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3)정신계 마법
“……이게, 무슨.”
아셰라의 동공이 확장되며 떨리기 시작했다.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혹은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이.
그녀가 경악한 기색으로 자신의 허리를 내려다봤다.
……마법진이 있었다.
알고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으나, 분명한 건 그리 좋은 의도로 새겨진 건 아닐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도 그렇지 않겠나.
몸의 주인 몰래 새겨넣을 정도의 마법진이라면, 술식이라면.
절대 좋은 목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왜, 이걸 제가 눈치채지 못했죠? 어째서?”
당황한 듯이, 아셰라가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런 그녀를, 화이트는 그저 가라앉은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으니.
“……다른 건 다 치워두고, 우선 이 빌어먹을 술식부터 지워내죠. 스승님.”
“……아.”
그제야 상황을 조금은 올곧게 인식할 수 있었을까.
아셰라가 얕게 탄식을 흘리며,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아셰라의 눈동자에 묘한 기색이 서리기 시작한다.
시선이 바라보는 것은 당연하게도 화이트였다.
그 시선을 눈치챘는지, 혹은 눈치채지 못한 척을 하는 건지.
화이트가 조심스레 눈을 아래로 내리며 마나를 끌어올렸다.
우웅-
푸른빛의 마나가 그의 손에 맺히기 시작했다.
평소의, 공격적인 마법을 전개할 때처럼 폭발적인 기세는 아니었다.
그저 잔잔하게.
혹은 고요하게.
마치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가 된 것처럼, 화이트가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마나를 이끌었다.
“제가 해제하겠습니다.”
그렇게 내뱉고는, 아셰라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화이트가 손을 움직였다.
눈빛은 여전히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는 채였다.
“…….”
차갑게 식은 분위기, 기온이 서늘하게 내려앉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런 방의 내부에서.
아셰라가 한 차례 의구심으로 가득한 눈빛을 번뜩였으니.
사아아아-
화이트의 마나가 그 자신의 육체에 간섭하는 걸 제지하지는 않았으나, 눈동자는 연신 무언가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모든 게 의문스러웠다, 라고 할 수 있으리라.
아셰라가 얕은 숨을 내쉬며 주먹을 조심스레 쥐었다.
-타락의 술식.
……조금 전, 화이트가 내뱉었던 단어를 떠올린다.
‘……제자님.’
아셰라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나마 일그러졌다.
……무엇을 알고 있는 걸까.
자신의 하나뿐인 제자님은, 대체 어떻게 자신도 모르는 술식의 정체에 대해 꿰뚫어 볼 수 있었는가.
술식을 그 자신의 육체에 새긴 흉수, 혹은 술식 자체의 정체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으나.
그보다도 더욱 의아한 것은, 술식을 발견한 직후 화이트가 보인 태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
아셰라의 낯빛이 살며시 어두운 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이트 역시 그런 아셰라의 변화를 눈치챌 수 있었고.
그럼에도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 못했다고 해도 좋았다.
‘……우선은, 이 빌어처먹을 술식부터 해제하는 게 우선이다.’
화이트가 침체된 눈동자를 연신 움직이며 마나를 이끌었다.
……이야기는 그 다음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묻고 싶은 게 많을 것이다.
알고 싶은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 그녀의 의문에, 자신은 대답해 줄 의무가 있었다.
……더 이상 모든 걸 감추기만 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타락의 술식에 관한 이야기만큼은 풀어놓을 필요성을 느꼈다.
“……잠시, 실례.”
툭, 투둑.
술식을 해제하는 것에 있어서 조금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화이트가 손날로 아셰라의 옷자락을 조심스레 잘라냈다.
그녀의 새하얀 속살이 슬며시 그 모습을 드러냈다.
“…….”
평소라면 조금 더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였을지도 모를 화이트였으나, 적어도 지금만큼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신경 쓸 여유조차 없다고 해도 좋았다.
지금 이 순간, 화이트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오직 하나.
……타락의 술식, 그뿐이었다.
마나를 엮으며,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화이트가 최대한 조심스럽게 술식을 해체해 나가기 시작했다.
*****
“……다 됐습니다.”
“…….”
화이트가 그리 내뱉었고, 그에 아셰라가 슬며시 옷자락을 갈무리했다.
자연스레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무척이나 불편하고, 또 동시에 어색하기 짝이 없는 그런 침묵이었다.
먼저 입을 열어야 할까.
화이트가 고민을 시작했다.
……먼저 입을 열어, 말을 꺼내야만 한다면.
대체 무슨 얘기부터 꺼내 드는 게 옳은 것일까.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게 우선인가?
그도 아니면, 그녀의 육체에 타락의 술식을 새겨넣었을 흉수를 캐묻는 게 우선인가.
“…….”
화이트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지나치게 심란했다.
심란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의 허리 부근에 새겨져 있던 술식, 이제는 그 자신의 손에 의해 완벽히 지워진 술식에 대해 떠올린다.
……회귀 이전, 아셰라가 당한 것과 똑같은 형태의 마법진이었다.
으득!
화이트가 한 차례, 방 안에 소리가 울려 퍼질 정도로 강하게 이를 갈았다.
……자연스레 분노가 치솟아 오른다.
어쩌면, 그저 모르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당사자인 그녀, 아셰라마저 자신이 지적하기 전까지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은밀한 술식이었다.
가까이서 확인하지 않았더라면, 그 불쾌한 마나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솔직하게 말해서,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스승님.”
화이트가 조심스레 입술을 떼어냈다.
아셰라의 시선이 화이트에게로 닿았다.
화이트 역시, 그러한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한다.
한 차례, 마른침을 삼키며.
화이트가 결심을 다졌다.
……타락의 술식에 대한 걸, 그녀에게 털어놓도록 하자.
이제는 그녀도 알아야만 했다.
당장 자신이 눈치채지 못했더라면, 그녀는.
……아셰라는, 어쩌면, 또 다시.
‘……아니, 아니다.’
화이트가 거세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쓸데없는 가정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가정을 이어가면 이어갈수록, 부정적인 생각 이외에는 들지 않을 것이니.
상념을 지우자.
잡념을 없애고, 그저 올곧게 그녀와 마주하도록 하자.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조금 전 제가 해제한 그 술식은.”
화이트가 천천히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타락의 술식’이라고 불리는, 자색의 마왕, 바이올렛이 만들어 낸 정신계 마법입니다.”
자색의 마왕, 바이올렛.
그 이름을 입에 담는 화이트의 푸른 눈동자가, 한 차례 섬뜩한 빛을 발했다.
명백하고도 틀림없는, 살벌하기 짝이 없는 선명한 살기였다.
*****
“…….”
타락의 술식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화이트가 침묵했고, 아셰라 역시 굳은 표정으로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잠시 대화가 멈췄다.
화이트의 뺨을 타고 한 줄기의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어찌 긴장하지 않을 수 있을까.
모든 비밀을 털어놓은 것은 아니었다.
시간에 간섭하는 마법이나, 회귀에 관해서는 아직까지 얘기할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그저, 자색의 마왕이 만들어 낸 술식에 관해서만 언급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격을 먹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이 타락의 길로 접어들 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그 누구라고 한들, 당황하지 않을 수는 없으리라.
그게 설령 아셰라라고 해도 말이다.
화이트가 조심스레 그녀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아셰라에게서는 어떠한 기색도 느껴지지 않았다.
철저히 감추고 있는 것만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기에, 화이트 역시 침묵했다.
해야 할 얘기, 하지 않으면 안 될 얘기는 모두 꺼내 들었다.
이제는 기다릴 때였다.
그녀가 입을 열 때까지.
그로부터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1분, 2분, 혹은 3분.
단순히 채 5분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화이트에게 있어서 그 짧은 시간은 억겁의 세월보다도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드디어 아셰라가 입을 연다.
“……타락의 술식, 이라고요.”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리며, 그녀가 화이트와 시선을 마주했다.
화이트가 한순간 손끝을 움찔거렸다.
……생각 외로, 그녀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녀가 말을 잇기 시작했다.
“서서히 육체에 침투해, 심장에 새겨져 있는 서클의 마나에 간섭하고 폭주시키는 술식이라…….”
아셰라가 조금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기색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바보 같네요. 이런 술식에 걸려든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니.”
자조가 섞인 어조였다.
자연스레 화이트의 표정이 걱정으로 물들었으며, 그에 맞춰 아셰라가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걸쳤으니.
“……부하가 한 명, 있어요.”
이번에는 아셰라가 이야기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
화이트의 설명에서 수많은 의문이 더욱더 파생되어 튀어나왔지만, 그것보다는 그런 화이트가 궁금해할 만한 점에 대해 얘기를 하고자 했다.
다름 아닌, 그녀 자신에게 타락의 술식을 걸었을 가능성이 가장 큰 존재에 대해서.
“세르피아.”
아셰라가 그 자신의 유일한 부하의 이름을 입에 담았고.
차분한 기색으로, 과거를 회상하듯이.
언젠가,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있었던 만남에 관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리고.
그러한 설명을 모두 전해 들은 화이트가 이내 보인 태도는.
그저 가라앉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서는 것이었으니.
“……제자님.”
아셰라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녀의 눈동자에, 격한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듯한 화이트의 표정이 담겼다.
화이트가 입을 열었다.
“틀림없습니다.”
잔잔한 어조였으나, 모순적이게도 그러한 목소리에서는 감출 수 없는 분노가 묻어 나오고 있었다.
“그 ‘세르피아’라는 여성이, 스승님께 타락의 술식을 새겨넣은 겁니다.”
화이트가 이를 악물었다.
……아마 배신과도 같은 형태는 아닐 것이다.
타락의 술식.
그 빌어먹을 마법진을 탄생시킨 마왕, 자색의 바이올렛.
그녀의 주특기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신계 마법에 당한 거겠지요. 이미 그녀는 바이올렛에게 지배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런가요.”
조금은 슬픔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아셰라가 쓸쓸히 대꾸했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화이트의 감정은 더욱 격렬하게 바뀌어만 갔으니.
“가죠, 스승님.”
화이트가 아셰라를 향해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아셰라가 고개를 들어 화이트와 눈을 맞췄다.
화이트가 천천히 하고자 하는 말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
“제가 그 술식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지, 혹은 지금껏 제가 감춰왔던 비밀에 대해서든지 간에.”
……모든 걸 설명하겠노라고, 덧붙이며.
화이트가 그 벽안 위로 싸늘한 살기를 띄웠다.
그리고 내뱉는다.
그 모든 걸 털어놓기 위해, 대전제로 갖춰져야 할 조건에 대해서.
“우선은, 자색의 마왕, 그 여자부터 죽이러 가겠습니다.”
그러면 딱 알맞게 맞아떨어진다.
“……네 번째 마왕을 죽이고 난 이후, 모든 걸 얘기하겠노라고 약속드렸었죠.”
술잔을 기울이며 나눴던 대화, 그리고 약속이었다.
그게 지금처럼 이렇게 앞당겨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으나,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우선은, 위험 요소를 제거한다.
화이트의 걱정스런 시선이 아셰라에게 닿았다.
‘이미 스승님을 찾았더라면.’
……더 이상 망설이고 있어서는 안 되었다.
타락의 술식을 해제한 시점에서, 세르피아든 바이올렛이든 간에 누군가는 그것을 눈치챘을 터.
절제된 분노를 눈동자 위로 띄운다.
……분노로 열이 치솟아 오르게 되더라도, 머리만큼은 차분하게.
마법사에게 있어서 흥분하는 것만큼 큰 실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감정을 조절한다.
살의와 분노, 혹은 살기와도 같은 것들을 적당한 수준으로 조정한다.
……새삼스럽게 감정에 휩쓸리기만 해서는 안 되었다.
감정을 지배하고, 역으로 이용할 줄 알아야만 했다.
“바이올렛을 죽이고, 제 비밀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스승님.”
이내 화이트가 나직하게 중얼거렸고.
“…….”
여전히 그 자신에게 뻗어져 있는 손길을 잠시 흐릿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아셰라.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윽고 그녀의 얼굴 위로 결연한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녀 역시 화이트와 마찬가지로, 피어오르는 궁금증과 감정들을 자체적으로 조절할 수 있었으니.
“……바이올렛은 위험해요. 어쩌면, 얼마 전 제자님이 상대했던 그 에멜보다도 더욱.”
중얼거리며, 그녀가 화이트가 뻗은 손을 맞잡았다.
“……그러니까.”
한 차례 간격을 두고 그녀가 말을 멈췄다.
화이트를 바라보는 금빛 눈동자에는, 그저 걱정스러움만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위험해지면, 곧바로 도망치도록 해요.”
“…….”
침묵하는 화이트.
그러나 아셰라는 집요했다.
“지금 여기서 대답하세요, 화이트.”
그러지 않겠다면, 약속하지 않겠다면.
무력으로라도 막아 세우겠다며, 아셰라가 그리 덧붙였고.
“……후우.”
그녀가 그렇게까지 나온 이상, 화이트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화이트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따르겠습니다, 스승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