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86화 (87/158)

(EP.86)뒤풀이

제국의 현 황제, 그의 탄생절이 끝내 찾아왔다.

제국의 모든 신민들은 황제와 황실을 축복하기 위해 축배를 들기를 망설이지 않을 것이었으며.

황실 역시 그런 신민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화려한 축제를 준비하게 될 것이다.

일주일 동안 이어지는 축제는 마지막 날까지 그 열기가 잦아들지 않으리라.

축제가 이어지는 기간, 그 일주일만큼은 그 누구라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터.

애초에 그것을 바라고 계획된 축제였으며, 연회였으니.

다만, 지금껏 매년 있어왔던 황제의 탄생절과 조금 다른 부분이 하나 있다면.

“……들었어? 이번 탄생절에…….”

“……설마, 아무리 그래도 전쟁이라니…….”

……그건, 제도 내에 묘하기 그지없는 소문이 고요하게 돌기 시작했다는 점일 것이다.

처음은 무척이나 작은, 그저 평범한 음모론으로 치부될 뿐이었으나.

점차적으로 그 크기를 불려 나가던 그 음모론은, 이내 진실로 치부되기까지에 이른다.

그건 실로 비정상적인 전파 속도였고, 조금 머리가 돌아간다는 자라면 누구나가 의문을 품을 만한 일이었으나.

진실은, 황실 측에서 그러한 음모론을 덮기는커녕 오히려 역으로 소문이 더욱 빠르게 퍼지게끔 지원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으니.

황실 측에서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 따위는 하등 없었기에.

황제로서도, 제국의 주축이 되는 일곱 가문의 가주들로서도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축제로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분위기 속에서, 무척이나 복잡미묘한 공기가 잔잔하게 제도 내에 감돌기 시작했다.

*****

어느새 정례 행사처럼 정해진, 일곱 가문의 후계자 모임.

이미 몇 차례 있어 왔던 모임이었으나, 이번만큼은 그 열기가 한층 남달랐다.

“자, 자. 너도 마시라고, 화이트.”

“…….”

그 원인은 다름 아닌, 모임의 중앙에서 떨떠름한 기색으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백금발을 가진 소년의 존재 탓이었으니.

좀처럼 모임에 참석하지 않던 화이트가 이번만큼은 기꺼이 초대에 응했기 때문이었다.

“…….”

붉은 빛깔이 감도는 와인을 권하는 에이단을 잔잔히 쳐다보며, 화이트가 한 차례 미간을 좁혔다.

무언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태도였으나.

“……나는 됐어.”

결국 딱히 모진 말을 내뱉지는 못하는 화이트.

그런 모습에 에이단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 술은 안 해도 되긴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분위기가 묘한데, 화이트.”

“……?”

갑작스레 그런 말을 꺼내 드는 에이단의 모습에, 화이트가 한 차례 눈썹을 까딱거렸다.

분위가가 묘하다, 라.

물론 머릿속은 12마왕이니 전쟁이니 같은 문제들로 가득 채워져 복잡하기 그지없긴 하였으나.

그게 겉으로 드러날 만큼 미숙하지는 않을 텐데.

화이트가 눈짓으로 의문을 표했고, 그에 에이단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리고 내뱉는다.

“결국 밝히기로 한 거야? 오르카와 네 진정한 관계를─”

……절대 내뱉어서는 안 되는 한마디를.

퍼억!

“컥.”

순간적으로 양옆에서 찌르고 들어오는 주먹질에, 에이단이 예상치 못했다는 듯이 짧은 침음성을 흘렸다.

아니, 정확히는 두 번째의 공격은 차마 예상하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그 자신의 앞에서 불쾌하다는 듯이 주먹을 내지르고 있는 화이트를 뒤로 하고, 에이단이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뭐,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그 뒤편에서는 붉은 머리칼의 소녀가 상당히 달아오른 낯빛으로 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었으니.

“나, 나는. 아니, 화이트랑 나는 그런 게 아니라……!”

술을 마셨기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별개의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얼굴을 화악 붉히며, 오르카가 바락바락 열변을 토해냈다.

“……에이단. 저번처럼 짓밟히고 싶다면 거기서 딱 한마디만 더해봐라. 내가 친히 마나까지 섞어서 밟아줄 테니.”

“아, 아하하…….”

그 와중에 등 뒤에서는 화이트의 섬뜩하기 그지없는 경고가 들려오기까지 했기에.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에이단이 조용히 자리에 착석했다.

“조용히 입 다물고 마실게…….”

이내 그렇게 에이단이 시무룩해진 기색으로 내뱉었고, 그제서야 화이트와 오르카가 감정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무척이나 침울한 듯이, 에이단이 술잔만을 기울이며 살짝씩 홀짝였다.

“……뭐, 장난도 못 치나…….”

취기가 올라와 그렇게 중얼거린 한마디에는 주먹이 날아오지 않았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아무튼, 그 이후로도 술자리는 계속 지속되었고.

가장 먼저 쓰러진 것은 술에 아무런 내성이 없는 에이단이었다.

이후로 천천히 한 명, 두 명씩 곯아떨어지더니.

이윽고 신성을 끌어올려 최대한 버티던 페르시아와, 원래 술에 익숙했던 건지 잘만 잔을 채우던 크리스마저 쓰러지고.

온전히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건 두 사람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다름 아닌 화이트와 오르카였다.

“……흠.”

쓰러진 후계자들을 한 차례 슥 훑어본 화이트가, 이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냥 취기가 올라오지 않은 건 아닌지, 그의 양 뺨 역시 어느 정도 붉어져 있긴 하였으나.

8서클의 대마법사에게 취기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었기에.

마나를 한 차례 전신으로 질주시키기만 하면 사라질 취기, 사실상 달아오르는 열기를 즐기기 위해 일부러 취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

그와는 별개로, 조금 의아한 부분이 있었던 걸까.

화이트의 시선이 이내 여전히 의자에 몸을 기댄 체 눈을 흐릿하게나마 뜨고 있는 오르카에게로 향했다.

“네가 깨어있을 줄은 몰랐는데, 오르카. 넌 특히 상당히 많이 마시지 않았나?”

“……아하하.”

화이트의 말에 멋쩍다는 듯이 볼을 긁적이는 오르카.

이내 그녀가 화이트와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쓰러진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글쎄, 나도 원래 딱히 술에 강한 편은 아니었는데…….”

실없는 웃음을 한 차례 흘리며, 그녀가 화이트를 향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입꼬리는 짓궂게 끌어올린 채, 유려한 눈웃음을 그려내며.

“……뭐, 딱히 할 것도 없겠다.”

오르카가 화이트를 향해 마치 선심 쓴다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같이, 나갈래?”

“…….”

잠시 그런 손길을 지그시 바라보는 화이트.

그러나 이내 남아 있어도 딱히 할 일이 없었다고 판단했을까.

“상관은 없겠지.”

화이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에 오르카의 표정이 약간이나마 환해졌다.

그러나.

“자, 가자.”

“……어?”

정작 내밀어진 오르카의 손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화이트가 몸을 홱 돌리고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오르카.

“……이.”

그러나 이내 쌩까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을까.

“……야! 너 진짜!”

이를 악물며, 그녀가 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아, 손 정도는 잡아줄 수 있잖아! 에스코트, 몰라?”

“모르는데.”

“모르긴 무슨, 명색이 공작가의 후계자라는 놈이! 그냥 내 손을 잡기 싫다고 대놓고 말하지 그래?!”

“아, 그런 좋은 방법이.”

“뭐, 뭐……?!”

그저 긍정하는 화이트의 태도에, 오르카가 짐짓 상처받은 기색으로 표정을 무너뜨렸다.

“너어……!”

그러면서도 총총걸음으로 화이트의 뒤를 쫓는 모습이 참으로 안쓰러웠으나, 그녀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달이 예쁘네.”

“…….”

이내 궁의 밖으로 나온 화이트와 오르카.

“야, 대답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오르카가 퉁명스럽게 내뱉었고, 그에 화이트가 귀찮다는 태도로 대충 손을 내저었다.

“……그래, 예쁘네.”

무척이나 건조한 목소리, 진심이라고는 일절 담겨 있지 않은 그 태도에 오르카가 볼을 부풀렸다.

“하아…….”

그러나 더 이상의 반응을 끌어낼 수는 없다고 판단했을까, 한숨을 내뱉으며, 그녀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면서도 피식 웃음을 흘린다.

그에 의문을 품은 건지, 화이트가 한 차례 고개를 기울였다.

“……뭔가 웃긴 거라도 있나?”

“아……. 아니, 그냥.”

연신 얕게 웃음을 흘려대면서, 오르카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내 그녀의 눈동자 위로 씁쓸하면서도 아련한 감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다 끝났구나, 싶어서.”

“…….”

주어는 없었으나,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화이트는 멍청하지 않았다.

필시 그건 루이 밤피르에 관련된 문제일 것이라고 짐작하며, 조금은 조심스러워진 어조로 화이트가 입을 열었다.

“……마지막을 양보하지 못한 건 미안하게 됐다. 자칫하면 역으로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지라.”

“아, 아냐, 아냐.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으니까.”

실없는 미소와 함께 손을 내저으며 부정을 표하는 오르카.

이내 그녀가 쓴웃음을 지으며 한 차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냥, 조금 허무한 것 같기도 하고, 공허한 느낌이 들어서.”

“…….”

그렇게 말하는 오르카의 동공은 아주 약간이지만, 그럼에도 분명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의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으나, 화이트는 그런 그녀의 감정을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허무하면서도, 공허하고, 또 동시에 무척이나 아련한 감정이 차오를 테지.

씁쓸함은 전신을 잠식하고, 과연 복수의 성공이 그 자신에게 좋은 영향을 가져왔는가를 고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온전히 그녀 스스로가 감당해야 할 문제였으니.

……그렇긴 했으나.

“……처음에 말했었지, 복수는 공허할 거라고.”

“어?”

고작 짤막한 한두 마디 정도 못 해줄 만큼, 그녀와 가깝지 않은 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아주 약간의 조언, 그것으로 그녀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질 수 있다면 못 할 것도 없다는 판단에.

화이트가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해내야 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해라.”

“…….”

그건 굳이 말하자면 혼잣말에 가까운 목소리였으나, 이상하게도 오르카는 그런 화이트의 목소리가 귓가에 바로 꽂혀 드는 것만 같다는 감각에 휩싸였다.

“어린 시절 죽어간 네 오빠를 위한 복수였다. 아무리 허무한 감정이 전신을 지배해도,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연신 떠오르게 되더라도.”

그럼에도, 그걸 감당하고, 이겨내야만 한다고.

그렇게 덧붙이면서 화이트가 말을 끝맺었다.

가지고 나온 술잔을 살짝 까딱이며, 화이트가 남은 와인을 모두 입 안에 털어 넣었다.

“…….”

“…….”

한 차례, 약간은 어색한 정적이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았다.

화이트는 할 말을 다 했다는 태도로 입을 꾹 다물었고, 오르카는 그런 그가 내뱉었던 말에 이래저래 머리가 복잡한 기색.

그리고 그리 늦지 않게, 먼저 입을 열어 정적을 깨뜨리는 것은 오르카였으니.

“……그럼, 너는?”

“……?”

나직하게 입을 여는 오르카를 살짝 흘기며, 화이트가 의아한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웠다.

그런 화이트를 향해 오르카가 고개를 돌렸다.

술에 살짝이나마 취한 것은 여전했으나, 그 붉은 눈동자는 이전과 다르게 또렷이 빛나고 있었다.

그에 화이트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릴 즈음, 오르카가 재차 입술을 떼어냈다.

“……너는, 복수를 이룬 뒤에 어떤 식으로 마음을 다스렸는데?”

“…….”

그리고.

그렇게 내뱉어진 오르카의 말에, 어쩌면 정곡을 찌른다고 표현해도 좋을 말로 이루어진 비수에.

화이트의 표정이 순간적으로나마 금이 갔다.

“…….”

나는 복수를 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 혹은 복수의 대상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는다…….

부정하기 위한 말은 많았고, 조금 더 나아가면 그녀를 납득시켜 줄 대답을 꺼낼 이유조차 존재하지 않았으나.

어째서인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올곧은 눈동자는, 그 자신의 어두운 속마음을, 복수로 이루어진 그 자신의 목표를 꿰뚫어보고 있는 것만 같다는 감상에 휩싸이며.

“……나는.”

화이트가 무어라 입을 열려고 하는, 바로 그때.

“──무슨 재밌는 얘기를 둘이서 나누고 계실까.”

“……!”

순간적으로, 어느 한 기척이 상공에서부터 느껴져 왔으니.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위로 꺾였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달빛을 받아 찬란히 빛나는 흑발을 휘날리고 있는 한 소녀였다.

“……스승님?”

화이트가 의아한 목소리를 내뱉었고, 아셰라가 지면에 조심스레 내려앉은 건 그 직후였다.

화이트와 오르카의 의문 섞인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다가, 이내 그녀가 쥐고 있는 어느 한 물체로 옮겨졌다.

“……와인, 인가요?”

오르카가 조심스럽게 그 물체의 정체를 입에 담았고, 그에 아셰라가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맞아요, 그것도 무척이나 귀한 거랍니다?”

조금은 장난스런 표정을 얼굴 위로 띄우며, 아셰라가 어깨를 으쓱했다.

“별다른 건 아니고, 이번에 고생한 두 사람을 위해 작게나마 술자리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단 말이죠.”

“어…….”

“그런 고로, 지금부터 갑작스럽겠지만 술판을 벌이도록 하겠습니다!”

짓궂은 미소와 함께, 아셰라가 완드를 휘둘러 와인의 코르크를 뽑아냈다.

그녀의 말대로, 그야말로 갑작스럽기 그지없는 전개였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