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96화 (97/158)

(EP.96)파르페

“……냠.”

“맛있습니까?”

“맛있는데요.”

“그렇습니까?”

“제자님도 한 입?”

“아뇨, 저는 괜찮습니다.”

아셰라가 내미는 포크를 뒤로 물리며, 화이트가 눈살을 살며시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달달한 것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기에.

달콤하게 생긴 파르페는 아셰라에게 전부 양보하고, 화이트는 그저 물로만 목을 축였다.

“왜 이 맛있는 걸 안 먹을까요. 가끔씩 보면 제자님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어요.”

“……저로서도 나이는 먹을 대로 먹었으면서 막대 사탕이나 좋아하는 스승님이 이해하기 힘듭─”

“거기까지, 그 입 닥치세요.”

“예.”

파르페를 한 입 떠먹고 살벌하게 눈빛을 번뜩이는 아셰라, 그에 화이트가 곧바로 즉답했다.

화이트는 그 자신의 스승이 용인하는 선을 잘 계산할 수 있었다.

아마 여기서 나이에 대해 한마디만 더했다가는 곧바로 벼락이 떨어져 내리지 않을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품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파르페를 먹는 아셰라를 쳐다보던 화이트.

“…….”

그러나 이내, 그의 표정이 한순간에 싸늘하게 바뀌었으니.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무슨 볼일이십니까?”

고개도 채 돌리지 않은 채, 화이트가 그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일견 혼잣말로도 보일 만한 중얼거림이었으나, 참으로 의아하게도 대답은 뒤편에서 들려왔다.

“아니, 그저 궁금한 게 생겨서 말이지.”

“대답해 줄 생각 없으니 돌아가시지요.”

“하하, 이거 싸늘한 성격의 친구였군.”

고개만 살짝 홱 틀며, 화이트가 뒤편의 의자에 자리를 잡은 금발의 청년을 무기질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청년, 칼 폰 아지다하카가 입꼬리를 스윽 끌어올렸다.

“무얼, 그냥 대화나 나눠보고자 찾아왔지. 문제가 되나?”

계속해서 무표정을 유지한 채, 화이트가 낮게 내리깐 목소리로 대꾸했다.

“무척이나 문제가 됩니다, 그냥 빨리 돌아가는 걸 추천드리죠.”

“하하하……. 이것 참, 거부당하는 건 신선한 기분이군.”

칼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이내, 그의 표정에서도 서서히 미소가 지워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눈빛만큼은 여전히 흥미로운 빛을 띠고 있었으니.

“……클리포트의 후계자, 화이트 클리포트.”

“…….”

“맞나?”

화이트의 표정이 착 가라앉았다.

이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화이트.

몸을 틀며, 그가 칼을 직시했다.

“맞다면?”

“말투가 바뀌었군.”

“내 신분을 알고 있다면 굳이 존대를 유지할 이유는 없지.”

태연히 대답하며, 화이트가 여전히 자리에 앉아있는 칼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그건 꼭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무리 마도왕국의 왕실 출신 인물이라지만, 클리포트 가문의 후계자라면 신분상으로도 마냥 밀리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게 설령 마도왕국의 왕태자일지라도 말이다.

화이트의 얼굴 위로 무척이나 귀찮은 기색이 떠올랐다.

“뭐가 목적이지, 칼 폰 아지다하카.”

그렇게 내뱉으며, 화이트가 슬쩍 아셰라를 흘겨봤다.

마치 재밌는 구경거리를 관람하듯이, 그녀가 파르페를 한 입씩 떠먹으며 그 금안을 반짝이고 있었다.

‘하아…….’

그에 속으로 한 차례 한숨을 흘리며, 화이트가 눈가를 짓눌렀다.

그리고 이내 작게 뜬 눈으로 다시금 칼을 쳐다본다.

“…….”

……그가 자신의 신분을 알고 있는 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무리 가문명을 밝히지 않았다지만, 애초에 마법 대전에 참가하기를 ‘화이트’라는 이름으로 참가했으니.

특징적인 백금발, 그리고 바다를 담은 듯한 벽안이라면 알 만한 자들은 이미 다 눈치챘을 터.

그렇기에, 그 부분에 의문을 가지지는 않는다.

불쾌함은 느낄 수 있어도, 이상함을 느끼지는 않는다는 뜻이었다.

화이트가 재차 입을 열었다.

“용건이 없으면 나는 그만 가볼 텐데, 그래도 되나?”

“아, 그건 안 되겠는데. 나는 네게 무척이나 관심이 많거든, 소년.”

“…….”

칼이 내뱉은 말에 화이트가 몸을 한 차례 파르르 떨었다.

그러나 그것이 두려움이나 공포에 의함은 절대 아니리라.

닭살이 오소소 돋는 것만 같은 감각에, 화이트가 있는 대로 인상을 구겼다.

관심이라니.

대체 무슨 의미에서의 관심이란 말인가.

……물론 당연하게도, 그건 마법사로서의 관심일 테지만.

그런 말을 내뱉으면서 칼이 지어 보인 눈웃음과, 그 오묘한 어조에서 화이트는 소름이 돋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화이트가 인상을 찌푸리자, 그제야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 걸까.

“……잠깐, 잠깐.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게 아니다.”

“나는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때로는 말이 아니라 표정으로 뜻을 해석할 수도 있는 법이지. 그런 경멸하는 듯한 시선은 치워줬으면 좋겠군. 그런 오해는 나도 원치 않으니까.”

말을 끝맺으며 칼이 한 차례 헛기침을 내뱉었다.

“…….”

“…….”

어딘가 모르게 서로가 불편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흐응…….’

그리고 그때까지도, 아셰라는 그저 흥미롭게 상황을 관망하는 중이었다.

상황 자체가 흥미로웠던 탓도 있었으나, 그녀가 눈을 반짝이는 이유는 단순히 그뿐만이 아니었다.

스승으로서, 화이트를 가르치는 입장으로서.

무언가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번뜩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셰라의 시선이 칼과 화이트를 한 차례씩 훑고 지나갔다.

‘20대 초반에 7서클에 오른 천재 마법사, 그리고 채 20대가 되기도 전에 8서클에 오른 괴물 같은 제자님이라…….’

어떻게, 잘 붙여놓으면 좋은 라이벌 관계가 될 수도 있지 않겠나.

스승으로서 제자에게 최적의 경쟁 상대가 생기는 건 바라마지 않던 좋은 일이니까.

아셰라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번 마법 대전의 결승전은, 정말 재밌어지겠는데요.’

*****

“마도왕국의 후계자인 내가 굳이 제국의 마법 대전에 참가한 이유는 하나뿐이지.”

“…….”

침묵하며,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화이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은 그저 미소와 함께 말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우승 상품으로 걸려 있는 고대 문명의 스태프, 연구 가치가 충분하지 않겠나. 흥미가 돋았단 말이야.”

“……그런 게 걸려 있었나?”

저도 모르게 반문하고 마는 화이트.

그에 칼의 표정이 살짝이지만 오묘해졌다.

“우승 상품이 뭔지도 모르고 마법 대전에 참가한 건가? 아니, 그럼 왜 참여한 거지?”

칼의 목소리에서는 감출 수 없는 의아한 기색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에 화이트가 한 차례 헛기침을 내뱉었다.

슬쩍 아셰라를 흘겨본 그가, 이내 관자놀이를 살며시 짓눌렀다.

기실, 그가 마법 대전에 구태여 참여한 후 진심을 다하게 된 이유는 전부 그녀 때문이었으니.

마법 대전의 예선에 참가한 이유는 아셰라의 도발 탓이었고, 본선에서 진심을 다하고자 마음을 먹은 것은 그녀가 내건 조건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칼을 압도적으로 짓누르고자 한 것 역시, 아셰라가 원인이라면 원인이었고.

‘아니, 그냥 내가 너무 도발에 쉽게 걸려든 건가?’

……그런 건가?

턱을 한 차례 쓸며, 화이트가 진지하게 고민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나는 단순한 성격이었던 걸까.’

……그건 그닥 마음에 드는 결론은 아니었다.

그에 자연스레 화이트의 표정이 일그러졌고, 그쯤에서 화이트의 시선이 향한 곳을 눈치챌 수 있었을까.

칼의 오묘한 눈빛이 이내 화이트에게서 아셰라에게로 옮겨졌다.

“그러고 보니 소년, 저 흑발의 소녀는 너의 일행인가?”

“…….”

……그리고.

그 물음에.

그 간단하기 그지없는, 단순하다면 단순한 질문에.

화이트는 순간적으로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만 같은 감각에 휩싸여야만 했다.

이 감정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잘 알 수는 없었다.

정확하게 하나의 감정으로 정의 내릴 수 없었다는 게 약간은 불편했으나.

딱 하나, 명백하게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의 정체를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그건, 얕지만 분명한 분노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유는 모른다.

모르겠으나.

젊은 나이에 7서클에 오른 칼에게 흥미를 보이던 아셰라,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시선을 주는 칼을 보고 있자니.

왜인지는 몰라도, 무척이나 기분이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화이트의 표정이 그 이상 없을 정도로 험악하게 바뀌었다.

“칼 폰 아지다하카.”

“음?”

의아하게 반문하는 칼을 향해, 화이트가 냉기가 서린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 벽안은 어느새 끝을 알 수 없는 심연과도 같이 깊게 침체된 상태였다.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지 마라. 말도 걸지 말고, 시선도 주지 마. 이건 경고다.”

“……?”

고개를 갸웃하는 칼,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화이트가 재차 입을 열었다.

“경고를 무시할 경우, 내가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나도 장담하지 못하니까. 알아서 잘 처신하도록.”

“…….”

“…….”

정적.

세 사람을 중심으로, 서늘한 정적이 한순간에 내려앉았다.

당연하게도 그 시발점은 화이트가 내뱉은, 어쩌면 오글거린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한 그 한마디였으니.

“……푸흡.”

그 오묘한 정적을 깨뜨린 것은, 다름 아닌 아셰라의 미약한 웃음소리였다.

무엇이 그리 웃긴 것인지, 그녀가 소매로 입을 가리고 연신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아, 아핫. 아하하하!”

“……?”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웃음소리에 화이트는 그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 지금, 이 상황에서, 이 분위기에서 저런 식으로 웃음을 터뜨리는 거란 말인가.

화이트는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자신의 말이 다른 자들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갔을지, 그 간단한 추측조차 하지 못한 채.

“핫.”

그리고 그쯤에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칼 역시 헛웃음을 내뱉었으니.

그의 표정 위로 조금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빛이 떠올랐다.

동시에 어딘가 묘하게 흥미로워하는 듯한 빛 역시.

칼의 시선이 화이트와 아셰라를 한 차례씩 스치고 지나갔다.

이내 그가 진심으로 재미있다는 듯이, 입꼬리를 진하게 끌어올렸다.

“걱정하지 마라, 소년.”

“……?”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장담해 두지. 이건 왕실의 이름을 걸고 맹세해도 좋아.”

뭐가 그리도 웃긴 것인지, 연신 미소를 흘리며 칼이 말을 이어나갔다.

금방이라도 폭소를 터뜨릴 것처럼, 애써 감정을 내리누르는 듯한 표정과 함께.

“나는 남의 연인에 탐을 낼 정도로 뻔뻔하지 않고, 애초에 내게는 약혼자가 있다.”

“……아.”

그리고.

……그리고.

그렇게 칼이 내뱉은 말에, 그제서야 자신이 무슨 말을 꺼내 들었던 건지 깨달을 수 있었을까.

참으로 늦은 깨달음이었으나, 그건 화이트의 수치심을 더욱 크게 끌어올릴 뿐이었다.

“…….”

화이트의 표정이 한순간에 돌처럼 굳어졌다.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지 마라. 말도 걸지 말고, 시선도 주지 마. 이건 경고다.

-경고를 무시할 경우, 내가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나도 장담하지 못하니까.

-알아서 잘 처신하도록.

……천천히, 그 자신이 내뱉었던 말들을 되새긴다.

그리고 드디어 눈치챌 수 있었다.

그 자신의 말이 어떤 어조로 내뱉어졌는지, 그리고 어떤 형태로 다가갔을지.

……칼과 아셰라에게 도대체 어떤 식으로 들렸을지.

“…….”

화악!

화이트의 입술이 일자로 꾹 닫히는 것과 동시에, 그의 표정이 한순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뒤늦게 찾아오는 수치심과 자괴감은, 그 어떤 정신계 공격보다도 더한 고통을 화이트에게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화이트가 무척이나 충격을 받은 기색으로 멍하니 눈을 깜빡이고 있는데.

“뭐예요, 제자님.”

아셰라가 짓궂은 미소를 입가에 건 채로 입을 열어왔다.

화이트의 고개가 삐걱거리며 그녀를 향해 돌아갔다.

“지금 질투한 건가요? 질투한 거죠? 응? 맞죠, 맞죠?”

“…….”

침묵하는 화이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셰라는 연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어떤 때보다도 행복하다는 듯이, 환한 미소와 함께 그녀가 화이트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댔다.

“이 스승, 조금 감동했다고요? 아, 저는 참 죄 많은 여자네요. 제자님한테 그런 감정을 품게 만들다니…….”

“…….”

“그래도 괜찮아요, 제자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자님이 저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 거잖아요? 저는 이해할 수 있어요.”

연신 입을 꾹 다무는 화이트의 옆구리를 툭, 어깨를 툭, 볼을 툭툭 두드리는 아셰라.

이내 그녀가 마치 소악마의 그것과도 같은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마무리 공격을 날렸다.

“그렇지만, 음. 그렇네요. ‘내가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나도 장담하지 못하니까’, 라니.”

“…….”

“조금, 아니, 생각보다 많이. 스승으로서 제법 부끄럽네요. 그냥 듣기만 한 저도 이럴진대, 제자님은 지금쯤 어떨지…….”

“…….”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요, 제자님.”

푹!

아셰라의 말이 형태를 이루어, 화살이 되어 화이트의 심장을 거세게 찔렀다.

비틀-

화이트가 한 차례 몸을 휘청거렸다.

그리고 생각한다.

‘죽을까?’

그저 내뱉는 것뿐만이 아닌, 진지하게.

화이트가 그나마 가장 덜 수치스러울 자살 방법에 대해 고심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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