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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108화 (109/158)

(EP.108)영웅, 혹은 희망

본래대로라면, 지금 시점에서 저 사내와 대적할 생각은 없었다.

다른 마왕들부터 차근차근 처리해 나가며, 천천히 힘을 쌓고, 경지를 올려서.

신중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모든 가능성을 상정해 가면서 움직일 생각이었다.

“──.”

……그랬으나.

그저 이성이 끊기는 감각이었다.

사내의 얼굴이, 그 표정이,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감정은 끓어오르듯 폭발하기 시작했다.

회귀의 이전을 떠올린다.

그가 내뱉었던 말들, 행했던 악행, 그리고 끝내는 자신의 스승에게 저질렀던 일까지.

……참을 수가 없었다.

터져 나오려는 분노를 차마 억제할 자신이 없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저 죽이고 싶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아직까지 낮은 경지와 부족한 힘에 구애받을 생각이 없었다.

──죽인다.

죽일 수 없더라도, 어떻게든 죽인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무슨 수단을 사용하게 되더라도, 끝내는 그 목숨을 거두고 말리라.

다름 아닌, 자신의 손으로.

그저 그 생각뿐이었다.

“……중첩.”

화이트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여전히, 눈동자는 섬뜩한 빛깔로 일렁이는 상태였다.

『푸른빛의 파도』

……고유마법이 발동된다.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파도는 이내 해일을 만들고, 모든 걸 쓸어버릴 기세로 붉은 머리칼의 사내에게 향한다.

“……호오.”

그리고, 그때가 돼서야 드디어 사내가 반응을 보였으니.

그 붉은 동공을 한 차례 흐릿하게 번뜩이면서.

사내, 샤사르가 손을 들어 올렸다.

쩌저적!

“……!”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파도가 멈춘다.

금방이라도 사방을 사납게 휩쓸 것만 같던 해일은 이내 흩어지고, 그저 무로 되돌아간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저 그렇게.

“…….”

으득!

화이트가 이를 갈았다.

핏발이 선 눈으로, 여전하게 여실히 분노를 드러내며, 샤사르를 직시한다.

감출 수 없는 격정이었고, 당연하게도 그걸 눈치채지 못할 샤사르가 아니었다.

샤사르가 입을 열었다.

“화이트. 화이트 클리포트.”

“…….”

“아마 그런 이름이었지. 현 가주의 아들이자 후계자였던가.”

턱을 괴며, 그가 슬며시 입꼬리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불쾌한 감정이 들게끔 만드는, 그런 비릿한 미소였다.

“네가 지금껏 나의 친우들을 죽인 그 정체불명의 마법사로구나.”

“…….”

이내 내뱉어진 말에, 화이트가 입을 꾹 다물었다.

딱히 비밀을 들켰다는 듯한 기색은 아니었다.

애초에, 마법 대전의 마지막 날에 모든 게 공표된 이후, 더 이상 감출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저 침묵한 이유는, 대답할 가치를 찾지 못했던 탓이었다.

그러나, 그런 화이트의 침묵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을까.

샤사르가 눈가를 가늘게 좁히며 재차 말을 이어갔다.

“설마하니 아셰라와 함께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하물며 그 아셰라가 너 같은 애송이와 사제 관계를 맺을 줄은.”

정말로 상상치도 못했다고, 그리 덧붙이면서 샤사르가 가벼운 태도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바로 직전 선제공격을 당한 와중이었으나, 그럼에도 그는 태연했다.

그리고 그건 비단 오만하기만 할 뿐인 태도는 아니었다.

그는, 그럴 자격이 있는 존재였다.

‘적의 마왕’이라는 이명은 그러한 의미였다.

“…….”

화이트의 표정이 착 가라앉았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감각이었다.

혹은 어지럽다고 표현해도 좋으리라.

어느 쪽이든, 정상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마치 열이 나는 것도 같았고, 가벼운 병에 걸린 상태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아마 분명히 끓어오르는 분노에 의한 작용이겠지.

……과거를 떠올린다.

비록 지금은 사라진 일이 되어 버린 시간대였으나, 이제는 그에 대한 것을 기억하고 있는 자가 자신밖에 없는 개념이었으나.

그럼에도, 모든 게 거짓된 것이었노라고 치부할 수는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모든 걸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을진대.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 무슨 수를 쓰더라도, 자신으로 하여금 그 시간대에 관한 기억을 잃어버리게끔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강렬한 기억이었으며,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기억이자, 동시에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기억이었다.

“……샤사르.”

……이내, 화이트의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온 목소리는 지독하게도 싸늘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

눈앞의 사내를 직시한다.

여전히, 모든 것이 여유롭다는 태도로 오만한 눈동자를 빛내고 있는 사내를 바라본다.

“할 말이라도 있나? 아셰라의 제자.”

피식 웃음을 흘리며, 샤사르가 이죽거림을 동반한 대꾸를 꺼내 들었다.

“…….”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화이트는 그저 다시금 살의를 끌어올릴 따름이었다.

그 근원을 다 헤집어 보기도 벅찰 정도로 깊디깊은 심연과도 같은 선명한 살의였다.

당연하게도, 그것이 향하는 대상은 샤사르였다.

“……네 목적이 뭔지는 모른다.”

다시금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하는 화이트의 목소리에는, 짙은 어둠이 깃든 것만 같은 기색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게 세계 정복이든, 혹은 멸망이든. 어찌 되든 좋았다는 의미지.”

그렇게 내뱉어진 화이트의 말에, 샤사르가 미묘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어. 나는 신경 쓰지 않았을 테니까.”

인상을 찡그리며 반문하는 샤사르의 목소리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화이트는 그저 할 말만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내뱉어지는 말에는 그저 진심만이 담겨 있었으니.

“……그렇지만.”

짧게 덧붙이며, 화이트가 다시금 마나를 끌어올렸다.

우웅-

주인의 감정에 공명하기라도 하는 걸까.

푸른빛의 마나는, 마치 그 형태를 일그러뜨리는 것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런 나라고 해도, 건드려서는 안 되는 개념이 존재하는 법이다.”

싸늘하게 내뱉으며, 화이트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 자신보다도 한 뼘은 더 큰 키를 가진 사내를 오연히 바라본다.

……그래, 그랬다.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존재하는 그러한 개념은, 화이트에게 있어서 곧 한 명의 인물이었기에.

천천히, 그러나 확고한 목소리로, 화이트가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네가 바라는 것, 그 목적에 있어서.”

“그녀를 이용한 것, 끝내는 타락에 이르게끔 유도한 것까지.”

“그 시점부터, 너는 나의 명백한 적이었다. 샤사르.”

내뱉으면서도, 알고는 있었다.

자신이 꺼내는 말들은, 분명하게도.

그는 끝끝내 이해하지 못할 말이자, 동시에 이 세계의 그 누구라 할지라도 알아들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으니.

알고 있었다.

그저, 알고는 있었으나, 달라질 것은 없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극찬하마, 샤사르. 이건 내 진심이다.”

“…….”

어느새 눈가를 가늘게 좁히며, 마치 일단 들어나 보자는 듯한 태도로 이야기를 귀에 담고 있는 샤사르가 보였다.

그를 향한 살의를, 피어오르는 살기를 감추지 않는다.

올곧게 드러낼 따름이었다.

“나의 감정을 이토록 선명하게 끌어올릴 수 있는 인물은 전 대륙을 통틀어도 단 두 명뿐이니까.”

그중 하나는 자신의 스승인 아셰라이며, 동시에 나머지 하나는 눈앞의 사내였다.

언제나처럼, 여전하게 붉은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눈앞의 사내가,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도 명백한 트리거였다.

깊디깊은, 어쩌면 이미 어둡게 잠식되었을지도 모를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이한 존재.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그래.

둘 중 한 명인 아셰라가 자신의 밝은 감정을 이끌어낸다고 하면, 나머지 한 명인 샤사르는 자신의 어두운 감정을 이끌어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무기질적인 눈빛을 번뜩이며, 화이트가 다시금 마나를 일으켰다.

그야말로 그 이상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끌어낸다는 심정으로, 이 다음은 없다는 생각으로.

──모든 걸 초기에 끝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다른 그 어떤 마왕도 그를 대체할 수는 없다.

그를 보좌하는 역할인 바이올렛도, 12마왕의 이인자라 불리우는 청의 마왕 야라크도.

그 누구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를 죽이기만 한다면, 그의 목숨을 거둬들일 수만 있다면.

모든 걸 끝낼 수 있었다.

‘아셰라가 타락에 이르게 되지도 않고, 세계가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일도 없을 터.’

그 어떤 고민도, 그 이후에는 의미를 상실한다.

굳이 말하자면, 필요가 없다고 해도 좋았다.

회귀 이전, 모든 일의 명백한 흉수는 다름 아닌 한 존재뿐이었으니까.

그 시절이라면, 그 시간대를 겪었던 인물이라면, 누구나가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세계가 종말을 맞이하게 된 원인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적의 마왕 샤사르에게 있노라고.

……그가 내린 어리석은 선택이, 모든 것을 초래한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라고.

그렇기에, 만약 그들이 이곳에 있었더라면 그 모두가 지금의 자신을 지지하리라.

세계의 공적을 상대하는 영웅으로써, 멸망의 길로 들어설 대륙을 지키는 희망으로써.

그래, 분명 그럴 것이다.

……그럴 터였으나.

“……그렇지만, 굳이 말하자면 내 생각은 조금 달라.”

쩍, 쩌저적!

화이트의 마나에, 그리고 그가 내뿜는 기세에 반응하며, 지면이 천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랬으나,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화이트는 더욱더 마나를 끌어올릴 뿐이었다.

“나는 영웅이 아니야. 희망은 더더욱 아니지.”

싸늘한 눈빛으로 샤사르를 바라보며, 화이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우스운 일이었다.

그를 막아서면서도, 정작 자신은 세계를 지키겠다는 고상한 생각 따위는 일절 안 하고 있었으니.

현재 자신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건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샤사르를 죽이는 것이, ‘그녀’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

그저 그뿐일 따름이었다.

……그게 전부이자, 동시에 끝이었다.

화이트가 천천히 손을 앞으로 뻗었다.

마나는 이윽고 응축되며, 한 점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 이제. 할 말은 다 했으니까.”

이윽고 화이트가 입꼬리를 살벌하게 끌어올리며, 말을 마무리 지었으니.

“이만 끝을 보자, 샤사르.”

싸늘하기 짝이 없는, 어찌 보면 섬뜩하게도 느껴질 만한 미소와 함께.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화이트가 그 자신의 마나를 사납게 폭주시키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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