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7)적의 마왕
“…….”
아셰라가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표정 위로는 수많은 감정이 떠오른 상태였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단 한 가지 감정만을 집어 올린다면, 그건 곧 의구심이 될 것이다.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물며, 그녀가 화이트를 직시했다.
자색의 마왕이자, 동시에 정신계 마법의 일인자로 불리우는 바이올렛을 한순간에 제압하고,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화이트를 직시했다.
……상대도 되지 않았다,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압도했다.
시종일관 밀어붙였다.
마치 며칠 전의 칼 폰 아지다하카와의 결승전이 떠오를 정도.
그만큼 일방적인 전투였다고 표현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아셰라는,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추측해 낼 수 있었다.
‘……정신계 마법이 일절 통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인가는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었으나, 그럼에도 화이트에게 바이올렛의 주특기가 통하지 않았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마나의 움직임, 술식의 형태, 끝내 마법진이 향하는 대상.
이외에도 여러 요소로 파악한 결과, 바이올렛은 화이트의 마법을 연신 막아내거나 피하면서도 한 가지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꾸준히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일관적이게.
그리고 그게 곧 그녀의 패착이 되었다.
그 자신의 주특기가 통하지 않은 것에 일차적으로 당황했다.
눈앞의 소년이 이룬 경지, 그리고 그 뒤편에 있는 자신을 시야에 담으며 혼란을 겪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한 가지 마법에만 집중한 것일 터.
‘정신계 마법.’
오직 그 스스로만을 믿고, 자만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 자신의 힘에 신뢰를 가진다는 것은 높은 경지에 닿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였으나.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게 곧 바이올렛이 쓰러지는 요인이 되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른다.
어떤 힘이 작용하여 정신계 마법이 일절 통하지 않았는지는 그녀로서도 알 수 없었으나.
명명백백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곧 승자가 화이트라는 것이며, 그 밑에 쓰러져 있는 패자가 바이올렛이라는 점일 것이다.
“다 끝났습니다, 스승님.”
그리고 아셰라의 상념이 끝을 맺을 즈음, 그렇게 화이트가 입을 열었으니.
화이트의 고개가 뒤편으로 돌아갔다.
연신 싸늘한 기색을 띠고 있던 조금 전까지와는 다르게, 숫제 따스하게 느껴질 정도의 표정을 지으며 아셰라를 바라본다.
화이트가 천천히 아셰라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표정은 여러모로 씁쓸한 기색을 띠고 있긴 했으나, 그럼에도 착잡해 보이지는 않았다.
어딘가 모르게 시원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이도 보였다.
한 차례, 적당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깔렸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눈동자를 살며시 빛낸다.
이내 먼저 입을 열고 정적을 깨뜨린 것은 아셰라의 쪽이었다.
“……이제 말해줄 수 있는 걸까요, 제자님.”
“…….”
그녀가 눈가를 가늘게 좁히며 화이트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손을 슬며시 뻗어, 화이트의 가느다란 손목을 조심스레 붙잡는다.
그에 잠시 움찔하는 화이트였으나, 그래도 손길을 피하지는 않았다.
묘하게 긴장되는 감각이 동반된다.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그건 잘 모르겠으나.
‘적당한 긴장감은 나쁘지 않겠지.’
그런 생각을 품으며, 화이트는 그저 고개를 무겁게 끄덕일 따름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약속은 지켜야 했으며, 이 이상으로 비밀을 감추고 있기도 벅찼다.
여러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겠으나, 그럼에도 한 가지 이유를 꼽자면 그건 곧 아셰라를 향한 죄책감이 되리라.
화이트가 한 차례 깊게 숨을 골랐다.
……눈을 슬며시 감으며, 할 말을 떠올린다.
무엇부터, 어디서부터 얘기를 꺼내야만 할까.
‘분명, 네 번째 복수를 이루면 모든 걸 말하겠다고 했었지.’
확실히 그렇게 말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이어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였다.
자신에게 있어서, ‘모든 것’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
화이트가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공간에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그만큼 자신이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그렇게, 화이트가 입술을 달싹이며 할 말을 정리하고 있는 도중이었다.
“설마하니 이제 와서 말해줄 수 없다느니, 그런 얘기가 튀어나오기만 해봐요.”
아셰라가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아랫입술을 얕게 깨물었다.
눈동자가 이글거리는 것이, 꼭 분노가 형상을 이룬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때는, 진짜 용서 안 할 거예요.”
이내, 아셰라가 그리 말을 내뱉었고.
“…….”
그에 화이트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단지 알아들었다는 의미로 고개를 까딱이는 것 외에는 없었다.
생각을 천천히 정돈한다.
잡념을 지운다, 머뭇거림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한 차례 떠올렸듯이,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었다.
단지 무엇부터, 어떤 얘기부터 꺼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망설여졌을 뿐이지, 절대 또다시 도망치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화이트가 진중한 기색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이제는 말하자.
말하도록 하자.
자신은 미래에서 왔다고.
모든 게 망가지고, 또 처참하게 일그러진 시간선을 겪고 왔다고.
……당신이, 마왕들의 술수에 걸려들어 타락에 이르게 된 미래를 보고 왔노라고.
“…….”
후우-
한 차례 얕게 한숨을 내뱉으며, 화이트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굳이 말하자면 씁쓸하다고 할 수 있었다.
말을 꺼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나, 도저히 입술이 떼어지지를 않았다.
한심하다면 한심할 것이고, 또 아둔하다면 아둔했으나, 그럼에도 입을 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이야기해야겠지.’
다시금 지그시 눈꺼풀을 덮으며, 화이트가 입술을 짓씹었다.
……말해야만 했다.
자신이 비밀을 감추기만 하고, 또 회피하기만 한다면, 관계는 더욱더 일그러지기만 할 것이다.
그녀의 의문은 점점 커져만 갈 것이고, 의문은 곧 의심으로 형태를 바꾸리라.
그건 싫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절대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 아셰라가 자신을 의심하는 일은 그 무슨 일이 있어도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굳이 말하자면 그 덕분에.
결심을 내릴 수 있었다.
끝내 말하고자, 입술을 떼어낼 일말의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화이트의 입이 천천히 벌어진다.
말을 엮어내고자, 목을 한 차례 가다듬는다.
“……그게 아마, 금색 마탑을 박살 내기 전이었던가요.”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과거였다고 덧붙이며, 화이트가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종말의 날로부터 딱 10년 전, 어린 시절의 자신의 몸으로 되돌아왔던 일을 떠올린다.
시간을 되감으며, 그 죄업을 감당해서라도 과거로 돌아오고자 발버둥 쳤던 자신 역시 떠올린다.
“……아셰라, 저는─”
화이트가 천천히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
──아니.
……이어나가고자, 했다.
“……!”
화이트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후욱─!
변화를 감지한 것은.
주변에, 공간 그 자체에 내려앉는 패도적인 기세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화이트의 몸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뭐, 무슨.’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한 말을 속으로 중얼거린다.
당황스러움이 여실히 느껴지는 기색이었으나, 굳어진 얼굴 탓에 역으로 표정 위로는 드러나지 않았다.
“…….”
쿵, 쿵.
심장이 격하게 박동하기 시작한다.
그 움직임이, 그 자그마한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우는 것처럼 커다랗게 느껴져 왔다.
화이트의 고개가 삐걱거리며 뒤로 돌아간다.
다름 아닌, 바이올렛이 쓰러져 있는 장소였다.
“……이것 참, 험하게 당했군.”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어서, 한 사내가 시야에 잡혔다.
……길게 늘어뜨려진 붉은 머리카락이 보인다.
마찬가지로, 불꽃과도 같은 붉은빛을 띠고 있는 두 눈동자가 보였다.
오르카의 그것과는 한결 다른 느낌이었다.
오르카의 붉은 머리칼, 그것은 굳이 표현하자면 피를 머금은 듯한 짙은 빛깔이었다.
밤피르 가문의 특성과 어울리는 빛깔이기도 했고, 그건 눈동자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
……눈앞의 사내는 달랐다.
그저 불꽃이 연상된다.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사납기 짝이 없는 불길이 저절로 떠오르게 되고 만다.
그런 ‘붉은색’이었다.
“네가 바이올렛을 이렇게 만들었나? 소년.”
이내 사내가 고개를 들어 올린다.
직후, 화이트는 사내와 눈이 맞은 듯한 기분에 휩싸여야만 했다.
바라보고 있는 건 자신이 아닌 것 같았으나, 그럼에도 그런 감각이 전신을 지배했다.
저도 모르게 몸이 움찔거렸다.
본능적인 감각, 혹은 그저 반사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저 몸이 떨렸다.
실제로 공포를 느끼고 있지는 않았으나, 원초적인 감정이 자극되는 느낌이었다.
……그래, 그랬다.
사내를 처음 두 눈에 담은 직후, 화이트는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네가 그녀의 제자인가.
“…….”
……그러나, 떤 이유가 두려움에 있지는 않았다.
아주 미세한 공포가 떠오르긴 했으나, 그것보다도 화이트의 전신을 잠식하는 감정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화이트의 벽안이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그저 격하게 흔들리며, 미처 감추지 못한 감정을 떠올리기까지에 이른다.
……과거, 혹은 미래.
그 시간대를 무어라 정의내려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그저 떠올린다.
마치 바로 조금 전에 듣기라도 한 것처럼, 목소리가 귓가에서 재생되는 듯한 감각이었다.
-제자 하나는 잘 키웠군. 나에게 닿을 정도로의 9서클이라. 놀랍긴 하다만…….
-그냥, 그뿐이지.
“…….”
중후하면서도, 어딘가 싸늘한 기색이 서린 목소리였다.
“그도 아니면, 네가 한 짓인가?”
……동시에, 현재 눈앞에 서 있는 사내가 내뱉는 목소리와 놀랍도록 흡사한 것이었다.
화이트의 표정이 착 가라앉았다.
“협정을 깨부순 건 아닐 테고, 무슨 술수를 부린 거지?”
이죽거리는 사내의 시선은, 이내 화이트가 아닌 그 뒤편의 아셰라에게로 향했다.
사내가 내뱉는다.
“대답해봐라, ‘아셰라’.”
그녀의 이름을.
……화이트로 하여금,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참을 수 없게끔 만드는 한마디를.
“──!”
직후였다.
콰앙!
“……제자님?!”
아셰라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화이트가 서늘한 동공을 흔들며 지면을 박찼다.
지면을 내리밟으며, 화이트가 마나를 끌어올렸다.
표정은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눈동자는 어딘가 모르게 공허한 빛을 띠고 있었다.
……마치, 이성을 잃은 자의 그것과도 같은 형상이었다.
‘──죽인다.’
실제로, 그건 틀린 표현은 아니리라.
‘죽여버린다.’
기실, 화이트는 현재 깊숙한 곳에서부터 피어오르는 격정을 참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으니.
‘너는 죽어야만 한다.’
홀로, 그저 속으로만 계속해서 중얼거리며, 화이트가 거칠게 이를 악물었다.
눈에는 핏발이 서 있는 채였고, 동시에 살벌한 살의로 번뜩이는 상태였다.
공허할 따름인 눈빛이었으나, 그렇기에 더더욱 섬뜩했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반쯤 정신을 놓아버린 듯, 화이트가 연신 속으로 내뱉었다.
‘……죽여.’
그리고, 이윽고는.
그저 눈앞의 사내를 온전히 눈동자에 담아내며, 화이트가 그 자신이 이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마나를 일으켰으니.
“──.”
화이트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이내, 짤막하게 내뱉는다.
“──죽어라, 샤사르.”
사내의 이름을.
……최악의 마왕이라 불리우는, ‘적의 마왕’의 진명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