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9)번개가 잠든 사막
칼 폰 아지다하카.
마도왕국의 후계자, 굳이 표현하자면 왕태자.
회귀 이전의 그는 어떠했던가.
적어도 화이트가 알기로, 그가 왕위에 오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건 현재의 왕이 워낙 젊은 탓도 있었고, 그 이전에 대륙이 멸망을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자세한 정보는 알고 있지 못했다.
마도왕국에 대해, 화이트가 기억하고 있는 유의미한 정보는 그저 하나.
회귀 이전, 멸망으로 치닫는 대륙에서 제국 다음으로 오래 버틴 국가가 그들이라는 것.
당시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나, 지금 생각하면 나름 인과가 맞아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마법의 길을 걷는다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왕국치고는 9서클 급의 대마도사를 한 명도 보유하지 못한 그들이 어떻게 그리도 오래 버틸 수 있었는가.
파직-
“…….”
화이트가 상념을 이어가는데, 순간적으로 한 차례의 스파크가 튀겼다.
그리고 직후.
투콰아아아아아앙!
화약이 터지는 것과도 같은 폭음과 함께, 섬광이 경기장을 가로질렀으니.
가히 광속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의 속도였으나, 화이트는 그리 어렵지 않게 섬광을 파훼해 낼 수 있었다.
쩍, 쩌적-
균열을 일으키고는 있으나, 성공적으로 번개를 막아내는 것에 성공한 배리어를 해제하며, 화이트가 상념을 재차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칼 폰 아지다하카.’
속으로는 지금 현재 그 자신과 대치하고 있는 7서클의 마법사의 이름을 중얼거린다.
화이트는 반쯤 확신할 수 있었다.
아마 확실할 것이다.
20대 초중반의 나이로 7서클에 오른 그라면, 필시 10년 이후에는 9서클 급에 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터.
그렇게 되면 결국 남는 가능성은 하나뿐이었다.
칼 폰 아지다하카, 그가 9서클에 오른 이후 전력을 다해 왕국이 몰락하는 걸 늦췄을 가능성.
“…….”
화이트의 표정이 살짝 오묘하게 바뀌었다.
실상 추측을 이어나가긴 했으나, 그다지 의미없는 것이기도 하였다.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화이트에게 있어서 진실은 고작해야 그 정도의 가치밖에는 지니지 못한다.
맞으면 맞는 거고, 아니면 아닌 대로 상관없었다.
애초에 크게 궁금하지도 않았고, 그저 눈앞에서 뛰어난 7서클 급을 만나자 약간의 의문이 들었을 따름이었다.
그렇기에, 더 이상의 불필요한 상념은 이어가지 않는다.
화이트가 한쪽 입꼬리를 거칠게 끌어올렸다.
그러고는, 손을 천천히 들어 올린다.
방어적인 태도로 승부를 진행하는 것도 질렸다.
이제는 끝을 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대부분의 인물이 자신의 경지를 알게 된 이상, 더는 구태여 감출 이유는 없을 터.
더 이상 스스로를, 정확하게는 스스로의 진정한 힘을 숨길 필요는 없어졌다.
……물론, 진실된 경지인 8서클까지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상대에 맞춰서, 적당히 7서클 급으로.’
우웅-
화이트가 그 자신의 심장에 새겨진 마나의 고리를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 차례 입매를 사납게 비튼다.
“나름 흥미롭긴 했어. 칼 폰 아지다하카.”
“……?”
“자, 그럼.”
의아함을 표하고 눈썹을 까딱거리는 칼은 무시하며, 화이트가 마나를 한쪽 손바닥 위로 응축시켰다.
압축되는 마나는, 더욱더 미세하게 줄어들어 간다.
그러나 크기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그게 곧 위력 또한 마찬가지로 줄어든다는 얘기는 아니었으니.
쿠구구구-
천천히, 그러나 분명한 움직임으로.
화이트의 마나가 요동침에 따라, 경기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당연하게도 누구보다 일찍 그 전조를 깨달을 수 있었던 칼은, 그리 표정이 좋지는 못했다.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얕본 건 아니었다, 무시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럼에도 그 자신보다는 하수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현재, 눈앞의 백금발의 소년이 드러내고 있는 마나는, 그 위력은.
단순한 마나의 응축에 불과했으나, 그것이 사방에 흩뿌리고 있는 압박감은.
고작해야 6서클 따위는 아득하게 뛰어넘은 종류의 것이었기 때문에.
‘……7서클, 그것도 나보다도 우위에 있다고?’
칼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
그리고 이내 헛웃음을 거칠게 터뜨린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 환하게 일렁이기 시작하는 찬란한 푸른빛의 마나에 기운을 잃을 법도 했으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강자, 그것도 자신보다도 뛰어난 마법사와의 전투라면.
바라마지않던 일, 하물며 나이대마저 비슷한 소년에 불과하다니.
“……좋다, 좋아.”
칼이 쿡쿡 웃음을 흘리며, 이내 가볍게 손뼉을 두어 차례 쳤다.
그의 표정에서는 감출 수 없는 환한 기색이 묻어나오는 중이었다.
“은연중에 바라고 있었지. 어쩌면 나보다도 뛰어난 마법사일 가능성도 있지는 않을까.”
중얼거리며, 칼 역시 마찬가지로 마나를 전력으로 이끌어내기 시작했다.
금빛 아지랑이가 그의 전신을 감돌았다.
“그럼에도 그럴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채 스무 살이 되지 않은 소년이 7서클에 오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
“……그렇지만.”
침묵하며, 이야기를 경청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화이트를 직시하고는.
칼이 사나운 미소를 얼굴 위로 띄웠으니.
“소년, 네가 진정으로 나를 상회하는 마법사라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그마저도 뛰어넘어 보이겠다.”
쿠구구구구!
경기장이 흔들렸다.
지진을 맞닥뜨리기라도 한 것처럼, 살벌하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
그리고 이내, 먼저 움직임을 보인 것은 화이트가 아닌 칼의 쪽이었으니.
그의 눈동자가 금빛 기운을 머금기 시작했다.
“……보여주도록 하지, 소년.”
나의 고유 마법을.
……고유한 나만의 세계를.
“열려라, 번개가 깃든 성지여.”
칼이 읊조리듯 중얼거렸고, 그에 따라 마나가 서서히 움직인다.
허공으로, 지면으로, 나아가 공간 그 자체에 기운이 깃들기 시작한다.
쿠궁, 쿠구궁…….
콰과과과광!
천천히, 번개가 하나둘씩 내리치기 시작한다.
‘이건…….’
그리고 그러한 움직임이 의미하는 바를, 화이트는 잘 알고 있었다.
고유 마법, 그건 실로 다양하기 그지없는 종류의 마법들을 창출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정형화된 형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영역을 장악하는 종류의 마법, 정확히는 고유한 세계를 창조해내는 마법.
심상 세계와도 닮은 부분이 있었으나, 조금은 다른.
‘공간 장악.’
굳이 말하자면, 가장 정석적인 형태의 고유 마법이었다.
……그러나, 그게 곧 난이도가 쉽다는 의미는 아니었기에.
그게 일으킬 변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떤 마법사가 펼치느냐에 따라, 똑같은 마법이라도 그 위력이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니.
──파직.
번개가 일었다.
금빛 번개가, 사납게 번뜩였다.
그리고 바로 직후, 공간이 갈라지기 시작한다.
다른 세계가 내려앉는다고 표현해도 좋았다.
화이트의 눈동자 위로 이채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아름답군.’
그건 진실된 감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다른 요소들을 전부 차치해 두고서라도, 현재 펼쳐지고 있는 마법은 실로 아름답기 그지없었으니.
화이트의 입꼬리가 천천히 위로 끌어올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는.
칼의 고유 마법이 끝내 완성되기까지에 이르렀고.
화아아아악!
『번개가 잠든 사막』
환한 빛이 경기장 전체를 밝혔다가, 이내 흩어진 직후에는.
경기장의 형태가 원천부터 달라져 있는 상태였으니.
“자, 전력으로 부딪혀 보자.”
파직, 파지직-
칼의 전신에 깃든 번개가 사납게 사방으로 흩뿌려진다.
눈동자에는 금빛 스파크가 일자로 길게 새겨져 있었고, 양팔과 양다리에는 불꽃과도 같은 형태로 번개가 맺혀 있었다.
과장을 조금 더해서 표현하자면, 그야말로 번개의 신이 강림하기라도 한 듯한 모양새였다.
관객석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경악, 그리고 혼란.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관객석 내부를 짙게 물들였고.
그런 경기장 한가운데에서, 한 소년과 청년이 서로를 그저 올곧게 마주보고 있었으니.
“이곳에서라면, 네가 나보다 뛰어난 마법사라고 한들 이길 자신이 있지.”
“…….”
침묵하는 화이트, 그러나 눈빛은 연신 반짝이고 있는 중이었다.
상당히 흥미롭다는 듯이, 화이트가 주변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리고 끝내 시선이 고정되는 곳은, 당연하게도 칼이 위치한 장소였고.
그러한 시선을 그저 담담하게 받아내며, 칼이 환한 미소를 입가에 걸쳤다.
“네 힘을, 마법을. 내게 보여줘 봐라, 소년.”
칼이 그렇게 중얼거린 바로 직후였다.
번개가 다시금 내려꽂혔다.
콰르르르르릉!
“……!”
다른 그 어느 곳도 아닌, 화이트가 서 있는 위치의 바로 위에서.
화이트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고, 이내.
쩌어어어어어엉!
고막을 찢어발기는 굉음과 함께, 경기장 전체가 금빛의 섬광으로 물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