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5)마도왕국
[마법 대전, 8강 첫 번째 시합! 지금 시작합니다!]
삐이이이!
사회자의 휘슬 소리가 울리는 것과 동시에, 화이트가 담담하게 마나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
재빠르게 마나로 이루어진 검을 만드는 중년의 사내를 바라보며, 화이트가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6서클의 배틀 메이지, 라고 했던가.’
분명 설명은 그렇게 들었던 것 같다.
8강쯤 되면, 대부분의 진출자들은 6서클을 달고 있었으니.
마법사라면 아무나 쉽게 참가할 수 있는 예선과는 그 격이 달랐다.
최소 마도사 급.
한 명 한 명이 국가의 전력으로 취급될 정도의 마법사들이 서로 부딪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상당한 관심 역시 쏠렸고.
화이트의 시선이 한 차례 사방을 훑었다.
관객석에는 빈틈이 없었다.
그야말로 빼곡이 들어찬 상태로, 관객들은 화이트와 그 상대인 사내에게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화이트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지나친 관심은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서 참가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었으나.
걸린 조건이 달라진다면, 이야기 역시 달라지게 되리라.
우승 상품 따위에는 관심 없었다.
황제가 직접 내리는 축복 역시 마찬가지.
애초에 클리포트 가문의 후계자로서 황제를 직접 대면하기까지 한 상태일진대, 그런 것들이 어디에 쓸모가 있겠는가.
그렇기에, 화이트가 기대하고 있는 건 단 한 가지였다.
-소원, 하나 들어줄게요.
“…….”
그건 바로, 어째서인지 아셰라가 마법 대전에서 우승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던 약속이었으니.
그런 약속을 구태여 한 이유는 알지 못했으나, 상관 없었다.
중요한 건 약속 그 자체에 있었다.
화이트의 입꼬리가 한없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쯤에서, 상대인 중년의 사내가 검을 들고 재빠르게 움직였으니.
파앙!
지면을 박차고, 사내가 한순간에 화이트의 코앞까지 접근했다.
양손과 무기에는 짙은 마나를 담은 채로, 그가 검을 일자로 내리그었다.
그리고 그 검은, 당장이라도 화이트의 가녀린 육체를 유린할 것만 같았다.
쩌어어어엉!
“……!”
……그랬으나, 들려온 것은 살을 베는 절삭음이 아니라 고막을 울리는 굉음이었다.
콰아아아아!
검을 휘두른 사내의 두 동공이 눈에 띄게 확장되었다.
그의 눈동자에 찬란한 푸른빛이 담기기 시작한다.
그 자신이 담아낸 그저 푸를 뿐인 짙은 빛깔의 마나와, 마치 맑은 바다를 연상케 하는 빛나는 푸른빛을 한 차례씩 응시하는 사내.
이내 그의 표정이 격정으로 물들었다.
당황, 혼란, 두려움, 질투.
혹은, 경외심.
그런 감정들을, 복잡미묘하기 그지없는 감정들을 얼굴 위로 띄우며.
“……큭!”
사내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가로로, 화이트의 육체를 반으로 쪼개버릴 기세로 말이다.
그러나, 그도 알고 있었다.
그 자신의 검이 눈앞의 소년을 베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걸.
어떤 형태로든 막히거나, 혹은 흘려보내질 것이라고, 확신에 가까운 직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검에 흘려보내는 마나의 움직임을 멈추지는 않았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그가 검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카앙!
“……컥.”
금속이 부딪히는 짤막한 소음과 동시에, 사내가 한순간에 뒤로 나가떨어졌으니.
“…….”
우웅-
그 양손에 푸른빛의 마나를 담은 채로, 화이트가 그런 사내를 오연히 내려다 보았다.
그야말로, ‘군림하는 자’의 눈빛이었다.
어찌 보면 클리포트 가문의 차기 가주로서, 어울리다면 어울릴 눈빛이었으나.
적어도 그 나이대의 소년이 가질 만한 눈빛은 아니었기에.
“……허.”
중년의 사내는 그저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처참하게 반으로 쪼개진 그 자신의 마나 블레이드를 내려다보던 사내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완벽하게 체념한 기색이었다.
“……내가 졌다, 소년.”
삐이이이!
사내가 중얼거림과 동시에, 다시금 휘슬이 울려 퍼졌다.
[승자, 화이트!]
와아아아아아아!
사회자의 승리 선언과 함께, 관객석에서 경기장을 뒤흔들 정도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승리.
일말의 상처조차 없이 6서클의 배틀 메이지를 제압한 소년에게, 관객들은 가감 없는 환호를 보냈다.
그에 조금은 감정이 이래저래 동요할 법도 했으나, 화이트는 그저 태연했다.
“…….”
표정은 여전히 무기질적이었으며, 태도는 한결같았다.
중년의 사내, 6서클의 마법사를 향해 최소한의 예의로 고개를 한 차례 숙이고는, 화이트가 경기장 안쪽의 대기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호오…….”
그런 화이트를, 경기가 시작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직시하고 있던 청년이 한 명 있었으니.
특이하게 반짝이는 금발을 한 차례 휘날리며, 그 청년이 흥미가 깃든 눈동자를 빛냈다.
대기실로 걸어가며, 끝내 그 모습을 감추는 화이트를 향해 시선을 계속해서 옮겨가던 청년.
씨익!
이내 그가 무척이나 기쁜 기색으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눈동자뿐만 아니라, 표정 위로도 감출 수 없는 흥미로움이 떠올라 있는 채였다.
“뭐 하는 자일까, 저 소년은.”
이내 작게 중얼거리며, 청년이 손목을 툭툭 두드렸다.
“내가 이 정도로 관심을 갖게 만들다니, 쉽지 않은 일인데.”
청년이 한 차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기실, 그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대상은 무척이나 한정되어 있었으니.
고작해야 스무 살이 채 되지 못해 보이는 소년에게 관심을 가질 정도라면, 그건 그만큼 그 소년에게 특별한 점이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실제로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경기이기도 하였고.
“……흐음.”
청년의 눈꼬리가 요사하게 휘어졌다.
“설마하니 7서클일까, 그도 아니면 6서클의 극의를 본 걸까.”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청년이 한 차례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느 쪽이든 아주 흥미로워. 결승에서 만날 수 있다면 좋겠군.”
이내 청년이 몸을 돌려 관객석에서 벗어난다.
당장 그 자신의 경기가 다음 차례에 예정되어 있었기에.
“하하하…….”
잔잔한 웃음소리를 흘리는 청년.
그의 가슴팍에는 하나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고목으로 만들어진 것만 같은 기다란 스태프, 그리고 그런 스태프의 몸체를 감싸고 있는 푸른빛의 기운.
……그 문양이 뜻하는 바는, 다름 아닌 마도왕국(魔道王國)의 왕실이었으니.
파직-
한 차례, 금빛의 마나를 흩뿌리며.
청년이 경기장으로 발을 내디뎠다.
*****
“…….”
경기를 끝내고, 화이트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관객석의 구석진 곳에서 경기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자신의 스승인 아셰라와 함께.
어째서인지, 스승과 제자 두 사람 모두의 표정이 영 심상치 않은 빛을 띠고 있었다.
“……제자님.”
“예.”
아셰라의 물음에 대답하며, 화이트가 경기장으로 나선 어느 한 청년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리고 그건 아셰라 역시 마찬가지.
청년을 상대하는 마법사에게는 신경 쓰지 않는다.
오로지 금발의 청년에게만 시선을 고정시키며, 아셰라가 재차 입을 열었다.
“쉽지 않겠는데요, 결승은.”
“……그렇습니까?”
약간은 의문조로 대꾸하는 화이트.
그러나 그도 알고 있었다.
그녀, 아셰라의 말에는 틀린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난감하게 됐네…….’
속으로 작게 중얼거리며, 화이트가 눈살을 찌푸렸다.
어느새 경기는 시작된 채였다.
삐이이이!
이제는 익숙해진 휘슬 소리와 함께, 경기장에 선 두 마법사가 마나를 끌어올렸다.
“……휘몰아치는 폭풍이여, 내 부름에 답하라.”
먼저 영창을 시작한 건 청년이 아닌, 그 상대방이었으니.
휘오오오!
부자연스러운 바람이 사내의 전신에 깃들기 시작했다.
사내의 육체를 한 바퀴 휩쓴 바람은, 이내 그의 스태프의 끝부분에 맺힌다.
일점으로 응축되며, 강렬한 기세를 천천히 풍기기 시작하는 바람의 기운.
그건 쉽게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상당한 양의 마나가 담긴 강력한 6서클의 마법이었으나.
“…….”
금발의 청년은 그저 담담했다.
태연자약하게 보일 정도의 태도로, 청년이 입꼬리를 슬며시 끌어올렸다.
자칫하면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처럼도 보일지 모를 태도, 그에 바람을 있는 힘껏 이끌어내던 사내가 인상을 찡그렸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자신을 무시하는 상대, 그것도 마법에 있어서의 일이라면, 그 어떤 마법사라 해도 격하게 올라오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 하리라.
까득!
사내가 이를 거칠게 갈았다.
그 자신을 대놓고 얕잡아보는 청년의 모습에, 치솟으려는 수치와 분노를 구태여 참지 않는다.
그런 감정마저 스태프에 실은 채로, 사내가 영창을 마무리지었다.
“……나의 적을 거칠게 난도하라, 바람의 칼날이여.”
후욱!
바로 직후, 사내의 스태프에 깃들었던 바람이 곧바로 청년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청년의 바로 눈앞까지 바람이 당도하는 건, 그야말로 채 수 초가 걸리지 않았고.
‘……이겼다.’
사내가 승리를 확신했을 즈음.
“──.”
드디어 청년이 움직임을 보였으니.
한 차례, 입술을 달싹이는 청년.
그리고 이내 짤막한 한마디를 내뱉는다.
“─내리꽂혀라.”
그 짧디짧은 한마디가 끝이었다.
청년의 정면, 공간이 미세하게 일그러졌고.
……이윽고.
콰르르르르릉!
“……!”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서, 짙은 금빛을 번쩍이는 번개가 내려쳤다.
일말의 비명조차 내지를 수 없었다.
그저 전신이 마비되기라도 것처럼, 사내가 허무하게 그 육체를 무너뜨렸다.
[…….]
“…….”
경기장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어, 어.]
사회자 역시 당황한 듯, 무어라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는다.
그러나 이내 그 자신의 역할을 자각할 수 있었을까.
[……승자!]
사회자가 요동치는 목소리를 애써 억누르며 소리를 질렀다.
[마도왕국 왕실 소속, 칼 폰 아지다하카!]
승리가 확정되고 나자, 청년, 칼은 망설임 없이 몸을 홱 돌렸다.
……돌리면서, 시선을 관객석의 한쪽으로 향하게끔 한다.
“…….”
화이트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바로 그 자신을 올곧게 직시하며, 짙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칼의 눈빛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쯧.”
한 차례 혀를 차며, 화이트가 싸늘한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웠다.
그리고 그쯤에서, 화이트의 옆에 자리하고 있던 아셰라가 입을 열었으니.
“……7서클, 인가요.”
“…….”
“고작해야 20대 초중반으로밖에는 안 보이는데, 상당히…….”
흥미롭고, 제법 놀랐다고 덧붙이며.
아셰라가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화이트를 흘겨봤다.
“어때요, 이길 수 있겠어요? 제자님.”
“…….”
아셰라의 말에 화이트의 표정이 착 가라앉았다.
그야말로 북풍한설을 연상케 하는 서늘한 기색으로 눈동자를 번뜩이며, 그가 이를 악물었다.
‘좋아, 죽이자.’
속으로는 그런 살벌하기 짝이 없는 생각을 품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