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1)부모의 역할
“……화이트, 그 소년이 마왕을 셋이나 죽인 당사자라고요.”
성성한 백발을 가진 중년의 사내, 레이아 후작이 말했다.
프리드리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잘 믿기지 않겠지만, 그게 사실이야.”
“……으음.”
레이아 후작이 침음성을 흘렸고, 그건 다른 가주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표정을 굳히고, 간혹 테이칸을 힐끔거리다가, 이내 고민에 빠진 기색으로 입을 꾹 다문다.
솔직히 말해, 쉽게 믿을 수는 없는 말이었다.
아니, 애초에 그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대륙에서도 손에 꼽히는 마법사인 마왕들, 그중 셋을 죽인 범인이 사실은 10대의 소년이었다니.
그 말을 내뱉은 자가 프리드리히가 아니었고, 그에 테이칸과 리이칸테르 후작이 동조하지 않았다면 곧바로 헛소리로 치부했을 수준의 말이었다.
……역으로 말하면, 그렇기에 믿지 않을 수는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여러 비밀이 많은 소년이지. 그건 인정하네.”
프리드리히가 씁쓸한 기색으로 재차 입을 열었다.
언젠가 보았던, 증오와 복수심으로 가득 찬 어느 한 소년의 눈동자를 떠올리며.
“그럼에도, 화이트는 우리 제국에 크나큰 이득을 안겨주었네.”
“셋이나 되는 마왕을 죽인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케실 공작이 물었고, 그에 프리드리히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채 스무 살이 되지 못한 나이로 8서클에 오르고, 그럼에도 아직은 미숙할 터인데 그 상태로 세 명의 마왕을 죽인 걸세.”
그게 과연 얼마나 되는 의미를 가지는 업적인지.
어떠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그건 이루 말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
케실 공작의 표정이 오묘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리드리히는 알고 있었다.
그런 그의 그러한 표정은, 무언가를 저울질할 때 나오는 표정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그 이후 나올 말이 예상이 된다.
프리드리히의 시선이 테이칸에게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테이칸이 눈가를 가늘게 좁힌 채 서서히 기세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윽고, 케실 공작이 천천히 입술을 떼어낸다.
“스무 살도 채 되기 전에 8서클에 오른 마법사, 라. 쉽게 믿기 힘들다는 건 에드발트 경께서 제일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렇지.”
“그렇다면 여러 가지 가능성 또한 상정해두고 계실 테지요?”
케실 공작이 의미심장한 어조로 툭 내뱉었고, 그에 프리드리히의 미간이 좁아졌다.
“……하고 싶은 말이 뭔가? 공작.”
“간단한 추측입니다, 에드발트 경.”
케실 공작이 무척이나 조심스런 기색으로, 테이칸의 눈치를 한 차례 살폈다.
테이칸 역시, 그런 케실 공작을 지그시 직시한다.
잠시 기묘한 대치 상태가 이어졌으나, 이내 케실 공작이 끝끝내 입을 열어 말을 꺼내 들었으니.
“……그 소년이, 진짜 화이트 클리포트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
“혹시 압니까? 어떤 정체 모를 마왕이 그 소년의 행세를 하며 저희 제국을 속이고 있을지. 그러한 가능성 역시 명백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내뱉어진 케실 후작의 말에, 테이칸의 표정이 한순간에 착 가라앉았다.
그의 눈동자가 서서히 싸늘한 빛을 띠어가기 시작했다.
“……그 말은, 나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건가. 케실 공작.”
섬짓-
한 차례, 테이칸의 전신에서부터 소름 끼치는 마나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당연하게도 그 압박감이 향하는 대상은 케실 공작이었고, 그에 케실 공작이 입술을 얕게 깨물었으니.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게. 지금은 조금 더 현실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내뱉으며, 케실 공작이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닦아냈다.
이내 그 손수건을 곱게 접어 품으로 집어넣으며, 케실 공작이 재차 말을 이어나갔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않나. 그 어떤 천재도 스무 살에 8서클을 달성하지는 못했어. 그 적의 마왕일지라도 스무 살에 그만한 경지에 닿지는 못했을 거야.”
“그걸 공작이 어떻게 장담하나? 적의 마왕이 스무 살이었던 시절을 직접 두 눈에 담기라도 했다는 건가?”
“……비꼬지 말게. 심기가 상한 것은 알겠으나, 나는 자네와 싸울 생각이 없어.”
“싸울 생각이 없다, 라…….”
테이칸이 말을 길게 늘어뜨리고는, 이어 한 차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쿠구구구구구!
“……!”
그의 전신에서 푸른빛의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한 건 그 바로 직후였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서며, 테이칸이 살벌한 눈빛을 번뜩였다.
“내 아들을 모욕하지 말아주게나, 케실 공작.”
저벅, 저벅.
낮게 내리깐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테이칸이 케실 공작에게로 걸음을 옮겨갔다.
8서클의 마나를 있는 대로 뿜어내면서, 그로 인해 주변 인물들이 압박감에 짓눌리든 말든 상관하지 않은 채.
“……크, 윽.”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런 압박감을 가장 정면에서 받아내야만 했던 케실 공작의 낯빛은 그야말로 죽어가고 있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였다.
전신을 짓누르는, 중력이 배가 되기라도 한 것만 같은 압박감.
그런 감각을 온전히 느끼며, 케실 공작이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테이칸의 살벌한, 그리고 무기질적인 눈동자가 케실 공작에게로 곧바로 내리꽂혔다.
“…….”
“…….”
한 차례의 정적.
테이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압박감에, 내부가 천천히 흔들리기 시작하고.
프리드리히가 개입을 하기 위해 조심스레 손을 뻗으려는, 그 순간.
“……자네의 아들을 모욕할 생각은 없었다네, 공작.”
케실 공작이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 들었다.
무척이나 힘겹게, 압박감을 애써 근성으로 이겨내며.
그가 씁쓸한 눈빛으로 테이칸을 바라봤다.
“나는 그저, 가능성을 말하는 걸세. 스무 살에 8서클에 오른다니, 그만큼 비정상적인 게 또 어디 있겠나. 그리고 그건, 나보다는 마법사인 자네가 더욱 잘 알고 있겠지.”
“…….”
케실 공작의 그런 말에, 테이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되게 내뿜어지던 압박감은 서서히 흩어지고 있었다.
“……후우.”
그리고 이내, 테이칸이 여러 복합적인 의미가 담긴 듯한 한숨을 내쉴 즈음.
마나로 이루어진 무형의 압박감이 완전히 흩어지기까지에 이르렀다.
그제야 이성을 되찾은 걸까.
테이칸이 가장 먼저 보인 행동은, 상석에 앉아 있는 황제를 향해 깊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송구합니다, 폐하. 감히 보여서는 안 될 험한 꼴을 보여드리고 말았습니다.”
“…….”
황제가 무어라 대답하지는 않았으나, 그 씁쓸한 표정을 통해 답은 충분했을 것이다.
용인하고 넘어가겠다는 의미를 담아 황제가 한 차례 고개를 까딱였고, 그에 테이칸이 다시 한번 고개를 깊게 숙였다.
그리고 다시금 자세를 바로 한 테이칸이 케실 공작을 바라봤다.
무어라 말을 꺼내고자, 몇 차례 입술을 달싹이는 테이칸.
“……미안하네, 케실 공작. 감정이 격해진 나머지,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말았군.”
그렇게 말하며, 테이칸이 쓸쓸히 몸을 돌렸다.
황제를 재차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제가 계속 이 자리에 있어서 좋을 건 없을 것 같으니.”
“……그렇게 하게나.”
황제가 씁쓸한 표정으로 허락의 말을 내뱉었고, 그에 테이칸이 문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겨나갔다.
“……클리포트 공작.”
그리고 그렇게 걸어가는 테이칸을, 케실 공작이 나직한 목소리로 불렀으니.
테이칸의 걸음이 잠시 멈춰졌으나, 뒤를 돌아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관하지 않은 채, 케실 공작이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진실되게 그대와 그대의 아들을 모욕할 생각은 없었어. 그저, 가능성 중 하나로 알아뒀으면 하는 것뿐일세.”
“…….”
침묵하는 테이칸을 향해, 케실 공작이 마지막으로 내뱉는다.
“……부디 잘 판단해 보게나. 내 말이 무조건 옳다는 건 아니지만, 그대의 아들에게 무언가 큰 비밀이 있다는 건 명백해 보이니.”
그 말을 끝으로 케실 공작이 한숨을 푹 내쉬었고, 동시에 테이칸이 다시 발을 내디뎠다.
덜컥!
작은 소음과 함께 문이 열렸고, 테이칸은 금세 회의실 내부를 빠져나갔다.
자연스레 회의실 내부에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도저히 회의를 진행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황제는 물론, 프리드리히의 표정이 영 달갑지 않은 형태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밤피르 후작에 이어, 클리포트 공작까지.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군.”
황제가 피곤하다는 듯이 눈가를 짓누르며 그리 말했고, 그건 회의의 종료를 의미했다.
“어차피 전쟁을 선언하는 날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조금 더 축제를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케실 공작의 어깨를 한 차례 툭툭 두드렸다.
격려의 의미였다.
케실 공작이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깊게 숙였고, 이후 황제가 회의실을 빠져나갔으니.
가주들 역시 자리를 정리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프리드리히의 눈빛이 묘하게 바뀐 건 그쯤이었다.
“……이참에, 여기에서 확실하게 말해두도록 하지.”
프리드리히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고, 그에 가주들의 시선이 프리드리히에게로 고정되었다.
그 시선을 한 차례씩 마주하는 프리드리히, 그리고 이내 마지막으로 그의 눈빛이 닿은 대상은 케실 공작이었다.
케실 공작을 오묘한 눈빛으로 지그시 바라보던 프리드리히가, 이내 재차 입을 열었다.
“화이트에 대한 의심은 그저 거두는 것을 추천하지. 나는 오롯이 그 소년을 신뢰하고 있으니까.”
“……에드발트 경, 그 말씀은.”
“음.”
무척이나 가벼운 어조로 내뱉는 말이었으나, 그 내용만큼은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다.
프리드리히가 한 차례 그 자신의 흰 수염을 쓰다듬었다.
슬며시 눈을 감으며, 화이트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떠올린다.
“…….”
……백금발의 소년, 그의 모습이 천천히 그려지더니.
이윽고, 그 소년 뒤로 또 다른 한 명의 소녀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후우.”
흑발과 금안이 특징적인 그 소녀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프리드리히가 얕게 한숨을 내뱉었다.
……물론, 그는 화이트를 신뢰하고 있었다.
화이트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무슨 연유에서 12마왕을 적대하는지는 알지 못했으나.
프리드리히가 알고 있는 명명백백한 사실이 두 가지 있다면.
그건 화이트가 가지고 있는 마왕들에 대한 끝없는 심연과도 같이 어두운 복수심과.
……어느 한 소녀에게 품고 있는 어떠한 깊디깊은 감정이리라.
그렇기에, 의심하지 않는다.
의구심을 품을 수는 있으나, 프리드리히가 화이트의 진의를 의심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궁금증은 남아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8서클에 오를 수 있었던 걸까.’
프리드리히가 의아한 기색으로 턱을 쓸었다.
……오르지 못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100%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확신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8서클에 오를 것이고, 그 소년은 끝내 9서클에마저 도달할 것이라는 걸.
……그렇다고는 하나, 그게 이리도 급진적으로 진행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프리드리히의 표정 위로 짙은 의구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네가 가지고 있는 비밀들,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하는구나. 화이트.’
속으로 그리 중얼거리며, 프리드리히가 창밖을 바라봤다.
황궁을 넘어, 제도에서 진행되고 있을 마법 대전을 떠올린다.
동시에 그리로 향했을 것이 틀림없을 밤피르 후작에 관한 것 또한.
살짝 걱정이 들기도 했으나.
‘……뭐, 화이트라면.’
어련히 알아서 잘 하리라고, 그리 생각하며.
프리드리히는 그에 관해서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