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6)상성
“……크윽!”
바이올렛이 침음성을 흘렸다.
어느새 지팡이는 꺼내 든 채였으나,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그건 어째서였을까.
9서클의 대마도사임과 동시에, 12마왕 중에서도 최상위권이라고 평가받는 그녀가.
지금 현재, 고작해야 채 스무 살도 되지 못한 소년에게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아이시클 체인」
“……!”
촤르르륵!
얼음의 사슬이 그녀의 상하좌우에서부터 튀어나왔다.
말그대로, 공간을 찢으면서.
바이올렛이 이를 악물었다.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도, 갑작스럽게 진행된 이 재수없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더라도.
그럼에도 해야 할 건 명확했다.
그녀가 마나를 끌어올렸다.
자색의 마나가 만개하듯이 피어오른다.
『자줏빛 정원』
그녀의 고유마법이 발동되며, 사방이 환한 자색으로 물들었다.
연한 보랏빛이라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저 환한 광휘로 감싸였다.
그리고, 그 광휘에 의해 얼음의 사슬들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야만 했다.
“…….”
어떻게 보면 완벽한 방어라고도 평가할 수 있겠으나, 바이올렛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식은땀은 꾸준히 흘러내리고 있으며, 미간은 깊게 파인 채 그녀의 감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 원인은.
다름 아닌 눈앞의 소년 마법사에게 있었으니.
유려하게 흘러내리는 백금발이 보였다.
이어, 바다를 담은 듯한 푸른빛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로부터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긴 하였다.
바이올렛의 표정이 한순간에 착 가라앉았다.
그리고 내뱉는다.
“……화이트 클리포트.”
소년의 이름을.
……이번 제국 마법 대전, 그 우승자의 이름을.
“나를 알아볼 줄은 몰랐는데.”
어깨를 으쓱거리며, 화이트가 다시금 손을 휘저었다.
“……!”
그리고 그 간단한 손짓에, 단조롭다면 단조로운 움직임에 바이올렛은 온 신경을 끌어올려야만 했다.
직후, 창이 날아든다.
쐐애애애액!
공기를 찢어발기는 파공음을 내며, 날카로운 예기를 번뜩이며.
청백색의 창이 바이올렛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카앙!
“……큭.”
당연하게, 막아내는 것에는 성공하였다.
바이올렛이 펼친 자줏빛 방어막에 의해, 창은 끝내 그녀에게 닿지 못하고 소멸되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도 여전하게.
어찌 보면 일관적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바이올렛의 표정은 그저 착잡했다.
──어째서인가.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의문은 그것뿐이었다.
다른 모든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기에, 사고에서 배제해둔다.
……그저 눈앞의 소년에게만 집중한다.
마법대전의 우승자이자, 클리포트 가문의 후계자.
7서클의 마도사.
……그리고, 또 다른 특이점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당신이었군요.”
“뭐?”
즉각적으로 돌아오는 화이트의 반문에도 불구하고, 바이올렛은 그저 몸을 파르르 떨 뿐이었다.
그녀의 표정 위로 경악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어서 입을 연다.
지금 벌어진 이 상황으로써, 알 수 있는 사실 한 가지를 입에 담는다.
바이올렛의 눈동자가 격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당신이, 지금껏 마왕들을 죽인 흉수였어요. 그랬던 거야.”
“…….”
화이트가 침묵했다.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물며, 그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바이올렛을 직시했다.
그리고 그런 시선에, 그런 압박감에.
바이올렛은 그저 파르르 몸을 떨었다.
단지 그가, 저 소년이 7서클을 아득히 넘어선 실력자였기에?
……아니었다.
그게 아니었다.
고작해야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소년이 8서클, 혹은 그 이상에 올랐다는 건 분명 경악을 금치 못할 일임은 분명했으나.
그래도, 적어도 지금 현재 바이올렛이 동공을 떨고 있는 이유는 그러한 것의 탓이 아니었다.
──파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철옹성과도 같았다.
……그렇기에, 통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마법을 걸고 있었으나, 전혀 통하지 않았다.
바이올렛이 경악한 이유는 그곳에 있었다.
……저 소년을 조우한 이후, 그녀는 계속해서 한 가지 종류의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다름 아닌, 그녀 자신의 주특기인 정신계 마법이었다.
정신계 마법에 있어서 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높은 경지에 올랐다고 자부하는 그녀였다.
단지 그녀 홀로 그리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그건 대륙의 그 어떤 마법사라도 인정할 부분이었으니.
정신계 마법의 일인자는, 자색의 마왕 바이올렛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더더욱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왜, 통하지 않는 거죠?”
“…….”
침묵하는 화이트, 그러나 바이올렛은 그가 분명 자신의 말을 이해했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 공허한 눈동자가, 빛을 잃은 푸른 눈빛이 그런 확신을 가지게끔 만들고 있었다.
“어째서 제 정신계 마법이 일절 통하지 않느냔 말입니다……!”
짓씹듯이 내뱉는 바이올렛.
어지간히 당황한 듯, 평소라면 비치지 않았을 격정을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손끝은 파르르 떨리며, 그 끝자락에는 자색의 술식이 맺혀 있었으나, 결국 그 마법진이 빛을 발하는 일은 없었다.
통하지 않는다.
그저 무용했다.
저 소년에게는.
고작해야 스무 살도 되지 못한 저 어린 소년에게는, 자신의 정신계 마법이 통하지 않았다.
그 부분에서, 바이올렛은 이성을 올바르게 유지할 자신을 잃고 말았다.
당황하고, 또 경악스러워서, 도저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마나는 요동치며, 감정에 이끌려 올바른 술식을 만들어내는 것조차 실패하고 있었다.
“……아, 아.”
이윽고 내뱉는 소리는 그러한, 문장이 되지 못한 끊기는 목소리일 따름이었다.
바이올렛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화이트를 바라봤다.
……무언가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정신계 마법의 일인자라고 불리는 그녀이니만큼,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보였다.
보이고 말았다.
……눈앞의 소년, 그 뒤편에 일렁이는 희미한 형체를.
순백의 로브를 펄럭이며, 어둡게 가라앉은 푸른빛 눈동자를 번뜩이는 한 사내의 모습을.
“──아, 아.”
그리고 그 시점에서, 바이올렛은 끝내 정신을 온전히 유지할 수 없었다.
그 정체불명의 형체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침식되는 것만 같았다.
혹은, 그 형체에 의해 잠식되는 듯한 감각이라고 표현해도 좋았다.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었으나, 무언가 쓸데없는 사고나마 이어나가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그런 직감에, 바이올렛은 그저 몸을 파르르 떨면서도 생각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무엇이란 말인가.
‘저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소년이 아니었다.
기껏 해봐야 열 아홉의 소년이 품을 만한 심상이 아니었다.
품을 수 없었다.
불가능에 가까웠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바이올렛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긴장으로 인해 전신은 땀으로 뒤덮인 상태였다.
정신과 영혼에 있어서 그 어떤 마법사보다도 깊게 파고든 자가 바로 자신이었다.
그 어떤 마법보다도 정신계 마법에 파고들었던 자신이기 때문에, 더욱 잘 알 수 있었다.
──이기지 못한다.
‘저것’을 상대로는.
저러한 것을 상대로는, 그 무엇이 와도 이길 수 없었다.
“──.”
그리고, 직후였다.
버티지 못했던 걸까.
쏟아지는 압박감에, 소년의 뒤에 떠오른 형체가 내뿜는 기세를 받아내지 못한 걸까.
털썩!
이내, 바이올렛은 정신을 잃고 그대로 힘없이 육체를 무너뜨려야만 했다.
“…….”
그리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화이트는 그저 예상했다는 듯 걸음을 내디딜 뿐이었다.
당황한 기색은 일절 없었다.
그저 담담하게, 모든 걸 알고 있었다는 듯한 태도로 무겁게 발을 옮길 뿐.
화이트가 쓰러진 바이올렛을 향해 싸늘한 눈빛을 번뜩였다.
“……극상성이다, 너와 나는.”
천천히 몸을 낮추며, 화이트가 나직하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무슨 자신감으로 내 심상을 들여다보고자 한 거냐, 바이올렛.”
한 차례 실소를 흘린다.
바이올렛을 향한 비웃음이었다.
비릿한 미소를 그려 보이며, 화이트가 고개를 한 차례 좌우로 저었다.
……결국 이 여자는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파고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저 그 스스로의 마법을 믿고, 9서클의 마나를 이용해 꾸준히 자신을 압박했더라면 결과는 또 달라졌을지도 모르지.
그녀의 패인은, 그녀의 주특기인 정신계 마법으로 자신의 심상을 꿰뚫어보고자 한 것에 있었다.
‘그건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텐데.’
속으로 중얼거리며, 화이트가 비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한때나마 ‘백색의 마법사’라 불리우던 자신의 과거.
혹은, 미래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상대로 정신계 마법을 시전한 게 잘못이었다.
무엇을 믿고, 한순간이나마 9서클조차 초월했었던 ‘그것’에게 손을 대었는가.
“후우.”
화이트가 한 차례 깊게 숨을 골랐다.
……어찌 되었든 자신의 심상을 엿보고자 했던 그녀는, 그만큼의 업을 감당해야만 했다.
그 결과, 자색의 마왕이라는 이명에 어울리지 않게.
이리 꼴사나운 모습으로 쓰러지게 된 것이었고.
“이미 내 말을 듣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귀담아들어라.”
뚜둑!
쓰러진 바이올렛의 손목을 거칠게 꺾으며, 화이트가 살벌한 미소를 얼굴 위로 띄웠다.
“내 정신은 그 어떤 마법사보다도 견고하다. 비록 경지만큼은 네가 가지고 있는 아홉 개의 고리보다 아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내게 정신계 마법을 시전해서는 안 되었어.”
뚜둑!
이번에는 반대쪽 손목이었다.
뼈가 찌그러지는 소음과 함께, 바이올렛이 정신을 잃은 상태로 몸을 떨어댔다.
무의식적인 반응이었다.
“주제를 알아야지.”
그저 그렇게 중얼거리며, 화이트가 한 차례 혀를 찼다.
싸늘하게 가라앉은 시선이 바이올렛을 슥 훑고 지나간다.
“나를 상대로 정신계 대결을 펼치고자 한 것이 네 패착이다, 아둔한 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