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90화 (91/158)

(EP.90)마왕 살해자

“폐하.”

“음.”

그 자신에게로 예를 갖추려는 테이칸과 프리드리히를 제지하며, 황제가 착석했다.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중했고, 턱을 괴고 눈빛을 빛내는 모습은 그야말로 제국의 정점인 황제라는 자리에 부족함이 없는 기세였다.

그런 황제를 직시하며, 프리드리히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

주어는 없었다.

그러나,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황제는 물론이요, 회의실 내부에 있던 모든 가주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음.”

그나마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리이칸테르 후작 역시 침음성을 흘리는 모습.

꿀꺽.

한 차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회의실 내부에 울려 퍼졌다.

그것의 주인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으나, 적어도 지금은 그 누구도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찌 긴장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격하게 요동치는 감정을 쉽게 다스릴 수 있겠는가.

다른 그 어떤 주제도 아니었다.

다름 아닌 마왕들에 관한 주제인 탓에.

수백, 수천 년을 대륙의 악으로 군림해온 12마왕에 대한 주제였던 탓에.

그 누구도 쉽사리 입술을 떼어내지 못했다.

그저 침묵을 지키며, 다른 자들의 눈치를 살피거나, 프리드리히나 황제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침묵은 이내 프리드리히의 한마디로 인해 깨지게 된다.

“마법 대전이 끝을 맞이하고, 그 우승자에게 축복을 내리는 그 순간.”

가히 선언이라 해도 좋을 말투와 어조였다.

눈빛은 진중하게 빛내고, 그 기세는 마나를 흩뿌리고 있지 않음에도 그에 못지않았다.

그리고, 이내 그가 말을 끝맺는다.

“……모든 진실을 공표하고, 12마왕과의 전쟁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척이나 서늘한, 마치 북풍한설을 연상케 하는 그런 목소리로.

회의실 내부에 무겁기 그지없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단순히 소리가 끊긴 것뿐이 아닌, 형체가 없는 압박감이 주변을 내리누르고 있는 것만 같은 감각이었다.

그러나 가주들의 표정이 굳어 있는 것은 그저 그런 압박감의 탓만은 아닐 것이리라.

무언가, 상당히 짙은 의문성이 그들의 표정에서부터 묻어나왔다.

당장이라도 그 의문을 입 밖으로 꺼내들고 싶어하는 모습들이었으나, 누구 하나 쉽게 입을 열지는 못했으니.

그나마 오롯이 평온한 기색을 띠고 있는 것은 테이칸과 리이칸테르 후작뿐이었다.

“궁금하겠지.”

그쯤에서, 프리드리히가 재차 말문을 열었다.

가주들의 이목이 자연스레 그에게로 집중된다.

그들의 시선은, 눈빛은 하나같이 말하고 있었다.

얼른 입을 열어달라고, 그 비밀을, 지금껏 감추고 있던 그 존재의 정체에 대해 말을 꺼내 달라고.

각자 담긴 감정의 크기는 조금씩 달랐으나, 모두가 동일한 의문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저 한 가지.

바라는 것은 하나.

지금껏 프리드리히가 숨기고 있었던 비밀, 정확히는 어느 한 인물에 대해서.

입을 열지는 않았으나, 가주들 전원이 똑같은 시선으로 프리드리히를 직시했다.

제국의 일곱 가문의 가주들이 내뿜는 기세, 그들의 진중한 눈빛.

그건 어지간히 담이 큰 자라고 해도 쉽게 흘려넘길 수는 없는 종류의 것이었으나.

프리드리히는 그저 태연했다.

대마도사의 경지는 거저 얻어낸 것이 아니라는 듯, 연륜이 묻어나오는 기세를 풍기며 그가 천천히 입술을 떼어내기 시작한다.

그 역시 느끼고 있었다.

─이제는 밝힐 때가 되었다.

“그대들이 궁금해하는 건, 분명 세 명의 마왕을 죽인 자에 대한 것이겠지.”

“……그렇습니다.”

프리드리히의 말에 대표 격으로 나서서 대답한 건 다름 아닌 밤피르 후작이었다.

그의 핏빛 눈동자 위로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는 채였다.

이글거리는, 마치 불길과도 같이 타오르는 감정 역시 오롯이 드러내며 밤피르 후작이 재차 말했다.

“제가 전달받은 이야기는 그저 12마왕 중 셋이 죽었다는 것. 그에 더해 그중 하나가 제 아들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던 마왕이었다는 사실뿐입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고.

당장이라도 그 감춰진 진실을 들어야겠다며, 흔치 않게 격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밤피르 후작이었다.

언뜻 보면 황제와 황실의 대마도사 앞에서 보이기에는 영 불손한 태도기도 하였으나.

황제나 프리드리히는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니, 오히려 씁쓸하고도 아련한 기색을 눈동자 위로 띄울 뿐.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도 격하게 감정이 요동치고 있을 존재는, 다름 아닌 그 자신의 아들을 잃은 밤피르 후작이었을 테니까.

그뿐일까, 당장 그 아들의 원수조차 어느새 누군가에 의해 죽었다는 소식만을 전해 들었으니.

분노를 느끼는 것도, 공허하면서도 허무한 감정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렇기에, 프리드리히는 그에 대해 사과했다.

“……미리 말해주지 못한 점은 미안하네, 후작. 우리로서도 조심스레 움직일 필요가 있었던 탓에.”

“…….”

“아마 지금 제일 궁금한 건, 루이 밤피르의 행세를 하고 있던 마왕을 죽인 게 대체 누구인가 하는 것이겠지.”

침묵하는 밤피르 후작, 그러나 다 이해한다는 듯이 프리드리히가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부터 그에 대해 밝히도록 하겠네. 당장 자네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모두 그것이 궁금할 터이니.”

그리 내뱉고는, 한 차례 숨을 고르는 프리드리히.

할 말을 정리하는 듯이, 적당히 간격을 두었다.

그러나 그리 늦지는 않게, 다시금 입을 연다.

“──화이트 클리포트.”

입을 열며, 그 이름을 내뱉는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 회의실 내부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는 테이칸의 아들이자.

클리포트 가문의 후계자인, 백금발의 소년의 이름을.

회의실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가주들의 표정이 한순간에 의아한 기색으로 바뀌었다.

어째서 지금 이 순간, 그 소년의 이름이 프리드리히의 입에서 튀어나온다는 말인가.

몇몇은 곧바로 테이칸을 향해 궁금증이 서린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테이칸은 그저 요지부동이었으니.

그저 프리드리히가 이을 말을 기다리는 듯이, 테이칸이 입을 일자로 꾹 다물었다.

그가 입을 열 생각이 없다는 걸 파악했을까, 이내 그에게로 시선을 던졌던 자들 역시 마찬가지로 프리드리히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쯤에서, 밤피르 후작이 무척이나 의문스럽다는 목소리로 묻는다.

“……그는, 클리포트 공작 각하의 아들이 아닙니까?”

머릿속으로는 언젠가 황궁 내부에 존재하는 밤피르 가문의 저택으로 찾아왔던 자를 떠올린다.

그날, 오르카의 손목을 붙잡고 자신을 향해 오묘한 시선을 보내던 소년의 모습을 떠올린다.

밤피르 후작의 표정이 굳어졌다.

“지금, 그 소년의 이름이 왜 나오는 겁니까?”

자연스레 목소리가 살짝씩 떨리기 시작한다.

무척이나 괴로운 가정이 하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기에.

……화이트 클리포트, 오르카.

그 두 소년 소녀가 자신의 눈을 피해 황궁을 빠져나갔던 때를 다시금 되새긴다.

단순하게 제도로 놀러 나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저 청춘을 즐기는 게 아닐까, 그렇게 평범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확실히, 또 다른 마왕이 죽었다는 걸 전달받은 게 그쯤이었지.’

화이트 클리포트, 오르카.

오르카, 루이 밤피르.

……루이 밤피르, 마왕.

“…….”

가능성에서부터 또 다른 가능성이 파생되어 나온다.

추측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차적으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한없이 진실에 가까운 그림, 그런 추측을.

“……설마.”

결국 완성되어 버린 가정, 그 가설에, 밤피르 후작이 격하게 요동치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어느새 파르르 떨리는 눈빛은 프리드리히에게서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프리드리히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한다.

드물게도 밤피르 후작을 향해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나로서도 뒤늦게 전해 들은 사실이지만, 루이 밤피르의 탈을 뒤집어쓴 마왕을 토벌하러 가는 것에 있어서, 화이트는 그대의 딸을 동행시켰다고 들었네.”

“…….”

쿵.

밤피르 후작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말이었고, 그만큼 충격적인 진실이었기에.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다른 모든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어졌다.

마왕을 셋이나 죽인 자가 사실은 클리포트 가문의 후계자인 어린 소년이라는 것이든, 프리드리히가 그 사실을 숨겨 온 이유든, 그 진실에 다른 일곱 가문의 가주들이 경악하는 표정을 짓든 간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아니, 하지 못하며.

밤피르 후작이 속눈썹을 떨어대기 시작했다.

“……아.”

입술을 비집고 메마른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진실되게 충격을 받은 기색으로, 밤피르 후작이 표정을 굳혔다.

그의 얼굴 위로 수심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어떻게 이리도 멍청할 수가 있나.

어찌 이 정도로 아둔할 수 있단 말인가.

‘……오르카.’

속으로 그 자신의 딸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밤피르 후작이 몸을 덜덜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쩐지, 며칠 전부터 가끔씩 우울한 표정을 짓는다 싶었다.

단순하게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여러모로 감정의 변화가 잦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오르카는 금세 그런 기색을 지워내며 평소의 쾌활한 모습을 되찾기도 하였고.

……그러나, 아니었던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하고, 조금 더 상세하게 물어봤어야만 했던 것이다.

“…….”

……도대체,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 채 하루를 흘려보내고 있을 때.

오르카는, 자신의 딸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거란 말인가.

-루이 밤피르의 탈을 뒤집어쓴 마왕을 토벌하러 가는 것에 있어서, 화이트는 그대의 딸을 동행시켰다고 들었네.

……바로 방금 프리드리히가 내뱉었던 말을 떠올리는 밤피르 후작.

그의 눈동자에서 서서히 빛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마왕을 토벌하러 가는 것에 있어서, 오르카가 함께했었다고.

그러니까, 마왕을 죽이는 일에.

……정확하게는 오르카의 형제이자, 자신의 아들이기도 한 루이 밤피르를 죽인 원수를 찾아가는 길에.

“…….”

밤피르 후작의 표정이 한순간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여러 복합적인 감정을 무어라 정의 내려야 할까.

슬픔, 절망, 죄악감, 혹은 부채감.

……자식에게, 딸에게.

오르카에게, 혹여나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생긴 게 아닐까.

워낙에 그 자신의 오빠를 잘 따랐던 아이이니만큼, 심각하게 고민하고 또 절망에 잠겨있는 건 아닐까.

불길한 상상, 혹은 추측은 연신 이어져 나가며 새로운 불안을 만들어낸다.

‘오, 르카.’

……그렇게, 밤피르 후작이 이마를 짚으며 입술을 달싹이고 있는 그때.

그 순간이었다.

덜컥!

[프리드리히여, 있는가?]

회의실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어느 한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해골이 들어온 것은.

자연스레, 무의식적으로 밤피르 후작의 붉은 동공이 그 해골에게로 향한다.

그러나 그런 눈빛, 회의실 내부에 내려앉은 묘한 분위기를 차마 눈치채지 못한 건지.

해골, 루시펠은 그저 태연하게 말을 잇는다.

[화이트가 이번 마법 대전에 참가했더군. 나름 재밌어 보이는 구경거리가 된 것 같던데. 어떠한가, 같이 보러 가지 않겠나?]

“…….”

……밤피르 후작의 떨리던 몸을 한순간에 멈추게 만드는, 그런 말을 말이다.

밤피르 후작의 핏빛 눈동자 위로 공허한 빛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은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잠깐, 후작. 일단 진정하고, 잠시만 얘기를─”

후욱!

프리드리히가 무어라 말을 꺼내려는 것조차 무시한 채, 밤피르 후작이 그 자신의 육체를 한 줌의 핏물로 만들어 창밖을 향해 튀어 나갔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 어떠한 말도 귓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딸에 대한, 오르카에 대한 걱정과.

그런 오르카에게 상처가 생기게끔 만든 건지도 모를, 어느 한 소년에 대한 분노와 함께.

밤피르 후작이 제도의 정중앙, 마법 대전이 한창 열리는 중인 경기장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렇게 싸늘한 정적만이 남은 회의실 내부.

루시펠이 멋쩍은 기색으로 두개골을 긁적거렸다,

[내가 뭔가 잘못 말한 것인가?]

“……제발 그냥 닥치고 있어 주면 안 되겠나? 루시펠.”

프리드리히가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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