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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79화 (80/158)

(EP.79)선수 변경

처음 얘기를 전해 들었을 당시에는,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 속에 빠뜨려진 기분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고, 납득할 수가 없어서.

아무런 대책조차 없이, 그렇게 황궁을 뛰쳐나갔다.

머릿속을 가득 메우는 것은, 그저 자신의 오빠인 루이 밤피르의 존재뿐.

무언가 오해가 있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무언가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머리로는 그따위 가능성은 하등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정하고 있었으나, 그 당시의 자신은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했었기 때문에.

그저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달린 끝에 루이 밤피르와 조우했더라면.

어떤 결말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애써 부정하고, 또 동시에 바랐던 것처럼 극적으로 오해가 풀렸을까?

“…….”

……아니, 아닐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날, 어느 한 백금발의 소년이 자신을 강제로 제압해가며 말려주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분명 그 목숨을 마왕에게 빼앗겼을 것이라고.

……그렇기에 감사한다.

-돌아가자, 오르카 밤피르.

자신을 말려준 백금발의 소년에게 고마운 감정을 품고 있다.

-내가 너를 도와주마.

-너와 함께 복수의 길을 걸어주겠다는 의미다.

그런 식으로 말해준 백금발의 소년에게서, 어쩌면 절망 속에 존재하는 한 줄기의 빛을 봤을지도 모르겠다.

……소년, 화이트의 존재가 있어서.

그가 내뱉어준 말들이 있어서, 자신을 말려주었기에.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되었어.’

……오빠는 죽었다.

지금껏 가문에서 함께 생활했던, 그 차갑기 그지없던 루이 밤피르는.

단순히 성장하며 성격이 바뀐 것이 아닌, 자신의 진짜 가족을 죽인 채 그 탈을 뒤집어쓰고 있던 마왕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은 분노했다.

화산이 폭발하듯, 깊숙한 곳에서부터 격한 감정이 치솟아 올랐다.

죽여버리고자 생각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무려 8서클의 대마법사가 자신의 복수를 도와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게 얼마만큼의 행운인지 모를 정도로 아둔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한층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상을 흘려보낼 수 있었다.

……그래, 그랬으나.

이제는 참지 못하겠다.

다시금 루이 밤피르를 마주하고, 그가 내뱉는 거짓된 말들에.

감춰두었던 분노가, 애써 억눌렀던 복수심이.

거칠고, 사납게, 더욱 강렬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을 구태여 참을 이유가 있을까.

복수를 바랐다.

어린 시절, 자신이 따랐던 오빠를 죽인 마왕에게 처참한 최후를 선사해주자고.

자신은 그렇게 마음을 먹었고.

그것을 행하는 것에 있어서, 일말의 망설임도 품지 않으리라.

“──.”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다시금 핏빛 구체가 폭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면에 서 있는 마왕은 그저 태연할 뿐이었다.

입꼬리는 여전히 끌어올린 채로, 마치 놀아주듯이.

평온한 기색을 얼굴 위로 띄우며, 보란 듯이 자신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낸다.

그것이 무척이나 억울하고, 그에 따라 분노가 더욱 거세졌지만.

‘인정하자.’

지금의 자신은, 지금의 오르카 밤피르가 가진 능력과 힘은.

12마왕의 일좌를 차지한 흉악한 마법사를 상대하기에는 한없이 모자랐다.

전력을 끌어올려서,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 핏빛 기운을 응용하더라도.

죽일 수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아니, 유의미한 타격을 입힐 수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압도적인 격차를 절감하고 만다.

……12마왕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마왕’이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최소 8서클의 경지에 올라야만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뿐일까, 그 8서클 중에서도 아득한 격차를 벌려야만 하고, 다른 대마법사 급 마법사들에게는 없는 요소마저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아마 제국에서 제일 유명한 8서클의 마법사, 그 클리포트 공작이라 하여도 12마왕과의 1대1 대결에서는 힘을 제대로 쓰지 못 하리라.

그럴진대, 어떻게 자신이 그런 마왕을 상대할 수 있을까.

이렇게 최소한의 전투가 성립되는 것도, 자신이 전력을 끌어올린 것과 마왕의 방심이 겹쳐진 결과일 것이다.

……제국을 떠받치는 일곱 가문의 후계자.

뱀파이어의 피를 짙게 이어받은 자신이라도, 아직까지는 어린 소녀에 불과했다.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나는 이 마왕을 죽일 수 없다.’

……그뿐일까, 의미 있는 치명상이나 하나 입힐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건 무척이나 분하고도, 억울한 나머지 눈물이 흘러나올 정도의 일이었으나.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싸워야만 했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게, 마왕의 위치를 파악하여 자신을 그에게로 데려다 준 화이트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른 채 죽어간 진짜 ‘루이 밤피르’를 위해서라도.

싸워야만 했다.

싸울 것이다.

어떤 식의 결말을 맞이하든, 설령 죽음이 자신에게 덮쳐든다고 해도.

최선을 다해, 전력을 다해.

……눈앞에서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고 있는 마왕을 죽이고자 노력할 것이다.

“……!”

……그리고.

그리고.

그 바로 직후였다.

우웅-

“─재미가 없다니까.”

아주 미약한 공명음과 함께, 눈앞의 마왕이 나직한 목소리로 그리 중얼거린 것은.

“……무슨.”

────!

“읏……!”

……그다음 순간 일어난 일은, 솔직하게 말하면 감지조차 못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대체 무슨 술수를 부린 건지.

“──아.”

투둑, 투두둑.

어느새 그 자신은 어느 한 거대한 바위에 부딪힌 채, 그 파편을 받아내고 있었으니.

“……쿨럭.”

입술을 비집고 핏물이 쏟아져나왔다.

온몸에서 끔찍한 격통이 느껴져 온다.

그야말로 한순간.

그저 한 차례, 핏빛 기운이 일렁거림과 동시에 자신은 튕겨 나갔다.

“……아, 읏.”

옅은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그야말로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핏물들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저 멍해진 머리로, 감각으로.

애써 고개를 들어 올리며, 흐릿한 시야로 정면을 쳐다볼 뿐.

“약해, 약하구나. 오르카.”

“…….”

어느새 자신의 오빠의 탈을 뒤집어쓴 마왕이 바로 눈앞까지 접근해와 있었다.

억누를 수 없이 요동치는 격한 감정에 입술을 쎄게 깨물었으나,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결국 자신은 무엇 하나 해내지 못했다.

복수는 무슨, 일말의 상처조차 입히지 못한 주제에 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

……우습게도, 눈물이 흘러내리고 말았다.

뺨을 촉촉하게 만드는 한 줄기의 눈물.

그 감각을 온전히 느끼며, 허탈한 감정이 담긴 헛웃음을 내뱉는다.

시선은 여전히 마왕에게로 고정된 채였다.

“한 가지 말해줄까, 오르카.”

“…….”

그런 자신을 향해, 마왕이 찬찬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뭐가 그리도 재밌는 건지, 입가에는 연신 미소가 걸려 있는 상태였다.

“내가 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전히 루이 밤피르의 몸을 유지하고 있는지 알아?”

“…….”

대답할 기력조차 없어 침묵했으나, 마왕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유는 하나지. 단순한 이야기야. 나는 이 몸이 마음에 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몸이 가지고 있는 피가.

……그리 덧붙이면서, 마왕이 불쾌하기 짝이 없는 느낌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뱀파이어의 핏줄이라니, 이토록 희귀한 몸이 또 어디에 있을까. 나는 이 육체를 버릴 생각이 없어.”

히죽, 마왕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맺혔다.

“나는 이 몸에 이미 적응했어. 아파르는 달랐지만, 나는 이 몸이 마음에 든다. 아, 아파르가 누군지 모르려나? 그는 리이칸테르에 숨어든 또 다른 마왕인데…….”

“…….”

계속해서 떠들어대는 마왕을 눈앞에 두고도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공격을 해서 그 입을 다물게끔 만들기는커녕, 듣기 싫은 이야기에 귀를 막을 기력조차 없었으니.

연약하기 그지없는 그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게 느껴지고 말았다.

“……뭐, 간단히 설명하자면 그런 거야.”

그리고 그때까지도, 마왕은 입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네 오빠는 죽었어.”

“──.”

“그게 한 10살 때쯤이었나? 밤피르 가문에 숨어들 기회를 엿보고 있던 내게 있어서는 최고의 선택지였지.”

……마왕의 이어지는 말에, 저도 모르게 입술을 강하게 깨물고 만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피어오르고자 하였으나, 한심하게도 자신에게는 그 분노를 힘으로 치환할 최소한의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할 수 있는 건, 눈을 부라리며 이를 악무는 것뿐.

“……닥쳐.”

애써 입술을 떼어내 그리 말을 내뱉어보았으나, 마왕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즐겁다는 듯이 입꼬리를 끌어올릴 뿐이었으니.

“부정할 생각하지 마. 네 오빠는 죽었어. 그것도 내게 그 힘을 바치고 영원히 사라지는 형태로 말이지.”

“그 입, 다물, 어……!”

“하하하! 그 표정 최고인데? 아름답다고, 오르카!”

팔을 쭉 벌리며, 마왕이 무척이나 즐겁다는 듯이 폭소를 터뜨렸다.

“죽일, 거야……!”

그럼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없어서, 손가락을 까딱거릴 힘조차 없어서.

그리 살벌하게 내뱉어봤자, 오히려 마왕을 기쁘게 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죽여버릴 거야, 마왕!”

그렇게 짓씹듯이 말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흘러내리던 눈물은, 양 뺨을 서늘하리만치 젖게 만들고 있었다.

“이제는 네 몸까지 탐나는데, 오르카.”

아직까지 할 말이 남아있었던 걸까.

마왕이 다시금 눈꼬리를 유려하게 휘게 만들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루이 밤피르의 몸과, 가문의 역사상 최고의 재능을 타고났다는 네 능력마저 흡수한다면…….”

그의 표정 위로 광기가 떠오른다.

그건 그야말로 소름이 끼치면서도, 동시에 상당한 두려움을 품게 만드는 것이었으니.

“자, 내게 네 몸을 바쳐, 오르카! 네 그 권능마저 흡수해서, 나는 12마왕의 정점을 노린다!”

그렇게 말을 끝맺으며, 마왕이 손을 뻗어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불쾌하고, 또 불쾌하기 짝이 없는 손길이었으나.

그것을 피해낼 방법이 도무지 떠올리지 않아서, 그저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거칠게, 그야말로 또다시 피가 새어 나올 정도로 거세게 이를 악물며.

………그렇게, 손길을 뻗어오는 마왕을 있는 힘을 다해 노려보고 있자니.

텁.

“──.”

그 순간이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다가오던 마왕의 손길이 한순간에 멈춰 세워진 것은.

“……어?”

당황 섞인 목소리가 고요하게 울렸다.

그건 과연 자신의 것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마왕의 것이었을까.

……그 진실은 알지 못하겠으나.

하나, 분명한 것은.

“……너는?”

마왕의 얼굴 위로, 처음으로 당혹감이 떠올랐다는 점일 것이다.

……자연스레 시선이 옆으로, 측면으로 향해진다.

“……아.”

보이는 것은 찬란하게 빛나는 백금발.

그리고 푸른빛으로 번뜩이는, 마치 바다를 담아내고 있는 듯한 보석 같은 눈동자.

“……말이 너무 많아.”

마치 마왕의 앞을 가로막듯이, 한 소년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무척이나 불쾌하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린 채로.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 소년의 입꼬리는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으니.

“선수 변경이다, 마왕.”

우웅-

짤막한 한마디와 함께.

소년, 화이트가 그 자신의 푸른빛 마나를 찬란한 광휘의 형태로 이끌어냈다.

“연약한 소녀를 괴롭히는 짓은 적당히 하고, 격이 맞는 상대와 붙어야지.”

화이트의 입매가 사납게 비틀렸고.

……그다음 순간.

후욱!

“……컥!”

짧은 침음성과 함께.

루이 밤피르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마왕은.

……그 자신을 압도적으로 몰아붙였던, 그 마왕은.

그야말로 한순간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가볍게 그 몸을 쓰러뜨렸으니.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오르카.”

“……어?”

화이트의 말에 저도 모르게 멍한 목소리로 대꾸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런 의문 섞인 목소리에는 상관하지 않은 채.

화이트는 그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흘겨볼 뿐이었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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