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1)도둑고양이
“흠, 흐음.”
슬슬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어두운 숲속을 직시하며, 오르카가 가벼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시선은 숲을 향해 있었으나, 정작 진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그 너머에 있었으니.
떠올리는 것은, 며칠 전의 일.
‘아버지가 전해 준 소식에 반쯤 이성을 놓고 공격을 가했는데.’
그 자신의 새빨간 손날이 백금발의 소년을 공격하는 광경을 천천히 떠올리며.
오르카가 약간의 의구심을 그 얼굴 위로 띄웠다.
그래, 그랬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자면, 어쩌면 조금은 의아해할 만한 일.
그야말로 혼란스러운 정신으로, 뒷감당은 생각하지도 않은 채.
-네 오빠는 이미 죽었다.
“…….”
그저 화이트가 내뱉었던 말에 분노하면서 공격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공격에는 그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상당한 기운이 담겨 있었으니.
말뿐인 얘기는 아니었다.
실제로 그녀, 오르카는 그 자신의 핏빛 기운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렸으며.
가문의 비기인 ‘피’의 능력까지 사용해 100%의 전력 그 이상을 운용했었다.
……그런데, 그랬는데.
그 소년, 화이트는.
그저 평범하게, 혹은 태연하게 그녀의 공격을 가뿐히 막아낼 뿐이었다.
“…….”
오르카의 표정이 미묘한 빛을 띠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란 말이지.’
지금에 와서야 떠올리는 생각이었지만, 당시의 자신이었다면 그 세레나 리이칸테르마저도 무난하게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그 자신의 또래 중에서 가장 높은 경지를 이룩했다고 알려진 세레나.
그런 그녀를 제압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끌어내 사용했다는 이야기였다.
그건 오르카와 밤피르 가문의 숨겨진 힘이었으며, 동시에 쉽게 드러내서는 안 되는 종류의 능력이었다.
그렇지만 당시 분노에 눈이 돌아간 그녀는 저도 모르게 그 능력을 사용하고 말았다.
‘피’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그야말로 일순간에 전력을 집중시켰다.
화이트를 향해 손을 뻗었으며, 다리를 내질렀다.
……그랬는데.
어떻게 그렇게, 실로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가볍게 압도할 수 있었던 걸까.
“…….”
슬며시 걸음을 멈추며, 오르카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살짝은 흐린 하늘, 그러나 그다지 관심은 없었다.
그저 시선을 둘 곳이 필요했을 뿐이었으며, 실시간으로 그녀의 상념은 이어지는 중이었다.
‘힘을 숨기고 있었을까?’
물론 알고는 있었다, 그가 알려진 것 이상으로 강한 마법사라는 것은.
실제로 화이트가 세레나를 압도한 것이 당장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었으니.
어떻게 모를 수 있겠나.
그건 평범한 5서클의 마법사가 해낼 수 있는 업적은 아니었기에.
최소 5서클의 끝자락, 혹은 그 너머에 이미 도달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건 그거고.
오르카는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 전력을 다한다면, 아무리 6서클의 마도사 급 마법사라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이.
그 자신의 능력, 그리고 힘에 대한 신뢰.
그것은 과대평가도 과소평가도 아닌, 그저 평범하게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뿐인 것이었다.
‘전력을 낸 나를 압도하는 마법사라.’
가볍게 입술에 손을 올리며, 오르카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화이트에 대한 평가는 실시간으로 조정되고 있었다.
‘6서클, 그도 아니면 7서클?’
추측을 이어나가며, 오르카가 입꼬리를 슬며시 끌어올렸다.
……사실 아무래도 좋았다.
6서클이든, 7서클이든.
10대의 나이로 이룩할 수 있는 경지는 절대 아니었으나, 설령 그 이상의 힘을 화이트가 가지고 있더라도.
오히려 좋았으면 좋았지, 나쁜 쪽으로 생각할 일은 없으리라.
“…….”
……강한 사람은 좋아한다.
그게 힘이든, 정신의 성숙함이든 간에.
그저 그렇게 올곧게 빛나는 사람은 언제나 보는 것만으로도 호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나 그것이 동갑의 소년이라면 더더욱.
“……아, 나 지금 뭐래.”
순식간에 열이 올라오는 감각을 느끼며, 오르카가 손바닥으로 눈가를 덮었다.
얼굴이 화끈화끈한 것이, 아마 지금의 자신은 그야말로 새빨간 홍당무가 되어 있지 않을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조심스레 품으며, 오르카가 입술을 얕게 깨물고 다시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여전히 동일했다.
눈앞의 숲속으로 진입하며, 오르카가 옅은 미소를 입가에 걸쳤다.
실로 10대라는 나이에 어울리는, 풋풋하면서도 어딘가 따스한 느낌을 주는 미소였다.
*****
……그리고 지금에 이른다.
“아핫, 아하하…….”
“…….”
실없는 미소를 흘리며 멋쩍은 표정을 짓는 오르카를 앞에 두고, 아셰라가 싸늘한 눈빛을 빛냈다.
“사랑, 사랑이라.”
“…….”
천천히 중얼거리기 시작하는 아셰라를 눈앞에 두고, 오르카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어째서인지는 도무지 모르겠지만.
눈앞의, 금빛 눈동자가 인상적인 소녀에게 거역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감에 가까운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으리라.
밤피르 가문의 피가 말하고 있었다.
“아하하, 정말이지. 재밌네요, 재밌어…….”
바로 정면에서 조금은 공허한 웃음소리를 흘리는 흑발의 소녀를 적대하지 말라고.
그건 과연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혹은─
*****
‘분노해라.’
동시에, 바라는 걸 떠올려라.
강제로 이끌어 내는 거다, 간절함을.
더욱 높은 경지에 이르기 위한 간절함을, 인위적인 방법을 통해서.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기행이었다.
그렇지만 가능성은 높았다.
“……”
……라고, 화이트는 판단했다.
콰아아아아아아!
어느새 찬란한 백금발은 거친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고, 바다를 담은 푸른 눈동자는 혼탁하게 침체되기에 이르렀다.
스윽-
마나를 전신에서 퍼뜨리며, 화이트가 고요하게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콰과과과과과과광!
“…….”
화이트가 손가락을 뻗은 위치에 서 있던 한 사내가 그 모습을 한순간에 감췄으니.
사라졌다고 표현해도 좋았다, 혹은 소멸이라거나.
화이트는 눈앞에서 사라진 회색의 마왕, ‘아파르’가 서 있던 장소에서 눈을 떼어냈다.
어느새 마나는 안정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고오오오-
그가 은연중에 사방으로 흩뿌리는 기세만큼은 억제되지 않았으니.
하지 못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더욱 간절함을 이끌어내.’
그저 공허한 눈빛을 섬뜩하게 빛내며, 화이트가 연신 마나를 운용해 나갔다.
─바라는 건 두 가지.
첫 번째는 12마왕에 대한 복수였다.
비록 지금은 사라진 시간대라고는 하나, 그 자신이 살아왔던 세계였으며, 대륙이었다.
그런 세계를 한순간에 멸망의 낭떠러지로 밀어넣은 추악한 마법사들에 대한 복수.
처참하게 망가뜨리고, 그들에게 있어서 최악의 형태가 될 끝을 선사해줄 것이다.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확실하게.
“…….”
……그리고, 두 번째는.
당연하게도, 흑발과 금안을 가진 소녀, 아셰라의 수호였다.
그녀를 지키고, 또 그녀를 위협하는 적을 물리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떤 형태로 이루어내게 되더라도.
필요하다면 영혼을 바쳐가면서까지.
어떻게든, 설령 시간을 다시금 되감는 일이 생긴다 해도.
‘나는, 스승님을 구원해내겠다.’
……그리고.
“──.”
화이트가 그러한 생각을 품은 직후였다.
콰아아아아아!
다시금 화이트의 전신에서 푸른빛의 마나가 거칠게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
짤막한 탄성을 속으로 내뱉으며, 화이트가 동공을 잘게 떨었다.
그리고 동시에, 직감할 수 있었다.
자신의 경지를 높이기 위한 실험, 혹은 도박.
비록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긴 했으나, 위험한 행동이었다는 것은 절대 부정할 수 없는.
그런 도박이, 성공적으로 끝을 맺었다는 것을.
‘……오랜만이구나. 마나가 흘러넘치는 이 감각도.’
우웅-
그 자신의 심장 부근에 마나의 고리가 하나 더 생성되는 감각을 느끼며.
화이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하하.”
얕은 웃음을 한 차례 흘리는 화이트.
……천천히, 그의 정신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늪에서 빠져나와, 푸른색과 하얀색으로 물든 심상 세계를 벗어나고.
고요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화이트는 현실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
……그리고.
그리고.
그렇게 천천히 두 눈을 뜬 화이트가 처음으로 본 광경이란.
실로 의아하기 그지없으며, 동시에 이해가 불가능한 그런 광경이었으니.
“……자, 복창합니다. ‘저는 도둑고양이입니다.’”
“네, 네? 무슨 고양이요?”
“도둑고양이요, 오르카 영애.”
“네에……?”
“모르겠으면 일단 따라하고 보세요. 아니면, 강제로 입을 열게끔 해드릴까요?”
움찔.
“……저, 저는 도둑고양이입니다?”
“네, 잘하셨어요.”
짝짝짝!
“……?”
의미를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며, 박수를 치는 그 자신의 스승 아셰라.
“히끅.”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며 마치 겁을 먹은 듯이 동공을 흔들어대는 오르카의 모습에.
“……???”
그야말로 드물게도, 화이트가 진심이 담긴 물음표를 머리 위로 띄웠다.
이게 무슨 상황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