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4)자식의 성장
“아버지.”
“……듣고 있다.”
흔치 않게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부친의 모습에, 오르카가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것일까.
……어째서 자신을 걱정하는지, 왜 화이트에게 그러한 말을 내뱉었는지.
그 이유 자체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화가 나는 건 화가 나는 것이었다.
할 말이 있으면 자신에게 해야지, 어째서 아무런 잘못도 없는 화이트를 핍박하는가.
오르카의 눈빛이 싸늘하게 바뀌었다.
“화이트는 내게 선택지를 제시했을 뿐이고, 그 손을 잡은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야.”
그러니까, 선택은 자신이 내린 것이라며.
그렇게 덧붙이고는, 오르카가 진지한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웠다.
평소의 장난스러우면서도 묘하게 소악마의 그것과도 같은 미소는 없었다.
그저 진중한 기색으로, 오르카가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오빠의 원수는 갚았어. 그뿐이야.”
“…….”
그리고, 그 단순한 한마디.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감정들만큼은 절대 단순하지 않은, 그런 한마디에 분위기는 삽시간에 무겁게 가라앉았고.
동시에 밤피르 후작의 표정이 슬픔과 죄책감으로 물들었으니.
그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입술을 얕게 깨물었다.
“…….”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복수니, 원수니 하는 것들과는 관계가 없는, 양지의 세계에서 살아가 줬으면 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밤피르 가문의 가주가 될 인물로서 겪어야만 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 자신의 아들인, 아니, 아들이라고 생각했던 루이 밤피르의 소식을 들었을 때.
고민했다.
이걸 오르카에게 알려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고민하고, 또 고심했으나.
끝내 자신은 오르카에게 그에 관한 것을 알리는 선택을 했다.
다름 아닌 오르카의 형제의 일이기도 하였고, 그런 만큼 오르카도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리고 그 이후 오르카가 제도를 뛰쳐나가고 나서야 후회했다.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가.
그 자신의 오빠를 유독 따랐고, 또 신경 쓰던 아이였던 만큼.
알리지 말았어야 했던 것일까.
“…….”
……다행히, 당시 오르카는 무사히 황궁으로 돌아왔었다.
그 과정에서 클리포트 공작의 아들인 화이트 클리포트가 큰 기여를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렇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던 것이지.’
……그래, 끝이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화이트 클리포트는 마왕을 죽이러 가는 길에 있어서 오르카를 동행시켰다.
평범한 마왕이었다면 모를까, 하필이면 루이 밤피르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는 그 마왕을 죽이러 가는 길에 말이다.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고, 하나뿐인 딸에게 상처가 새겨지지는 않았을까 걱정했다.
마음에 크나큰 상처를 입은 채 홀로 앓아대지는 않을까.
슬픔에 잠식되어, 어쩌면 안 좋은 길로 새버리지는 않을까.
그렇게 걱정했고, 또 고민했다.
……그러나.
‘……끝내 너는, 이겨냈구나.’
복수를 끝내고, 돌아온 오르카의 표정은 절망하는 자의 그것이 아니었다.
가끔씩 우울한 표정을 짓고는 하였으나, 적어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지는 않았다.
밤피르 후작이 괴로운 기색으로 입술을 꾹 깨물었다.
……어찌 이리도 한심한 아버지가 있을 수 있을까.
자식이 위험한 길로 스스로 걸어가는 것도 모른 주제에, 그런 자식이 이미 성장해 있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니.
그저 그 자신이 너무나도 무능하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해주지 못했다.
그랬으나, 그럼에도 오르카는 훌륭하게 성장해 주었다.
……감사하다면 감사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
밤피르 후작의 표정 위로 씁쓸한 감정이 떠올랐다.
동시에, 아련함 역시.
그리고 이내,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한다.
“안심했다, 오르카.”
“……응?”
오르카가 당황한 듯 의문성이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약간은 괴로운 기색이 남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리고, 미안하다.”
밤피르 후작이 오르카의 어깨를 약하게 두드렸다.
그 나름대로의 감정을 표시하는 방법이었고, 오르카 역시 그를 모르지 않았기에.
“……왜 그래, 아버지?”
표정을 걱정으로 물들이며, 오르카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리고 그런 딸의 모습에, 밤피르 후작이 한 차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찌 이렇게 착한 아이가 달리 있을까.
이 부족한 아버지에게, 너는 그럼에도 그렇게 미소를 지어 주는구나.
“……루이는, 네 오라비인 동시에 내 아들이기도 했지.”
이윽고, 밤피르 후작이 고요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표정 위로는 씁쓸함이, 동시에 슬픔이, 그리고 마왕에 대한 분노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함께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구나. 네게 무거운 짐을 안겨주고 말았어.”
“……아버지.”
그쯤에서 밤피르 후작의 말에 담긴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까.
오르카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고, 그에 밤피르 후작이 옅게 미소를 지었다.
마치 괜한 걱정을 끼치기는 싫다는 듯이.
“……나는 이만 돌아가 보겠다. 축제, 즐기길 바라마. 오르카.”
그리 내뱉으며, 밤피르 후작이 몸을 돌렸다.
“…….”
그리고 여러모로 복합적인 감정이 담긴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오르카를 뒤로 하고, 그가 그 신형을 한순간에 감췄다.
오르카의 고개가 위로 들려진다.
한 줌의 핏물로 변해 날아가는 그 자신의 부친의 모습을 살피며, 오르카가 살며시 한숨을 내쉬었다.
……여러모로 복잡한 감정이 서린 듯한, 그런 무거운 한숨이었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 위로 우울한 기색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계속해서 지켜보던 두 사람이 있었으니.
“……뭐해요? 얼른 가서 위로해 주지 않고.”
“……저보고 말씀하신 겁니까, 지금?”
“그럼 여기 제자님 말고 달리 누가 있어요? 바보 아니에요?”
“아니, 그게…….”
말을 툭툭 주고받으며, 화이트와 아셰라가 서로의 눈빛을 한 차례 마주했다.
화이트의 동공이 불안한 기색으로 한 차례 떨렸다.
“……아하.”
그리고, 그런 움직임에서 화이트의 감정을 짐작할 수 있었던 걸까.
아셰라가 기쁜 표정으로 한쪽 입꼬리를 슬며시 끌어올렸다.
“뭐예요, 제 눈치를 보는 건가요? 제가 질투할까 봐?”
“……크흠.”
한 차례 헛기침을 내뱉는 화이트.
그러나 부정은 하지 않는 모습이었고, 그에 아셰라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귀여워라.’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품으면서, 아셰라가 허락한다는 듯이 화이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괜찮아요, 이번에는. 제가 한발 물러서 줄게요, 제자님.”
오르카라는 소녀가 솔직하게 마음에 들기도 했고, 그렇기에 한 번 양보하는 것이라며.
아셰라가 그렇게 덧붙였으나.
“……괜찮은 거 맞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이트는 굳이 한 차례 더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니까요?”
그에 즉각 대꾸하며, 아셰라가 살짝은 기분 나쁜 기색으로 인상을 찡그렸다.
아니, 자신이 그렇다는데, 왜 두 번씩이나 물어보는 것이란 말인가.
“괜찮으니까 어서 가서 영애를 보살펴 줘요. 저러다가 엇나가면 제자님이 책임질 거에요?”
“…….”
아셰라의 그런 말에도 화이트의 구겨진 표정은 영 펴지질 않았다.
그에 이상함을 느꼈는지, 아셰라의 눈빛이 미묘한 빛을 띠어가기 시작했다.
“뭐야, 설마 오르카 영애를 저렇게 내버려 둘 생각인 거예요? 지금 당장 울 것 같은 표정 짓고 있잖아요.”
“아뇨, 그게 아니라…….”
약간은 감정이 실린 아셰라의 말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화이트가 볼을 긁적였다.
이어서, 화이트가 조금은 떨떠름한 기색으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괜히 질투 난다고 제 머리 위로 운석이라도 떨어뜨리면 안 됩니다.”
“…….”
아셰라로 하여금, 한순간에 그 표정을 싸늘하게 굳히게 만들 그런 한마디를 말이다.
아셰라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제자님.”
“예?”
즉각 반문하는 화이트를 향해, 아셰라가 완드를 들이밀었다.
한 차례, 푸른빛의 마나가 완드의 끝부분에서 일렁거렸고.
화이트가 몸을 흠칫 떨 즈음, 아셰라가 재차 입을 열었으니.
“……요즘 들어 자꾸 건방지게 행동하시는데, 진짜 날 잡고 저랑 오붓하게 육체의 대화라도 나누고 싶나 봐요?”
“……!”
화이트의 표정이 한순간에 창백하게 질렸다.
그리고 바로 직후, 화이트가 고개를 재빠르게 도리도리 저었다.
“아닙니다, 스승님. 제가 어찌 하늘 같은 스승님께 건방지게 굴 수 있단 말입니까. 당장 분부하신 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화이트가 말 그대로 빛의 속도로 아셰라에게서 멀어졌다.
직전 아셰라가 내뱉었던 말을 떠올리며, 오르카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는 화이트.
그제서야 아셰라가 표정을 풀고 얕게 한숨을 내쉬었으니.
“……건방져요.”
화이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슬며시 살벌한 빛을 띠어가고 있었다.
한 차례, 윗입술을 혀로 핥으며.
“……어떻게 할까요, 자꾸 기어오르려고 하는 저 귀여운 제자님을.”
그녀가 그 자신의 제자를 교육하기 위한 수단을 고르기 시작했고.
동시에, 그런 그녀의 표정 위로 야릇한 기색이 떠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