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0)방심
“……컥.”
화이트의 입술을 비집고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장기가 파열되는 것만 같았다.
속은 있는 대로 뒤흔들리고, 뇌는 지진이라도 맞닥뜨린 듯 요동치고 있었다.
무리하게 마법을 시전한 결과이자, 후폭풍이었다.
감당해야만 하는 부작용이었으나, 그럼에도 머리가 깨질 듯 지끈거리는 감각은 버티기 힘든 종류의 것이었다.
“……하.”
한 차례 숨을 내쉬며, 화이트가 어금니를 악물었다.
지금 쓰러져서는 안 된다.
기절은 더더욱 안 되었다.
아직까지 그는 살아있을 터.
지옥의 불길을 정면으로 맞은 이상, 아무리 그 적의 마왕이라 하더라도 쉽사리 버티지는 못할 테지만.
그럼에도,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정도로 죽는 존재였다면, 진작에 그를 찾기 위해 전 대륙을 뒤집어엎었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알고 있다.
그는 죽지 않았다.
다만, 방심하고 있던 와중 가해진 대마법에 의해 상당한 피해를 입었으리라 예상할 뿐.
으득!
화이트가 이를 갈며 무너져 내리려는 무릎을 짚었다.
동시에, 핏발이 선 눈을 부릅뜨며 정면을 직시한다.
……사방이 불타고 있었다.
공간 그 자체에 내려앉은 지옥의 불길은, 단순히 목표에게로 향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으며 그저 모든 것을 불사르기까지에 이르렀다.
검붉은 불길은 연신 주변을 환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 그 불길 너머에 존재하고 있을 한 사내를 바라본다.
우웅-
다시금 마나를 끌어올린다.
여기서 끝을 봐야만 했다.
그런 탓에, 쓰러질 수는 없었다.
“……심판하라.”
그렇기에, 내뱉는다.
조금 전의 그 대마법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강렬하기 짝이 없는 마법을 엮어내기 위한 영창을.
……설령 서클이 망가지더라도, 영구적인 손상이 남게 되더라도.
이 자리에서 모든 걸 끝낸다.
그러한 각오로, 화이트가 말을 이어나갔다.
“일그러뜨려라. 파멸시켜라. 동시에─”
투콰아아아아아아아앙!
“──?!”
……아니.
그렇게 영창을 이어나가고자,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할 수 없었다.
……영창이 멈춘다.
마나가 역류하고, 동시에 서클로 되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로 인한 격통이 전신을 덮쳤으나,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러한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컥!”
꽈악-
순간적으로 목을 옥죄어오는 감각에, 화이트가 눈을 부릅뜨며 침음성을 흘렸다.
‘……어떻게?’
떠올리는 것은 그러한 의문이었다.
“대단하군. 난 지금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다, 화이트 클리포트.”
……어느새 눈앞으로 다가온 사내를 바라본다.
그 특유의 불타오르는 듯한 적발을 흩날리며, 일말의 상처조차 없이 자신을 직시하고 있는 샤사르를 바라본다.
……있을 수 없다, 혹은, 불가능했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어떻게.
어떻게, 무슨 수를 쓴 건가.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었다.
시선을 떼어내는 일 따위는 없었다는 얘기였다.
그는 시종일관 방심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힘에 맹목적인 자신감을 품고 있었다.
고작해야 채 스무 살이 되지 못한 어린놈에게 당하리라고는 일절 생각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랬었는데.
‘어째서?’
화이트의 눈동자에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듯한 불신이 내려앉았다.
어떻게 버텼나.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리 샤사르라고 한들, 처음부터 작정하고 방어를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대마법을 막을 수 없을 것이었다.
그것만큼은 분명한, 의심할 가치조차 없는 진실이었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사고는 한쪽 방향으로 흘러간다.
‘대비하고 있었다?’
순간 떠오르는 생각에, 화이트가 입술을 짓씹듯 깨물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했기에, 그 오만함으로 가득 찬 샤사르가 방어를 위한 행동을 했는가.
그는 그럴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앞을 가로막는 것이 있으면 깨부순다, 자신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존재는 철저히 망가뜨린다.
그런 것에 있어서, 그는 일말의 망설임조차 품지 않을 것이었다.
동시에 그게 뜻하는 바는, 곧 그 자신의 힘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였다.
그게 동반되지 않는 이상, 그의 압도적인 강함은 애초에 만들어지지 않았을 터.
……그렇기에 생각했다.
그는 자신을 얕보고 있을 것이라고.
분명히, 어린 소년의 치기로 생각하며 방심하고 있을 것이리라고.
그리고 그건, 굳이 말하자면 합리적인 판단에 가까웠다.
그의 성격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 이 시간대에 있어서만큼은, 12마왕을 제외한다면 그 누구보다도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노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 탓에.
확신하고 말았다.
‘……방심하고 있는 건, 오히려 내 쪽이었나.’
화이트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일그러뜨리며, 동시에 살벌한 눈빛으로 샤사르를 노려본다.
그리고 그렇게, 화이트의 상념이 끝날 즈음 샤사르가 재차 입을 열었으니.
“보기에, 내게서 허점을 찾았던가? 너 같은 어린 아이가 상대라면, 내가 방심할 줄로 알았던가?”
“…….”
화이트가 입을 일자로 꾹 다물었다.
다만, 눈동자만큼은 여전하게 섬뜩한 기색으로 번뜩이며 샤사르를 담아낸다.
샤사르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명백한 조소였다.
“네가 무엇을 근거로 나를 판단했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아셰라에게서 내 성격을 전해 들었을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덧붙이며, 샤사르가 눈꼬리를 반달 모양으로 휘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나는 방심하지 않았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그 아셰라의 제자인데. 하물며 아득히 어린 나이에 9서클 급의 마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괴물일진대.”
어찌 방심할 수 있을까.
샤사르가 한쪽 입꼬리만을 끌어올리며 불쾌한 미소를 그려냈다.
“나는 오만하지만, 동시에 어리석지는 않다. 나보다 명백한 하수라면, 언제라도 위에서 내려다보겠으나, 곧 그 말은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
──나와 대등하다고 판단한 존재라면, 곧 일말의 방심조차 품지 않겠노라고.
꽈악-
“큭…….”
화이트의 목을 붙잡은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며, 샤사르가 재차 입을 열었다.
“영광으로 알아라, 화이트. 너는 이제 나에게 있어 동등하다고 취급되는 유이한 존재가 된 것이니. 그건 12마왕의 이인자라 불리는 야라크조차 닿지 못한 경지니까.”
그리 말하면서, 샤사르가 다시금 마나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짙은 붉은빛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마나는 형태를 갖추어가며, 이내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화이트를 겨눈다.
“나에게 해를 입힐 만한 존재는, 지금껏 아셰라 이외에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줄 알았지.”
“…….”
“그렇지만, 이제 한 명이 더 생겼군.”
침묵하는 화이트를 향해 눈웃음을 지어 보이는 샤사르.
……그리고 이내, 그가 손아귀에 마나를 불어넣기 시작한다.
“──!”
화이트의 푸른 눈동자가 큼지막하게 떠졌다.
살벌하기 짝이 없는 격통이 전신을 덮쳤다.
목을 붙잡은 샤사르의 손을 떼어내기 위해 마나를 일으키려 했으나, 그마저도 방해당하고 말았다.
마나로 마나를 억제하는 것, 그건 상대보다도 아득히 높은 경지에 올라 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기술이었다.
화이트가 이를 악물었다.
벗어나야만 했다.
지금 당장 이 손아귀를 떼어내지 않는다면.
……확신할 수 있었다.
‘──죽는다.’
죽음에 이르게 될 터였다.
이론은 없었다.
분명했다.
이제 곧, 목을 옥죄는 손아귀는 자신의 몸을 비틀어버릴 것이었다.
‘……빠져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데.
……정신이, 점차적으로 흐려져 가기 시작했다.
샤사르가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보였으나, 동시에 시야 역시 점점 흐트러져 갔다.
그리고 끝내는, 형태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내가 지금 죽는다면.’
마지막으로 흐릿하게 떠오르는 생각은 그러한 것이었다.
지금 자신이 죽으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인가.
……떠오르는 것은 그 다른 무엇도 아니었다.
그저 한 소녀만을 떠올렸다.
‘아셰, 라.’
속으로나마, 나직하게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린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절박해졌다.
죽어서는 안 되었다.
목숨을 잃으면, 그날로 모든 것은 끝이었다.
회귀 이전과 같이 다시 한 차례의 기회가 주어지는 일 따위는 없으리라.
……애초에 그마저도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낸 기적이 아니었던가.
그런 만큼, 결국 모든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었다.
‘시간을, 지금이라도.’
……돌려야만 하는가.
아니, 그보다도.
돌릴 수 있는가, 돌릴 수 없는가.
9서클에조차 닿지 못한 지금의 경지로, 다시금 신에 가까이 다가간 권능을 사용하는 게 허락될 것인가.
상념을 길게 이어갈 만큼의 여유 따위는 없었다.
곧이었다.
……이제, 곧이었다.
‘──아.’
그리고.
그렇게, 짤막하게.
화이트가 속으로만 탄식을 흘린, 그 바로 직후였다.
“……거기까지, 샤사르.”
목소리가 들려왔다.
잊을 수 없는, 그 어떠한 것보다도 익숙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였다.
짧게나마, 샤사르에 집중한 나머지 그 존재마저 잊어버리고 있었던 소녀의 목소리였다.
……마지막으로, 죽음에 다가간 것을 직감한 순간 떠올린 존재의 목소리였다.
‘……아셰라.’
속으로 그렇게 한 차례 중얼거리는 게, 의식이 유지되던 마지막 순간이었다.
고개가 힘없이 떨구어지며, 동시에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 듯한 감각이 엄습해왔다.
*****
“……그래, 네가 있었지.”
샤사르의 고개가 돌아갔다.
어느새 정신을 잃은, 건방지게도 자신에게 덤벼들던 소년을 한 차례 흘겨본다.
“…….”
그러고는 이내, 그 뒤편에 선 채로 상황을 계속해서 지켜보던 한 소녀의 존재를 인식한다.
샤사르의 입꼬리가 길게 찢어졌다.
“아셰라.”
“…….”
샤사르의 부름에는 대답하지 않으며, 아셰라가 침묵했다.
그녀는 그저, 공허한 눈빛을 번뜩이며 마나를 끌어올릴 따름이었다.
어느새 검은빛의 마나가 깃들어 있는 손날은, 어느 여인의 목에 닿아있는 상태였다.
“그를 놓아, 샤사르.”
……여인, 바이올렛의 목을 금방이라도 베어낼 듯, 살벌한 목소리를 내뱉는다.
시선은 샤사르에게 향해 있었으나, 보고 있는 건 그가 아니었다.
이 순간,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대상은 단 한 명뿐이었으니.
“……놓지 않겠다면, 지금 당장 바이올렛을 죽여버릴 거니까.”
샤사르의 손아귀에 붙들려 있는 화이트를 바라보며, 아셰라가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동공은 이미 빛을 잃었으며, 표정은 그저 무기질적인 기색만을 풍길 따름이었다.
“그다음으로는.”
이내, 그녀가 진심을 담아 내뱉는다.
“협정이고 뭐고, 다 깨부숴버린 다음 당신들을 전부 찢어발길 거야.”
“…….”
……아무리 그 샤사르라 하더라도, 쉽사리 무시하고 넘길 수 없는 한마디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