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2)딸바보
“울려라.”
「파동」
파아아아아앙!
짤막한 시동어와 함께, 허공에 파문이 일었다.
연못에 돌이 던져진 것처럼, 물결이 사방으로 빠르게 퍼져나간다.
“……컥!”
직후 울리는 낮은 신음성.
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화이트의 상대는 채 일 합을 버티지 못했다.
[……스, 승자! 화이트! 8강에 진출할 자격을 획득합니다!]
사회자의 당황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에 관객석도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고작 마법 한 번에 쓰러진 거야? 그것도 저 어리게 생긴 소년한테?”
“상대방이 약했던 건 아니고?”
“그건 아닐 거야. 지금 쓰러져 있는 저 남자, 전년도 마법 대전의 4강 진출자라고. 분명, 6서클 마법사인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럼 뭔데? 저 소년이 뭐, 7서클이라도 된다는 얘기야? 말이 돼?”
“나한테 묻지 마. 나라고 알겠나. 가문도 소속도 안 밝혔는데.”
“허어…….”
술렁거림은 점점 커져만 갔고, 화이트를 향한 시선은 흥미와 의구심으로 뒤섞인 빛을 띠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시선들을 그저 평온하게 받아넘기는 화이트.
조금은 압박감을 느낄 만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화이트는 그저 태연했다.
애초에 시선이 몰린다고 해도 새삼스레 긴장할 만큼 미숙하지 않았으며, 지금의 화이트에게는 더더욱 그따위 것들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으니.
“…….”
대기실 한구석을 바라보는 화이트의 눈동자 위로 묘한 열기가 떠올랐다.
은신 마법을 건 채, 연신 매력적인 미소를 입가에 띄우고 있는 아셰라를 직시하며, 화이트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약속, 지키시리라 믿습니다. 스승님.’
‘……물론이죠, 새삼스레 이런 걸로 거짓을 입에 담지는 않는답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각자의 의미가 담긴 시선을 던진다.
시선이 허공에서 서로 얽혀들며, 묘한 신경전을 자아냈다.
“……하하.”
“후후.”
화이트와 아셰라,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며 웃음을 흘려댔다.
그리고 그쯤에서 다음 경기가 진행되어야만 했기에, 화이트는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입가에는 여전히 자신만만한 미소가 걸쳐져 있는 채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음……?”
차마 예상치 못한 만남이었고, 인물이었다.
화이트의 표정에서부터 살며시 의문성이 묻어나오기 시작한다.
우선은 여기서 만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었기에 일차적으로 당황했고.
이차적으로는, 그런 그 인물의 표정이 악귀의 그것과도 같이 일그러져 있었기에 흠칫했다.
그렇지만, 먼저 행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
“……밤피르 후작 각하를 뵙습니다.”
적절히 고개를 살짝만 숙이며, 화이트가 밤피르 후작을 향해 예를 갖췄다.
“…….”
그러나 그런 화이트의 인사에도 불구하고, 밤피르 후작은 무어라 입을 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표정을 묘하게 바꿔가며, 그가 미간을 찡그렸으니.
‘……무슨 일이지?’
그에 화이트가 진지하게 의문을 품을 즈음, 밤피르 후작이 드디어 입술을 떼어냈다.
그리고 내뱉는다.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겠나. 화이트 클리포트.”
무척이나 싸늘한, 어딘가 모르게 감정이 서려 있는 것만 같은 목소리로.
“예?”
순간적으로 반문하며, 화이트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대화.
대화, 라.
지금 시점에서 밤피르 후작이 자신에게 대화를 요청할 만한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천천히 두뇌를 굴리며, 화이트가 그 연유에 대해 고심하기 시작했다.
……했으나.
밤피르 후작은 화이트가 고민을 이어가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따라와라.”
“……예?”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리 말하며, 밤피르 후작이 몸을 홱 돌렸다.
화이트의 의문이 섞인 되물음에는 대꾸조차 하지 않은 채, 그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뭔…….’
그리고 그런, 어찌 보면 조금 지나칠 정도로 독단적인 언행에 화이트가 인상을 한 차례 찌푸렸으니.
“…….”
그러나 어쩌겠는가.
적어도 겉으로는 자신은 가주가 아닌 가문의 후계자였고, 그는 클리포트 가문과 동일한 일곱 가문에 속한 밤피르 후작가의 가주였으니.
부조리한 명령도 아니고, 고작해야 어딘가로 이동해 대화를 나누자는 걸 거부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그럴 이유도 없었고.
속으로는 살짝 궁금하기도 했다.
그 밤피르 후작이, 무슨 이유에서 자신을 찾았는지.
……그리고 어째서 저렇게나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건지.
“……흐음.”
밤피르 후작을 따라가면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고개를 가볍게 까딱이며, 화이트가 밤피르 후작의 뒤로 따라붙기 시작했다.
*****
“……저 녀석 살벌하네.”
“응, 그러네.”
“아하하…….”
조금 전 펼쳐진 16강이 끝난 이후, 세 명의 소녀는 하나같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세레나는 그 자신의 검을 만지작거리며 조금 전 화이트가 보인 모습을 되새기고 있었고, 오르카는 의아한 기색으로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두 소녀의 반응을 살피며, 페르시아가 쓴웃음을 흘렸으니.
“……저 녀석이 이런 마법 대전에 저렇게까지 진지하게 임할 성격은 아닌데.”
상당히 궁금증이 인다는 표정으로 오르카가 중얼거렸다.
“……음?”
그러나, 그 말에서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있었을까.
세레나가 작게 고개를 기울이며, 오르카를 향해 의미심장한 시선을 던졌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지금 그녀, 오르카를 추궁하면, 나름대로 재밌는 꼴을 볼 수 있을 것만 같다고.
“그러고 보니, 오르카. 너 저번에 화이트랑 밤늦게 돌아왔었지?”
“……!”
그리고 그런 세레나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녀의 질문에 순간적으로 몸을 흠칫 떨며, 오르카가 동공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그, 그랬지? 근데, 그게 왜?”
우선은 그리 대답하는 오르카.
그러나 떨리는 손끝을 감추기란 무리가 있었다.
“헤에…….”
“……으음?”
세레나는 물론이고,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페르시아의 표정 역시 묘한 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오르카는 몸을 쭈그러뜨릴 수밖에 없었으니.
“……뭐, 뭐. 왜 그런 눈빛으로 쳐다봐? 왠지 모르게 무서우니까 그만해! 그만해 줘!”
손을 내저으며, 그럼에도 볼을 붉히면서, 오르카가 울상을 지었다.
알고 있었기에.
지금 부정해두지 않으면, 그 자신의 두 친구는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이란 것을.
여차하면 관객석을 뛰쳐나갈 기세로, 오르카가 몸을 천천히 뒤로 물리기 시작했다.
“오르카, 너…….”
“뭐, 뭐! 왜, 뭐!”
세레나의 게슴츠레한 시선을 애써 피하며, 오르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별로, 그런 거 아니거든? 너네가 생각하는 그런 이상한 게 아니거든?!”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이상한 게 뭔데?”
“……으, 아무튼 아니라면 아닌 줄 알아!”
세레나의 짓궂은 질문에 이를 악무는 오르카.
그리고 그런 반응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세레나는 더욱더 적극적으로 태도를 바꾸어 갔다.
“이렇게까지 격하게 반응하니까 더 궁금해지네, 오르카.”
“……어, 어?”
당황한 목소리를 내는 오르카를 향해, 세레나가 몸을 조금 더 가까이 밀착시켰다.
그 자신을 향해 손을 천천히 뻗어오는 세레나의 모습에, 오르카가 새끼 고양이처럼 몸을 덜덜 떨어댔다.
“뭔가, 진짜 그날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설마 너희, 정말로…….”
세레나가 의미심장한 기색으로 말을 늘어뜨렸고, 그 의미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을까.
“……읏!”
한순간에 그 얼굴을 붉은색으로 물들이며, 오르카가 고개를 도리도리 젓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니라고! 그런 게 아니니깐!”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시끄러어!”
오르카의 재밌는 반응에 스위치가 켜진 걸까.
세레나가 장난스런 미소를 얼굴 위로 띄운 채 더욱 오르카를 몰아붙여 나갔다.
“진짜로, 오르카. 너 화이트랑─”
─무슨 관계냐고.
설마 이미 그렇고 그런 관계였냐고.
……그렇게, 세레나가 물어보려고 하는 그때.
“잠시, 괜찮을까요?”
“……?”
제3자가 대화에 끼어든 것은 그 순간이었다.
세레나는 물론이고, 페르시아 역시 의아한 표정으로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건 오르카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
그러나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그녀가 그 목소리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점이리라.
오르카의 표정이 한순간에 환한 빛을 띠었다.
“아셰라 님!”
마치 구세주를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가 아셰라를 향해 눈웃음을 그려 보였다.
“오르카 영애.”
그리고 그런 그녀를 향해 아셰라 역시 환한 미소를 지었으니.
두 소녀 사이에서 어째서인지 훈훈한 분위기가 형성되려 하고 있었다.
“오르카, 이 분은……?”
그리고 그쯤에서 세레나가 의문을 드러냈고,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걸까.
“아!”
한 차례 탄성을 내뱉으며, 오르카가 두 눈을 살짝 깜빡였다.
순간 아셰라에 대한 소개를 하고자 했으나, 어째서인지 도무지 입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오르카의 표정이 미묘하게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그녀를 누구라고 소개해야 하는가.
그냥 있는 그대로, 화이트의 마법 스승이라고 소개해야 하나?
“어…….”
오르카가 고민하는 기색으로 아셰라와 세레나를 한 차례씩 흘겨봤다.
“……그, 아셰라 님.”
무어라 얘기를 꺼내야 할지 생각이 나지를 않아서, 아셰라를 향해 도움을 요청하고자 오르카가 입을 열려고 하는데.
“잠시만요.”
아셰라가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대며 짤막하게 내뱉었다.
그리고 그 제스쳐에 반사적으로 입을 꾹 다무는 오르카.
그야말로 무의식 중에 행한 행동이었다.
‘……어?’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처음의 만남 때부터 어째서인지 그녀를 거역하기가 영 쉽지 않은 것 같다고.
그런 생각을 속으로 품으며, 오르카가 조심스레 아셰라의 눈치를 살폈다.
“……흐음, 어디로 가는 걸까요.”
아셰라가 잔잔하게 중얼거렸다.
그 의미 모를 말에 오르카가 표정 위로 의문성을 띄웠으나, 차마 입을 열지는 못한 채 그녀는 얌전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내, 무언가의 결정을 내린 걸까.
“뭐, 일단 따라가 보면 알게 되겠죠.”
아셰라가 손목을 툭툭 두드리며 그리 내뱉었고.
“……어?”
그다음 일어난 일은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자, 오르카 영애. 같이 가주시겠어요?”
“어, 네?”
아셰라의 짤막한 물음, 그러나 대답 따위는 듣지 않겠다는 듯 그녀가 마나를 일으켰다.
그리고, 내뱉는다.
“텔레포트.”
순간이동을 위한 시전어를.
오르카의 어깨에 손을 가져다 댄 채로, 말이다.
“……어, 어어어?”
묘하게 몸이 붕 뜨는 듯한 감각에, 오르카가 순간적으로 당황으로 가득 찬 목소리를 내었으나.
이미 마법은 발동된 이후였다.
“오, 오르카?”
세레나가 당혹스러운 기색으로 그녀를 부르며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끝내 그녀의 손이 오르카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훅!
인위적인 바람이 한 차례 불어옴과 동시에.
아셰라와 오르카의 신형이 관객석에서부터 한순간에 그 모습을 감추었다.
슈욱!
……그리고.
이내 두 소녀가 다시금 나타난 것은, 제도의 어느 한쪽 골목.
무척이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골목길이었다.
“……아셰라, 님?”
오르카가 어안이 벙벙한 기색으로 멍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향해 아셰라가 환한 미소와 함께 다시금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댔으니.
“쉿.”
“……!”
자연스레 오르카의 입이 일자로 굳게 다물렸다.
그런 그녀를 향해, 아셰라가 어딘가를 손짓으로 가리켰다.
오르카의 고개가 아셰라의 손끝이 향하는 곳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녀는 볼 수 있었다.
“……에?”
……조금 전까지 마법 대전의 16강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어낸 화이트와.
그 자신의 아버지, 밤피르 후작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무언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오르카의 표정이 한순간에 창백하게 바뀌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무슨 이유 탓에 두 사람이 이런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따로 만남을 가진 건지.
전혀 알 수 없었으나, 하나, 분명한 게 있다면.
‘……뭘까, 이 엄청 불길한 느낌은.’
이 상황이 그리 좋지만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일 것이다.
지금 그 자신의 아버지, 밤피르 후작이 풍기고 있는 서늘한 분위기는.
절대 훈훈한 대화가 오고 갈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려오고 있었다.
오르카의 동공이 불안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아, 아셰라 님.”
그리고 도움의 의미를 담아, 옆의 소녀를 불러 보았으나.
“어때요, 재밌어 보이는 상황이죠?”
“……네?”
정작 그 부름을 받는 아셰라의 태도는, 마치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찾기라도 한 듯한 태도였으니.
“두근두근하지 않아요? 대체 무슨 대화가 오고 갈지, 저는 엄청 궁금한데?”
“…….”
아셰라가 눈을 반짝이며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고.
‘……아, 이건 무리네.’
끝내 상황을 파악한 오르카는 한순간에 그 표정을 씁쓸하게 바꿀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이 흑발의 소녀는 이 상황을 말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감각에, 오르카가 양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아버지, 제발.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한 소리만큼은 하지 말아줘.’
속으로는 그리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