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81화 (82/158)

(EP.81)녹색의 마왕

후욱!

일순간이었다.

화이트의 마나가 마치 불꽃과도 같이 넘실거리며, 수백 개의 화살이 되어 쏟아진 것은.

콰과과과과과광!

쏟아진 것은 화살이었으나, 터져 나온 굉음은 마치 폭격의 후폭풍을 방불케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화이트는 마음을 놓지 않았다.

애초에 고작해야 폭격 따위로 마왕을 죽일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대응은 곧바로 이어진다.

폭격으로 만들어진 먼지 구름이 채 걷히기도 전에, 화이트가 다시금 심장의 서클을 회전시켰다.

천천히 온몸을 돌던 마나는, 이내 폭포수와도 같은 형태로 사방에 흩뿌려진다.

화이트의 벽안이 더욱 푸른빛으로 번쩍이기 시작했다.

‘고유 마법.’

『푸른빛의 파도』

화이트의 양손에서부터 휘몰아치던 물줄기는, 이윽고 살벌한 해일의 형상을 띠기에 이르렀으니.

화아아아아악!

화살의 폭격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을, 루이가 서 있던 방향을 향해서.

아무리 보아도 자연스럽지 않은, 찬란하게 반짝이는 푸른빛의 해일이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덮쳐들었다.

“……!”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하하.”

먼지 구름이 한순간에 헤쳐지고, 한 차례 기분 나쁜 웃음 소리가 들려온 것은.

쩌어어억!

마치 공간을 찢어버리기라도 하는 듯한 불쾌한 소음과 함께, 루이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양팔에는, 화살을 받아내기 이전과 비교해도 절대 밀리지 않을 정도의 짙은 붉은 기운이 맺혀 있었으니.

……어쩌면 화살의 폭격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품으며. 화이트가 한 차례 인상을 찡그렸다.

‘……쉽지 않군.’

화이트가 속으로 중얼거렸고, 그 직후.

콰앙!

주먹을 휘둘러 파도를 파훼하고, 루이가 험악한 미소와 함께 화이트에게로 쇄도해 들었다.

“강하구나, 너!”

마치 여유를 뽐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리 내뱉으면서.

루이가 화이트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고, 그에 화이트가 한순간에 청백색의 창을 생성해냈다.

카아아아앙!

주먹과 창이 맞부딪혔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불쾌한 소음이 사방을 긁고 지나갔다.

화이트의 미간이 살며시 찌푸려졌다.

“전투 중에 상당히 여유가 넘치는데.”

그렇게 입술을 떼어내며, 화이트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나고는 손을 휘저었다.

『푸른빛의 파도』

다시 한 차례, 화이트의 손에서부터 그의 고유 마법이 펼쳐졌다.

……그랬으나, 루이는 그저 태연할 뿐이었다.

“하!”

입꼬리는 여전히 끌어올린 채로, 그가 살벌하게 소리를 내질렀다.

“똑같은 마법이 두 번 연속 날아든다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을 거다!”

그리 내뱉음과 동시에, 그가 몸을 비틀며 다리를 높게 뻗었다.

투콰아아아아앙!

마치 폭탄이 작렬하기라도 한 듯이, 한 차례의 폭발음과 함께 화이트의 파도가 허무하게 흩어졌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루이가 그 틈을 비집고 뛰쳐나왔으니.

루이의 양손에 맺힌 섬뜩한 핏빛 기운이 가시의 형태로 화한다.

“…….”

그리고, 그렇게 그 자신을 향해 쏘아져 오는 핏빛 가시를 오롯이 직시하며.

“──.”

무척이나 낮게 내려앉은 목소리로, 화이트가 짤막하게 중얼거렸다.

“……중첩.”

─────!

파도가 일었다.

두 차례 생성되었던 그 찬란한 빛을 발하는 푸른빛의 파도가.

또다시, 똑같은 형태로.

“……뭐.”

그러나, 그런 파도를 쳐다보는 루이의 표정만큼은 조금 전과 비교했을 때 사뭇 달랐으니.

그도 그럴 만하지 않겠나.

아까의 그 푸른빛 해일과는 다르게, 지금의 파도는 고작해야 주먹을 휘두르는 것으로 파훼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 아니었기에.

“…….”

하나, 둘.

셋, 넷, 다섯.

……속으로 숫자를 세어가며, 루이가 목을 점점 위로 꺾었다.

“……하.”

보이는 것은, 그저 아득하게 높이 솟아있는 파도의 향연.

저것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잠시 멍한 표정으로 그럴듯한 표현을 찾아가던 루이는, 이내 조금 전 화이트가 내뱉었던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중첩.

“……이게 무슨.”

조금은 허탈한 듯이, 혹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루이가 한 차례 헛웃음을 터뜨렸고.

그다음 순간, 수도 없이 늘어지며 겹쳐진 파도는 한순간에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콰아아아아아아아!

댐이 부서지며 갇혀 있던 물이 쏟아지기라도 하듯이, 천지를 뒤흔든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굉음과 함께.

“뭔, 이……!”

살벌하게 밀고 들어오는 파도에 의해, 루이의 신형은 한순간에 감춰지고 말았다.

*****

“……후우.”

화이트가 얕게 숨을 골랐다.

그의 뺨을 타고 한 줄기의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위험했다.’

입술을 살짝 깨물며, 화이트가 떨리는 손을 바라봤다.

……마지막의 공격.

안 그래도 상당량의 마나를 요구하는 고유 마법을 중첩시켜 사용한다는 것은 사실상 미친 짓이나 다를 바 없었다.

태생적으로 찬란한 마나를 타고난 화이트가 아니었더라면, 그 어떤 마법사라고 한들 진작에 쓰러졌을 일.

그럼에도 화이트는 힘겹게나마 온전히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꼴사납게 쓰러지거나 하지 않고 말이다.

“하.”

한 차례, 화이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여전히 그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떨리는 손을 털어내며, 그가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바라보는 것은 오직 정면.

본래 루이가 서 있던 장소는, 해일이라고 표현하기에 손색이 없는 파도에 의해 깔끔하게 쓸려나간 채였다.

당연하게도, 시체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아마 휘몰아치는 파도의 압력에 버티지 못하고 터져나갔을 것이라 예상하며, 화이트가 손목을 투둑 꺾었다.

그의 눈동자 위로는 어느새 약간은 곤혹스러움이 떠올라 있었으니.

‘……자칫하면 역으로 당할 수도 있었다.’

얕은 한숨을 내쉬면서, 화이트가 아직까지 긴장이 풀리지 않은 눈빛을 빛냈다.

……화살의 폭격 이후, 화이트가 펼친 그 자신의 고유 마법.

부자연스러운 푸른빛으로 일렁이던 그 파도는, 언젠가 한 차례 다른 마왕을 쓰러뜨린 전적이 있는 기술이었으니.

금색의 마왕을 마무리 지었던 그 기술을, 루이 밤피르는 무척이나 간단히 파훼해 버리고 말았다.

하물며 그 당시와는 다르게, 화이트의 경지는 한 단계 올라 있는 채였음에도 불구히고.

‘아무리 금의 마왕이 최하위권에 속하는 자였다지만, 그래도 같은 12마왕일진대.’

이렇게까지 큰 격차가 있는 걸까.

하물며 루이는 회색의 마왕, 아파르와 비교해도 한층 그 격이 달랐다.

분명 ‘루이 밤피르’의 육체를 사용하고 있는 상태로는 그 자신의 본래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 분명할 텐데도.

-나는 이 몸에 이미 적응했어. 아파르는 달랐지만, 나는 이 몸이 마음에 든다.

“…….”

마법을 섞기 이전, 그가 내뱉었던 말이 화이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적응, 이라.’

화이트의 눈동자가 묘한 이채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리이칸테르 후작가에 숨어들었던 마왕, 아파르는 분명 그저 가죽만을 뒤집어쓴 상태였었다.

그렇기에 밤피르 가문의 마왕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루이 밤피르는.

정확하게 말하면, 그의 몸을 빼앗은 마왕은.

분명하게 밤피르 가문의 고유한 능력인 피의 기운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것도 완벽하리만치, 그 밤피르 후작마저 뛰어넘은 듯한 기세로.

“…….”

턱을 한 차례 쓸며, 페르안이 고민에 잠겼다.

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루이 밤피르의 몸을 뒤집어쓰지 않았던 시절의 마왕에 대한 것이었으니.

‘8서클은 아니겠지.’

……결론을 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애초에 굳이 고민을 할 필요조차 없는 문제이지 않겠나.

‘……9서클, 대마도사 급.’

……다른 이의 육체를 빼앗아, 그 원주인의 능력마저 훔칠 정도의 마법사라면.

고작해야 8서클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해도 좋았다.

루이 밤피르, 그의 본래 마법의 경지는 필시 9서클에 닿아있을 것이라고.

화이트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9서클의 대마도사 급 마법사라면, 아무리 8서클에 올랐다고 한들 그로서도 쉽사리 상대하기란 무리가 있었을 것이니.

“……루이 밤피르의 육체를 고집했기에, 오히려 간단히 죽일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피식-

조금은 허탈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여 화이트가 한 차례 헛웃음을 내뱉었다.

……아무리 밤피르 가문의 힘이 마음에 들었다고 해도, 그게 목숨을 버릴 이유는 안 되지 않겠나.

그는 진작에 그 자신의 전력을 해방했어야만 했다.

루이 밤피르의 몸을 포기하고, 원래의 육체를 되찾아, 9서클의 힘으로 자신을 상대했어야만 했다.

그랬더라면, 아무리 자신이 고유 마법을 중첩시킨다는 승부수를 띄웠다고 한들 이토록 쉽사리 죽일 수는 없었을 터.

“뭐, 이제 와서는 의미 없는 가정인가.”

한 차례 어깨를 으쓱하며, 화이트가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던 마나를 재차 서클로 되돌려 놓았다.

……이렇게 거칠게 싸움을 벌여놓았으니, 어쩌면 제3의 인물이 이변을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밤피르 가문의 인물이든, 다른 마왕이나 그 하수인이든 간에.

들켜서 좋을 것이 없는 상황, 불필요한 분쟁을 자아낼 만한 가능성은 일찍이 잘라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럼.”

돌아가도록 할까.

그렇게 생각하며, 화이트가 고개를 돌렸다.

어딘가에 쓰러져 있을 오르카를 회수하고, 그녀와 함께 재빠르게 이 자리를 벗어나고자.

“──.”

……그게 실책이었을 것이다.

한순간이나마, 긴장을 늦춘 채 안도하고 만 것이 그의 실수라고 할 수 있으리라.

오싹-

“……!”

순간적으로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

온몸의 털이 쭈뼛 세워지며, 머릿속에서 쉴새 없이 경종이 울리기 시작한다.

“……무슨.”

……그리고, 그쯤에서는 이미 늦고 말았다.

“──어처구니가 없네.”

무척이나 싸늘한 목소리가, 화이트의 귓가를 파고드는 것처럼 들려왔다.

“……울려 퍼져라.”

반응은 재빨랐다.

목소리와, 그 주인의 존재를 인식하자마자 화이트는 하나의 마법진을 작성했다.

짤막한 시동어와 함께, 화이트의 손끝에서 한 차례 파문이 일었다.

「파동」

우웅!

공기가 울리는 것만 같은 공명음과 함께, 화이트의 손바닥에서부터 무형의 기운이 쏘아져 나가려고 하는.

……바로 그때.

퍼억!

“……!”

순간적으로, 인식하지 못한 거리에서 공격이 들어온 건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큭……!”

골이 울리는 것만 같은 감각과 함께, 화이트가 쓰러지려는 몸을 애써 부여잡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지금 쓰러지면 모든 게 끝나게 되리라.

그렇기에 더욱 거세게 이를 악물며, 화이트가 정신을 붙잡았다.

후욱!

어느새 나타난 건지, 냉기를 벼린 것만 같은 청백색의 창이 화이트의 손에 들어왔다.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이 그것을 휘두른다.

쩌어어어어어엉!

고막을 찢어발기는 것만 같은 굉음이 터져 나왔다.

공간 그 자체가 요동치며, 사방에 있는 그 모든 것이 무로 되돌아갔다.

그것이 건물이든, 나무든, 혹은 바위든 간에.

일체의 차별조차 없이, 그야말로 깔끔하게.

“…….”

고오오오-

……한 차례, 서늘한 삭풍이 불어와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화이트를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저벅, 저벅.

무척이나 고요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쯤이었다.

……흐릿한 정신으로도, 누군가가 그 자신에게로 다가오고 있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며.

“……하.”

화이트가 한 차례 짓씹듯이 숨을 토해냈고.

그다음 순간, 화이트의 푸른 눈동자에 하나의 인영이 담기기 시작했다.

“……거의 10년 가까이 키워온 능력이었는데, 그걸 이렇게 허무하게 날려버릴 줄은.”

“…….”

무척이나 분개한 듯이, 그러나 역으로 잔잔하게 깔린 목소리를 중얼거리며.

한 사내가 화이트에게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리고, 그런 사내를 두 눈으로 온전히 바라보며.

콰득!

화이트는 피가 새어 나올 정도로 강렬하게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알고 있었기에.

지금 그 자신의 눈앞에서, 탁한 녹빛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사내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녹색의 마왕.”

화이트가 나직한 목소리로 그 이름을 입에 담았고.

“……나를 알고 있어?”

그 말을 받아내면서, 루이 밤피르의 탈을 벗어낸 녹빛 머리칼의 사내가 불쾌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

화이트의 표정이 착 가라앉았다.

……좋지 않았다.

무엇이 좋지 않으냐, 라고 묻는다면.

화이트는 망설임 없이 대답하리라.

‘모든 것’이 좋지 않았다고.

‘……열 둘이나 되는 마왕 중에서도, 하필이면 이 자가.’

처음의 당당하던 기세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루이 밤피르가 그 상대였더라면,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뿐일까, 확실하게 처리한 후 흔적조차 깔끔하게 지운 채로 사지 멀쩡하게 돌아갈 자신 역시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상황이 바뀐 지금.

중첩된 ‘푸른빛의 파도’로도 즉사시키지 못하고, 하물며 그 진정한 정체가 마왕 중에서도 ‘그’ 녹색의 마왕이라면.

“…….”

무척이나 싸늘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화이트가 이를 악물었다.

두 눈으로 온전하게 정면의 사내를 담아내면서, 화이트가 나직하게 중얼거린다.

“……에멜Emel.”

사내의 이름을.

조금 더 상세하게는, 12마왕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함을 가지고 있다는 녹색의 마왕의 진명을.

콰아아아아아!

거세게 입술을 짓씹으며, 화이트가 다시금 그 찬란한 마나를 전신에 두르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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