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스승님이 사실은 흑의 마왕이었습니다!-70화 (71/158)

(EP.70)사랑을 찾기 위해?

“……음, 으음.”

연신 이상한 침음성을 흘리며, 오르카가 걸음을 옮겨갔다.

가끔씩 지나가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물어보기도 하며, 그들이 가리킨 방향으로 계속해서 발을 내디딘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오롯이 정면을 직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런 그녀의 머릿속에는, 황궁의 풍경 따위는 일체 떠오르고 있지 않았으니.

-내가 너를 도와주마.

-너와 함께 복수의 길을 걸어주겠다는 의미다.

“……아으으.”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기억에, 오르카의 얼굴이 한순간에 새빨갛게 변했다.

……어째서일까.

그럴 이유 따위는 일절 없었을 텐데.

그 당시의 분위기가 딱히 매력적이었던 것도 아니고, 오히려 험악했으면 험악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그 당시 백금발의 소년이 내뱉었던 말을 떠올리면.

이리도 얼굴이 확 달아오른단 말인가.

“……이유를 모르겠네.”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오르카가 애써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

그녀의 표정 위로 부끄러운 기색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유를 모르겠다, 라.

‘정말?’

그 자신이 내뱉었던 말을 한 차례 곱씹으며, 오르카가 볼을 붉혔다.

정말이야?

정말로 모르는 거야?

쿵, 쿵.

“…….”

이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이, 붉어지는 얼굴이 뜻하는 의미를.

“하아으…….”

걸어가다 말고, 오르카가 근처의 벽에 기대듯이 무너져 내렸다.

어느새 얼굴은 새빨갛다 못해 잘 익은 사과와도 같은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딱히 무드 있는 말도 아니었는데.’

얕게 입술을 깨물며, 그녀가 살짝 볼을 부풀렸다.

그래, 그랬다.

어쩌면 험악하다고 표현할 만한 분위기, 그리고 내뱉어지는 살벌한 말들.

……백금발의 소년, 화이트의 그 말을 떠올린다고 이런 반응을 보일 이유 따위는─

-나 정도 되는 마법사의 도움을 거절할 정도로 아둔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오르카.

“으아아!”

급하게 고개를 치켜들며, 오르카가 붉어진 얼굴로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이러다가 얼굴이 터지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열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멍청이.”

오르카가 자조 섞인 쓴웃음을 한 차례 흘렸다.

솔직히 알지 못했다.

설마하니, 자신이.

후작령에서 최고의 공주로 칭송받던 그 오르카 밤피르가.

‘……이렇게까지, 쉽게.’

“……에 빠질 줄은.”

앞말은 애써 도로 집어삼켰다.

그 말을, 그 단어를 육성으로 내었다가는 정말이지 뒷감당이 불가능할 것 같아서.

“……아, 아하하. 날씨가 참 덥네.”

입을 꾹 다물고, 오르카가 손을 파닥거리며 뜨거워진 얼굴을 식히고자 노력했다.

저벅, 저벅-

그러면서도 걸음은 계속해서 옮긴다.

-클리포트 가의 후계자께서 어디로 가셨냐고요?

-아, 저 본 기억이 있어요. 그 백금발이 워낙 화려해야죠.

-황궁의 끝부분에 가면 자그마한 숲이 있는데, 그쪽으로 걸어가시는 거를 봤어요.

-아마 이틀 정도 지났을까요? 지금쯤이면 나오셨을지도 모르겠네요.

-그 황량한 숲속에 무슨 볼일이 있으신지는 모르겠지만…….

“…….”

걸어오면서 전해들은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오르카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일말의 가식도 섞이지 않은, 그야말로 환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입가에 걸치면서.

그녀가 가벼운 발걸음을 망설임 없이 앞으로 뻗었다.

“……그냥, 말려준 거에 대해서 감사 인사를 하러 가는 것뿐이니까.”

누가 듣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입 밖으로 그런 말을 꺼내 들면서 말이다.

*****

“…….”

쏴아아아-

빗줄기가 거칠게 쏟아져 내린다.

그러나 신경 쓰지 않은 채,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그저 몸으로 받아내며.

화이트가 조심스레 몸을 낮추었다.

“……아버지.”

사락-

공허하게 움직인 손은 지면의 흙을 한 차례 쓸쓸히 훑고 지나간다.

[26대 클리포트 공작, 테이칸 클리포트. 이곳에 잠들다.]

“…….”

화이트의 눈꺼풀이 고요하게 내려앉았다.

시야를 가리는 어둠을 온전히 느끼며, 화이트가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었다.

‘……이건 현실이 아니다.’

머릿속에서는 연신 상념이 떠오르고 있었다.

‘……현실은 아니지만.’

화이트의 전신에서 무시할 수 없는 살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에 뒤편에 서 있던 가신들이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으나, 그에는 신경 쓰지 않은 채.

화이트가 잔잔하게 기세를 내뿜어댔다.

그 전신에 푸른빛의 마나를 두르며, 화이트가 두 눈을 천천히 떴다.

“……그래.”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오는 목소리는 무척이나 가라앉아 있었다.

─이건 현실이 아니다.

그저 기억일 뿐이고, 그마저도 지금은 없어진 시간대의 일이었다.

새삼스레 동요할 필요도, 이유도 없을 터.

“…….”

……그런데, 어째서일까.

아버지, 테이칸 클리포트.

그가 잠든 무덤, 그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할 것만 같은 감각이 드는 것은.

“──.”

……그리고.

그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아!

“……윽!”

“가, 가주시여?”

화이트의 몸에서부터, 조금은 어두운 빛을 띠는 푸른색의 마나가 치솟아 오른 것은.

……평소의 그 찬란한 빛깔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나마 비슷한 점을 꼽자면, 그건 아마 색상이 푸른빛이라는 부분 하나뿐이겠지.

“……후우.”

화이트가 얕게 숨을 골랐다.

눈을 고요하게 빛내며, 그 속에는 잔잔한 분노를 담고서.

‘이 감정을 이용한다.’

──참지 마라.

감정이 끓어오르면, 폭발시켜라.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간절함을 더욱 끌어 올려라.

이 거짓된 세계에서, 현실의 내가 바라는 위치에 도달하기 위한 모험을 시도한다.

감정을 이용한다, 그리고.

……간절함을 이용한다.

“──.”

백색의 마법사, 클리포트의 가주.

적어도 이 심상 세계 내부에서만큼은 그렇게 불리울, 9서클의 대마도사.

콰아아아아아!

화이트 클리포트의 마나는, 그렇게 포효하듯이 사방을 향해 퍼져나갔다.

*****

“…….”

콰아아아아!

그 자신의 제자의 몸에서부터 폭발적인 기세로 터져 나오는 마나를 두 눈에 담으며, 아셰라가 얕게 입술을 깨물었다.

화이트가 명상에 들어가고 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렇지만, 이때까지 아무런 이상도 없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갑작스레, 마치 폭주하기라도 할 듯이 마나가 미쳐 날뛴다는 말인가.

까득!

아셰라가 거칠게 이를 갈았다.

표정은 무력함으로 물들었으나, 눈빛은 오히려 이전보다도 더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개입하지 않겠어요.”

들을 사람은 없었으나, 억지로 목소리를 흘려보내며.

아셰라가 두 눈동자를 사납게 번뜩였다.

……그래.

개입하지는 않겠다.

‘제자님이 직접 선택한 일이고, 그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제자님의 의도대로겠죠.’

아셰라가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개입하지 않겠다.

그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표정은 두려움의 감정을 담아내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 자신의 하나뿐인 제자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이렇게 위험한 방법을 쓴다고는 말 안 했잖아요, 제자님.”

그녀의 입술을 비집고 억눌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표정은 일그러지고, 목소리는 연신 떨려대고 있었다.

“일어나기만 해봐요. 바로 날려버릴 거니까.”

……그러니까.

부디 바라건대.

‘굳이 무리하지 말고, 무사히 깨어나기만 해주세요.’

천천히 두 눈을 감으며, 아셰라가 양손을 꼬옥 모았다.

…….

……그리고.

“……!”

감겼던 그녀의 눈이 번쩍 떠진 것은, 바로 그다음 순간이었다.

“─누구입니까.”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아셰라가 싸늘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시선이 향하는 건 뒤편의 거대한 나무.

……그 뒤쪽.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굳이 숨을 생각을 하지 말고, 얼른 모습을 드러내세요.”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더더욱 대답이 될 수 있었다.

“……그런가요.”

우웅-

나무에 기대었던 등을 서서히 떼어내며, 아셰라가 한쪽 손으로 완드를 잡아챘다.

반대쪽 손에는 화이트의 그것과 똑 닮은 찬란한 푸른빛의 광휘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는 정반대로, 그녀의 두 눈동자는 빛을 잃은 채 서늘하게 번뜩이고 있었으니.

“5초를 세겠습니다.”

“…….”

“그 안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저는 당신을 적으로 판단하고 최선을 다해 섬멸할 것입니다.”

그 말에는 거짓이 없었다.

굳이 견제를 위한 마법을 쏘아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째서 금방이라도 이 일대를 초토화시킬 것만 같은 마나를 모으고 있는가.

그 모든 이유에는, 오직 한 소년의 존재만이 있었으니.

“……다섯.”

한 차례, 뒤편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화이트를 흘겨보며.

“넷.”

아셰라가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제자님이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입술을 얕게 깨물며, 그녀가 한 차례 거칠게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만약, 만약의 일이지만.

지금 저 나무 뒤편에 서 있을 정체 모를 자가, 화이트에게 위협이 될 만한 행동을 한다면.

현재의 무방비한 그는, 필시 속수무책으로 당하겠지.

어쩌면 중간에 방해를 받아 마나가 역류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셋.”

그렇기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속으로 조심스레 품는 아셰라.

우우웅!

그녀의 손과 완드에 깃든 마나가 사납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쯤에서.

“……자, 잠깐만, 요.”

“…….”

나무 뒤편에 서 있던 ‘누군가’가, 그 정체를 드러냈으니.

“……당신은?”

아셰라의 눈가가 가늘게 좁혀졌다.

다름 아닌, 나무의 측면에서 튀어나온 자그마한 붉은색에.

아니, 정확히는 그 붉은색의 눈동자에.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사아아아-

“…….”

아셰라의 마나가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내 깔끔하게 흩어지는 푸른빛의 광휘.

“후, 후아아…….”

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끝내 나무 뒤편에 서 있던 소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오르카 영애.”

“아, 아하. 저를 아시는구나?”

소녀, 오르카가 해맑게 웃으며 난감한 기색으로 볼을 긁적였다.

“…….”

“…….”

한 차례, 두 소녀의 눈빛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그리고 그 눈싸움은, 당연하게도 기세에서 밀린 오르카의 패배로 마무리되었고.

“……음, 그렇게 무섭게 쳐다보지 말아주시겠어요?”

애써 억지웃음을 그려내며 그리 내뱉는 오르카였으나, 아셰라는 그저 냉담했다.

“이곳에 찾아올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목적을 밝히세요.”

“……어, 음. 그게요.”

평범하게 싸늘할 뿐인 어조에, 오르카가 한 차례 몸을 움찔거렸다.

찾아올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목적이라니.

“으, 으음…….”

턱을 괴며, 오르카가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결론이 나온 건지, 안 나온 건지.

수십 초가 흘러도 그녀의 표정은 미묘하기만 했기에.

한 차례, 아셰라가 눈썹을 까딱거릴 즈음.

“그러게요…….”

오르카가 재차 입을 열었으니.

핏빛과도 같은 그녀의 붉은 시선이, 조심스레 아셰라의 뒤편에 존재하는 화이트에게로 향했다.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며, 그녀의 송곳니가 조심스레 드러났다.

그리고 말한다.

“……사랑을 찾기 위해?”

무척이나 단순한, 그러나 의미심장하기 짝이 없는 한마디를.

“…….”

아셰라의 표정이 한순간에 어두운 기색으로 가라앉았다.

어느새 눈동자에서는 빛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고오오오-

“아, 아하하~”

아셰라의 싸늘한 금빛 시선을 받아내며, 오르카가 한 차례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잘못 말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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