게?”

“불가능할 것 같아? 내가 단순히 허세를 부리는 걸로 보이나 보네.”

“자신감이 넘치는군.”

“못 넘칠 건 또 뭘까.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우선 바이올렛의 목을 베어낼 생각이 있는데.”

이어지는 대화, 그러나 문답이 길어질수록, 분위기는 더욱더 살벌하게 바뀌어갔다.

두 최강의 마왕이 내뿜는 마나가, 그 기세가.

쩍, 쩌저적-

……천천히, 주변의 공간 그 자체에 균열이 가게끔 만들고 있었다.

“…….”

“…….”

다시금 정적이 흘렀다.

일체의 물러섬도 없이, 서로를 죽일 듯 노려본다.

……그리고, 이내.

“뭐, 좋아.”

그리 가볍게 내뱉는 것과 동시에, 샤사르가 피식 웃으며 화이트를 붙잡고 있던 손아귀에서 힘을 뺐다.

미련은 없다는 듯, 망설임 없이 행하는 행동이었다.

나름의 계산이 머릿속에서 오고 간 걸까.

쿵!

화이트의 몸이 힘없이 지면에 떨어져 내리고, 이어서 샤사르가 말을 이었다.

“내 계획에 있어서 바이올렛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니, 등가교환은 성립되겠지.”

히죽거리며, 그가 손을 까딱거렸다.

“약속은 지키겠다. 이 소년을 살려줄 테니, 바이올렛을 이쪽으로 넘겨.”

“…….”

아셰라의 미간이 묘하게 찌푸려졌다.

……믿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방심해서는 안 되었다.

당장 저렇게 말을 했더라도, 언제 변덕을 부려 화이트에게 위해를 가할지 모르는 일이니.

새삼스레 눈앞의 사내와 신뢰를 논하기에는, 당한 게 지나칠 정도로 많았다.

그렇기에, 고민은 길게 이어졌다.

……이어졌으나, 그럼에도.

나오는 결론은 끝내 하나밖에 없었다.

결국 선택지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우선시해야 할 건 화이트의 안전이었으니까.

스윽-

천천히 마나를 흩뜨리며, 아셰라가 바이올렛에게서 서서히 물러섰다.

날카로운 예기를 번뜩이던 손날 역시, 마나를 잃은 채 평범한 원상태로 되돌아간 채였다.

“……마지막으로 경고하겠어. 만약 약속을 어기겠다면, 나는 이 자리에서 너를 죽일 거야.”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다행인데.”

아셰라의 말에 걱정하지 말라는 듯, 샤사르가 대충 손을 내저었다.

그러며 중얼거린다.

“살벌하군, 정말. 그만큼 이 소년이 네게 중요하다는 얘기인가…….”

“…….”

아셰라의 표정이 험악해졌으나, 아랑곳하지 않으며 샤사르가 실소를 흘렸다.

“협정을 깨부수는 리스크를 짊어지더라도, 여차할 때 나를 죽일 생각까지 할 정도라면 그런 추측을 하는 게 오히려 당연하지 않겠나?”

“……그건.”

“뭐, 지금은 이걸로 됐다.”

대답을 바란 것 아닌 듯, 아셰라의 말을 끊으며 샤사르가 손을 휘저었다.

우웅-

마나가 움직이며, 붉은 아지랑이가 화이트의 몸을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홱 하고 던져버린다.

다름 아닌, 아셰라가 있는 쪽을 향해.

“……?!”

당연하게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던 아셰라는 당황하며 손을 뻗었고.

후욱!

그녀가 화이트를 무사히 안아 들 즈음에는, 이미 바이올렛 역시 샤사르의 손에 넘어간 뒤였다.

“…….”

그러나 신경 쓰지 않는다.

그딴 것에는 관심도 두지 않으며, 아셰라가 화이트의 상태를 살폈다.

……보기로, 큰 외상은 없어보인다.

정신을 잃은 만큼 내적인 피해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지금 당장 알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후우.”

이내 아셰라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온 것은, 그러한 안도의 한숨이었으니.

“제법 우스운 일이군. 그 흑의 마왕이 인정에 휩쓸리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너도 인간은 인간이었다는 의미일까.”

“…….”

뒤편에서 들려오는 샤사르의 중얼거림에는 대꾸하지 않은 채, 아셰라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마치 보물을 다루기라도 하듯,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화이트를 안아 들으며 그녀가 싸늘한 눈빛을 빛냈다.

“……돌아가세요, 샤사르. 여전히, 당신의 계획에는 동참할 생각이 없습니다.”

어느새 말투는 원상태로 되돌아온 상태였다.

무기질적인 눈동자를 번뜩이며, 아셰라가 샤사르를 바라봤다.

그 말에 한 차례 눈을 살며시 크게 떴다가, 이내 얕게 웃음을 흘리는 샤사르.

“그것참 아쉽군. 네가 유일한 대책이었는데.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지만, 실상 협정에 얽매이고 있는 건 너뿐만이 아니야.”

“협정이 없었더라도, 당신들로는 저를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차갑게 대꾸하는 아셰라, 그에 샤사르가 고개를 작게 가로저었다.

“여전히 대단한 자신감이야. 네게는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는 게 웃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내뱉은 이후, 잠시간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서로가 말을 내뱉지 않으며, 그저 시선만을 교환할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곧 아셰라는 다시금 화이트에게로 신경을 집중시켰고, 그쯤에서는 샤사르 역시 더 이상 용건은 없다고 판단했을까.

“……뭐, 바이올렛을 되찾는 건 성공했으니. 난 이만 가보도록 하지.”

붉은 마나를 일으켜 마법진을 그려내며, 그가 마지막으로 말을 내뱉었다.

“오늘은 이렇게 넘어가지만, 다음은 없다. 또다시 그 소년을 만나게 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그를 죽일 거야.”

불쾌한 히죽거림과 동시에, 붉은빛의 광휘가 샤사르와 바이올렛을 덮었다.

화아아악!

“또 보자고, 아셰라.”

그렇게 중얼거리는 것을 끝으로, 마법진이 작동했으며.

한순간에 두 마왕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

침묵하는 아셰라.

그녀의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이채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사락-

화이트의 백금발을 조심스레 쓸어넘기며, 그녀가 착잡한 기색으로 아랫입술을 얕게 깨물었다.

“……걱정시키기나 하고. 왜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한 건가요.”

……이어서 떠올린다.

샤사르를 보자마자, 마치 이성을 잃은 듯 마나를 폭주시키며 달려나갔던 화이트의 모습을.

“…….”

으득-

그녀가 가볍게 이를 갈았다.

표정 위로는 명백한 분노의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이제는 알아야겠어요, 제자님.”

닿지 않을 말을 중얼거리면서, 그녀가 주먹을 거세게 쥐었다.

……그래, 이제는 알아야겠다.

자신의 하나뿐인 제자가 감추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 비밀이 무엇이고, 동시에 대체 무슨 일을 겪은 것인지.

화이트가 약속한, 네 번째 마왕을 죽이는 건 성공하지 못했다고는 하나.

더 이상 가만히 기다려줄 생각은 없었다.

무리하게 캐묻는 일이 있더라도, 진실을 알 필요성이 있어 보였다.

“…….”

……그렇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제자가 끝내 대답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강제로라도 입을 열게끔 만들 거니까요.”

……그러니까, 제발.

스스로의 입으로 진실을 말해주길 바란다고.

그렇게 속으로 읊조리듯 중얼거리며, 아셰라가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올렸다.

그녀의 금빛 눈동자가 빛을 받아 사납게 번뜩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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