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105화 (106/158)

(EP.105)검은 마나

“…….”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조심스레 몸을 낮춘다.

시야에 한 여인이 잡혔다.

“……세르피아.”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아셰라가 이를 악물었다.

그 어떤 다른 이유 때문도 아니었다.

그녀가 정신계 마법에 걸렸기 때문도, 그리하여 자신에게 타락의 술식을 걸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아셰라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저 단순할 뿐이었다.

“……누가 마음대로 죽어도 좋다고 했나요.”

읊조리듯 내뱉으면서, 그녀가 조심스레 세르피아의 눈을 감겨주었다.

……공허한 눈동자를 흐릿하게 빛내고 있는 부하의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하물며 그게 이미 목숨을 잃은 상태의 육신이라면, 더더욱.

“…….”

아셰라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저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격정에 집어삼켜지며, 당장이라도 이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끝내는, 그녀를 이렇게 만든 바이올렛을 처참하게 죽여버리고 싶었다.

육신은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정신을 무너뜨리며, 최후에는 무자비하게 목을 뽑아버리고 싶었다.

그런, 어쩌면 살벌하다고까지 할 만한 생각을 하면서, 아셰라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

까득!

그녀가 거칠게 이를 갈았다.

어느새 그 금빛 눈동자 위로는, 감출 수 없는 분노의 기색이 떠올라 있는 상태였다.

우웅-

마나를 일으킨다.

푸른빛의, 찬란하기 그지없는 마나를 일으킨다.

평소 그녀가 마법을 사용할 때와 똑같은, 선명한 푸른빛의 마나였다.

그러나, 조금은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언제나 같은 푸른빛으로 화려하게 빛나던 그녀의 마나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검은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리라.

사아아아-

한 차례, 삭풍이 불어왔다.

부자연스러운 바람이었고, 그런 바람은 이내 아셰라의 검은 머리칼을 휘날리게끔 만든다.

꽈악-

아셰라가 주먹을 쥐었다.

어느새 손아귀에는 그녀의 완드가 잡혀 있는 채였다.

그저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세르피아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

동시에, 자신에게 타락의 술식을 걸고자 했던 궁극적인 흉수.

자색의 마왕, 바이올렛.

그녀를 죽인다.

……그뿐이었다.

무척이나 느린 속도였다.

그러나 분명한 변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찬란하던 마나는 점차적으로, 확실하게.

……검은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끝내, 그녀의 전신에서부터 살벌한 기세가 풍겨나오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마나가 완전히 검은빛으로 화하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텁!

“……!”

아셰라의 어깨를 잡아채는 손이 있었다.

다급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거칠지만은 않은 손길이 있었다.

아셰라의 고개가 뒤편으로 돌아갔다.

“정신 차리세요, 스승님.”

“……제자님?”

화이트가 있었다.

그녀의 하나뿐인, 소중한 제자가 날카로운 기세를 풍기며 그녀의 어깨를 거세게 쥐고 있었다.

화이트가 짓씹듯이 내뱉었다.

“마나가 검게 변하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그제서야 그 자신의 마나가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을까.

아셰라가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정확하게는, 그 몸에서부터 흘러나오고 있는 마나를 바라봤다.

“……이건.”

떨리는 목소리를 꺼내 든다.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건지, 그녀의 표정 위로 경악이 떠오른다.

“잘 알지 않습니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천천히, 마치 타이르듯이.

화이트가 잔잔한 목소리로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마나는 도로 집어넣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이 자리는 제게 맡기고, 물러서 있어요. ……‘협정’을 생각해서라도.”

그렇게 내뱉으며, 화이트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아셰라의 몸을 뒤로 밀어냈다.

그에 저항하지 않으며, 아셰라 역시 천천히 뒤로 물러나는 모습.

그녀의 표정 위로 명백한 분노가 떠올랐다.

당연하게도, 화이트를 향한 분노는 아니었다.

그저, 세르피아를 죽인 바이올렛과.

……그런 그녀를 눈앞에 두고서도, 그 빌어먹을 ‘협정’ 탓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어쩌면 자괴감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무력감, 그리고 그런 자신을 향한 원망과 증오.

……어찌 이렇게도 멍청할 수가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 한 치 앞을 보지 못한단 말인가.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긴 시간이 흐른 뒤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더라면.

그날, 적의 마왕이 내민 손을 잡지 않았을 것이다.

12마왕 간의 협정 따위, 죽어도 맺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어떻게든, 그때 그 자리에서 모든 마왕을 찢어 죽여버렸을 것이다.

그것도 무척이나 처참한 형태로, 어떤 방식을 사용해서라도.

이렇게 발목이 잡히게 될 줄 알았더라면.

……분명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

천천히, 다시금 그녀의 얼굴 위로 수심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씁쓸하다면 씁쓸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분노라고 표현하자면 그렇게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복합적이며, 아련하고, 또 동시에 착잡한 감정들이었다.

그녀의 낯빛이 점점 어두운 빛으로 물들어만 갔다.

“……스승님.”

그리고, 화이트는.

화이트는, 그런 아셰라의 변화를 그저 보고 있기만 해도 괴로울 따름이었다.

지켜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그녀의 심정은 과연 어떠할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감은, 당장 그 자신 역시 뼈저리게 느껴본 적이 있지 않나.

그렇기에 더더욱 고통스러웠다.

“…….”

무어라 말을 내뱉으려고 입술을 달싹이던 화이트, 그러나 끝내 문장을 늘어놓지는 못한다.

도저히 무슨 말을 꺼낼 자신이 없었다.

무슨 말을 꺼내게 되더라도, 지금의 그녀에게 큰 도움이 되지는 못 하리라.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뿐이었다.

“스승님.”

한층 단호해진 어투로, 화이트가 아셰라를 나직이 불렀다.

아셰라의 고개가 들리며, 이어서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동시에, 화이트가 내뱉는다.

“바이올렛은 제가 반드시 죽이겠습니다.”

선명한 살의가 묻어나오는, 그런 목소리를.

……그런 한마디를.

화이트의 눈동자가 불꽃과도 같이 이글거리기 시작한다.

아셰라를 분노하게 만들고, 동시에 슬프게 만든 바이올렛에 대한 감정을 참을 수가 없었다.

감정이 떠오르기 시작하자, 이내 그러한 감정은 더더욱 격한 형태로 그 모습을 바꾸어간다.

그저 분노했다.

‘……회귀 이전에도 넌 그러했지, 바이올렛.’

살포시, 조심스레.

아셰라의 손을 맞잡으며, 화이트가 괴로운 기색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셰라가 아니었다.

그녀를 걱정하고, 또 생각하는 건 틀림없었으나.

적어도 시선이 바라보는 것만큼은 다른 존재였다.

“……기다리고 있어요. 금방 끝내고 돌아올 테니까.”

짓씹듯이 내뱉으며, 화이트가 몸을 돌렸다.

……바라보는 것은, 여전히 당황한 기색으로 경악을 표정 위에 띄우고 있는 한 여성.

연한 보랏빛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흩뜨리고 있는 그녀는.

그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자색의 마왕, 바이올렛이었다.

우웅-

화이트가 마나를 끌어올렸다.

찬란한 푸른빛이 손끝에 맺히기 시작한다.

이내, 마치 지휘자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천천히 손을 휘젓는다.

다시금 창이 떠오른다.

허공을, 공간을 일그러뜨리며.

수십, 수백 개의 푸른 창들이 생성된다.

날카로운 예기를 번뜩이는 창들이 바라보고 있는 곳은 당연하게도 바이올렛이 자리 잡고 있는 위치였으니.

“…….”

마지막으로, 화이트가 한 차례 고개를 뒤로 돌렸다.

어느새 분노는 지워진 채,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혹은 무력함을 절실히 느끼는 기색으로.

아셰라가 그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에 자연스레 화이트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오른다.

안심시키고자 하는 미소였다.

무력함을 느끼면서도, 분노가 치솟는 감정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향한 걱정을 놓지 못하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한 미소였다.

“……제자님.”

“듣고 있습니다, 스승님.”

아셰라의 부름에 즉각 답하며, 화이트가 고개를 한 차례 끄덕거렸다.

아셰라의 표정 위로 미세하게 망설이는 기색이 떠올랐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무슨 말을, 무슨 얘기를 해주어야만 할까.

지금 자신을 대신해서 싸우러 가는 제자를 향해, 자신은 대체 무슨 말을 해줘야만 한단 말인가.

……입술을 달싹이면서도, 도저히 무슨 말을 내뱉지는 못하겠다.

그저 절망했다.

무력감이 전신을 거세게 짓누른다.

설령 그 적의 마왕이 내뿜는 압박감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을 무력감에 비하면 새 발의 피조차 되지 못 하리라.

……그런 생각을 품으며, 아셰라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고 있을 즈음이었다.

“걱정하지 마시죠.”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자님?”

화이트의 목소리였다.

아셰라의 시선이 다시금 그를 향했다.

떨리는 눈동자로 그 자신을 바라보는 아셰라를 향해, 화이트가 재차 내뱉었다.

“모든 건 잘 해결될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그렇게 덧붙이면서, 화이트가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걸쳤으니.

“…….”

“…….”

서로를 바라보며, 두 사람이 입을 꾹 다물었다.

……알고 있었다.

아셰라도, 화이트도.

그 웃음이, 미소가 꾸며진 것이라는 건 서로가 모두 알고 있었다.

그저 상대방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렇기에 더더욱.

“……네.”

아셰라는, 그저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환한 미소를 얼굴 위로 띄운다.

애써 만들어진 미소였으나, 일그러진 표정 위로 띄워진 미소였으나.

“……다치지 마요, 제자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이트는 그러한 그녀의 미소가 참으로 아름답다는 감상을 느낄 뿐이었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생각, 그리고 감상이었으나,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아무래도 좋았다.

“다쳐서 돌아오면, 크게 혼쭐을 낼 거니까, 그러니까.”

“…….”

“……그러니까, 제발 다치지 말아줘요.”

아셰라가 그렇게 말을 끝맺었고, 그것으로 대화는 끝이었다.

한동안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아련한 눈빛을 흐릿하게 빛냈다.

어떻게 보면 애틋하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 만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이내, 화이트가 그녀를 향해 깊게 고개를 숙였으니.

“……따르겠습니다, 스승님.”

그저 그렇게 내뱉으면서, 화이트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거짓된 미소가 아니었다.

미세하게나마 진심이 담긴 미소였고, 아셰라 역시 그를 느낄 수 있었기에.

한결 편해지는 마음을, 진정되는 심정을 느끼면서.

아셰라가 허락의 의미로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고.

“…….”

직후, 허락을 받아낸 화이트가 표정을 한순간에 싸늘하게 바꾸며 다시금 시선을 정면으로 향하게 했으니.

여전히 창들은 바이올렛을 향해 겨눠진 채였고, 동시에 바이올렛은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고 있는 중이었다.

바이올렛을 바라보는 화이트의 표정이 흉신악살과도 같이 험악하게 바뀌었다.

‘너는 선을 넘었다, 바이올렛.’

……그녀를, 아셰라를 고통스럽게 만든 죄는 그 무엇보다도 무겁다.

적어도 화이트에게 있어서, 그녀는 그 어떤 가치보다도 위에 있는 존재였기 때문에.

그렇기에, 화이트가 판단하기에 바이올렛은 수천 번을 죽어 마땅했다.

촤르르륵!

손을 뻗으며, 화이트가 허공에서부터 푸른 사슬들을 꺼내 들었다.

그러면서, 서늘한 어조로 입을 연다.

“스승님을 괴롭게 만든 네 자신의 죄업을 탓해라.”

“……뭐, 라고?”

당혹감이 섞인 목소리로 대꾸하는 바이올렛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화이트가 심장의 서클을 회전시켰다.

심장에 새겨진 8개의 고리가 거칠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마나는 전신을 질주하며, 이내 화이트의 손끝에서부터 피어올랐으니.

“그냥, 죽으라는 뜻이다.”

냉혹한 목소리로 중얼거림과 동시에, 화이트가 손을 내리그었고.

이윽고 공중에 떠 있던 수백 개의 푸른 창들은, 재차 바이올렛을 향해 쏟아져 내린다.

……쏟아져 내리는 창들은, 이내 주변을 깔끔하게 쓸어버리고자 그 창신에 깃든 마나를 폭발적으로 터뜨렸다.

다시금, 굉음이 일었다.

그 무엇과 비교해도 지지 않을 정도로 거센 폭음이었다.

……모든 걸 지워내고자 하는 창들의 폭격이 만들어 낸, 살벌하기 그지없는 하모니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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