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72화 (73/158)

(EP.72)서열 정리

“화, 화이트!”

“……?”

눈을 뜨자마자 울컥하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봐오는 오르카의 모습에, 화이트가 고개를 슬며시 갸웃거렸다.

이게 뭐란 말인가.

분명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던 광경은, 오로지 그 자신의 스승인 아셰라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것뿐이었는데.

어째서 깨어나니 붉은 머리카락의 소녀가 하나 더 생겨났을까.

곰곰이 생각에 잠기던 화이트, 그러나 이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을까.

“어, 반갑다.”

대충 오르카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며, 화이트가 뻐근한 어깨를 한 차례 풀었다.

그 자신의 심상을 관조하는 일이란 것은 본래 무척이나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기 때문에.

애초에 도중에 바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기도 하였고, 그렇기에 온몸이 이렇게나 뻐근한 것이다.

그렇기에 화이트가 어깨부터 시작해서, 허리와 다리, 발목에 손목까지 풀고 있자니.

“나 좀 도와줘!”

“……?”

갑작스레 오르카가 꺼낸 한마디는 그러한 것이었다.

화이트가 고개를 측면으로 기울였다.

도와달라?

무엇을?

그런 의미를 담아, 화이트가 오르카를 지그시 바라봤고.

그에 기다렸다는 듯이 오르카가 빼액 소리를 내질렀다.

“네 스승 이상해! 무섭다고! 뭐 하는 사람이야?!”

“……???”

갑자기 날아드는 아셰라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에, 화이트가 약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전후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그 어떤 제자가 자신의 스승이 욕을 먹는데 기분이 좋을 수 있을까.

그렇기에 표정을 살며시 일그러뜨리고, 살짝씩 불쾌함을 표하는 화이트.

그에 오르카가 순간적으로 당황하며 ‘아차’ 하는 소리를 내었다.

“그, 그게 아니라. 첫 만남이 조금 미묘했던 탓에? 딱히 모욕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었는데에…….”

숫제 울먹거릴 기세로 오르카가 말을 늘어뜨렸다.

요동치는 그녀의 붉은 시선이 화이트를 한 차례, 아셰라를 한 차례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녀의 몸은 더욱더 쭈그러들 수밖에 없었으니.

“하하, 오르카 영애.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걸까요? 우리 사이 좋잖아요, 그렇죠?”

“어, 어어…….”

아셰라가 싱그러운 미소를 띤 채 내뱉은 말에, 오르카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화이트를 한 차례 쳐다봤다가, 다시금 아셰라의 눈치를 살피는 그녀.

그렇지만.

“…….”

……지그시 바라봐오는 아셰라의 시선에, 선택권이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까.

“네, 네에…….”

어울리지 않게 쭈그러드는 목소리로 대꾸하며, 오르카가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

“흐음…….”

대강의 상황을 전해 들을 수 있었던 화이트.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화이트의 시선이 우선은 오르카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 시선에 어째서인지 몸을 움찔거리며 볼을 살며시 붉히는 그녀.

그런 반응에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화이트가 입을 열었다.

“그래, 나를 찾아왔다고?”

“……아, 응.”

오르카가 쑥스럽다는 듯이 그 붉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대꾸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화이트와 조심스레 마주쳤다.

어째서인지 더욱더 붉어지는 그녀의 양 뺨.

……그러나.

“오르카 영애……?”

“……네, 넷!”

싸늘하게 가라앉은 아셰라의 부름에, 오르카가 순간적으로 몸을 팟하고 굳혔다.

자세를 더욱 공손하게 고치고, 얼굴에서 붉은빛을 한순간에 지워버린다.

그녀의 붉은 동공이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옳지.”

“아, 아하하…….”

그제서야 평온해지는 아셰라의 표정.

그러나 줄곧 이어지는 집요한 시선은 거둬지지 않았으니, 오르카는 진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

그리고, 그런 두 소녀의 만담 아닌 만담에.

화이트의 표정이 대충 알만하다는 듯이 바뀌었다.

“……뭐, 뭔데? 그 시선은.”

자신에게로 날아드는 화이트의 안쓰럽다고 말하는 듯한 시선에, 오르카가 울컥하며 쏘아붙였다.

그러나 일체 신경 쓰지 않은 채, 화이트는 그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그리고 한마디를 툭 내뱉는다.

“힘내라.”

“뭐……?”

그뿐 아니라, 진지한 표정으로 오르카의 어깨를 두어 차례 툭툭 두드리는 화이트.

오르카의 표정이 저도 모르게 또다시 붉게 변했으나, 그에 대해서는 눈치채지 못한 채 화이트가 시선을 아셰라에게로 옮겼다.

“스승님, 아직 어린애입니다.”

잔잔한 어조로 툭 내뱉는 화이트를 향해, 아셰라가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흐응, 무슨 의미일까요?”

어느새 입꼬리는 미묘하게 끌어올려진 채였다.

그에 한 차례 몸을 움찔거리는 화이트였으나, 직전 8서클로 올랐다는 사실이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줬을까.

애써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며, 화이트가 재차 입을 열었다.

“……크흠. 너무 괴롭히지 말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모르겠으나, 분명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었겠죠. 다름 아닌 스승님께서 행하신 일이니까요.”

“……?”

그리고, 그렇게 화이트가 내뱉은 말에 아셰라뿐만 아니라 오르카의 표정도 묘하게 바뀌었다.

마치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한 눈빛이었으나, 안타깝게도 화이트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앞뒤로 꽂혀 드는 미묘한 시선을 인지하지 못한 채로, 화이트가 말을 이어나갔다.

“오르카는 적이 아닙니다. 딱히 제 수련을 방해하고자 온 것도 아닐 테고요. 스승님이 너무 심하게 경계할 필요는 없습니다.”

“…….”

싸아아아-

좌중에 싸늘한 분위기가 내려앉은 것은, 화이트가 말을 끝맺은 바로 직후였다.

“……?”

그에 당연하게도 의문을 품는 건 오직 화이트 혼자였으니.

“……음, 제가 뭔가 잘못 말한 거라도?”

화이트가 진정으로 모르겠다는 듯이 조심스레 물었고, 그에 아셰라와 오르카의 표정이 한순간에 구겨졌다.

“……아니에요. 제자님이 그렇죠, 뭐.”

“음……. 화이트.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우선 네가 틀렸다는 건 알 것 같아.”

아셰라가 볼을 부풀리며 지면을 한 차례 걷어찼고, 오르카가 미묘한 기색으로 쓴웃음을 흘렸다.

“……?”

화이트의 표정이 그 이상이 없을 정도의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뭐지, 뭘까.

뭔가 잘못 말한 걸까, 왜인지 모르게 핀트가 어긋나 있는 것만 같은 감각.

그 자신이 내뱉었던 말을 곰곰이 되새겨보며, 화이트가 턱을 괴었다.

“…….”

그러나 끝내 결론다운 결론이 내려지는 일은 없었기에.

화이트의 표정이 의문으로 뒤덮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눈동자를 차갑게 가라앉히고 있는 아셰라, 그리고 미묘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이며 실없는 웃음을 흘리는 오르카.

그 두 소녀를 한 차례씩 쳐다보던 화이트가, 이내 두 눈을 깜빡거리며 툭 내뱉었다.

“……그렇게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지 말고, 뭐라도 말을 해주시면 안 되는 겁니까?”

“하아아아…….”

그 이상으로 깊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긴 한숨이 아셰라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어느새 그녀의 눈빛은 싸늘하게 침체된 채였다.

“…….”

그리고 그런 반응에, 화이트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릴 수밖에 없었다.

보통 그 자신의 스승이 저런 식의 태도를 보일 때면, 그게 옳든 틀렸든 간에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내가 뭔가를 잘못한 건가? 그런 건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태도로, 화이트가 팔목을 쓸며 눈꺼풀을 슬며시 닫았다.

“하아.”

“아, 아하하…….”

……그 자신이 눈을 감고 난 이후, 두 소녀가 미묘한 시선을 한 차례 교환했다는 것을 화이트는 알 수 없었다.

*****

그로부터 대충 약간의 시간이 흐른 이후.

분위기가 조금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상태에서, 아셰라가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제자님.”

“예, 스승님.”

당연하게도 올곧게 대꾸하는 화이트.

그런 백금발의 소년을 향해, 아셰라가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걸어 보였다.

그녀의 눈에는 보였다.

그 자신의 제자인, 화이트의 심장 부근에 새겨진 또 하나의 찬란한 푸른빛의 고리가.

무척이나 놀란 듯이, 혹은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한 차례 그려 보이며.

그녀가 아련한 미소와 함께 재차 입을 열었다.

“……축하해요, 그렇게 바라마지않던 8서클에 발을 들였군요.”

“아.”

그리고 그렇게 그녀가 내뱉은 축하의 말에, 화이트의 표정이 한순간에 따스하게 바뀌었으니.

마찬가지로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화이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하하, 제자님도 참.”

태연히 날아드는 겉치레에 아셰라가 그러지 말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녀가 약간은 씁쓸한 듯이 쓴웃음을 흘렸다.

“농담이 아니라, 저는 진짜 아무것도 한 게 없는걸요?”

살짝 미간을 좁히며, 아셰라가 화이트를 향해 한 발짝 나아갔다.

어느새 그녀 자신보다 훨씬 커진 제자를 올려다보며, 아셰라가 싱그럽게 웃어 보였다.

“다 제자님의 성취이자, 제자님의 업적입니다. 저에게 돌릴 필요는 없어요. 제자님은 자랑스러워해도 좋습니다. 채 스물이 되기도 전에 8서클에 오르는 건, 그 적의 마왕이라고 해도 불가능할 거예요.”

“……스승님.”

그리고 그렇게 아셰라가 내뱉은 진심이 어린 축하의 말에, 화이트가 아련한 표정을 지었으니.

쿡쿡 웃음을 흘리며, 아셰라가 화이트의 손을 그 자신의 양손으로 조심스레 감쌌다.

서로의 따뜻한 열기가 전해지는 것을 느끼며, 두 사람이 이상야릇한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축하해요, 화이트.”

“……!”

그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는 스승의 한마디에, 화이트의 두 눈이 한순간에 크게 뜨였다.

“……아.”

그러나 그리 늦지 않게, 다시금 표정을 원래대로 돌리며.

“감사합니다, 아셰라.”

화이트가 약간의 헛웃음과 함께 그 자신의 스승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잔잔하지만, 묘하게 두근거리는 분위기가 두 사람 사이에 감돌기 시작했다.

맞잡은 손, 서로를 향하는 묘한 열기가 담긴 시선.

이윽고, 두 사람이 서로에게 뜨거운 눈빛을 던지며.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서로를 향해 다가가려고 하는.

……바로 그때.

“……잠시만, 뭐? 8서클?”

“……?”

순간적으로, 측면에서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으니.

“지금 8서클이라고 했어? ……요?”

심하게 충격을 받은 표정과 함께 내뱉으며, 그러나 애써 존대를 사용하는 오르카.

“…….”

“…….”

그러나 이내 날아드는 푸른 시선과 금빛 시선에, 뭔가 타이밍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까.

“……아, 음.”

한 차례 묘한 침음성을 흘리며, 오르카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미안해, 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사과를 하고 봐야겠다는 판단에, 재빠르게 사죄의 말을 내뱉는 그녀였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제자님.”

“네, 스승님.”

어느새 원래대로 호칭을 돌리며, 두 사제 간에 서늘한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그거 알아요? 원래 서열 정리는 초장부터 확실하게 해둬야 하는 거라는 걸.”

“그렇습니까?”

“그럼요. 그리고 그게 꼭 능력이나 힘의 서열을 뜻하는 말은 아니랍니다?”

화이트를 향해 태연히 내뱉으며, 어느새 잡았던 손을 조심스레 놓으며.

아셰라가 환한 미소와 함께 천천히 오르카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잘 알아둬요, 제자님. 그리고 오르카 영애.”

그래, 그건 그야말로.

무척이나 환하기 그지없는 미소였으나, 모순적으로 어딘가 모르게 혹한처럼 차가운 느낌을 주는.

그런 싸늘하기 짝이 없는 미소였으니.

“자, 그럼.”

입꼬리를 위태롭게 끌어올리며, 아셰라가 마지막 한마디로 말을 끝맺었다.

“지금부터 여자끼리의 서열 정리가 있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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