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75화 (76/158)

(EP.75)세 번째 마왕

[‘루이 밤피르’의 흔적을 찾았다.]

“…….”

황궁 내, 황실 마법사단의 성.

그 꼭대기 층에서 음울하게 울려 퍼진 루시펠의 목소리에, 화이트의 표정이 한순간에 굳어졌다.

당장 떠오르는 것은 조금 전 헤어졌던 붉은 머리칼의 소녀였으니.

‘……벌써 찾을 줄이야.’

화이트가 얕게 혀를 찼다.

12마왕의 흔적을 쫓은 상황, 굳이 평하자면 안 좋기는커녕 기쁨에 환성을 질러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긴 하지만.

‘아직 오르카는 준비가 안 되었을 텐데.’

화이트가 걱정하고 있는 부분은, 다름 아닌 오르카의 정신적인 상태였다.

멘탈이라고 표현해도 좋으리라.

어찌 되었든 간에, 그녀는 아직까지 그 자신의 오빠를 죽인 마왕을 마주할 준비가 안 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 와중에 루시펠이 정보를 물어 왔으니…….

복수를 도와주겠노라고 당당히 선언한 화이트로서는, 조금은 미묘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화이트가 복잡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는 와중에도, 회의는 계속되고 있는 중이었다.

“……죽일 수 있으면 죽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리이칸테르 후작이 진중한 태도로 그리 말을 꺼냈고, 그에 테이칸이 얕게 침음을 흘렸다.

12마왕, 그중에서도 밤피르 가문에 숨어들어 루이 밤피르의 육체를 빼앗은 마왕.

그런 그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었다면, 어떤 형태로든 끝을 맺을 필요가 있을 터.

……그렇지만.

테이칸이 미간을 찌푸린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중요한 건 어떻게 죽이냐는 거군요.”

“그렇지.”

리이칸테르 후작의 덧붙임에 테이칸이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중요한 것은 사실 12마왕의 위치 따위가 아니었다.

그 무엇보다도 우선시해야 할 것은, ‘어떤 방법을 통해 마왕을 죽이는가’였으니.

테이칸과 리이칸테르 후작, 그리고 상석에 앉은 프리드리히의 표정이 살며시 굳어지기 시작했다.

각양각색의 감정을 얼굴 위로 띄우고 있었으나, 한 가지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그 세 인물 모두가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다는 점일 터.

[흐음.]

그런 그들을 지그시 지켜보며, 루시펠이 그 자신의 검은 로브를 한 차례 휘날렸다.

[뭐, 나설 수 없는 놈들이야 고민해봤자 무용(無用)하지 않겠나?]

“…….”

어쩌면 조금은 무례하게 느껴질 발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테이칸이나 리이칸테르 후작은 무어라 반응을 하지 못하였다.

실제로 틀린 말은 아니었고, 현재 실시간으로 그 사실을 절감하는 중이었으니.

테이칸과 리이칸테르 후작의 표정이 더욱 깊게 가라앉았다.

제국이 12마왕과 전면전을 벌이고자 마음을 먹지 않는 이상, 그들은 나설 수 없었다.

12마왕 측에게 빌미를 주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되었고, 한 술 더해 그들이 명분을 잡게 되면 더욱 곤란한 일이 되어버린다.

……대륙에는 마냥 제국에 협조하는 국가나 세력들만 널려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하이에나처럼 물어뜯을 기회를 노리는 세력이 있었으면 있었지, 실상 대륙에 거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제국에게 있어서 진정한 의미의 동맹국이라고 할 만한 곳은 없다시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이 대륙의 정점에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굳건한 황실과 그를 떠받치는 일곱 가문의 존재 탓이었으니.

그런 만큼 더더욱, 리이칸테르 후작이나 테이칸이 전면에 나설 수는 없는 일이라는 말이었다.

“……애초에 아직까지 금색과 회색을 죽인 범인이 제국 측의 인물이라는 것을, 그들로서도 확신은 못 하고 있을 테고.”

“…….”

리이칸테르 후작의 말에, 회의실 내부의 모든 인물의 시선이 화이트에게로 향해졌다.

“……아.”

그리고 그제서야 상념에서 깨어난 건지, 고개를 슬쩍 들어 올리며 멋쩍은 웃음을 흘리는 화이트.

“설마 둘이나 되는 마왕을 죽인 범인이 아직 20년도 채 못 산 어린 소년이라고는 생각지 못하겠죠. 아직까지는 괜찮을 겁니다. 그렇기에 더욱 제가 나서야만 하는 일이고요.”

“……괜찮겠느냐.”

프리드리히가 내뱉은 말이었다.

그것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겠지만, 가장 진하게 묻어나오는 감정은 오직 걱정스러움이었으니.

화이트가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이미 두 마왕을 제 손으로 죽였습니다. 하나 더 상대한다고 한들, 무리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

좌중에 다시금 침묵이 내려앉았다.

고요하면서도, 상당히 불편하기 짝이 없는 그러한 정적이었다.

루시펠을 제외한 제국 측의 세 인물의 표정이 착잡함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 덮어놓고 진실만을 직시하자면, 사실 아직까지 20살도 채 되지 못한 소년에게 모든 위험을 뒤집어씌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한 가문의 가주로서, 혹은 최소한 화이트보다는 많은 삶을 살아온 ‘어른’이라는 입장에서.

그들은 많든 적든, 죄악감을 품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흥.]

그리고 그런 그들의 감정을 루시펠은 꿰뚫어 보듯이 할 수 있었고, 말이다.

한 차례 코웃음을 치며 루시펠이 태연한 어조로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망설이는 이유가 결국 그것이 아니던가? 화이트에게 모든 위험을 짊어지게 하는 것. 그게 네놈들로 하여금 결정을 못 내리게끔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일 테지.]

“…….”

루시펠의 직설적인 말에 프리드리히의 표정이 착 가라앉았다.

부정하고 싶었으나, 부정할 수가 없었다.

프리드리히의 복잡한 시선이 얌전히 앉아있는 화이트에게로 향했다.

화이트 역시, 그런 프리드리히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올곧게 마주하는 모습.

“……미안하구나, 믿음직스럽지 못한 어른들이라서.”

끝내 프리드리히가 내뱉은 말은 그러한 것이었다.

프리드리히를 비롯한 제국 측 인물들, 즉 리이칸테르 후작과 테이칸 역시 죄책감을 품지 않을 수는 없었다.

실제로 그들이 화이트에게 모든 역할을 떠맡기다시피 하고 있는 상황임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으니.

12마왕 중 둘이 그 목숨을 잃은 상황 속에서, 그러한 상황이 끝내 전면전으로까지 번지기 전에 더욱 그들의 전력 손실을 바라기에.

……그렇기에 고작해야 10대의 소년을, 전장을 향해 등을 떠밀고 있는 것이 명백한 현재 상황이었기에.

프리드리히와 리이칸테르 후작, 그리고 테이칸의 표정은 이루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 채였다.

얘기를 이어가면서도 차마 화이트를 말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자괴감.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비록 상당히 성숙한 소년이라고는 하나 아직 한낱 아이에 불과한 화이트에게 목숨이 오고 가는 전장으로 향할 것을 종용하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한 죄악감.

그러한 것들이 그들로 하여금 망설이도록 만드는 요인들일 것이리라.

특히 화이트의 부친인 테이칸은 더욱 심할 것이었고.

……하지만.

“괜찮습니다.”

그 모든 걱정들과 고민들, 상념은.

적어도 화이트에게 있어서 그닥 의미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옅은 미소를 입가에 건 채로, 화이트가 최대한 목소리를 평온하게 바꾸며 말을 이어나갔다.

“애초에 12마왕을 죽이겠다고 결심한 것은 저입니다. 딱히 에드발트 경이나 리이칸테르 후작 각하의 의견에 따라 결정한 게 아니라는 거죠.”

“……화이트.”

“그리고, 아버지.”

자신의 이름을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테이칸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화이트가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걱정하지 마시죠. 제게는 자신이 있으니까.”

“자신이라고……?”

테이칸이 착잡한 표정으로 반문했고, 그에 화이트가 약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입을 열었다.

“……그 어떤 마왕이 상대라 할지라도, 어떻게든 죽일 수 있다는 자신이.”

……무척이나 싸늘한 살의가 묻어나오는 미소와 함께.

*****

“그럼, 결정되었군요.”

“…….”

여전히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침묵을 고수하는 세 사람을 안심시키기 위해 미소를 그리며.

화이트가 찬찬하게 루시펠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루이 밤피르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나?”

[……크흐흐, 그럴 리가 있겠나.]

그 어깨를 한 차례 으쓱거리며, 루시펠이 기분 나쁜 웃음과 함께 말을 이어나갔다.

[만약 정확한 위치를 특정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접근했더라면, 나의 망자의 군단은 몰살당하고 말았겠지. 그 자신을 추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마왕에 의해 말이다.]

“그래도 대강의 위치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을 것 아닌가. 공유를 바라는데.”

[물론, 네게는 전해줄 생각이었다.]

그저 고개를 굳게 주억거리며, 루시펠이 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이내, 그의 안광이 섬뜩한 검은빛으로 일렁이기 시작할 즈음.

[……밤피르 후작령. 그 북부의 끝자락에 존재하는 마을, ‘벨티아’.]

‘루이 밤피르’로 위장하고 있을, 마왕의 흔적이 발견된 장소를 루시펠이 입에 담았고.

“…….”

그에 화이트의 입가에 감출 수 없는 미소가 그려졌으니.

잠시 그런 화이트의 미소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이내 루시펠이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퍽 마음에 드는 미소군, 화이트.]

그리고는 그 특유의 기분 나쁜 웃음을 한 차례 흘리는 루시펠.

자연스레 화이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네 마음에 들고자 짓는 미소는 아니었는데. 살기등등한 미소가 취향인가?”

[크하하하…….]

화이트의 농담 아닌 농담에 루시펠이 크게 폭소를 터뜨렸다.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한 차례 혀를 쯧 차고는, 화이트가 몸을 홱 돌렸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 자신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는 세 명과, 흥미롭다는 듯한 시선을 향하게끔 하는 하나의 리치를 뒤로 하며.

“……마왕을 잡아 오도록 하죠.”

화이트가 진한 살기가 묻어나오는, 싸늘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웠다.

……향하는 곳은 루시펠이 말한 밤피르 후작령.

그중에서도 끝자락에 위치한 자그마한 마을, ‘벨티아’.

그곳으로 가서, 마왕을 죽인다.

오직 목적은 그것뿐이었다.

“…….”

……그렇지만.

그전에, 우선 처리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면.

“후우…….”

얕게 한숨을 내쉬며, 화이트가 살짝 고민하는 기색을 그 얼굴 위로 띄웠다.

속으로 떠올리는 것은 다름 아닌, 붉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한 소녀였으니.

‘……우선은, 만나보고 나서 결정한다.’

황실 마법사단의 성, 그 입구를 나서며.

화이트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조금 전 속으로 떠올린 그 붉은 머리칼의 소녀, 오르카가 있을 밤피르 후작가의 저택을 향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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