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2)흡혈
“…….”
아셰라는 줄곧 지켜보고 있었다.
그 자신의 기척이 들켜서는 안 되었기에, 최소 9서클의 적을 상정하고 대마도사 급 마법사의 탐지 범위 바깥에서부터.
아무리 은신 마법을 걸고 있다고는 하나, 9서클의 마법사, 그것도 마왕의 일인이라면 이질감을 충분히 눈치챌 수 있을 수준일 터이니.
그렇기에, 초조해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마왕이 루이 밤피르의 탈을 벗어내고 그 원래의 육체로 모습을 드러냈을 즈음부터.
‘……하필이면 녹색이라니.’
까득!
무척이나 불안한 기색으로 아셰라가 이를 악물었다.
……녹색의 마왕, 에멜.
잘 알고 있는 상대였다.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아무리 그녀가 적대하다시피 하는 12마왕이라지만, 한때는 그녀 역시 그 일원이었으니.
그렇기에,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이기 때문에.
12마왕의 일원, 그 하나하나의 강함을 오롯이 파악하고 있는 그녀였기에.
……개중에서도, 탁한 녹빛 머리카락을 가진 마왕이라면.
“…….”
장담할 수 있었다.
지금의 화이트로서는, 그를 상대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금의 마왕, 그리고 회색의 마왕과는 격이 달라요.’
그녀의 눈동자가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 일원의 대부분이 대륙에서도 손에 꼽히는 흉악한 마법사인 12마왕.
그러나 그 안에서도 명확하게 서열이라고 할 만한 것은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고, 지금 화이트가 상대하고 있는 녹색의 마왕, 에멜은.
열 둘이나 되는 마왕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절대 강자였으니.
말 그대로 규격 외의 존재인 적의 마왕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최상위권에 자리한 마왕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제자님이라지만, 이건…….’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며, 아셰라가 마나를 더욱 끌어올려 시야를 확장시켰다.
……콰앙…….
쾅…….
“…….”
소리가 들려온다.
무언가가 부서지고, 무언가가 터져 나가고, 무언가가 거칠게 부딪히는 소음들이.
그리고 그 현장을 아셰라는 바로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관전할 수 있었다.
상당히 먼 거리라고는 하나, 그녀의 경지를 생각하면 시력을 극단적으로 강화시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으니.
……그렇기에, 더욱 심장이 두근거린다.
불안한 감정, 가슴을 옥죄어오는 불길함.
제자, 화이트에게로 향하는 걱정스러운 감정이 그녀의 눈동자 위로 떠올랐다.
……시종일관 루이 밤피르를 몰아붙이던 화이트는, 어느새 그 진정한 정체를 드러낸 에멜에 의해 역으로 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압도적이라고 표현할 정도의 격차가 있는 건 아니었으나, 분명한 건 화이트가 점점 밀리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
……개입을 해야 하는가.
그녀의 뇌리를 순간적으로 스치고 지나간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럴 수는 없어요.’
속으로 힘겹게 중얼거리며, 그녀가 주먹을 거세게 움켜쥐었다.
걱정하면서도, 고민하면서도.
도저히 선택을,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서.
아셰라의 표정이 점차 무력함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이게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 대체.
그깟 ‘협정’이 뭐라고.
그 얄팍한 금제가 무엇이라고.
지금 당장 자신에게 있어서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이, 저렇게까지 이를 악물고 전투에 임하고 있는데.
명색이 스승이라는 자가, 어떻게 이리도 무능할 수 있단 말일까.
“……제자님.”
아셰라가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
그 정체를 드러내고, 한순간에 전황을 역전시키며, 연신 화이트를 몰아붙이던 녹색의 마왕 에멜이.
승부수를 띄운 것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화이트의 빈틈을 파고든 것은.
-죽어라.
-……!
에멜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그리고 화이트가 두 눈을 부릅뜨는 모습이 보인다.
“──.”
그리고.
그쯤에서, 아셰라는 이성의 끈을 깔끔하리만치 놓아버리고 말았다.
──망설일 이유 따위 하등 없었다.
협정이니, 금제니, 그따위 것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당장 그 자신의 제자가 위험한데.
지금 이 순간에도, 에멜이 만들어낸 짙은 녹색의 가시는 화이트를 찌르고자 날아들고 있을진대.
그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 상황에서.
아셰라는 이런저런 문제들이나 이성적인 판단 따위로 인해 움직이지 못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녀 자신의 제자이자,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소년이 그 대상이라면.
그녀는 설령 그 스스로가 위험에 처하게 되더라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마나를 해방하리라.
“──내게 깃들어라.”
짤막한 중얼거림, 영창과 동시에.
화아아아악!
아셰라의 등 뒤로 흐릿하게 일렁이는 무채색의 날개가 펼쳐졌다.
「에르메스의 날개」
눈빛은 이미 이성을 잃은 듯이, 공허하게 번뜩이고 있는 상태였다.
아득하게 먼 거리였으나, 최대한 빠르게 주파하고자 하면 그녀는 분명히 일순간에 전장에 도달할 수 있을 터.
그녀의 양손 위로, 화이트의 그것과 닮은 찬란한 푸른빛의 마나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눈동자를 푸른빛으로 물들인 채, 아셰라가 날아가고자 허공을 박찼다.
목표는 에멜과 화이트의 사이, 그 좁은 간격으로 비집고 들어가서 에멜을 쳐내는 것.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협정’에 대한 개념은 사라지고 말았다.
────!
후폭풍이나 리스크 따위는 계산하지 않은 채, 아셰라가 공기를 찢어발기듯이 하며 허공을 주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
아무리 그녀라도, 속도에 있어서는 그 어떤 마법보다도 우위에 있는 ‘날개’를 펼쳤다고 해도.
화이트의 바로 정면에서 덮쳐드는 녹색의 가시를 막아내기에는, 아주 약간의 무리가 있었다.
“……안 돼.”
으득!
거세게 이를 갈아가며, 아셰라가 살벌하게 눈을 번뜩였다.
새빨간 입술을 비집고 피가 흩뿌려졌으나,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우웅!
그녀가 그 금빛 눈동자에 더욱 강렬한 푸른빛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
……그렇게, 아셰라가 그 자신의 전력을 끌어내고자 하는.
바로 그 순간.
“……?”
에멜이 아주 약간의 위화감을 느낀 건 그쯤이었다.
무언가가 접근하고 있었다.
……무언가, 무척이나 거대한 기운을 품고 있던 어떠한 것이.
“…….”
그러나 틈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 정체 모를 뭔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고는 하나, 그 자신이 만들어낸 녹색의 가시가 눈앞의 소년에게 닿는 것이 훨씬 빨랐다.
‘우선은 이놈부터 죽이고, 그다음에 생각한다.’
어쩌면 당황하며 순간적으로 마나를 흩뜨릴 만도 했으나, 에멜은 그저 담담했다.
마왕의 자리는 거저 얻은 것이 아니라는 듯이, 태연한 기색으로 가시를 내지른다.
목표는 눈앞에서 청백색의 창을 세로로 세우고 있는 소년의 심장.
상당히 강력한 무기긴 했으나, 아마 그 자신의 녹색 가시는 그런 창마저도 깨부수는 것이 가능할 터.
에멜의 눈동자 위로 고요한 살의가 떠올랐고.
“죽어라.”
“……!”
그가 짤막하게 중얼거림과 동시에, 그의 녹색 가시는.
끝내 화이트의 심장을 꿰뚫는 것에 성공했다.
푸욱!
“…….”
……아니.
꿰뚫었다고, 생각했으나.
달랐다.
에멜의 눈이 순간적으로 크게 떠졌다.
그 자신의 녹색 창을 가로막는 새하얀 손이 보였다.
그다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쩌면 익숙하다고 해도 좋을 붉은빛 머리카락이었으며.
마지막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중간에 끼어든 인물의 정체는 다름 아닌.
“……오르카?”
“…….”
밤피르 가문에 숨어들었을 당시 그가 연기했던 루이 밤피르의 동생이자.
마법사의 경지로 따지자면, 고작해야 5서클.
잘 쳐준다 해도 6서클 초입에 불과한, 에멜의 눈으로 보기엔 무능하기 짝이 없는 어린 소녀였으니.
‘……어떻게?’
에멜의 표정이 한순간에 의문으로 물들었다.
어떻게 막아낸 거지?
그녀의 경지로는 막아낼 수도, 몸을 대서 억제할 수 있는 수준의 공격도 아니었는데.
최소 8서클로 추정되는 클리포트 가문의 어린 소년을 죽이기 위해, 나름대로의 비기를 꺼내 든 것이었을진대.
에멜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한 차례 흔들렸고.
“……그 더러운 입으로 내 이름을 부르지 마.”
오르카가 짓씹듯이 내뱉은 건 그 순간이었다.
섬뜩할 정도의 붉은빛을 발하던 그녀의 두 눈동자가, 더욱 살벌한 기세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직후.
파삭!
화이트의 심장 대신, 오르카의 손을 꿰뚫은 녹색 가시가 반으로 쪼개지기까지에 이르렀으니.
“……!”
에멜이 눈을 부릅뜨며 경악으로 가득 찬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웠다.
마치 불가능한 일이 실현된 상황을 보는 듯이, 그가 요동치는 눈빛으로 오르카를 직시했고.
“……쿨럭!”
어쩌면 당연하게도, 무리해서 피의 능력을 끌어낸 그녀는 한 차례 피를 뱉어낼 수밖에 없었으니.
……그러면서도 이글거리는 눈빛은 잠재워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역으로 더욱 강렬한 빛으로 눈동자를 불태우며.
“……화이트.”
오르카가 힘겨운 목소리로 나직하게 뒤편의 소년을 불렀다.
그리고, 그런 부름에 화이트가 채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가 몸을 홱 돌렸다.
붉은 눈동자 안에 백금발의 소년의 모습을 담아내며, 오르카가 한 차례 옅은 미소를 그려 보였다.
“마을에 들어서기 전에 네가 당부했던 거, 기억나?”
“……뭐?”
화이트가 순간적으로 짙은 의문성이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으나, 그에는 신경 쓰지 않은 채.
오르카가 화이트를 향해 힘겹게 몸을 기울였다.
양 뺨은 어느새 묘한 기색으로 상기되어 있었고, 머릿속으로는 마을에 진입하기 전 화이트가 내뱉었던 말이 재생된다.
-목숨이 위험한 상황까지 몰아세워지게 되면, 나의 ‘피’를 빌려.
“…….”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이던 화이트의 모습을 떠올리며, 오르카가 한쪽 입꼬리를 씨익 끌어올렸다.
그리고, 바로 직후.
“……네가 말한 대로, 받아 갈게.”
짧은 중얼거림과 동시에, 그녀가 화이트의 턱을 살며시 붙잡으며 들어올렸고.
콰악!
“……!”
그다음 순간, 빛을 받아 번뜩이는 그녀의 송곳니가 화이트의 새하얀 목덜미를 깨물었다.
파직-
……한 차례, 붉은빛 스파크가 튀기며.
오르카의 적안에 이질적인 기운이 서리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