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3)절대적 갑
“왜 그랬나?”
밤피르 후작이 제일 먼저 내뱉은 말이었다.
화이트의 표정이 의아함으로 물들며, 동시에 그가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밤피르 후작이 말을 이어나갔다.
“왜, 오르카를 그 자리에 데려갔나.”
“…….”
그리고 그 두 번째 말에서, 그제야 화이트는 밤피르 후작의 용건을 눈치챌 수 있었다.
‘분명, 에드발트 경이 내 존재를 공표한다고 했었지.’
그게 아마 에멜을 죽이고 돌아온 뒤에 나눈 대화에서 나온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밤피르 후작을 비롯한 일곱 가문의 가주들에게도 통보가 됐다면, 밤피르 후작이 모르는 것이 더 이상하리라.
얌전히 입을 꾹 다물며, 화이트가 밤피르 후작의 말을 기다렸다.
“……내 아들을 죽인 마왕을 네가 죽였다고 들었다.”
“예, 그렇습니다.”
즉시 긍정하는 화이트.
그에 밤피르 후작의 표정이 다시금 오묘해졌으나, 화이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다 알고 온 마당에 더 숨길 이유는 없었으니.
화이트가 당당한 태도로 밤피르 후작을 직시했다.
“굳이 오르카를 동행시킬 이유가 있었나?”
“동행시키지 않을 이유는 달리 있겠습니까.”
후작이 물었고, 화이트가 대답했다.
밤피르 후작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아직 어린 아이다. 형제를 죽인 마왕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떠난다니, 절대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했을 터.”
무척이나 괴로운 기색으로, 밤피르 후작이 그리 말했으나.
화이트는 그저 담담할 뿐이었다.
“오르카는 저와 동갑입니다, 각하.”
“…….”
화이트의 말에 밤피르 후작이 이를 악물었다.
“그런 걸……. 얘기하고자 하는 게 아니지 않겠나.”
사아아아-
……서서히, 밤피르 후작의 몸에서부터 핏빛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화이트의 눈동자에 이채가 내려앉았다.
루이 밤피르의 그것에 비교하면 부족했으나, 그럼에도 가히 일곱 가문의 가주라 칭할 만한 힘이었다.
그러나, 새삼스레 압박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명백하게 말해서, 지금의 밤피르 후작은 8서클에 오른 자신보다 하수라고 할 수 있었기에.
겁을 먹을 이유 따위,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할 이유 따위 하등 없었다.
“복수를 이루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런 부담 없이 말을 꺼낸다.
“……뭐라?”
밤피르 후작이 미간을 찡그리며 되물었고, 그에 화이트가 천천히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애초에 그 자신의 오빠가 마왕이었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제도를 뛰쳐나간 녀석입니다. 그렇게 개죽음을 맞이할 바에는, 저의 도움을 받아 현실적인 복수를 목표로 삼을 필요가 있어 보였습니다.”
“…….”
“결국 끝내, 오르카는 자신의 복수를 이룩해냈습니다. 저로서도 그녀에게 약간의 도움을 받았으니, 서로에게 좋은 결과가 있었다는 거겠죠.”
그리 내뱉으며, 화이트가 한 차례 말을 끊었다.
그리고 밤피르 후작의 표정을 슬며시 살핀다.
이를 악물고 있는 모습이, 화이트의 말이 영 좋게 들리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까득!
한 차례, 거칠게 이를 가는 소리가 골목길에 울려 퍼졌다.
밤피르 후작이 그 핏빛 눈동자를 살벌하게 번뜩이며 입을 열었다.
“……헛소리를 하는구나, 화이트 클리포트.”
“제 말의 어느 부분이 헛소리로 들렸습니까?”
“모든 것이, 내게는 헛소리로만 들렸다.”
“그렇다면 안타까운 일이군요. 저는 그저 진심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당당하구나, 적어도 열 아홉의 소년이 내 앞에서 보일 만한 태도는 아니야.”
밤피르 후작의 말에 화이트가 속으로 한 차례 헛웃음을 흘렸다.
애초에 새삼스럽게 이제 와서 이런 상황에 압박감을 느낄 그가 아니었기 때문에.
“…….”
화이트의 표정이 한순간 살짝이나마 아련하게 바뀌었다.
……밤피르 후작의 심정은 이해한다.
하나뿐인 딸이 위험에 처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면,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테지.
하물며 단순한 위험이 아닌, 실제로 죽음의 위협을 겪을 뻔했다고 한다면.
당장 이성을 잃고 자신의 목을 부여잡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내 생각은 동일하다.’
화이트의 눈빛이 진중한 기색으로 한순간 빛났다.
그러면서, 말을 내뱉는다.
“오르카는 더 이상 그저 어린애가 아닙니다, 각하.”
“……뭐라고?”
인상을 구기며 반문하는 밤피르 후작을 향해, 화이트가 진지한 태도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이자, 동시에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연령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오르카는 복수의 후유증을 겪고 있지 않습니다.”
아주 약간은, 씁쓸하면서도 우울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기는 하였으나.
그리 덧붙이며, 화이트가 재차 입을 열었다.
“그럼에도 절망하지는 않았습니다. 각하가 걱정하는 것처럼, 복수를 이루고 난 이후 큰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는 말입니다.”
“…….”
어느새 밤피르 후작의 눈빛이 더욱 살벌하게 변해 있었다.
그것을 눈치챘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화이트가 말을 이었다.
“그녀는 강합니다. 각하께서 마냥 보살펴야만 하는 어린 소녀가 더 이상은 아니라는 겁니다.”
“……네놈.”
어느새 밤피르 후작의 어투가 거칠게 바뀌었다.
눈동자를 섬짓한 기색으로 번뜩이며, 그가 짓씹듯이 내뱉는다.
“네가 뭘 안다고 그러느냐. 만약에, 만에 하나라도, 오르카에게 평생 잊지 못할 상처가 생겼다면……!”
네가 책임을 질 수 있겠냐고.
네가 내뱉은 말에, 제대로 책임을 질 수 있겠느냐고.
그렇게 살벌한 어조로 말을 이으며, 밤피르 후작이 소름 끼치는 눈빛으로 화이트를 노려봤다.
숫제 당장 달려들어 목을 비틀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살기였다.
그렇지만, 화이트는 여유가 넘쳤다.
단순히 그런 태도를 가장했다는 것이 아닌, 실제로 그러했다는 말이었다.
새삼 이 정도 살기에 압박감을 느끼고, 겁을 먹을 정도로 어리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그런 말을 내뱉을 수 있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럼.”
“……뭐라?”
밤피르 후작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화이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그 짧은 한마디를 해석하지 못한 듯이.
표정을 천천히, 단계별로 일그러뜨리며, 그가 억눌린 목소리를 내었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제가 그녀를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각하.”
“…….”
밤피르 후작의 표정이 한순간에 멍하게 바뀌었다.
그 자신이 들은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모습, 혹은 이해하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화이트는 덤덤했다.
그저 그렇게 평상시처럼 무표정을 띄운 채로, 말을 이어나간다.
“그만큼 자신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오르카는 이미 성장했습니다. 제 도움을 받았다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그 자신의 손으로 복수를 해냈습니다. 결국 어린 나이에 죽어간 제 형제의 원한을 갚아주었죠.”
“…….”
침묵하는 밤피르 후작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화이트가 어깨를 한 차례 으쓱했다.
“그럼에도 그녀가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리고 실제로 그녀가 마음속 깊은 곳에 상처를 감추고 있다고 한다면.”
한 차례 간격을 두고 말을 멈춘다.
그러나 이내 그리 늦지는 않게, 다시금 입을 연다.
무척이나 진중한 눈빛을 띤 채로, 무척이나 자신감이 넘치는 기색으로.
“제가 책임지고, 그녀의 상처를 지워내겠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
그것이 그녀를 복수의 길에 동행시킨 자신이 책임을 지는 방식이자, 어린 소녀를 이쪽 세계로 끌어들인 것에 대한 최소한의 속죄라며.
그리 덧붙이면서, 화이트가 몸을 홱 돌렸다.
“할 말이 이것으로 끝이라면, 저는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후작 각하.”
“…….”
화이트가 골목길의 입구 쪽을 향해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화이트를, 밤피르 후작은 차마 잡지 못했다.
잡지 못할 만큼,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럼.
-제가 그녀를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그저 머릿속에서는 바로 조금 전 화이트가 내뱉었던 말들이 맴돌고 있었다.
……방금, 대체 무슨 말을 들은 것인가.
책임지겠다고.
누구를?
오르카를?
누가?
……어떤 형태로?
“…….”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다른 모든 문제들을 잊고, 밤피르 후작이 표정을 악귀의 그것과도 같이 바꾸었다.
그리고 손을 뻗는다.
다름 아닌, 몸을 돌리고 망설임 없이 걸어나가는 화이트를 향해.
어느새 밤피르 후작의 손에는 살벌한 핏빛 기운이 맺혀 있는 채였다.
“……기다려라, 네놈!”
“……?”
그리고, 그쯤에서 드디어 위화감을 눈치챌 수 있었을까.
뒤편에서 느껴지는 살기, 그리고 섬뜩하면서도 이제는 익숙해진 핏빛 기운에.
화이트가 당황한 기색으로 몸을 돌리며 빠르게 마나를 일으켰다.
뭔지는 모르겠으나, 우선은 막고 보자는 생각으로.
……그러나.
그랬으나, 다행이라면 다행이게도.
밤피르 후작의 손길이 끝내 화이트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이, 바보 아버지가!”
“?”
“……?”
순간적으로 제3의 인물의 목소리가 끼어들며, 밤피르 후작과 화이트가 고개가 목소리의 근원지로 돌아갔다.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어느 한 소녀가 날아들고 있었다.
무척이나 살벌한 표정을 띤 채로.
……동시에, 얼굴을 있는 대로 붉은빛으로 물들인 채로.
퍼억!
“컥……!”
차마 대응을 하지 못하겠던 걸까.
일순간 날아든 발차기에, 밤피르 후작이 허무하리만치 힘없게 뒤로 밀려나며 몸을 무너뜨렸다.
쿠당탕!
조금은 꼴사나운 소리와 함께, 밤피르 후작이 골목길의 한쪽 벽면에 부딪히며 쓰러졌다.
그의 시선이 이내 자신에게 발차기를 날린, 붉은 머리칼의 소녀에게로 향한다.
“……오, 오르카?”
그 이상이 없을 정도로 당황한 표정을 띤 채, 밤피르 후작이 눈을 멍하니 깜빡였으나.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대체!”
소녀, 오르카는 그런 그 자신의 아버지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무척이나 당황한 기색으로, 동공은 이리저리 흔들며, 손끝을 파르르 떨어대면서.
“왜, 왜! 왜 내가 없는 곳에서 이딴 얘기를 나누고 있는 거냐고……!”
오르카가 마지막으로 딱 한마디를 외쳤다.
진심을 담아.
짧디짧은, 단 한마디를.
“……바보 아버지!”
“……!”
그리고 그 한마디에,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려던 밤피르 후작의 표정이 완벽하게 무너져 내렸으니.
마치 자식에게서 연을 끊겠다는 얘기를 들은 부모처럼, 그가 몸을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오, 오르카. 잠시만, 내 얘기를 들어봐라. 무슨 오해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몰라! 지금은 나한테 말 걸지 마, 저리 가!”
“……!”
밤피르 후작의 표정이 한순간에 허망하게 바뀌었다.
동공은 마치 지진이 나기라도 한 것처럼 흔들렸고, 손끝은 수전증 환자라도 된 것마냥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고, 그런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지켜보면서.
화이트는 그저 당혹스러운 기색으로 고개를 기울이는 것 이외에는 하지 못했다.
‘……뭐지, 이 상황.’
갑작스럽게 진행되는, 이 묘하게 촌극 같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며.
화이트가 멍하니 볼을 긁적이고 있자니.
“아하하, 참 죄가 많은 제자님이라니까요.”
“……?”
바로 측면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그러면서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모르죠.”
화이트의 시선이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한 소녀에게로 옮겨졌다.
“……언제부터 지켜보고 계셨던 겁니까?”
갑작스런 접근에 당황할 법도 한데, 화이트는 그저 떨떠름한 기색으로 그리 물을 뿐이었다.
소녀, 아셰라가 짓궂은 기색으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음, 처음부터일까요?”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만.”
“당연하죠! 아무리 제자님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지만, 저에 비교하면 아직까지 한참 모자란다고요?”
묘하게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코웃음을 치는 아셰라.
그에 화이트가 옅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 네. 그럼요, 스승님이 최고이십니다.”
그러면서 그리 내뱉었으나.
“……묘하게 비꼬는 것만 같이 느껴지는 말투네요? 괘씸하게도.”
쾅!
“……컥.”
정작 돌아온 것은 완드의 휘두름과, 그로 인해 발생한 형태가 없는 공격이었으니.
정수리에서 느껴지는 얼얼한 감각에, 화이트가 한 차례 인상을 찌푸렸다.
“……폭력 반대입니다.”
“다무세요, 제자님. 사제 관계에서는 스승이 절대적 갑이랍니다.”
“……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