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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97화 (98/158)

(EP.97)질투

“뭐, 이렇게 제국을 찾은 이유는 고대 문명의 스태프였지만. 이제는 목적이 조금 달라졌지.”

칼이 한쪽 입꼬리를 스윽 끌어올렸다.

화이트를 바라보는 그 시선에는 감출 수 없는 열망이 깃든 채였다.

“8강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 너와 겨뤄보고 싶다, 소년.”

“…….”

화이트의 표정은 여전히 무기질적이었다.

무어라 대꾸도 하지 않은 채, 화이트가 귀찮은 티를 팍팍 냈다.

그랬으나, 그럼에도 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화이트가 어떤 태도로 대응하든 상관하지 않고, 그가 말을 이어나갔다.

“6서클의 끝자락, 혹은 7서클. 내가 알기로 클리포트 가문의 후계자는 아직까지 5서클에 불과하다고 들었는데 말이지.”

그게 아니었던 거지.

덧붙이며, 칼이 무척이나 흥미롭기 그지없다는 표정을 띄웠다.

“어차피 너와 나는 결승에서 만나게 되어 있어. 굳이 그렇게 딱딱한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나?”

칼이 어깨를 으쓱이며 내뱉었고, 그제서야 화이트가 입을 열었다.

“우선 하나, 나는 딱히 그쪽과 힘겨루기를 할 생각이 없어.”

“왜지?”

칼의 반문에 화이트가 즉답했다.

“흥미가 없으니까.”

그야말로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대꾸에, 칼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렇게까지 단호하게 잘라낼 줄은 몰랐군. 이건 예상치 못했어.”

테이블에 턱을 괴며, 칼이 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때쯤에는 화이트도 다시 입을 닫았으니.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고.

“……냠.”

그저 파르페를 떠먹는 아셰라가 내는 소리만이 잔잔하게 울려 퍼질 뿐이었다.

“……이만 돌아가지 그래, 칼 폰 아지다하카.”

화이트가 낮게 내리깐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명백한 축객령이었으나, 칼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굳이 돌아갈 필요가 있나. 나는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그쪽 말대로, 어차피 결승에서 만나게 될 텐데 더 이상 무슨 대화가 필요하다는 건지 모르겠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결승이 끝난 이후에라도 나의 상대를 해주겠다면 여기서 물러나겠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단순히 내 지레짐작인가?”

칼의 말에 화이트가 공허한 표정으로 손뼉을 두어 차례 쳤다.

“아니, 정확하게 맞췄어. 나는 그쪽이랑 굳이 쓸데없는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거든.”

“너무하군.”

“진실은 잔혹한 법이지. 새삼스럽게 상처라도 받았나? 그것참 미안하게 됐네.”

화이트의 비꼬는 듯한 어조에 칼이 허탈한 기색으로 웃음을 흘렸다.

기실, 이렇게까지 그를 귀찮은 듯 대응하는 자는 그리 많지 않았기에.

역으로 흥미가 생긴다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었다.

칼이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여전히 눈동자는 흥미로 반짝이고 있었다.

“이렇게 되니 궁금한 게 하나 생기는데, 하나 물어봐도 되겠나?”

“아니, 안 되는데.”

화이트의 즉각적인 거부의 말에도 불구하고, 칼이 말을 이어나갔다.

“요즘 대륙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주제가 하나 있지 않나. 그 부분에 관해서 궁금증이 생겼어.”

“…….”

화이트의 표정이 살며시 굳어졌다.

그건 무척이나 미약한 변화였고, 그렇기에 칼은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다.

그가 천천히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12마왕과 제국의 전면전. 다르게 말하면 그냥 전쟁이라고 표현해도 좋아.”

침묵하는 화이트.

그런 그를 향해, 칼이 날카로운 눈빛을 빛냈다.

“그에 관해서 혹시 아는 부분이 있나? 그래도 제국의 기둥이라 불리는 클리포트 가문의 후계자가 아닌가. 뭔가 알고 있는 정보가 있어도 그리 이상하지는 않다고 생각하는데.”

“…….”

화이트가 슬며시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의중을 파악하려는 듯이, 그가 칼의 눈동자를 오롯이 직시했다.

그에 고개를 돌리지도 않으며, 마찬가지로 시선을 그저 태연히 마주하는 칼.

잠시 묘한 정적이 감돌았으나,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우문이군.”

화이트가 짤막한 한마디를 내뱉었기 때문이다.

“역시 그런가?”

그리고 그런 화이트의 한마디에, 마치 예상했다는 듯 칼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화이트의 미간이 좁혀졌다.

“어차피 내가 대답하지 않을 걸 알고 있었으면서, 굳이 물어본 이유가 뭐지? 내가 그에 관한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한들, 외부인인 그쪽한테 말해줄 이유가 없는데.”

“맞는 말이야, 소년.”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이며, 칼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두드렸다.

뭐가 그리도 재밌을까, 연신 미소를 잃지 않은 채였다.

“그냥 궁금했거든. 내가 이 주제에 대해 꺼냈을 때, 네가 보일 반응이 말이야.”

“……반응이라.”

화이트가 읊조리듯 중얼거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입매를 비틀며, 화이트가 재차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디 만족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군. 내 무미건조한 반응이 그쪽의 궁금증을 해결해 줬나?”

“하하, 그걸 말이라고.”

칼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기색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야말로 일말의 동요조차 없더군. 우리 왕국의 능구렁이 귀족들을 상대하는 기분이야. 정말로 열아홉이 맞나?”

“열아홉이 아니면, 내가 무슨 노인네처럼 보이기라도 하는지 모르겠군.”

화이트가 비꼬듯이 내뱉었고, 그에 동의한다는 듯 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입꼬리가 재차 슬금슬금 올라가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명백한 열아홉의 소년인데 말이지. 뭔가 이질감이 느껴지는 건 단순한 내 착각일까.”

“단순하게 정신 연령이 높은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봤나?”

“그럴 수도 있고.”

가볍게 긍정하며, 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드디어 떠나는가 싶어 화이트가 얕게 한숨을 내뱉는다.

그러나 아직 할 말이 남았는지, 자리에서 일어났음에도 곧바로 걸음을 돌리지는 않는 칼.

화이트가 눈짓으로 아직 볼 일이 남았냐는 듯이 물었고, 칼이 어깨를 한 차례 으쓱거렸다.

“딱히 더 이상 용건이 남은 건 아니야. 그저 잘 부탁한다는 말을 안 한 것 같아서 말이지.”

“……뭐를 잘 부탁한다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음. 뭐라 말해야 할까. 왜인지 모르게 앞으로 자주 볼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탓에.”

“불쾌한 착각에 불과해.”

“하하하!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화이트의 강경한 어조에도, 기분 나쁜 티는 일절 내지 않은 채 칼이 몸을 홱 돌렸다.

“결승에서 만나자, 소년.”

“…….”

그러고는 진짜로 볼일이 끝났다는 듯, 그가 천천히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내 다시금 둘만 남은 자리에서, 화이트가 툭 내뱉었다.

“……기분 나쁜 놈입니다.”

“네?”

아셰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그런 아셰라의 반문에 화이트가 그제서야 그녀를 쳐다봤으니.

여전히 파르페를 맛있게 먹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대충 흘기며, 화이트가 말을 이었다.

“그냥,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영 마음에 안 드는군요.”

“으음.”

한 차례 침음성을 흘리는 아셰라.

그러나 이내 그녀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맺히기 시작했다.

그녀가 은근한 기색으로 화이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런 것치고는, 생각보다 대화를 잘 나누던걸요.”

“……예?”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되묻는 화이트, 그런 그를 향해 아셰라가 짓궂은 미소를 그려 보였다.

“생각보다 말을 잘 주고받더라는 얘기에요. 뭐, 딱히 너무 지나치게 견제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래봤자 제자님보다 약한 청년인데.”

“……그건 그렇지만.”

약간은 긍정을 표하면서도, 화이트가 영 마음에 안 든다는 기색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쯤에서 아셰라가 재차 입술을 떼어냈으니.

“저는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는데요, 저 청년.”

“……?”

화이트의 표정이 한순간에 싸늘하게 바뀌었다.

그러나 그런 기색을 눈치챘는지, 눈치채지 못한 척을 하는 건지.

아셰라는 그저 태연히 말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뛰어난 마법사는 언제나 환영이죠. 하물며 재능이 넘치는 젊은 청년이라면 더더욱.”

“…….”

화이트의 표정이 점차적으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돌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천천히, 무기질적인 빛을 띠어가고 있었다.

‘……죽이자.’

속으로는, 언젠가 한 번 품었던 생각을 재차 떠올리며.

화이트가 칼에 대한 인식을 한 단계 더 부정적인 형태로 하락시켰다.

……그리고.

‘귀엽기는.’

그런 그의 속내를 다 파악하고 있다는 듯이, 꿰뚫어보고 있다는 듯이.

아셰라는 그저 잔잔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으니.

‘질투하는 모습도, 그걸 애써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모습도.’

전부 귀엽게만 느껴진다고.

그런 생각을 조심스레 품으면서, 아셰라가 싱그럽게 웃음을 흘렸다.

……모든 행동이 하나같이 귀엽게 느껴지는 시점에서, 이미 패배한 게 아닐까.

무엇에 있어서 패배했느냐고 한다면, 그건 솔직히 잘은 모르겠으나.

‘제가 이런 감상을 느끼고 있다는 걸 말하면, 기고만장해지겠죠?’

그건 그것대로 귀엽긴 할 것 같았지만, 영 마음에 드는 선택지는 아니었기에.

‘후후…….’

그저 속으로만 그런 생각을 품으며, 아셰라가 기분이 좋다는 듯이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그야말로 그 나이대의, 외견에 어울리는.

소녀의 그것과도 같은 풋풋한 미소와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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