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3)꼬리 치면 혼나요
“그러니까, 스승님에 대한 설명은 대강 하셨다고요.”
“그렇다니까요?”
몇 번을 말하냐면서 볼을 부풀리는 아셰라를 흘기며, 화이트가 얕게 침음을 흘렸다.
이내 시선은 옮겨져 조금 멀리 옮겨진 오르카를 향했다.
아셰라의 압박에 의해서인지, 반강제적으로 쭈그러들어 있는 모습.
화이트는 그런 그녀가 조금은 안쓰럽다는 생각을 품었다.
“……오르카, 괜찮냐?”
“으응……?”
헛기침과 함께 그 자신을 부르는 화이트의 목소리에, 오르카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눈이 반쯤 죽어 있는 것이 무척이나 침울해 보였다.
그에 자연스레 아셰라를 향해 한 차례 떨떠름한 시선을 던지는 화이트.
“으음, 아하하…….”
그런 화이트의 시선에 약간은 무안함을 느꼈을까, 아셰라가 움찔하며 볼을 긁적였다.
“서열 정리가 살짝 지나쳤던 걸까요?”
“살짝 지나친 정도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딱!
화이트의 태클에 아셰라가 완드를 한 차례 휘둘렀다.
“아.”
“말대꾸하지 마세요.”
억울하다는 듯이 눈꼬리를 추욱 늘어뜨리는 화이트를 뒤로 하고, 아셰라가 오르카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오르카가 흠칫하며 몸을 뒤로 물리고자 했으나, 아셰라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싱그러운 미소를 입가에 건 채로, 그녀가 총총걸음으로 오르카에게 다가갔다.
“오르카 영애.”
“……네, 네?”
아셰라의 나직한 부름.
오르카가 몸을 달달 떨어대며 최대한 공손하게 대꾸했다.
그 자신의 아버지인 밤피르 후작에게도 반말을 사용할 정도인 그녀였으나, 어째서인지 아셰라에게는 연신 예의를 차리는 모습.
아마 그건 반쯤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화이트가 조심스레 그런 생각을 품었지만.
“지금 무슨 생각 했어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아차린 건지, 즉각 날아드는 아셰라의 싸늘한 시선에 화이트는 눈길을 슬며시 피할 수밖에 없었다.
“흠.”
그런 화이트를 한 차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흘기며, 아셰라가 재차 오르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흔들림 없는 금빛 시선과 달달 떨리고 있는 붉은 시선이 마주쳤다.
“…….”
꿀꺽!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고 마는 오르카.
순간적으로 당황했으나, 그런 기색을 애써 드러내지 않게 하며 그녀가 아셰라를 힘겹게 직시했다.
“잠깐 저랑 따로 얘기하실까요?”
그리고 그런 오르카에게로 아셰라가 내뱉은 첫마디란, 그러한 것이었으니.
“……네?”
당혹스러움을 미처 숨길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한순간에 표정을 굳히며.
오르카가 울상을 짓고는 화이트를 향해 구원의 눈길을 슬그머니 던졌다.
……던졌으나.
“……음, 흐음.”
정작 그런 시선을 받는 화이트는, 살짝 고개를 틀어버리는 것으로 구원을 거부하였고.
오르카의 표정이 일순간에 절망으로 물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미안하다, 오르카.’
속으로만 사죄의 말을 내뱉으며, 화이트가 애써 무겁게 고개를 주억였다.
어쩌겠나.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자신도 스승에게는 대항할 수 없었기에.
방관하는 것이 최선의 수였다.
“……야, 화이트!”
“흐음, 흠.”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소녀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화이트가 아무말이나 입 밖으로 꺼내 들었다.
“아, 이 과일 맛있어 보이는데.”
관심도 없는 나무 과일에 손을 뻗는 화이트.
그의 표정 위로는 아주 약간의, 미묘한 죄책감이 서려 있었다.
*****
“…….”
“…….”
황궁의 한쪽 구석, 방치된 나무숲.
그 한가운데로 쏟아져 내리는 미약한 햇빛을 받으며, 두 소녀가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한쪽은 짙은 검은빛의 머리카락을 찰랑거리고 있었고, 또 다른 한쪽은 찬란한 붉은 빛깔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으니.
아셰라와 오르카, 두 소녀가 약간의 간격을 둔 채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목적지는 따로 없었다.
그저 아셰라가 먼저 발을 내디디고, 그 뒤를 오르카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뒤따를 뿐.
‘무, 무슨 말을 하려고…….’
짐짓 울상을 지으며, 오르카가 타들어가는 속을 애써 진정시키고자 했다.
평소의 발랄한 그녀의 모습을 생각하면,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으나.
그도 그럴 만하지 않겠는가.
당장 화이트가 명상에 잠겨 있을 당시, 오르카는 그 자신을 화이트의 스승이라고 소개한 소녀에게서 압도적인 힘의 격차를 느껴야만 했으니.
아마 의도적으로 힘을 드러냈던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품으며.
오르카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계속해서 아셰라의 뒤를 쫓아갔다.
그리고 또 그로부터 긴 침묵이 이어졌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화이트가 있던 장소에서 상당히 멀어진 것 같다는 감각만이 희미하게 들 즈음.
“오르카 영애.”
아셰라가 입을 연 것은 그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정면만 바라보며 걸음을 옮기던 그녀가 슬며시 고개를 돌리며, 오르카를 직시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싸늘하던 기세와는 다르게, 무척이나 상냥한 표정을 얼굴 위로 띄운 채로 말이다.
그에 오르카가 당황스러움을 느낄 틈도 없이, 아셰라가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미안해요, 제가 조금 지나치게 겁을 준 것 같네요.”
“……네, 네?”
당혹감이 서린 목소리를 내뱉는 오르카를 앞에 두고, 아셰라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 이러지 마세요!”
그에 오히려 화들짝 놀라며 손을 내젓는 것은 오르카였으나, 아셰라는 그저 태연할 뿐이었다.
“아뇨, 사과는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싱긋 미소를 지으며, 아셰라가 오르카의 손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반사적으로 몸을 흠칫하는 오르카였으나, 그에는 상관하지 않은 채로 아셰라가 재차 입을 열었다.
“제가 너무 짓궂었죠?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 제자님이 관련되면 제가 조금 감정적으로 바뀌게 되거든요.”
아셰라가 그리 내뱉었고, 오르카는 그저 눈을 이리저리 흔들 수밖에 없었다.
“그, 그으……. 네에…….”
애써 꺼낸 대답이라고는 그러한 것이었으니.
상당히 안절부절못하는 그녀를 앞에 두고, 아셰라가 진심이 담긴 옅은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후후.’
그뿐일까, 속으로는 마치 기분이 좋은 듯이 얕게 웃음마저 흘리고 있었으니.
“흐음…….”
아셰라가 짧게 침음성을 흘렸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처음에는, 그 자신의 제자를 찾아 깊은 숲속까지 걸음을 옮긴 그녀가 약간은 방해라고 생각했다.
단둘이 있는 시간, 그에 더해 화이트의 수련에 민폐가 될지도 모른다고 판단했기에.
그렇기 때문에, 약간은 겁을 주고자 은연중에 미약한 살기를 내뿜기도 하였으나.
지금에 와서는 그다지 적대감이 들지는 않았다.
애초에 아셰라도 알고는 있었다.
그녀, 오르카에게 새삼스레 질투나 적의를 품을 이유 따위는 하등 없다는 것을.
그러나 화이트가 명상에 들어갔고, 그를 방해할 경우 좋지 못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한순간 살짝이나마 예민해지고 말았다.
결국 이후, 살짝 차분해지고 난 후에 다시 생각해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한참이나 어린 여자애를 상대로 겁이나 주고, 저도 아직 철이 덜 들었다는 뜻일까요.’
약하게 미소를 지으며, 아셰라가 오르카의 새하얀 손등을 슬며시 쓰다듬었다.
“……히끅.”
그에 오르카가 요상한 신음성을 흘렸으나, 애써 신경을 쓰지 않고자 하며.
아셰라가 천천히 입술을 떼어냈다.
“저는 당신이 싫지 않아요, 오르카 영애.”
“……네에?”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내는 오르카를 그저 지그시 바라보며, 아셰라가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영애는 제 제자님을 좋아하고 있죠?”
“……어, 네?”
그러나, 느긋한 어투와는 다르게 내뱉어지는 말은 무척이나 심각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으니.
……적어도, 오르카에게 있어서는 그러했다는 의미였다.
“네에에?!”
심하게 당황한 기색을 감출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오르카가 얼굴을 화악 붉혔다.
“무, 무슨 소리죠, 그게?!”
“……후후.”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고자 하였으나, 이미 당황한 마당에 어찌 그게 가능하겠는가.
“저, 저는. 그런 게 아니라……!”
횡설수설, 무어라 말을 내뱉고자 하였으나 어떠한 문장도 연결되지 않는 오르카를 잔잔하게 살피며.
아셰라가 약간의 짜릿함을 담아 입꼬리를 슬며시 끌어올렸다.
“그렇지만, 안 된다고요?”
그러면서 차분한 어조로 내뱉는 그녀.
“그저 약간 호감이 있을 뿐이지, 어, 아니, 호감이 아니라! 관심, 관심이! ……네?”
아무말이나 떠들어대던 오르카가 한순간에 표정을 멍하니 바꾸었다.
붉어진 표정은 여전했으나, 어딘가 흐릿하게 눈동자를 빛내며.
오르카가 의미심장한 기색으로 아셰라를 직시했으니.
아셰라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걸쳐지기 시작했다.
“…….”
아주 약간, 짧은 보폭으로 한 발짝 내딛는 그녀.
그 자신에게로 가까워지는 아셰라의 모습에, 오르카가 흠칫하며 몸을 뒤로 물리고자 했으나.
턱!
“……어?”
어느새 뒤편에는 거대한 나무가 길을 가로막고 있는 상태였다.
……그녀의 새하얀 뺨을 타고,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오르카의 턱선을 따라 한 방울의 땀이 흘러내려 지면을 적실 즈음.
“……제자님은 말이죠.”
아셰라가 오르카의 귓가에 대고 소곤소곤 속삭이기 시작했으니.
그녀의 금빛 눈동자가, 무척이나 서늘한 빛으로 한 차례 번뜩였다.
“저만의 것이라고요, 화이트는.”
“……네?”
오르카가 순간적으로 표정을 확 굳히며, 당황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셰라는 그저 천천히 말을 이을 뿐이었다.
“저는 당신이 싫지 않아요. 오히려 제 제자님을 좋아해 주는 여자아이가 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가산점을 쳐주고 있는데…….”
“…….”
“뭐, 그건 그거고.”
삐질삐질.
연신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오르카의 귓가에 대고, 아셰라가 결정타를 날렸다.
매우 조곤조곤한 어조, 그러나 분명한 의지가 담긴 그런 목소리로.
“─제자님에게 지나치게 꼬리를 치면, 크게 혼날 줄 알아요.”
……그렇게, 아셰라가 말을 끝맺었고.
“……히끅.”
한 차례, 딸꾹질을 해가면서.
끝내 쏟아지는 압박감을 참지 못하고, 오르카가 헤롱헤롱한 눈을 한 채 정신을 잃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