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8)고위 마법사들의 전투
“말하지 않았나, 결승에서 만나게 될 거라고.”
“…….”
칼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화이트가 한숨을 내뱉었다.
……결국 결승까지 올라왔다.
올라오고 싶지는 않았으나, 거의 반쯤은 강제적으로.
‘아니, 아닌가?’
화이트가 살며시 고개를 기울였다.
결승에 올라온 것이 진정으로 그 자신의 의지였는지, 고민을 시작한다.
‘……물론, 스승님이 내건 조건에 눈이 돌아간 건 맞지만.’
그래, 그건 솔직하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그마치 소원이 아닌가.
그 무엇이든지 들어준다는 소원.
그것도 화이트가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셰라가 들어주는.
그런 소원권이라는 말이었다.
적어도 화이트에게 있어서, 그건 황제가 제국 전체를 넘기겠다고 해도 양도하지 않을 정도의 것이었으니.
‘……나도 정상은 아니란 말이지.’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화이트가 고개를 털어냈다.
“칼 폰 아지다하카.”
그리고 이내 정면의 칼을 직시한다.
어찌 되었든, 끝내 결승에 올라온 이상 우승을 노릴 것이기에.
화이트의 안광이 흐릿하게 번뜩였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는 게 좋을 거다.”
“음?”
의아하게 대꾸하는 칼을 향해, 화이트가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그렇지 않으면, 한순간에 결판이 날 테니까.”
삐이이이!
그 순간, 휘슬이 울렸고.
후욱!
“……!”
바로 직후, 칼은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던 화이트가 한순간에 그 모습을 감추는 것을 목도해야만 했다.
그의 고개가 다급하게 뒤로 돌아갔다.
카앙!
이윽고 울리는 한 차례의 금속음.
칼의 두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그의 시야에 서늘한 냉기를 흘리는 청백색의 창이 들어왔다.
직전 급조한 배리어로 막아내긴 하였으나, 그러한 배리어는 벌써 깨부숴지고 있었으니.
쩍, 쩌적.
“……쯧.”
한 차례 혀를 차며, 칼이 손을 휘저었다.
「블링크」
짧은 거리를 한순간에 주파하는 순간이동 마법과 함께, 그의 신형이 저 멀리 뒤로 물러나졌다.
잠시 틈을 벌었다고 생각했을까, 칼의 표정이 한순간 평온해졌으나.
“…….”
화이트는 그저 담담하게 손을 들어 올릴 뿐이었다.
웅-
우웅-
이내, 화이트의 뒤편의 공간이 일그러짐을 만들기 시작한다.
생성되는 것은 화이트의 손에 들린 것과 똑같은 형태의 창들.
그러나 그 개수가 심상치 않았다.
하나, 둘, 셋.
그러한 단위를 넘어서서, 두 자릿수에서 세 자릿수까지.
“……무슨.”
이윽고 그야말로 한순간에, 화이트의 뒤편에는 수백 개의 창이 생성되기까지에 이르렀으니.
당황한 목소리를 내는 칼을 향해, 화이트가 비죽 웃음을 흘렸다.
“받아낼 수 있으면 받아봐.”
입매를 사납게 비틀며, 화이트가 들고 있던 손을 아래로 내린다.
우웅…….
허공에 떠 있던 창들이 그런 화이트의 움직임에 동조하듯 공명했다.
“마도왕국의 후계자라, 그 수준이 궁금하긴 하니까.”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후욱!
화이트가 사나운 미소와 함께 손바닥을 앞으로 펼쳐 들었고.
“……!”
이윽고 칼은, 폭풍우가 쏟아지는 것과도 같은 기세로 그 자신에게 덮쳐드는 수백 개의 창들을 피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그의 눈동자에 청백색의 창이 담겼고, 그 직후.
콰과과과과광!
경기장 전체를 거칠게 요동치게끔 만드는, 한 차례의 폭발음이 강렬하게 터져 나왔다.
*****
관객석은 충격에 빠져 있었다.
다른 무엇도 아닌, 현재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있는 마법 대전의 결승전에 의해서.
혼란스럽다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그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눈앞에서 오롯이 일어나고 있었기에.
콰과과과광!
……청백색의 창들이 지면에 내리꽂힌다.
그를 피하기 위해서 금발의 청년은 그 자신의 육체를 한 줄기의 번개로 치환시켰고.
그런 청년을 눈으로 좇으며, 고작해야 10대 후반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소년이 사나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다시금 폭음이 사방을 강타하였으니.
콰아아아아아아앙!
“……!”
관객석에 자리하고 있던 대부분이 스스로의 귀를 막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고막이 찢어 발겨질 것만 같았기에.
그럼에도 경기장에서 시선을 떼어내지는 않는다.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작년 이맘때쯤 있었던 마법 대전 따위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화려하기 그지없는 마법들의 향연에.
단순히 하위 서클의 마법들이 오고 가는 게 아니었다.
최소로 잡아도 5서클의 마법들이 마치 1서클의 매직 미사일처럼 난사되고 있었고.
간혹 튀어나오는 6서클의 대마법은 경기장을 감싸고 있는 방어막을 금방이라도 깨뜨릴 것만 같았다.
불길이 일고, 얼음 기둥이 솟아오르고.
번개가 한 차례 내리꽂히며, 금빛 섬광이 경기장 한쪽을 거세게 강타한다.
관객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고작해야 소년, 청년으로밖에는 부를 수 없는 이들이 7서클 급의 마법전을 벌이고 있는 기괴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화려한 전투는 관객들의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묘한 위화감, 이질감 따위에는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경기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입을 작게 벌린 채로 침음성을 흘리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리고, 경기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는 자들은 단순한 관객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경기장의 상층부.
가장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게끔 되어 있는 특등석.
그곳에 앉아있는 사내.
다름 아닌 제국의 황제, 그의 표정 역시 상당히 굳어져 있는 상태였다.
애써 표정을 관리하고자 하는 듯 보였으나, 묻어나오는 일말의 당혹스러움은 차마 감추지 못했다.
‘……마도왕국의 왕태자가 이번 마법 대전에 참가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필히 우승자는 그가 되리라고 생각했는데.’
잘못된 판단이었나.
……물론 아직까지 결판이 난 것은 아니었으나.
황제는 알 수 있었다.
비록 그가 마법사는 아니었지만, 상황을 읽고 해석하는 눈은 갖추고 있었으니.
언뜻 보기에 치열한 접전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 같았으나, 실상은 달랐다.
세기의 천재라고 불리우던 칼 폰 아지다하카.
마도왕국의 후계자이자, 7서클의 마법사인 그 청년을.
화이트는, 화이트 클리포트는.
그저 태연하게 압도해 나가고 있었다.
견제의 용도로 5서클과 6서클의 마법을 난사하며.
금발의 청년, 칼이 빈틈을 보이는 순간마다 결정적인 공격을 꽂아 넣는다.
칼은 그런 공격을 막아내거나, 피하는 것에만 급급한 모습.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프리드리히로부터 저 소년의 경지를 전해 들었다고는 해도, 눈으로 직접 확인한 이후의 일은 별개의 이야기였다.
‘……실로 8서클이라는 말인가.’
황제가 미간을 찌푸리며 침음성을 흘렸다.
그리고 경악하고 있는 건, 그저 황제뿐만은 아니었다.
“……저게, 무슨.”
에이단이 충격으로 가득 찬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화이트가, 7서클이었어?”
“……농담이지? 7서클이면 대마법사 급을 코앞에 두고 있는 경지라고?”
세레나가 헛웃음을 터뜨렸고, 그에 애써 부정하듯 율리안이 고개를 휙휙 흔들었다.
페르시아와 조슈아, 그리고 크리스의 표정 역시 별반 다를 건 없었다.
도저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기색으로, 그들이 동공을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일곱 가문의 후계자들 중 다섯, 그리고 황녀까지 포함해 여섯 명의 소년소녀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단 한 명.
그런 상황 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는 소녀가 딱 한 명 있었으니.
‘……7서클, 그게 전부가 아닌데.’
겉으로는 태연한 태도를 유지하며, 오르카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적안은 시종일관 경기장의 화이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7서클, 그 경지는 물론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경지였으나.
화이트는 고작해야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그는 더욱 대단한 사람이고, 동시에 한 단계 더 높은 경지를 이룩한 대마법사였기에.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르카는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흐흥.”
작게 비음을 흘리며, 그녀가 짙은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화이트의 진면목, 그것을 알고 있는 자가 적어도 이 자리에서는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자니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간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짜릿했다.
홀로 비밀을 숨기고 있는 기분이라니, 어떻게 고조되지 않을 수 있을까.
‘두, 둘만의 비밀이라고 생각하면, 그건 그것대로 솔직히 기쁘고.’
물론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테지만?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또래의 애들 중에는 자신밖에 모르는 것 같으니까?
‘……아하하.’
그녀의 볼이 아주 살짝이지만 붉어졌다가, 이내 재빠르게 원상태로 되돌아갔다.
겉으로는 무표정을 유지한 채, 그러나 움찔거리는 입꼬리를 완벽히 통제하지는 못하며.
‘……화이트, 죽여버려! 그냥 확 날려버리라고!’
오르카가 속으로 화이트를 향해 끝없는 응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