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0)클리포트의 핏줄
“……그래, 네가 있었구나.”
“…….”
쓰러졌던 몸을 다시금 일으켜 세우며, 루이 밤피르가 섬뜩한 미소를 그려냈다.
필시 전신이 격통으로 물들었을 텐데도, 그는 무척이나 태연해 보였다.
“피의 힘을 가지고 나서야 보이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됐단 말이지.”
“…….”
“너, 클리포트의 핏줄이구나.”
씨익!
루이 밤피르의 입꼬리가 기분 나쁜 형태로 끌어올려졌다.
그런 루이를 쳐다보면서, 화이트가 한 차례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클리포트든, 리이칸테르든, 혹은 밤피르든 간에 무언가 상관이 있나?”
화이트가 싸늘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눈동자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으며, 그저 결연한 의지로 가득 채워진 채였다.
“당연히 상관이 있지. 왜 없을까.”
후욱!
그런 화이트를 지그시 바라보며, 루이가 손끝에 핏빛 기운이 맺히게끔 만들었다.
오르카의 그것과 똑 닮은 종류의 힘이었으나, 정작 오르카의 기운과 비교하자면 한없이 강력한.
그야말로 마왕이라는 이명에 어울리는 거대하기 그지없는 기운이었다.
그 기운이 서린 손끝을 화이트에게로 향하게 하며, 루이가 재차 입을 열었다.
“이래 봬도 마왕이라고 불리는 몸인지라, 마법에 있어서는 관심이 넘쳐흐르지.”
“…….”
루이가 여전히 침묵하며 그 자신을 직시하는 화이트를 향해 손을 살짝 까딱였다.
그러자, 직후.
“……!”
콰아아아아아!
그야말로 한순간에, 핏빛 폭풍이 화이트의 정면으로 쇄도해 들었으니.
눈가를 가늘게 좁히며, 화이트가 맞대응을 위해 마나를 끌어올렸다.
심장에서부터 이끌어져 나온 찬란한 푸른빛은, 이윽고 화이트의 전신을 감싸는 방어막으로 그 형태를 바꾼다.
「쉴드」
핏빛 폭풍이 화이트에게 당도한 것은, 마침 푸른빛의 막이 철옹성과도 같이 화이트의 앞을 가로막은 순간이었다.
콰가가가가각!
마치 금속이 거칠게 긁히는 것만 같은, 그런 불쾌한 소음이 사방을 거칠게 울렸다.
강렬한 마나의 파장이 한순간에 퍼져나가며, 주변의 건물을 허무하게 부숴버렸으나.
정작 그런 광경을 만든 두 사람은 그저 태연할 따름이었다.
실제로 표정만 그러한 것이 아닌, 화이트와 루이, 두 사람 모두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절초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를 정도의 위력이었으나,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저 가벼운 한 차례의 충돌일 뿐이었다.
“그래, 그 정도는 막아낼 줄 알았어.”
와중에도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져 나간다.
루이 밤피르의 눈꼬리가 불쾌한 형태로 길게 늘어졌다.
그리고 내뱉는다.
“──네가 금색과 회색을 죽인 흉수구나. 클리포트의 핏줄.”
“…….”
……화이트에게 있어서,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어지간해서는 들켜선 안 되는 진실을.
화이트의 표정이 한순간에 착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 원인이 긴장이나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다.
딱히 공포의 감정이라고 할 만한 것은 화이트의 얼굴 위로 떠오르지 않았으니.
그저 평범하게 표정을 싸늘하게 굳힌 채로, 화이트가 양손에 푸른빛의 마나를 둘렀다.
“하하하…….”
대화할 생각 따위는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태도였으나, 루이에게 있어서는 전혀 상관이 없었던 것인지.
그가 기분 나쁜 웃음 소리를 흘리면서, 화이트를 향해 이채가 서린 눈빛을 빛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종의 욕망이 깃든 그런 눈빛을 말이다.
“마법의 가문이라, 한 번쯤 그 힘을 탐해보고 싶다고는 생각했었지.”
그리고.
덧붙이며, 루이가 핏빛 기운으로 전신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이제 내게도 그 기회가 왔네. 무척이나 공교롭게도.”
파직, 파지직!
마치 스파크가 튀는 듯한 모양새로 붉은 기운이 사방에 휘날렸다.
그리고 그 기운을 목도하고 있는 것은 단지 화이트뿐만은 아니었다.
“……말도 안 돼.”
여전히 바위에 그 몸을 기댄 채로, 오르카가 경악이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붉디붉은 핏빛 기운.
그것은, 그녀의 부친인 밤피르 후작마저도 쉽사리 낼 수 없는 강도의 기운이었으니.
오르카의 두 눈동자가 격하게 요동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아버지를 뛰어넘는 피의 힘이라니.’
거세게 이를 악물며, 오르카가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애써 도로 삼켰다.
그러나 격해지는 감정을 참을 수만은 없었다.
도저히 억누를 수가 없어서, 피어오르려는 분노를 도무지 내리누르기가 힘들어서.
어린 시절 마왕에게 몸을 빼앗겼을 그 자신의 진짜 오빠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파져서.
동시에, 그런 어린 소년의 몸을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빼앗아 여태껏 사용해 온 마왕이 너무나도 역겨워서.
……마지막으로, 그런 마왕을 상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자신이 무척이나 한심하게 느껴져서.
─주륵.
“……하.”
결국, 오르카는 눈물을 한 방울 두 방울씩 흘리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
연신 눈물이 흘러내리며 그녀의 뺨을 다시금 젖게 만들었으나.
……언제까지고 울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오르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비틀거려 가며, 그럼에도 어떻게든 애써 눈빛을 살벌하게 번뜩이면서.
그녀가 그 자신의 핏빛 기운을 다시금 운용하기 시작했다.
“──.”
목표는 단기간에 최소한의 전투를 성립시킬 수 있을 정도로 몸을 회복시키는 것.
원래라면 전장에서는 시도조차 하지 못할, 그야말로 전신이 무방비하게 바뀌게 될 위험한 수단이었으나.
‘……괜찮아.’
지금만큼은 상관없었다.
단순히 그 자신의 몸이 위험해지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
아랫입술을 얕게 깨물며, 오르카가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힘겹게 억누르기 시작했다.
시선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한 소년이 있는 장소.
……그녀의 진짜 오빠를 죽인 마왕과 대치하고 있는, 백금발의 소년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믿을게.’
오르카가 결연한 표정으로 눈꺼풀을 슬며시 닫았다.
우웅…….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선명한 붉은색의 핏빛 기운이 그녀의 전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
콰아아아아아아앙!
마을을 넘어, 그 건너편의 산맥마저 거세게 울릴 정도의 굉음이 터져 나왔다.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어, 그렇기에 굳이 흔적을 흘린 거고.”
“…….”
핏빛 기운이 담긴 구체를 연신 쏘아내며 루이가 내뱉은 말에, 화이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의 말은 대체로 들을 가치가 없는 것들이었으나, 이번만큼은 그냥 흘려넘길 수가 없었다.
‘……일부러 흔적을 흘렸다? 루시펠이 찾을 수 있도록?’
화이트가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무척이나 의심스럽다고 말하는 듯한 기색이 표정에서부터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궁금해? 내가 왜 흔적을 남겨서, 너로 하여금 이곳까지 오게 만들었는지?”
“…….”
침묵하는 화이트, 그러나 상관없다는 듯 루이가 말을 이어나갔다.
“단순한 이야기야. 너는 마치 사냥을 하기라도 하는 듯이 마왕을 하나하나 죽여나갔잖아.”
그렇기에 역으로 유인하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고, 루이가 덧붙였다.
그리고 그건 화이트 역시 인지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하긴, 대놓고 리이칸테르 저택을 습격했으니, 이 녀석으로서는 그런 생각을 품을 만도 한가.’
그러나 괘념치 않았다.
애초에 그따위 것들은 하등 상관이 없었기 때문에.
화이트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유인, 유인이라.”
드디어 화이트가 입을 열었고, 그에 루이가 눈을 한 차례 반짝거렸다.
“이제야 대화를 할 생각이 들었어? 제법 많이 기다려줬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하.”
루이의 한마디에 헛웃음으로 대꾸하며, 화이트가 정면을 향해 손을 쭉 뻗었다.
“전제부터가 틀려먹었어, 넌.”
우웅!
즉각 맺힌 푸른빛의 마나는, 하나의 마법진을 재빠르게 그려낸다.
마법진에 담기는 것은 오직 파멸만을 위한 술식.
강렬하기 짝이 없는 폭발적인 기운이 마법진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애초에 뭘 믿고 날 유인한 거지?”
“뭐?”
루이가 미세하게 인상을 찡그리며 반문했고, 그런 그를 향해 화이트가 섬뜩한 살의를 번뜩였다.
살벌한 미소와 함께, 화이트가 짤막한 한마디를 내뱉는다.
“네가 나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다른 마왕의 도움 없이, 오롯이 너만의 힘으로?”
그리고, 바로 직후.
“─터져라.”
「익스플로전explosion」
화이트의 나직한 한마디와 함께, 완성된 마법진이 한 차례 살벌한 빛을 발했고.
“……!”
그다음 순간, 루이가 깜짝 놀란 듯이 두 눈을 크게 떴으니.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야말로 폭발적인 기세로, 화염이 그 아가리를 벌리며 루이를 집어삼킬 듯이 나아갔다.
“……하하하!”
그러나 그런 살벌하기 짝이 없는 화염의 작열에도 불구하고, 루이는 크게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좋아, 좋다고!”
마치 광인마냥 입꼬리를 사납게 끌어올리며, 루이가 양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우웅!
한 차례의 공명음과 함께, 핏빛 기운이 그의 양 손바닥에서부터 터져 나온다.
그야말로 화이트가 펼친 폭렬 마법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의 붉은빛.
화이트와 루이, 두 존재로부터 파생된 화염과 피의 폭풍이 중간 지점에서 거칠게 맞부딪혔다.
콰과과과과과광!
사방을 환하게 비추는 붉은빛, 그리고 고막이 찢어질 듯한 굉음과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